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화의 사기 1 : 큰 그릇이 된다는 것 1 장자화의 사기 1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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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고전이며, 중국 최고의 역사 저작이자 세계적인 고전이 사마천의 사기. 사기처럼 오늘날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인용되고 읽혀지는 책이 또 있을까. 중국 역사 가운데 3천년을 본기12, 10,8,세가30열전70편 총 130편에 걸쳐 기록한 방대한 저작이다. 이 중 장자화의 사기시리즈는 역사서 최초로 기전체를 도입한 사마천의 역사관을 따라, 인물을 중심으로 쓴 다섯 권의 사기해설서다. 1,2권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머지는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1큰 그릇이 된다는 것본기를 바탕으로 세가열전에 수록된 관련 내용을 참고해서 썼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내용은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고사 형태로 되어 있다. 특히 삽화는 이야기의 내용을 실감나게 해주는데 한나라 때 돌에 새긴 그림처럼 보이도록 판화 방식을 도입했다 한다. 중국 고대의 멋을 살리고자 한 그림으로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현대 문학의 표현법으로 인물의 심리와 행동에 담긴 의미를 그렸으며, 각 장의 끝에는 ‘3분 역사 키워드를 넣어 문학, 역사학, 철학, 심리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인물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또 작품 속 사건은 현대식 연도로 표기했고 지도의 삽입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해당하는 큰 그릇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 기준은 땅이나 재물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사회 조직에서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과 현명하게 관계 맺는가, 그 관계에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 에 있다. 요순 선양 고사를 비롯하여 탕무 혁명 고사, 주공 섭정 고사, 진시황 고사, 항우의 패업 창립 고사, 제왕이 된 유방의 고사, 여후 고사, 한 무제의 고사가 실려 있다. 맨 마지막의 태사공 사마천의 고사에는 죽음을 앞둔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어 애절하다. 남성으로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치욕적인 부형을 받은 사마천의 곤혹스런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누구를 진심으로 도우려고 했던 순수한 마음이 의심을 사서 의도하지 않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역사에서는 오해를 넘어서 죽음을 이르기도 한다. 포악한 상 주왕을 토벌하고 왕조를 세운 무왕은 오로지 나랏일에만 매진하다가 불과 4년 만에 죽고 만다. 보위를 이어받은 성왕은 겨우 12. 그 무거운 짐을 돕기 위해 주공의 섭정이 시작되는데, 이런 상황이면 반드시 시샘하고 모략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도륙하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목표가 올바르고 떳떳하다면 남의 험담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임해야 한다. 이렇게 군주를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성심을 다해 보좌하는 주공 같은 인재가 아쉬운 시대다.


 범증의 충고를 무시하고 신안(新安)에서 항복한 진나라 군사 이십만 명을 산 채로 매장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항우의 처사는 진나라 장수 백기가 장평(長坪)에서 조나라 군사 사십 만 명을 산 채로 매장한 일과 묘하게 닮았다. 원한으로 일을 처리하면 자신도 원한으로 당하는 게 세상사다. 홍문연에서 범증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항우에겐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란 내가 놓치면 다른 상대가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살이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기회를 놓친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하늘을 탓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 돼지를 만든 여인여후에 대한 고사가 있다. 이 또한 권력을 이용하여 사무친 원한을 철저히 갚는 이야기다. 여공은 유방의 관상을 좋게 보고 딸 여치를 유방에게 시집을 보낸다. 늘 항우와 싸우느라 집안을 책임져야 했고, 항우의 손아귀에서 끔찍한 인질 생활 등 고난을 이기고 황제와 황후가 되지만 유방이 누구인가. 유난히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라 미녀 척희(戚熙)만을 총애한다. 유방이 죽자 가슴에 쌓인 원한을 복수로 갚는다. 척 부인을 손발을 자르고, 두 눈을 파내고, 귀를 태우고, 약을 먹여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게 한 다음 돼지우리에 가두는 만행이다. 중국 역사서를 보면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할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많은데,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늙고 권세는 기울기 마련이다. 평생 지속되는 것이 천하에 있을까. 그렇게 복수를 하고 나면 후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그렇게 될까봐 벌벌 떨게 된다. 원한, 분노야 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건강마저 해치게 되는 해악임에는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요순임금 같은 군주가 되고 싶어 했다는 한 무제를 후세는 진시황과 비교한다고 한다. 웅장함, 문치(文治), 군사력 과시, 미색에 대한 욕망, 준마(俊馬), 신선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다. 군주의 과도한 욕망은 수많은 재물을 낭비하고 백성의 살림을 도탄에 빠뜨린다. 더구나 터무니없이 신선이나 귀신, 미신을 맹신했다는 대목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부분이라 놀랍다. 역사가 돌고 돌듯이 사람들의 마음이나 행동 양식도 닮는 것인지, 묘한 느낌이다. 리더로서 원대한 야망과 업적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수양은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것이다.


