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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더디 세계문학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은정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7월
평점 :
두 번째로 읽은 마음이다. 이번 읽기는 더욱 의미가 깊었던 것이 지난 6월의 도쿄 여행에서 그의 산방 기념관이나 산시로의 연못을 보고 온 여운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그 여행의 감흥이 되살아나 더욱 재미있는 책읽기가 되었다. 사오년 전인가 읽었을 때는 하나도 기억에 없었는데 내가 걸어보고 거쳐 온 곳의 지명이 많이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내가 다녀온 곳의 어디쯤일까 상상해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역시 문학 읽기는 여행과 함께 해야 좀 더 기억에 오래 남는 독서가 되겠구나 싶다.
도쿄 여행기(산시로의 연못, 산방 기념관)
http://blog.yes24.com/document/10491588
사람의 마음처럼 알 수 없고 복잡한 것이 또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속마음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겉으로 드러난 마음과 달리 저 안의 심연에 꼭꼭 숨기고 있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그리고 선생님과 유서다. 선생님의 유서는 편지로 되어있는데 마치 이 소설속의 또 하나의 소설 같은 느낌이다. 부모의 마음, 젊은 학생의 마음, 남녀의 마음이 복잡하고도 미묘하게 그려져 있다.
화자인 ‘나’는 여름방학에 자산가의 아들인 친구 덕에 가마쿠라에 갔다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만나는 과정도 어찌 보면 우연 같지만 ‘나’의 호기심과 집요함으로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친해져서 댁을 방문하게 되고 아름다운 사모님과도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 이상하게도 왜 선생님에게만 마음이 동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도쿄에 돌아온 어느 날 두 번째로 선생님 댁에 갔다가 조시가야의 묘지에 있다는 사모님의 말을 듣고 드디어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곳으로 향한다. ‘나’의 반가움과는 달리 강한 경계심과 어둠의 그림자가 보이는 선생님이다. 게다가 나의 호기심이 충족되는 대답은 들을 수 없고 자꾸만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 선생님.
“나는 세상에서 여자라고는 단 한 사람밖에 모른다네. 아내 이외의 여자는 여자로 보이지 않아. 아내도 나를 천하에 단 한 사람밖에 없는 남자로 생각해주고 있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장 행복한 한 쌍이어야 마땅하지.”(P35)
“나는 세상에 나가서 활동할 자격이 없는 남자이니 어쩔 수 없네”(P38)
왜 이런 고백 같은 걸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말 아닌가. 경의를 표할만한 학문과 사상을 가진 선생님이 왜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는 걸까 궁금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고결한 사상을 논하는 선생님의 입으로 집안의 재산을 묻질 않나 미리 분배받는 것이 좋다는 말까지 듣게 되고 ‘나’는 또 놀란다. 더 깊이 알고 싶은데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선생님에게 궁금증은 더욱 부채질한다. 선생님의 마음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토록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
시 골에서 온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나’는 병세가 있는 아버지를 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 여기서는 부모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대립한다. 아버지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이 취직을 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가르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부모와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노부모의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이 이중적인 모순, 짠하고도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 일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 당시 도쿄제국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 선생님도 ‘나’도. 그 선생님에게 취직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쓰라는 어머니.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이며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형의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흔히 일을 안 하고 노는 사람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런데 어느 정도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일을 안 하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랄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똑같은지. 백 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사람의 마음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상태가 더 심해진 상황에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두툼하고 묵직한 선생님의 편지. 편지에서는 소설 같은 선생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숙부에게 배신당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자신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았는데 사랑을 하게 되면서 그것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린 것.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발목을 잡았다는 것 등 처음에 궁금해 했던 모든 것의 의문이 풀린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다리를 올려놓게 한다네. 나는 미래에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고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것이네. 지금보다 한층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지금의 외로움을 견디려고 하는 것이지. 자유와 독립과 자기 본위로 넘치는 현대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그 대가로 외로움을 맛봐야만 하는 거겠지.”(P47)
고통과 번민으로 지금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 어떤 암시처럼 알 수 없는 말만 자꾸 되풀이할 뿐이다. 스스로 세상을 차단하고 과거의 시간에 갇혀 살던 선생님은 좀 편안해졌을까. 외로운 삶 가운데 다가오는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싫어하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으면. 진실하다고 믿었던 단 한 사람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모두 털어 놓는다. 작품 해설에서 어떤 이는 탐정 소설의 기법이 가미된 심리 소설로 보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은 편지를 매개로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형식을 빌려 내면을 치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꼭 붙잡고 있던 과거를 놓아버림으로 마음의 자유를 찾는 것.
‘나는 내 과거를 선과 악 모두 다른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한 셈이네. 그러나 아내만은 단 한 사람의 예외로 해주게. 나는 아내에게는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다네.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서 갖고 있는 기억을 가능한 순백으로 남겨두고 싶네. 그것이 내 유일한 바람일세.’(P312)
사랑한 죄가 참으로 크다. 사랑을 얻은 승리감에 잠시 행복하기도 했지만 마음에 진 무거운 짐은 그 사랑과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한다. 더구나 배운 지식을 써먹지도 못하고 은둔하는 삶이라니. 좀 더 친구에게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왕 그렇게 사랑에 엮였지만 숨기지만 말고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세상의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다. 행복도 불행도 사랑도 영원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선악의 뒷일까지 일일이 헤아려보고 나서 실행하는 완벽한 인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인들의 삶과 문학작품에서 그런 해답을 만나기도 한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은 힘들겠지만, 삶의 태도와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행복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문학의 향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머물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질문을 던진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