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의 여왕 1
이재익 지음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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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달콤하거나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유난히 키스신이 많은 드라마가 아시아 전체에 신드롬을 일으켰고 키스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시아 최고의 여배우 손유리와 개인자산만 1조원에 달하는 IT업계의 슈퍼 리치 이선호가, 빌게이츠가 소유한 기종과 같은 초호화 요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들이 신혼의 첫날밤 나누는 대화가 이렇다. “밤새도록 계속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그럼 당신은 내일 아침에 시체로 발견되겠죠?” 유리의 말이다. 기상천외하다. 달콤한 신혼의 밤에 나눌 수 있는 대화인가. 무언가 일어날 조짐을 알려주는 복선인 것 같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이튿날 아침 이선호가 증발했다. 요트 여행을 떠났던 망망대해(茫茫大海)서 남편을 잃고 표류 하다가 11일 만에 고깃배에 의해 구조된다. 그리고 ‘키스의 여왕’에서 남편을 죽인 살인마 손유리, ‘암살의 여왕’으로 바뀐다. 방송과 언론은 이들의 뉴스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취재 경쟁으로 난리가 났다.



 빛나는 별에서 불행한 여자로 전락한 손유리 앞에, 첫사랑 이도준이 변호사가 되어 5년 만에 나타났다. 아주 차갑고 반듯한 남자로 변해서. 이별 선고를 받은 이도준은 독하게 공부하여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여전히 손유리를 잊지 못하고 헤어진 날짜는 도준의 집 현관의 비밀번호가 되고, 손유리와 추억이 깃든 자취시절의 방은 ‘비밀의 방’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민정은 이도준의 약혼자다. K&J 로펌의 대표인 아버지를 무기삼아 이도준을 굴복시키려 한다. 민정의 남성 편력은 상대 남자를 죽음으로, 감옥으로 밀어 넣기도 했으며, 몇몇 교수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김대표는 딸의 문제를 모두 돈으로 해결했다. 이런 딸을 이도준과 결혼시키려 하는 김 대표의 도덕성 부재와 이기심. “이변이 민정이를 책임져주면 이변은 내가 책임져주지. 막대한 부와 권력... 변호사로서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말일세.”(p181) 돈으로 사랑을 사고팔기도 하는 세상.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랑이 오래 가겠는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을 물려받을 야망을 위해 모든 수모를 견디고 있다. 그에겐 사랑보다는 야망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첫사랑이었던 손유리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느낀다.



 그에 못지않은 야망을 가진 자가 또 하나 있다. 검사 문지환. 우리나라 최연소 검찰총장을 꿈꾸는 그다. 강력한 비주얼 외모를 가진 둘의 라이벌전을 기사로 쓰려하는 여기자 백현서. 특종 사냥을 위해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상황은 반전하여 검찰청에 출두한 날, 손유리 대신 이도준이 외신 기자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의식을 잃은 지 보름 여 만에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깨어난다. 마음속 자아가 원하는 대로 따르기로 결심하고 민정에게 파혼을 선언한다.



 검찰측에서는 요트 안에서 발견된 루미놀 검사의 혈흔을 증거로 손유리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한편, 이도준과 친구 k&J로펌의 차시원은 어떻게든 손유리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정보를 찾고 수집 한다. 실종된 이선호가 살아 있다는 가정 하에 전국으로 시야를 넓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영화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서울대 출신,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 비주얼한 외모, 아이돌같은 패션과 말투 등 두루 갖춘 캐릭터들의 다양한 개성은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부유층의 특권을 누리는 장소나 백억이나 하는 요트 등 위압감을 느끼는 요소가 등장하지만, 사랑, 배신, 야망을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명예와 부를 꿈꾸고 성공을 위해서 달리지만, 진실한 믿음과 사랑이 없는 관계속에서  한계를 느낀다.



