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레이먼드 카버는 작년에 읽은 작가와 술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에서 소개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을 알게 되어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얼마 전 명사의 서재라는 이벤트를 통해 소설가 김연수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고 그가 번역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한 작가와 만나게 되는 과정은 절묘한 타이밍이 작용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열 두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마다 짧은 글 속에 이토록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을까 감탄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리얼리즘의 대가로 평가된다. 한 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이 없지만 술, 가족이라는 테마는 그의 단편 소설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을 정도로 형상화 되어있다. 특히 작가와 깊은 관계가 있는 술에 관한 문제로 고민하는 마음이 여러 작품 속에 들어 있었다. 인물들은 평범하면서도 소외된 빈민이나 약자 계층으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도드라지게 못된 성격의 인물군은 거의 없으며 자신의 주어진 삶에 불만을 품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인다.


 현재 우리는 소통의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기차>도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비타민>에서 흑인 넬슨이 누런 새끼들의 잘라낸 귀를 기념품이라고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왠지 섬뜩했다. 황인종을 가리키는 베트남인은 물론 여러 작품의 공간 배경으로 나오는 우물, 칸막이 자리, 다락방, 칸막이 객실, 소파, 알코올중독치료 센터 등 닫힌 공간 속에서 외부의 소리와 차단된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잘라냈다는 귀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겠다.


 <신경써서><내가 전화를 거는 곳>은 술을 끊지 못해서 아내와 별거를 하거나 치료센터에 들어가 생활해야 하는 인물이 나온다. 앞 작품에서 아내 이네즈는 로이드와 이혼을 하려는 이야기를 하러 온 것 같은데, 로이드는 한쪽 귀가 귀지로 꽉 막혀서 답답하고 어쩔 줄 몰라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는 등 괴로워하는 상황이다. 그런 모습을 보니 냉정하게 이혼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베이비오일을 빌려서 귀지를 빼내고 귀가 들리도록 로이드를 돕는다. 헤어지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런 도움조차 싫을 텐데도 묵묵히 도움을 준다. 헤어지는 마당에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고 배려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 연민이 느껴졌다.


이제 잘 들려.” 그가 말했다. “괜찮아진 거야! 이제 들을 수 있다고. 당신이 꼭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았는데. 이젠 아니야. 깨끗하게 들려. 괜찮아. 세상에. 잠시나마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구. 하지만 이젠 좋아졌어. 다 들려. 들어봐. 여보. 커피를 끓일게. 주스도 있고.”(P170)


 그러게 평소에 신경써서아내의 말을 잘 듣고 소통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술 때문에 가정이 흔들릴 지경까지 갔으면 멈출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로이드는 화장실 변기 뒤에까지 숨겨 놓고 마신다. 이제 잘 들린다는 건 그녀에게 고맙고 같이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안 그래도 늦었다구.” 그녀는 문으로 갔다. 하지만 문 앞에서 그녀는 돌아서더니 그에게 뭐라고 얘기했다.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입술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그 말을 끝마친 뒤, 그녀는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문을 열었다 닫으며 밖으로 나갔다.(P171)


 로이드의 귀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약속시간에도 늦었지만, 로이드와의 재고된 삶도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라고 건성으로 들으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는 없다.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위트가 있다. 짠한 장면을 읽으면서도 웃음이 난다.


 맨 처음에 나오는 <깃털들>은 한 번도 아이를 원한 적이 없이 잘 살고 있던 잭과 프랜 부부가 잭의 친구 버드의 초대를 받아 놀러갔다가 낙원의 새를 의미하는 커다란 공작을 키우고 있는 기이한 그들을 본다. 그리고 단순히 못생겼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엄청나게 못생겼다는그들의 아기를 보고 와서는 어떻게 마음이 바뀌었는지 잭과 프랜은 아이를 갖는다. 아이가 생기면서 부부는 소원해지고 둘 사이를 차지하는 것은 TV뿐이라고 넋두리를 한다. 이른바 그들의 낙원이 사라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카버는 에세이에서 아이들이 생기면서 더욱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는데 이 작품으로 재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은 아내 아일린이 칼라일의 직장 동료와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집을 떠나면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처한 칼라일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장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시터를 구해야 하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집을 떠난 아내의 도움으로 세 번째 시터로 웹스터 부인이 와서 아이들과 가정이 겨우 안정되었는데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정을 듣게 된다. 아내에 대한 미련과 애증으로 갈피를 잡지 못한 칼라일은 열병을 얻게 되고 웹스터 할머니의 간호로 낫게 되는데 떠나는 할머니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집 떠난 아내를 완전히 놓아줄 수 있다고 마음의 매듭을 짓는다. 자신에게는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얼룩 일수도 있는 그것도 삶의 일부라고 인정한 것이다.


 <굴레>는 부동산 임대업과 미용실을 겸업하는 화자가 나온다. 이 화자도 <>의 웹스터 할머니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때 미네소타 농장주였던 홀리츠 가족이 그들이 탄 자동차만을 건진 채 이사를 온다. 베티는 무직인 남편 홀리츠와 두 아들의 생계를 위해 분할근무제 식당에서 일하는데, 어느 날 머리 관리를 받으러 왔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점점 나아져가고 희망에 차 있었는데 경주마를 사는 홀리츠로 인해 삶은 버거워졌고, 놀랍게도 자신은 두 번째 아내이며 친아들도 아닌데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말까지. 주변 사람들과 좀 친해져서 같이 어울리다가 어쩌면 치기 어린 장난으로 홀리츠가 머리를 다치고 그들은 떠나게 된다. 검은 가죽의 낡은 말굴레만 놓고서. 빠뜨린 것인지 일부러 놓고 간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베티는 이런 힘듦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베티는 이런 삶 속에서도 불평불만도 없이 이 가족을 떠나지도 않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 사이에 이런 걸 차게 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되리라. 재갈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그때라는 걸.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P284)


 재갈이 물려졌다는 것은 삶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일 게다. 살아있으니까 그런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벗어나기 위한 굴레가 아닌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고 거기서 도망치지 않는 베티는 아마도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는 아니었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굴레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동이 진하게 몰려온다.


 마지막의 <대성당>은 소외 계층의 약자 중에 약자라 할 수 있는 맹인이 나온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은 아니고 환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성을 다해 들으려 하지 않고 진실을 보려는 진심 없이는 진정한 소통은 요원할 것이다. 여러 단편 속의 인물들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이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점점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위안이 생긴다

 

이 사람아, 다 괜찮네.” 그 맹인이 말했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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