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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1910년 3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이다. 전작 <그 후>의 연재가 끝난 후 신문사가 예고를 위해서 다음 작품의 제목을 알려달라고 재촉하자, 제자에게 아무거나 좋으니 제목을 붙여달라고 했고 고미야 도요다카의 책상위에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었고, 아무데나 펼쳐보니, ‘문’이란 단어가 눈에 띄어 그것으로 정해 신문사에 알렸다고 한다. 이렇게 남이 붙여준 제목으로 이 작품은 탄생되었다.
‘그 문을 열면 처마에 닿을 듯 깎아지른 절벽이 툇마루 끝에 버티고 있어서 아침나절은 비쳐도 좋을 한 줄기 햇살마저 쉽게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한다. 잡초가 무성했다. 밑에서 돌로 쌓아 올린 게 아니므로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험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여태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한다.’(p10)
소스케와 오요네가 살고 있는 집의 모습이다. 소세키의 작품 중 부부 중심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림자 드리워진 삶, 불안에 휩싸여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물처럼 옅고 담담한’(p188) 그저 친밀감을 표시하는 간략한 말을 주고받다가 가까워진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되돌릴 수없는 상황임을 알았다. 소세키의 작품 중 유일하게 금슬 좋은 부부상을 그렸다. 금슬이 좋아보이기는 하나 그 둘 사이에는 체념과 인내 같은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미래나 희망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금슬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좋지만 자식에 관해서는 보통 사람보다도 불행했다.’(p161) 아이를 가졌으나, 세 번이나 잃었다. 달을 못 채우거나, 채우고 낳았어도 울음소리 없는 차디찬 ‘살덩이’뿐이었다. 연거푸 아이를 갖는데 실패하자 점쟁이를 찾았는데,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말을 듣게 된다.
“당신은 자식을 못 가져.”
“왜죠?”
“당신 어떤 사람한테 몹쓸 짓을 했군. 그 귀신에 씌어 죽어도 자식을 못 가져”(p169)
사회활동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삶은 점점 단조로워졌다. 그럴수록 둘의 존재는 절대적이 되어 갔다.
‘외부를 향해서 성장할 여지를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안으로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의 생활은 폭이 좁아질수록 더 깊어져갔다. 그들은 육 년 동안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하지 않은 대신 육 년의 세월에 걸쳐서 서로의 가슴을 파냈다. 그들의 생명은 어느새 서로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었다.’(p172)
현재 상황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 채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아가지만, 그는 한 때 상당한 재산이 있는 부모를 두었고, 쾌활한 성격에 복장이며 얼굴에서 빛이 났었다. 친구라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소스케에게 모여들곤 했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벼랑 위의 주인집 남자 사카이와 점점 친해졌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섣달 그믐날 자꾸 놀러오라고 청한다. 세상 사는 이야기며, 골동품 이야기도 하고.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던 소스케는 그의 세상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동생 고로쿠를 자신의 서생으로 삼고 중단했던 공부를 시키는 건 어떠냐는 사카이의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한다. 거기까지 듣고 인사를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천천히 더 놀다가라는 만류로 앉아 있다가 영원히 묻어두고 싶었던 그 이름을 듣고야 말았다. 대학 친구 야스이.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속 썩이던 동생이 조만간 몽골에서 야스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오기로 했고 저녁을 먹기로 했으니 꼭 오라고. 소스케는 사색이 되어서 주인집을 나와야 했다. 친구 야스이를 배신했던 소스케. 학교도 중단하고, 친구도, 부모도 친척도 모두 버렸다. 아니 버림을 받았다. 세상도 등져야 했다. 그 어두운 과거 때문에 다시 벼랑 위에 선 심정이 된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산문(山門)을 찾는다. 마음의 구원을 받고자 찾은 절에서조차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고 ‘초상집 개’ 처럼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문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었다.'(p264)
소스케는 야스이와의 만남을 피했다가 돌아왔지만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주인집 사카이를 찾았다가 이런 말을 듣는다. 초봄만 되면 개구리 부부가 장난꾸러기들의 돌에 맞아 죽은 시체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면서, “그런 걸 생각하면 당신이나 나는 실로 행복한 거예요. 적어도 부부가 되어 있는 게 밉살스럽다고 돌로 머리를 얻어맞는 공포는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쌍방이 모두 이십 년이고 삼십 년이고 안전하다면 그거야말로 경사스러운 일이 틀림없지요.”(p272~273) 사교에 익숙한 사카이의 농담 섞인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데, 마음속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비애와 끔찍함이 떠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을 수 없다. 어찌하다보니 그런 지경에 이르렀고, 죄책감이 똘똘 뭉친 마음으로 체념하고 인내하며 오로지 자연의 혜택인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삭이면서 살아간다. 통속소설처럼 화끈하고 행복하게 살지도 못하고 어두운 과거로 인해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봄이 왔다고 좋아하는 오요네에게 다시 겨울이 올 거라는 소스케의 대응에서 끝없이 순환되는 자연과 삶의 희로애락이 겹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아 <태엽 감는 새>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번 뿐인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