 ‘장자화의 사기는 원래 청소년들을 위해 기획된 시리즈라고 한다. 또 고전을 처음 시작하려는 독자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출간하였단다. 그래서인지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역사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 실감나게 느껴져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사기에 매료되어 잠시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고, 깊은 밤 사기를 읽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저자의사기에 대한 깊은 애정과 내공이 잘 드러나 있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그릇의 인품을 지향하는 삶이라면 한정된 인생, 좀 더 의미 깊게 다가오지 않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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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와 숫자로 보는 366일 신비한 생일 사전
새피 크로퍼드.제럴딘 설리번 지음, 유엔제이 옮김 / 현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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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자리와 숫자로 보는 신기한 366일 신비한 생일 사전이다. 오래전 생년월일로 운세를 봐주고 그 내역을 인쇄해 주는 별자리 운세가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직업운, 자녀운 등 여러 항목이 있었고, 몇 살이 되면 대길하고, 물가에 가지 말라든가 어느 방향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수 있다, 는 등 재미있는 글귀를 읽으면서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했었다. 또 어릴 적 신년이 되면 아버지가 구해 오신 토정비결 책자를 본 기억도 있다. 요즘에도 인터넷 사이트에 많은 운세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는 걸 보면, 앞날의 운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한 것 같다.

 

 이 책은 런던에서 수비학자, 점성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새피 크로퍼드와 제럴딘 설리번 공저이며 새피 크로퍼드는 점성학 카운슬러, 점성학과 수비학 워크숍을 진행하며, 제럴딘 설리번은 워크숍도 열고 점성학도 가르치며 전 세계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점성학의 세계, 항성과 점성학, 수비학(數秘學)의 세계, 366일 날짜별 생일 분석으로 되어 있다. 역사 초기부터 인류는 자연의 힘과 주기를 알고 있었고, 이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항성은 고대부터 점성학에서 다루는 한 부분이었는데, 여기서는 1366일 하루하루에 대해 항성이 미치는 영향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점성학과 수비학은 이 영향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이 주기들이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점성학 연구에는 천문학, 상징주의 심리학, 기하학 등 다양한 학문이 포함되며, 수비학(數秘學)은 숫자가 질과 양의 이원성을 띤다는 이론을 구체화한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천체를 관찰해왔으며, 점성학은 별, 행성의 주기와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간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한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그 무엇도 홀로 하나의 법칙으로 서 있지 못한다. 모든 것은 우주 주기와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관계의 일부이며 점성학자들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상징을 통해 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점성학의 두 가지 빛은 태양과 달이며 낮과 밤의 주기에 상응한다. 동양 철학에서는 음양, 즉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로 특징짓는데 결국 같은 의미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점성학에서 쓰이는 12개의 별자리는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 이며 창조 활동에서 자신의 힘을 나타내기 위해 특정 원형의 역할을 알려준다. , 해당 별자리에 잘 맞는 직업이나 그 사람의 특성에 대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10개의 천체는 태양, ,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이며, 사람의 심리 작용과 우리 성격의 장단점을 알려준다.

