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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간들 -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
이보영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평점 :
내게 억만금을 주고라도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명품가방도 아니요 으리으리한 집도 아니요, 사각지대까지 관찰하며 안전운전을 해준다는 차량도 아니다. 내가 가장 가지고 싶고 품고 싶은것은 어린시절 책과 함께했다는 추억담이다.
내게 어린시절 책이라고 하면 국민학교때( 내 시절에는 국민학교였으니) 학교에서 책 한 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엄마가 큰 마음먹고 책을 한질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엄마의 큰 마음에도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탓에 읽은 기억보다도 책등으로 맞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이후 여러번의 이사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책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큰 후회로 남아있다.
두번째로 기억나는 추억이라곤 도서관 앞에 살던 시절이였다. 그 당시에도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끔 들춰보긴 해서 동생과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한권 빌렸었는데 한달동안 연체해서 (그당시 나는 몸쓸 회원이였던 것이다) 동생과 책 반납을 두고 서로 미루다가 서로 손잡고 오돌오돌 떨며 반납했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렇듯 나에겐 어린 시절은 책과함께 증발되어버린 세계로 남아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것도 없고 특별한 추억담이 없는. 그런데 점차 사회 초년생이 되고 중년의 시기로 접어들고 인생의 문제를 책에서 찾아대고 있는 지금 책은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가족같은, 친구같은, 반려자와 같은, 없으면 보고 싶고 있으면 가끔 샐쭉해지는 그런 마음에 한없이 기대고만 싶은 그런 존재.
그래서인지 어린시절 책과의 추억담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있노라면 마냥 부럽다가도 탐이 나고 배가 아파지는건 증발되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회한이자, 내가 품지 못한 추억에 대한 동경인지 모르겠다.
어여쁜 배우로만 알고 있던 이보영씨의 책을 읽으며 그런 미묘한 마음들이 들었다. 엄하셨던 부모님때문에 상처 받았던 마음을 정채봉 작가님의 책 『그대 뒷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고교시절 미숙했던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시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읽으며 완숙한 사랑을 꿈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다면 나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했다.
어느 후배가 사랑하는 책 『어린왕자』가 궁금해 다시 읽어본 책이 더없이 소중한 책이 되어버린 모습, 어느 독자에게 선물받은 『미 비포 유 』라는 소설을 통해 사랑을 재발견하고 그간 갖어온 책에 관한 편견에 생각이 닿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건 그녀가 책에서 받았던 사랑과 위안이 나와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며 큰 공감을 갖게한 부분이였다. 평소 책에 줄을 잘 긋지 않던 내게 펜을 쥐어주고 색색의 볼펜으로 줄을 긋게 만들며 마음과 마음을 다해 읽겠노라 다짐해보고, 한 텍스트도 흘려버리지 말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해준 시간이였다.
독서에도 맛이 있다면 스릴러는 레몬을 베어 먹은듯 시큼하면서도 짜릿한 맛을, 사랑에 관한 소설은 된장 찌개와 같은 구수하면서도 익숙한 그러면서도 자꾸 찾아서 먹게 되는 맛을 선사하는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맛이날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공허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뜨끈하면서도 담백한 국물 맛이 난다고나 할까. 사랑과 성장에 관한 다양한 독서 레시피를 선사하면서도 위로의 맛이 진하게 베어나는 그런 맛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에 정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살면 살수록 세상사는 의문투성이다. 내가 그리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내 마음 갖지 않아서 울적해 지기도 하고, 변해가는 내 모습에 흠짓 놀라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이 사막일 때 나는 어린왕자를 찾아간다P32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느 나이에서 읽느냐에 따라 이해하는 폭이 달라진다는 것은 책이 지닌 신비로움 중 하나이다. 몇년 전부터 나는 어릴 때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다. 마치 다른 책을 새롭게 읽고 있는 것만 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에 같은 내용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맛본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그때 뭘 안다고 끌어안고 있었을까.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뜻밖에 찾아온 흥미로운 여행과도 같다P62
진짜 상처는 가슴 깊이 묻어두고 곪을 때까지 좀처럼 꺼내 보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 상처를 나 자신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안아줄 수 있을때 좀 더 행복해 지지 않을까.
부디 지친 자신에게 소중히 다가갈 수 있기를,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평생 나를 속여 왔구나, 정직하게 슬픔을 마주보지도 고통을 표현하지도 못했구나 라고 스스로 다독여 주기를, 나의 슬픔, 너의 슬픔을 알아봐주고 말을 건낼 때 고인물이 흐르듯 인생 또한 흘러간다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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