 이제 사랑은 없다면서 죽어라고 공부만 하다가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고, K&J를 물려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그것을 원점으로 돌린 이도준. 멈출줄 모르던 맹목적인 성공과 야망을 포기하고 사랑과 행복을 선택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순리를 깨달은 때문일까. 처음 만나는 이재익 작가의 작품 , 참 재미있게 읽었다. 초호화 요트의 결혼식 장면, 바다에서 요트와 표류하는 장면, 법정의 예리하고 틈을 주지 않는 논쟁, 톡톡 튀는 대화,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는 이 소설은 영화로 상상해 보아도 근사한 매력이 있다. 웹소설 누적 조회수 1천만이라는데, 그에 걸맞는 재미를 선사한다. 뒷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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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0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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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부터 뭔가 풍기는 게 있었다. 남녀 고교생의 이야기라는데. 그 시기는 친구나 연예인에 대한 매우 호기심이 많을 때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죽고 못 살 정도로 사이좋게 지내던 단짝 친구와 절교를 선언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하츠는 중학생 때부터 절친 이었던 키누요가 다른 아이들의 그룹에 들어가 어울리자 큰 실망과 함께 소외감을 느낀다. 예전처럼 둘이서 계속 잘 지내면 안되느냐는 말에 키누요는 싫다고 한다. 자신은 남녀혼성 그룹을 동경했다면서. 하츠에게 그룹에 끼어 같이 놀자고 하지만, 하츠 또한 거절한다. 그래서 하츠는 키누요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생물시간에 과학실에서 5명씩 조를 짜서 실험을 한다는데, 친구가 없어서 혼자 남는다. 그런 아이가 하츠 말고 니나가와라는 남자아이가 더 있다. 이렇게 ‘나머지’ 아이들이 같은 조가 되었는데, 니나가와는 수업시간에 여성 패션 잡지에 빠져 있었다. 그 속엔 하츠가 중학생때 우연히 MUJI(무지:일본의 대중적인 잡화점)에서 만났던 패션 모델인 올리짱의 사진이 있었다. 그것을 아는 척 했다가 엉겹결에 니나가와의 집에 초대되어 가게 된다. 오래된 집의 풍경이다. 낡은 가구, 어둠침침한 방. 어떻게 덥석 따라오긴 했는데,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머릿속 생각과 달리 니나가와는 올리짱을 만났던 곳의 약도를 그려달란다. 올리짱의 팬인데, 죽을 만큼 좋아한다고. 올리짱을 진짜로 만난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에 감격해 한다.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던 니나가와의 눈길에 헛다리 짚은 하츠는 갑자기 어수선한 기분에 빠진다. 올리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닮은 사람이라든지, 뭐든지 얘기해 달라는 니나가와의 말에 하츠는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먹먹하다.



 어느날, 니나가와는 그려준 약도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며 같이 가자고 부탁한다. 육상부원인 하츠가 달리기를 연습하다 넘어져서 다친 상처를 보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하츠는 니나가와의 손길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다. MUJI에서 니나가와는 올리짱이 앉았던 의자랑 테이블의 사진을 정신없이 찍어댄다. 현장학습 나온 초등생처럼 하츠가 말해준 것을 뭐든지 메모한다. 이것을 보며 하츠는 시식용 콘플레이크를 아침식사로 하던 자신과 비교하면 둘 중 누가 더 해괴망측하고 민폐를 끼치는 행동일까를 생각한다. 뭐든 지기 싫어하지만 이런 승부에서는 이기고 싶지 않다고. 돌아오는 길에 니나가와에게 너네 집에서 잠깐 쉬었다가 가도 되느냐는 말이 쉽게 나오는 자신을 깨닫고 놀란다. ‘다른 사람에게 편하게 말 걸기’ 조차도 힘들었는데, 니나가와에게는 이것이 가능하구나. 이런 간단한 대화도 오랜만에 했다는 걸 깨달으며 메말랐던 감정에 물기가 배어듦을 느낀다.



 니나가와는 올리짱의 방송시간이라면서 하츠를 내버려두고 혼자 이어폰을 꽂고 등을 돌리고 앉아있다. 이상한 분위기. 이상한 존재감. 이 아이의 사교성은 아마도 유치원생때 멈췄을 것이라며. 그렇게 니나가와가 올리짱의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 하츠는 커다란 상자를 탐색한다. 향수, 티셔츠, 가방, 옷, 잡지 등 올리짱과 관련된 물건으로 가득하다. 파일 속에는 올리짱의 상세 프로필은 물론 올리짱의 얼굴과 완전히 다른 소녀의 나체를 합성한 누더기 사진까지...그리고 나를 인간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 듯한 저 차가운 눈빛. 감정이 울컥한 하츠는 자기도 모르게 니나가와의 등짝에 정확히 펀치를 날린다. 이야, 실제로 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발로 차이고도 그의 눈빛은 동경하는 어른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니나가와가 올리짱의 세계에서 조금 빠져나오게 된 것은 올리짱의 공연을 보고 나서다. 키누요, 하츠와 셋이서.