 

 항성과 점성학에서 특이한 점은 모든 생일이 항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12개의 별자리는 각각 세분화된 항성의 목록이 들어있다. 양자리를 예를 들자면, 데네브 카이토스(Deneb Kaitos)5개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항성을 관찰하여 세상사와 연결시켜 왔는데,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 시대에 이미 항성에 이름을 붙인 기록이 남아 있다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Epoth of Gilgamesch)'에 언급되었고 혜성, 일식, 월식, 행성과 함께 기상 현상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항성들은 무의식, 개인이 가진 잠재력이나 문제들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제시한다고 한다고 하며 항성을 해석할 때는 탄생 천궁도를 바탕으로 주의 깊은 분석이 요구됨을 언급하고 있다.

 

 수비학(數秘學)의 세계에서는 학창시절 수학시간에 무수히 들었던 피타고라스 정리를 만나게 된다. 이외에도 히브리히 신비철학, 역경(易經), 마야 이론을 언급하는데, 이는 수비학(數秘學)이 포함된 가장 유명한 체계라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숫자는 신성한 것이며 만물은 수라고 주장했으며 음악과 숫자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밝혀 악보와 수학을 조화롭게 연결시켰는데, 고대 그리스의 많은 철학자들은 숫자의 신비에 강한 흥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수학자들도 공유하는 생각이며 보통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마다 좋아하는 숫자가 있으며 그런 신비한 힘을 믿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수비학(數秘學)은 점성학과 같이 상징적 체계이며 우리 자신과 삶의 목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다. 긍정적 힘과 부정적 힘을 나타내고 숫자의 의미를 탐구하게 되면 우리의 개인적 잠재력을 발견하여 계발하고 삶이라는 여행의 지침을 얻는데 유용하다. 여기에는 탄생수 계산하기에 기본이 되는 9개의 숫자와 ‘1년 수 계산법’, 9개의 1년 수 해석, 31개의 1일 수 해석이 들어있다. , 점성학과 수비학(數秘學), 지배하는 항성까지 아우르는 생일 분석이 되는 것이다. 탄생수 계산하는 방법은 참 간단하다. 먼저 자신의 생년월일을 모두 더한다. 만약 생년월일이 199999일이라면, 1+9+9+9+9+9=373+7=101+0=1 탄생수는 19개 기본수 중 1’을 읽어보면 해당하는 사람의 장점, 단점이 나타나 있다.

 

<생일 5월 31일의 예시>

 

