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시로 - 일본 메이지시대 말기 도쿄의 대학생을 그린 청춘 교양소설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나쓰메 소세키 지음, 허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일본 메이지 시대 말기 도쿄의 대학생을 그린 청춘 교양소설이라고 불리운다. 앞서 읽은 <풀베개>와 달리 초반부터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미에 쏙 빠져 들어갔다. 순박한 청년 산시로(三四郞)는 구마모토에서 올라온 시골 청년으로 대학 진학을 위하여 도쿄에 상경한다. 지적 탐구 등 대학 생활에 대한 희망을 가득 안고 말이다. 도쿄행 열차 안에서 만난 여자와 나고야에서 내리게 된다. 여자가 혼자서는 불안하다며, 숙소를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산시로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용기는 더욱 없어서 대충 대꾸했다. 허름한 여관에 들어갔는데, 이 여자와 자신은 일행이 아니라는 해명도 못 한다. 산시로가 먼저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여자는 “등을 좀 밀어드릴까요?” 한다. 괜찮다고 해도 나가지 않고 오히려 들어온다. 당황한 산시로는 욕조에서 뛰쳐나온다.
여자는 떠나면서 “당신은 어지간히 배짱이 없는 분이군요.”한다.(p13) 산시로는 그 여자와 헤어진 후 곰곰이 생각하는데, ‘23년간 숨겨왔던 약점을 단번에 들켜버린 심정이었다.’(p14)
또 다른 짙은 수염의 사내는 “후지산은 일본 최고의 명물이야. 그것 외에 자랑거리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후지산은 옛날부터 있던 자연경관이니까 뽐낼 것도 못 되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거든.” 산시로는 러일전쟁 이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p21)
도쿄에 온 산시로는 온통 놀랄 일 뿐이었다. 전차의 땡땡 울리는 소리에 놀라고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사람을 보고 놀란다. 도시의 파괴와 건설의 격렬한 활동에 놀란다. 여태까지 배운 것으로는 놀라움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멍해지고, 두렵고,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를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무슨 일이 생기거든 찾아가 도움을 청하라는 노노미야를 만나게 되고, 학교에서는 요지로와 친구가 된다. 요지로는 ‘살아있는 머리를 죽은 강의로 가득 채워봤자 희망이 없다’며 일단 전차를 타는 게 가장 초보 단계이며 제일 쉽다고 한다. 강의는 쓸모없지만, 도서관은 중요하다고 한다. 대단히 수완이 좋은 요지로는 히로타 선생의 식객이다. 대학에서 서양인 교수를 들이려고 하자, 그들은 융통성이 없다며, ‘신시대의 청년들을 만족시켜줄 만한 사람을 끌어와야'(p154) 한다고 말한다. 요지로는 히로타 선생을 대학 교수로 만들겠다며, <위대한 어둠> 이라는 논문을 쓰고, 학생들 모임을 주최하느라 분주하다. 열심히 의견을 내놓고 활약하지만, 끝에 가서는 일을 망친다.
‘광선의 압력’을 연구하는 노노미야, ‘철학의 연기’를 뿜어대는 히로타 선생, 노노미야의 여동생 요시코, 노노미야를 존경하는 미네코, 미네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하라구치(原口), 산시로는 이들과 전시회, 연극 등을 구경하며 어울린다. 노노미야, 산시로, 미네코가 삼각구도인가 생각 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Stray sheep(길 잃은 양, 미아)을 중얼거리며 산시로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놓고, 미네코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산시로는 그렇게 요지로에게 휘둘리고 빌려준 돈을 떼이기도 하고, 마음에 두었던 미네코와 어긋났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충동적이지 않고 절제하는 자아상을 보여준다. 교양소설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오히려 요지로가 이끄는 대로 어울리며 도쿄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간다. 아직까지 ‘절실하게 생사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p240) 산시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한 세 가지의 세계 사이를 넘나든다. 그 중 세 번째 세계 찬란한 봄날처럼 빛나는 웃음과 환성, 아름다운 여성상이 있는 심오한 세계는 산시로가 접근하기 어렵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이 세계는 결국 어긋났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서 좌충우돌했던 도쿄 생활에 적응하면서 그 후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100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언제나 청춘의 시기에 고민하고 마음 쓰는 대상은 거의 비슷하니까. 도쿄 대학에 있는 ‘산시로의 연못’에 가면 나쓰메 소세키의 고뇌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까. 흔적이야 송두리째 사라졌겠지만, 언제 다시 도쿄에 간다면 작품속의 배경이 된 그 자리를 돌아보면서 내리쬐는 햇살과 공기를 한 번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