“감전된 거 같았어. 전신의 땀구멍이 다 열린 거 같은 느낌이랄까.…… 아아, 나, 대기실 앞에서, 미친놈처럼 굴어서 욕먹고, 그저 한낮 변태 같았겠지.”

“아까 올리짱 가까이 갔을 때, 나,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그 사람이 가장 멀게 느껴졌어. 그녀의 흔적들을 긁어모아 상자를 채울 때 보다 훨씬 더.”(P142)



 동경했던 스타는 그냥 스타일 뿐이다. 나는 그를 잘 알지만, 스타는 나를 모른다. 당연한 거리감. 그 거리감은 현실을 깨닫게 해 준다.


내 앞에 보이는 저 등을 아프게 하고 싶다. 발로 차 주고 싶다. 안쓰러움보다 더 강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자신의 얘기를 쏟아 놓기만 하는 아이. 그러다가 생기는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도 어색하다. 자신의 마음에 낀 ‘검은 실오라기’를 누가 버려주었으면 싶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생각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자신을 자책한다. 이 남녀 고교생은 잘 성장하였을까. 이 작품은 와타야 리사가 2004년 와세다대학교 국문과 재학 중에 발표한 소설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130회 아쿠타가와 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했다. 벌써 13년이나 흘렀으니 이제 성인이 되었겠다. 평범할 수 도 있지만, 학창시절 겪을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시한폭탄과 같은 사춘기.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마음이 성장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마음이 짠하지만 은근한 귀여움도 느껴지는 재미있는 성장소설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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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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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술에 대한 속담을 떠올려 보았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술이 백약중의 으뜸이라고는 하나 만병은 또한 술로부터 일어난다.’ 이 책 속의 작가들은 바로 이 속담과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작가들은 홀로 오랜 시간을 작품을 쓰면서 견뎌야 했으니,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가와 술』은 저자인 올리비아 랭이 알코올중독 가정에서 자란 것이 알코올중독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근원적 배경이 되었고, 열일곱 살 때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읽으면서 작가들이 술과 술의 영향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마음이 쏠렸다.(p29)고 말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술을 마시며, 술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헤치고 싶었다. 아니,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가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와, 이 술이 문학작품의 본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싶었기’(p23) 때문이라고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소설가 솔 벨로(Saul Bellow)는 “술은 안정제였다. 그것도 생명력을 갉아먹는 안정제였다.”(p25)고 말한다. 여섯 작가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프로이트적인 부모, 즉 고압적인 어머니와 나약한 아버지를 가졌거나, 스스로 그런 부모를 가졌다고 여겼고, 모두들 하나같이 자기혐오와 자기 부적절감에 시달렸다’(p27)고 한다.



작가의 작품과 더불어 그 작가들이 작품을 썼던 장소, 묵었던 호텔 등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와 있어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학술 토론회장의 발표와 의견을 밝히는 과정도 그에 못지않은 생생함을 전해 준다. 과거에 ‘스미더스 알코올 치료 및 훈련센터’라는 명칭으로 불렸다는 성 누가-루즈벨트 병원의 9층 중독연구소에서 존 치버와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가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갔는데, 존 치버만 치료에 결실을 보았다고 한다.



