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구입하고 저자 소개를 보니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읽어나가면서 기우였음을 알았다. 내가 전에 읽었던 뇌 과학 책에서 본 내용을 만났을 땐 반가웠다. 과학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뇌 과학에 대한 흥미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10년 동안 기업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온 뇌 과학 강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강연 12편을 묶어서 새롭게 덧붙여 구성했다고 한다. 강의형식으로 되어있고 경어와 적당한 추임새도 들어있어서 마치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궁금해서 아들에게 혹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쓴 이 작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생 때 필독서여서 읽었다고 했다. 과연, 출간한 지는 상당히 된 책인데 나는 처음 알았다.


 벌써 서문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101번 고속도로의 광고판에 적힌 문장을 해석하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라는 의미가 되는데 구글의 직원 채용 방식 중 하나였다니 창의성을 중시하는 기업은 뭔가 달라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열 두 발자국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이며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라는 ’, 그 신비에 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접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도 뇌는 소중한 신체기관이며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부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 2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2부에서는 근래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첫 강의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계획을 세우고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공부, 운동을 계획하고, 부자가 되기 위한 재테크 계획, 노후 준비 등 어쩌면 계획만 세우다가 실행에 이르지도 못하고 마는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선택의 과정에서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시멜로 챌린지(marshmallow challenge)’라는 게임 이야기로 이해를 도와준다. MBA학생, 변호사, 유치원생, 건축가, CEO, CEO와 비서 팀에게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주고 18분 동안 제일 높은 탑을 쌓는 팀이 우승을 하게 된다는 게임이다. 여기서 유치원생이 쌓은 탑이 훨씬 높게 나오는데 어른들과 다른 점은 계획 없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것저것 재보는 계획보다는 실행력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또 인센티브를 건 실험에서는 조급함과 무모한 도전으로 시야가 좁아져서 올바른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획과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한다는 조언과 함께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위해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결정 장애, 요즘 세대를 결정 장애 세대(generation maybe, 메이비 세대)라고 하는데 2012년 독일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어쩌면 시대적인 산물일 수도 있다. 예전과 달리 풍족한 시대인 만큼 학원이나 과외 등 모든 것을 아이가 원하기 전에 부모가 다 알아서 챙기다보니 결핍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핍이 욕망을 만드는 것인데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지 못하다보니 스스로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결정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소개한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두려움 없이 선택을 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할 일을 미루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한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우리 뇌도 새로 고침을 할 수 있을까, 미신에 빠지게 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시절엔 아무나와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천진함이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비슷한 무리로 구분을 짓고 한계를 긋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세상이다. 무엇을 지향하면서 살아갈지 생각하고, 일과 놀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획했던 운동이 흐지부지 된다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마다 고민하지만 결국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습관의 힘이며,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메카니즘의 한 방편이었다니 흥미롭다. 뇌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에너지의 25퍼센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무엇엔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은 싹 소거하는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형인간이 되어보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절박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뇌의 새로 고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저자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나는 내 전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주장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이 시뮬레이션이야말로 영장류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도 사회에도 미신은 존재한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데스노트>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것이 얼마나 유행이었는지 모른다. 제목도 섬뜩해서 그런 것 읽지 말라고 채근했었는데 과학자인 저자가 좋아했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금기했던 기억, 운동선수들의 각종 징크스 등의 사례,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분신사바, 행운의 편지 이야기 등 한번은 겪었음직한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이제는 과감히 탈피해보자고 말한다.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뇌 공학 분야의 신경과학자들의 실험으로 fMRI 안에 실험참가자들을 눕혀놓고 그들의 뇌를 찍은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전두엽과 후두엽,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가장 고등한 영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역시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치 사람들도 혼자보다는 협업을 통해서 큰일을 이루는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왠지 나와는 관계가 먼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몇 가지 중에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운동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운동과 건강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운동은 건강에도 유익하지만 뇌를 좋게 활성화 시킨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또 수면도 중요하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독서, 여행,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를 하고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라고 한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부분은 깊은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약간 어렵게 느껴졌지만 유익했다. 인간의 기술로 인공지능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 그것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들의 세대는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렵다고 공부하지 않고 눈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등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앞에 닥친 혁명의 물결은 오래 걸리더라도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 없이는 하루가 암흑세계로 느껴질 만큼 문명의 이기에 푹 빠진 시대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10년이 지난 요즘 실리콘밸리는 차세대는 어떤 미디어 플랫폼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흔히 인터넷 사용이나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기억력이 저하 등 뇌를 적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고 한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뇌를 쓰고 있을 뿐 뇌를 적게 써서 바보가 되거나 인지기능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의 기술 혁신으로 편리함과 효율성, 놀라운 생산성을 주었지만 이제는 우리를 지배하는 뇌가 되려고 한단다. 왠지 소름이 돋는다. 아직 잘 와 닿지 않는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는 무척 아름다운 기술이라고 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데 아름답다니...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정교하게 엮어놓았고 사용하게 되면 경제적 혜택이 명확하며 금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라고 말이다.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차피 혁명의 가운데를 통과하는 과정의 삶을 살아가려면.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는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한데 이것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공생을 말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배워야 한다는 조언에 수긍이 갔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잘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한계는 바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문제를 푼다는 데 있고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해와 더불어 우리는 사람이나 물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고등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좋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과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감정 읽기 능력,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어느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혁명은 시작된다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미래의 비전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혁명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저자와 같은 과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 든든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숲에서 다양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뇌 과학자의 뇌는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새로운 혁명의 과도기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주위도 돌아보며 공감하는 삶을 연습해 간다면 제4차 산업혁명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을 것 같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좋은 책을 읽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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