 각 날짜별 생일을 분석하여 해당 생일자의 특징과 전반적인 운세, 숨어 있는 자아, 일과 적성, 수비학으로 본 당신의 운세,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맨 오른쪽 코너에는 당신에게 특별한 사람의 코너로 힘이 되어 주는 사람’, ‘운명의 상대’, ‘경쟁자’, ‘소울메이트까지 생월과 생일을 실어 놓았다. 이렇게 자세한 사항까지 알려준다. 특히 숨어 있는 자아부분은 생일에 해당하는 사람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장점과 약점을 설명하는데, 실제의 자신을 비교해 보고 장단점을 살리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이날 태어난 유명인에서는 역사 속 인물과 현재의 인물까지도 알려주는데 신기하고 흥미롭다. 좀 의외인 것은 11일부터가 아니라, 321일부터 다음 해 320일까지 1년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별자리 순서대로 나열한 때문인 것 같다. 부록에 나와 있는 항성의 특징은 전문적으로 작성된 점성학 차트와 함께 이용하면 천체들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니 참고하면 좋겠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덕담을 나누기도 하고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램도 갖는다. 사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며, 예상치 못한 일도 비일비재하니 운세가 완벽하게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예전부터 어른들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은 딱 맞춘다는 말이 있어왔다. 재미삼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운세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기억했다가 마음과 행동을 잘 헤아리면서 살아가는 태도라면 아마도 좀 부족한 운도 비켜가지 않을까. 생소한 용어는 별로 없고 비교적 쉽게 읽힌다. 서론에서 다루는 점성학, 항성과 점성학의 관계, 수비학의 세계를 꼼꼼히 읽어두면 유용하게 자신의 생일에 해당하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1년 내내 조금씩 들추어보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하루하루의 삶에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재미있고 신비한 생일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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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소본능 - 환경부 2018 우수과학도서 선정, 국립중앙도서관 2018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도서 선정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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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우리 시대의 소로’, ‘현대의 시튼으로 평가받는다는 문구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나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난 10월 초, 묵은 숙제 같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도, 아직도 잔물결 같은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든>이 자연주의와 참다운 인생의 길을 제시한 책이라면, 이 작품은 생물학자인 저자가 자연 속에서 살면서 투철한 직업의식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탐사 기록이라 할까. 실제로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메인주는 미국에서 가장 큰 삼림지대이며, 소로와 니어링 부부 등 많은 자연주의자들이 사랑했던 지역이었다. 늘 마음의 고향인 그 메인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들이 본능적으로 특정 장소를 찾는 현상을 마주하면서 깊은 과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지난 날 살던 곳이 궁금하거나 그리워서 찾아갔던 적이 있을 것이다. 고향은 말할 것도 없고, 고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특별한 추억이 깃든 곳이라면 살아가는 내내 마음속에 다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신혼 살림을 살던 여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기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깨끗하고 푸른 바다가 있었고, 정겨운 이런저런 추억이 많았다. 시립합창단원 이었던 남편의 공연을 보러 갔던 일,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 음악 감상을 하러 갔던 기억,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동백꽃과 운치 있는 향일암이 있다. 우리 큰 아이가 생후 2개월쯤 되었을 때 이사를 왔다. 우리 가족이 동해안 여행을 하는 중에 들러본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그대로 있었고, 아이들도 신기해하였다. 이처럼 삶에 켜켜이 주름진 추억들이 우리를 부르는 건 아닐까 싶다.


 저자도 소로의 삶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소로처럼 메인주의 숲에 오두막을 짓고 곤충들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이 있는 자연 속에 온 감각을 기울인다. ‘귀소성을 주제로 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던 중 고향이나 귀소성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여기던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다. ‘귀소성이란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그렇게 찾아낸 곳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만들고, 떠나갔던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오는 능력이라고 한다.


 1부는 태어난 곳, 옛집으로 귀향하다, 2부는 동물들이 집을 짓고 가꾸는 법, 3부는 왜 회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곤충이나 조류 등 여러 동물들의 귀향의 여정을 보여준다. 캐나다두루미 부부, ,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제왕나비, 큰흰배슴새, 큰뒷부리도요, 정원솔새, 1만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거쳐 20년이 지나서 자기가 태어난 해변 근처로 되돌아온다는 붉은 바다거북 등 여러 사례를 보여준다. 밀폐된 상자에 넣어 기차와 비행기로 운반된 큰희배슴새는 어떻게 영국에 있는 자기 둥지로 돌아왔을까 놀랍기만 하다.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먹이는커녕 물도 안마시고 잠도 안자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비행한다는 큰뒷부리도요는 비행을 마쳤을 때 체중은 처음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렇게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쓰고 귀향하는 새들의 욕구와 몰입은 어떤 이유일까, 경이로움 그 자체다.


