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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ㅣ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을 고1때 읽었으니 기억은 그리 세세하게 남아있지 않다.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간결하면서도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 문장은 오랜만에 접했어도 그 강렬함은 여전했다. 비교적 짧은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받고 보니 분량이 상당했다. 역시나 번역 문제를 제기한 작품이어서인지 번역의 문제로 반론을 제기하는 ‘역자 노트’가 작품 내용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위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을 우리는 거의 번역본으로 읽는다. 고전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역서들을 접한다. 원서로 읽을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았다면 모를까, 번역서를 만나면서 우리는 가끔 잘 안 읽히는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한 부류의 책은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는다. 한 나라의 언어에는 그들의 역사, 문화, 풍습, 그들의 생활까지도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석하고 번역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등장인물의 성격이 달라지고 내용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책읽기였다. 원래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나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번역의 과정에서 왜곡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리뷰를 쓰면서도 조심스럽기는 하다. 번역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이 분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분들도 이렇게 도마 위에 올라 분쟁을 하는구나 싶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단지 독자로서 이 작품을 읽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주로 김화영 번역가의 번역본을 비교하는 문장이 주로 차지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확실히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없는 접속사나 말을 끼워 넣었다거나 하는 오류를 범한 것을 낱낱이 지적한다. 프랑스어에 전혀 문외한인 나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면을 할애하여 예를 든 문장들이 사실이라면 작품을 번역하는 역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는 피가 나도록 여자를 때렸다. 그전에는 그 여자를 때린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손찌검은 했지만 말하자면 살살 했던 셈이지요. 그러면 그년은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나는 덧문을 닫아 버렸고, 결국엔 늘 마찬가지로 끝나 버리곤 했어요. 그렇지만 이번엔 본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년에게 벌을 속 시원하게 다 주지 못했거든요.”(김화영 역 민음사 P39~40)
‘그는 피가 날 정도로 때렸다. 전에는, 여자를 때리지 않았다. “내가 그 여자를 때린 건, 말하자면 다정함의 표현이었소. 그 여자가 조그맣게 소리를 질러 댔고 나는 덧문을 닫아 버리면 그것으로 항상 끝나는 일이었지. 그러나 이번엔 진짜였고. 그래도 나로서는 그 여자를 충분히 벌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본문 P52~53)
(※ 프랑스어 원문도 실려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했다.)
밑줄 친 부분은 ‘그 여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Elle’를 그렇게 번역하여 등장인물 레몽을 ‘파렴치범’이나 ‘양아치’의 부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자가 임의로 옮긴 번역의 예라고 하는데 작가가 맨 처음 쓴 인물의 성격과는 정 반대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뫼르소는 어느 일요일, 이웃과 함께 보내다가 레몽을 다치게 한 아랍인과 마주치게 되고... 그가 겨누는 칼에 대응하여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파고들어 아픈 두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P88~89)
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라니 간결한 이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고난은 얼마나 큰 것인가.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과정은 뫼르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햇볕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오랫동안 쌓아온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게 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 무덤덤한 성격은 어쩌면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악한이다, 라는 쪽으로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다. 그리 살갑지 않은 성격이지만 거짓말을 싫어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나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굽신 거릴 줄 모른다. 어느 정도로 거짓말을 싫어하냐 하면 마음에 있는 여자 마리가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그에게 묻는데, 사랑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결혼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 묻어가지 못하는 사람 뫼르소는 그렇게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죽을 날을 기다린다.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고, ‘세상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지만 사형을 언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담담하다. 사형집행일에는 덜 외롭게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맞이해 주길 바라기까지 하면서.
<번역문장의 비교 예>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김화영 역 민음사 P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본문 P17)
“잔은 그 녀석을 붙잡으려고 하질 않았다고요.”하고 여자가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응, 그래?” 하고 사내는 말했다. “당신이 나오면 그 녀석을 꼭 붙잡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붙잡으려들지를 않았어요.”(김화영 역)
“잔이 그를 돌볼 수 없대요.” 그녀는 목청을 다하여 소리쳤다. “그래, 그래.” 남자가 말했다. “내가 그 여자에게 당신이 나오면 다시 그를 돌볼 거라고 했지만, 그 여자는 그것을 원치 않는대요.”(본문 P107)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벌써 그 법정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는 느낌이었다.’(김화영 역 P116)
‘나는 그것이 나를 이 사건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나를 제로로 만들어 버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대체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 법정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본문 P144)
책을 읽다보면, 특히 번역서의 경우 정말 잘 읽히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하다가도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고 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번역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역자는 여기서 이렇게 당부한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된다면 자신을 의심하기에 앞서, 역자의 권위에 우선 주눅 들지 말고 그가 번역을 잘못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러한 논쟁은 수없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해당 업계에서는 불편한 감정이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