그처럼 지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곳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미노프나 스카치위스키 한 잔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면 된다. 알코올의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통해 쾌감보상 경로를 활성화 시키는데 이를 심리학 용어로 ‘긍정적 강화’라고 한다. 또 하나는 뇌에는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존재하는데, 억제성 신경전달물질과 자극성 신경전달물질이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은 중추신경계의 활동을 억누르고 자극성 신경전달물질은 중추신경계의 활동을 자극하는데 이것은 ‘부정적 강화’라고 한다. 이렇게 섭취된 알코올은 뇌의 활동을 진정시키고 둔화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이 같은 진정 효과는 긴장과 불안을 줄여주는 알코올의 탁월한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독이 진행됨에 따라 대체로 ‘부정적 강화’가 더 큰 역할을 맡게 된다는 데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회고록>에서 프라스카티(이탈리아산 화이트와인)를 메조-리트로(mezzo-litro, 0.5리터)를 마시고 나면 “동맥에 새로운 차원의 피가 주입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한동안 모든 불안과 긴장을 쓸어내 주면서 잠깐이나마 꿈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새로운 피가 몸속에 수혈된 듯하다”(p51)고 했다. 또 그는 병적일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는데, 그런 그에게 술은 해독제였다고 한다. 이처럼 알코올이 주는 장점이 양을 늘리고, 내성에 따라 점점 늘어나게 되면 그에 따른 폐해가 발생되어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악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다. 중독 연구소의 레부니스 박사와의 인터뷰 중 뇌 스위치(Brain switch)와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인 전두엽과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알코올중독자는 금주를 해도 여전히 중독에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된다는 말이.



피츠제럴드헤밍웨이의 만남은 흥미롭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단박에 서로를 좋아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 좋은 벗이었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헤밍웨이는 유망한 청년이니 계약을 해보라고 제안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심한 불면증에도 시달렸는데, 지옥이라고 표현할 만큼이었다. 이렇게 작가들이 겪은 것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된다. 단편소설 <이제 내 몸을 뉘며>는 닉 애덤스가 ‘누에가 뽕나무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들려’ 잠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106) 피츠제럴드 역시 <잠과 깸>이라는 에세이는 불면의 지옥에 대해 쓴 글이다. 그의 불면증의 원인은 모기 한 마리에게 공격당하면서 시작되었다는데,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다. 맥주는 술로 치지도 않았다는 피츠제럴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말은 진을 안 마시는 대신, 맥주는 하루에 스무 병쯤 마셨다고 한다. 불면증을 막아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밤엔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걱정에 사로잡히게’ 될 정도였다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도 없다.



밀실공포증이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이 좁은 아파트에서 이사를 안 가는 이유가 창밖으로 보이는 밤에 피는 식물 재스민 덩굴 때문이었다는 윌리엄스의 경우는 뭉클하다. 외로움과 소외감을 한 몸처럼 안고 살아야 했고, 끊임없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후기 희곡 작품에서 어수선한 짜임새가 알코올중독에 따른 뇌 손상 때문일 수 있다고 했고, 윌리엄스 본인이 쓴 노트에서도 자신의 글이 완성도가 떨어지고 ‘겁에 질린 닭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뇌의 구조가 변화된 건 아닐까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존 베리먼은 ‘강방적일 정도로 밤샘 공부를 할’ 정도로 학구적 습관을 가졌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T.S엘리엇, 오든의 강의를 듣고, 예이츠와 딜런 토머스를 만났다. 밤늦도록 세익스피어를 공부했다. 동료의 아내와 불륜관계 후 죄책감으로 심각한 수준의 음주를 시작했다.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감금되기도 했고 입. 퇴원을 반복하며 ‘항상 반 시체처럼’(p323) 살았다. 레이먼드 카버도 마찬가지다. 1983년의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음주 인생의 막바지에 치달았을 무렵 저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서 아주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 문제였죠.”(p404)