 새들이 떠나는 궁극적인 이유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는 환경적 조건 때문에 이동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행동 또한 여기에 맞춰 진화하며 적응해 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간과 오랫동안 친숙한 비둘기는 귀소성의 수많은 양상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집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하다. 제비도 마찬가지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젖은 흙과 지푸라기 등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조합하여 어쩌면 그렇게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모양 또한 예술이다. 이 책에서도 동물의 집짓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러 곤충과 새들의 둥지 그림을 보여주는데 마치 예술품처럼 정교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보통 동물의 집과 집짓기 행위는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특징일 텐데도 동물의 행동양식을 주제로 한 책 중에는 집짓기를 언급한 사례가 지극히 드물다고 한다.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방송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생각난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탐구정신으로 카메라에 포착된 실감나는 생생한 영상. 이 책 또한 저자의 세밀하고 집요한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함께 동거하며 관찰했던 헛간거미 샬롯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데는 웃음이 난다. 천생 생물학자다. 현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보금자리에 대한 정서적 유대는 느슨해지고 그 대용품에 대한 유대관계는 강화되는 경향이 있고, 옛날보다 자신을 키워준 지구에 막대한 해를 끼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새의 둥지는 상당한 비용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소중한 재산 목록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둥지는 암컷을 두고 경쟁하는 혼수품이 되기도 한다.’(P178) 이처럼 집이란 대상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복과 생존을 위한 본능, 귀소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선천적인 방향정위 능력의 부족은 인간이 집에 머무는 걸 좋아하도록 진화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집이란 과거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계획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은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기억과 감정을 갖는 능력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메리카딱새가 겨울나기를 위해 떠나기 전 유난스레 울던 날,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두고 그곳을 기억에 저장하면서 이듬해 봄 둥지를 틀기 위해 되돌아왔을 때 기억이 되살아나기를 갈망하는 듯한 기억과 감정을 엿보았다는 저자. 자연에서의 삶의 기록이 시적인 문장으로, 유려한 필체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슴 사냥을 통해 얻는 기쁨, 놀람, 죄책감이 있는 슬픔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주변에 흔한 거미줄을 보면 이제는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미관상 좋지 않다고 마구 걷어냈던 행동이 좀 꺼려질 것 같다. 몰랐던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여행을 통해 실제로 얻게 될 소득은

                       다소 진부한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세상에 집만 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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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사상 - 현대의 고전을 읽는다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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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 소개된 책은 사회학자인 저자가 제자에게 자주 추천하는 책들이며, 저자의 정체성 형성 및 학문 연구에 깊은 영향을 미친 현대 고전이라고 한다. 흔히 대학 교양강좌에서 다루는 고전의 목록과는 달리 현대의 고전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와 제도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자리 잡았고, 전후 사회 원리와 제도를 분석하고 이러한 사회적 구속 아래 놓인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 현대 사상, 즉 현대의 고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으며, 삶의 의미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이 때 한 시대를 오롯이 담아 놓은 ‘고전’에서 나아갈 길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각 장의 구성은 Ⅰ.문학과 역사, Ⅱ. 철학과 자연과학, Ⅲ. 정치와 경제, Ⅳ. 사회, Ⅴ. 문화, 여성, 환경, 지식인 의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다. 나로부터 그를 둘러싼 사회, 환경으로 나아가는 거시적, 총체적인 시각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커다란 사회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조화를 이루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각 분야마다 작품을 소개한 뒤에 우리 한국 사회에 대입하여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것도 세상살이의 흐름과 더불어 당시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데 용이하다 하겠다. 총 40권의 책이 언급되어 있다.

 

 ‘문학은 크게 두 가지 미덕을 가지고 있다. 삶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생각을 안겨주는 게 하나라면,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점에서 문학은 인문학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놓일 만하다.’(P21) 흔히 문사철, 즉 문학, 역사학, 철학을 인문학의 분야라고 말한다. 특히 문학은 현실에서 있을법한 이야기를 상상과 허구를 가미하여 엮어 놓은 것이라 우리는 쉽게 공감하며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이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저자는 여러 작품 중 조지 오웰의 <1984>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주목했는데, 그 까닭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는데 있었다. 전자가 현대의 그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으며, 오늘날 읽어도 생생한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철학 분야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작품으로 인간과 세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아렌트 르네상스’라고 부를 정도로 전후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해 왔다고 한다. “이 세계에서 행위하며 살아가는 복수의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구절은 복수의 인간들에게 ‘소통’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롤즈의 <정의론>이 주장하는 핵심은 사회제도의 제1덕목이 곧 ‘정의’이며,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정의에 목마른 현실을 살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정치철학자는 마이클 샌델로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0만 권이나 팔렸다고 한다. 반면, 원본 출간이 미국에서는 10만 권 정도에 그쳤다고 하니 꽤 흥미롭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고 갈증이 심한 ‘정의’에 대한 반영이 아닐까 싶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단절의 시대>로 지식 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다.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와 ’지식경제‘라는 핵심 용어로 주장한 그의 예측은 적지 않게 현실화 되었다. 그런 예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새로 개발하는 지역에는 ’지식산업단지’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식사회로 가는 길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고전적인 산업사회에서 멀어져가고 제4차 산업 혁명으로 도래한다고 분분하다.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라는 유명한 언명(言明)은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예측한 것이다.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예는 2001년의 9.11테러였으며, 이슬람국가(IS)와 난민 문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도 모두 문명의 충돌로써 야기된 것이다. 지금 세상의 흐름을 보면 얼마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 밖에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 생태계의 위기를 설파하는 <침묵의 봄>, 페미니즘을 다룬 <여성의 신비>가 기억에 남는다. 후자는 ‘매력적인 아내와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이데올로기 또는 신화’로, 프리단은 가정이란 한마디로 ‘편안한 포로수용소’에 불과하다고 했다. 저자들의 사상은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으며, 한계에 부딪혀 악평을 받기도 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런 일은 항상 존재한다.

 

  소개된 책 가운데 읽어보지 못한 책이 많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한 계기로 관심분야의 책을 선택하여 읽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본래 이 책의 출간은 2016년 <경향신문>의 요청으로 ‘세상을 뒤흔든 사상70년’을 연재했던 것을 토대로 하였으며 국내외 학계와 언론의 평판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고른 것이라고 한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만 읽는 편독의 경향이 있다. 철학은 어려워서, 등등 여러 가지 핑계가 있다. 지식의 확장이나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각 분야의 주제별 책읽기로 심화시키는 것이 절실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분명히 독자들의 그런 목적에 나침반 역할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떤 책이 있을까, 궁금하고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소개된 책을 공개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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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중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나라가 융족에 밀려 동쪽 낙양(낙읍)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대략 55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 중 이 작품은 진시황 2(영호해)의 실정으로 혼란해진 진나라 말기부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의 영웅들의 피비린내 나는 각축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전에 <전국칠웅>을 통해서 춘추전국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한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다양한 인물 군상이 활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듯이, 이는 시대적 요구였다.


 열 한 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작품 중 맨 마지막 권인 이 작품은 역발산기개세의 항우와 유방의 불꽃 튀는 대접전 초한쟁패의 결정적 순간들을 담아 놓았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항우와 유방의 대결을 세세히 알게 되었다. 다른 역사서와 달리 저자의 의견과 해석이 언급되어 있는 점이 색다르다. 그는 관중이든 유방이든 옛 왕조 시대의 지도자들은 본질적으로 착취자들이라고 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이들은 무결한 成人(성인)들이 아니라 사리를 취하면서도 가끔 공익을 생각했던 사람들, 바로 次善(차선)의 인물들이라고 말한다. 이를 대변해 주듯이, 유방의 성품은 오만방자했다고 한다. 법을 어기는 것도 부지기수였고. 반면, 신의가 있고 실질을 숭상했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 유방에게는 인재가 많았다. 살림꾼 소하, 번쾌와 조참, 판세를 읽을 줄 아는 장량과 역이기, 또 소하의 간청으로 천하의 명장 한신이 들어온다. 한신의 출병으로 조와 연을 장악하고, 역이기로 하여금 제를 항복시키는데. 승승장구하는 장수 옆에는 항상 이를 시기하는 자가 있다. 책사 괴철의 꼬드김에 넘어간 한신은, 이미 항복을 받은 제를 공격하고, 애꿎은 시기는 역이기를 죽게 했으며, 왕으로 봉해 달라는 속내를 내보인다. 이로써 한신은 유방에게 불신의 씨앗을 남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항우는 질투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으며, 성품이 포학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화가 나면 더욱 통제하지 못하고 사람 죽이는 것을 밥 먹듯 하였다. 맹약을 어기고 의제를 시해했으며, 신안에서 항복한 진의 병사 20만 명을 파묻었다. 이 들 다수는 여산의 형도였거나 노비의 자식들로서 군공을 세워 양민이 되어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의 마음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진리를 가벼이 여긴 항우의 만행은 관중 사람들과 철천지원수가 된다. 공이 있으면 기억하지 않으면서 죄가 있으면 잊지 않고 원한을 갚는 등 상벌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 위나라 위문후 때, 오기와 상앙이 떠났듯이 인재는 떠나기 마련이다.


상앙의 철저한 법가(法家)적 설계를 바탕으로 최초의 천하 통일을 했던 진()은 왜 망했을까. 가의는 진의 잘못을 이렇게 꾸짖는다.


(중략) 천하를 한 집으로 아우르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으로 삼은 진이 일개 필부가 난을 일으키자 7대의 묘당이 무너지고 마지막 황제는 남의 손에 죽음을 당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왜 그랬던가? 어진 마음으로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요, 공격할 때와 지킬 때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이다.”

진은 전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왕 노릇을 하면서도 전국시대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그대의 정치를 바꾸지 않았다.”


 오랜 전쟁으로 지친 인민들을 아낄 줄 몰랐고, 윗사람은 도리를 버렸으며 의심했다. 의심은 배반을 낳고 그렇게 안에서 무너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면 그 각오에 맞게 마음가짐도 바꾸어야 하는데, 옛날의 나쁜 버릇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썩을 대로 썩은 악습과 폐습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을 백성이 그냥 두지 않는다. 봉기를 일으켜서 세상을 뒤집는 것이다.


 함양에 입성한 유방은, 진의 가혹한 법에 시달린 백성을 위하여 유방은 약법삼장을 선포한다. 이는 한나라 400년의 기반이 되었으며 당대 인민들의 염원을 대표하는 표어였다. 진의 지배 세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흡수했으며, 점령자 보다는 해방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항우와 대비되는 유방의 관용을 베풀었다. 진을 무너뜨린 주역은 항우였지만, 새 시대의 주역은 유방이다. 이렇게 유방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식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버림으로써, 그 감화(感化)로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중략)내가 천하를 얻고 항씨가 천하를 잃은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유방이 묻자, 고기(高起)와 왕릉은 폐하는 군공을 세운 자에게 이익을 같이 했지만, 항우는 능자를 시기하며 공이 있는 자를 해치고 현명한 자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유방은,


공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대저 군막 안에서 계책을 운용하여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내가 자방보다 못하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여 군량을 공급하고 양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소하만 못하다. 100만 병력을 운용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하는 바는 내가 한신보다 못하다. 이 셋은 모두 인걸이나 내가 능히 쓸 수 있었기에 천하를 취한 것이다. 항우는 범증 하나가 있었으나 그마저 쓰지 못했으니 나의 포로가 되었다.”(P253)고 대답한다 유방은 출신을 묻지 않고 남의 험담에 솔깃하지 않았으며, 제환공의 풍모를 갖고 있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평민 출신이었던 유방의 대담한 성격과 포용력이 좋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서 모든 정치를 맡아서 해낼 수는 없다. 또 도덕적으로 고결한 인품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와 더불어 전문가의 혜안과 결단력을 갖추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는 인재등용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이는 그의 수하들이 아니라 유방 자신이었다는 것.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평범이란 다수의 마음이고 절대 다수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유방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었다. 맨 마지막 장의 법으로 본 진()과 한()’의 본질적인 차이를 진한(秦漢) 제국의 법제사를 다루는 논문들의 예를 언급하며 비교분석하는 부분도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상상과 허구를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은 아니다. 한서,고제기등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적 사료와 철저한 고증과 더불어 저자 관점의 해석으로, 기존의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장점이 이야기 속으로 파고드는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군데군데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보이는 것도 아쉬움이다. 이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7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춘추전국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삶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세월은 흘렀어도 고래(古來)의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은 외관만 조금 달라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가혹하고 지난한 역사 속에서 인생을 읽어내는 단초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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