'처음엔 연금술같은 마력을 발휘해 주다가, 중노동을 떠안기고, 마지막엔……타락성과 끔찍한 측면을 부추겨……끝내지 못한 과업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p367~368)이것은 알코올중독이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또 ‘알코올중독은 단순히 음주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삶에 얽힌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망쳐놓는다’(p336) 는 것을 인식하여 절제가 필수요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들의 알코올중독의 상태가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물론 음주 상태에서도 그들의 작품은 남았지만. 가족과의 단절, 이혼의 반복, 소동 피우기, 너무 취해서 몸을 못 가누거나 다치는 등 심지어 교수로 있는 대학의 복도에서 대변을 볼 정도의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이 책 집필을 위해 미국을 동분서주하며 많은 자료를 수집한 저자의 노고도 엿보인다. 작가들의 일기, 편지 등 작가의 내밀한 부분을 보는 것도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일전에 읽은 『나쓰메 소세키, 추억』처럼 『작가와 술』은 이 책에 실린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여섯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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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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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최고의 가족 소설 이라는 찬사를 받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바바라 오코너의 8년 만의 신작 소설이다. 본서 출간에 앞서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가족 소설이면서 성장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도소에 간 쌈닭 아빠, 우울증으로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 언니 재키, 이 소설의 주인공 찰리가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의 집은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며, ‘아빠’라는 호칭 대신 ‘쌈닭’으로 부른다. 쌈닭의 성질을 물려받았다는 찰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발산한다. 상황이 이러해서 엄마가 정신을 추스를 때까지 시골 이모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사회복지사가 전해 준다. 안정적인 가정환경이 필요하다면서.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이모네 부부와 살아야 한다는 것이, 툭하면 싸움질 하려드는 찰리에겐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니게 된 학교에서 하워드라는 빨강머리 남자 아이가 책가방 짝궁이 되었다. 다리에 장애가 있다. 아이들을 촌닭이라 무시하며 어차피 오래 다닐 학교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숙제도 신경 쓰지 않는다. 싸우고 넘어뜨리고 조용한 날 이 없다. 그러는 중 마음 착한 하워드는 찰리에게 ‘욱’ 하고 화가 나려고 할 때는 ‘파인애플’이라는 주문을 외우라고 제안을 한다. 한편 찰리는 4학년 말부터 소원을 빌기 시작했는데,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소원을 빈다. 정각 11시 11분에 소원을 빈다든지, 무당벌레, 네잎 클로버,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을 때, 흉내지빠귀 울음소리가 들릴 때 등등...


 어느 날 우연히 두 마리 개가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 싸움꾼, 떠돌이 신세인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잡아서 키우려고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갈색과 검정이 섞인 그 개 위시본과 가족이 된다. 그렇게 소용없을 것 같았던 ‘파인애플’ 주문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쌈닭 찰리는 차츰차츰 유순해지고, 감사함도 깨닫고, 잘못을 깨닫고 사과도 하며, 하워드를 진짜 친구로 인식하게 된다. 서먹했던 이모, 이모부와도 친해지고,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그러는 와중에 사회복지사가 다녀가고, 언니 재키가 엄마의 상황이 좀 나아졌다는 둥 하면서 롤리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오히려 찰리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엄마한테 가겠다고 노래 부르던 찰리. 이모가 사는 마을 콜비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하워드의 소원은 찰리와 친구가 되는 것, 찰리가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이었다. 찰리는 ‘해체되지 않는 가족’의 소원을 이루었다. 아이가 없던 이모부부는 가족을 이루게 된 기쁨을 샛별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장면으로 결말을 맺는다.


 찰리가 이모네 집으로 간 일, 하워드와 그의 가족들을 알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똘똘 뭉친 하워드의 가족과 친해지면서 처음에 무시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재키의 모든 사람에 대한 친화력 있는 성격이나 행동을 지켜보면서 유연한 마음을 갖고자 노력을 한다. 사랑이 담긴 정성스런 마음이 적개심 덩어리였던 아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인 것이다. 소설을 읽는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찰리가 목을 놓아 우는 장면에서는 같이 울었다. 가족이라는 운명으로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모든 가정이 행복하지는 않다. 각 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진정한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좋은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협력과 배려, 정성이 필수요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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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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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냄새가 났다. 로 첫 문장이 시작된다. 제목에서 양과 강철의 조합이 대체 어울리기나 하는가. 의아했다. 부드러운 양의 털로 펠트를 만들어서 그것을 해머로 완성 한단다. 피아노 속의 해머로 인해 아름다운 선율로 울리는 것이다. 소나무의 일종인 가문비나무는 피아노의 일부가 되고. 여든 여덟 개의 건반에 연결된 강철 현. 아, 그래서 양과 강철의 숲이 되었구나.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 시간이 남아도는 아이였던 나(도무라)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손님을 체육관까지 안내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때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고향 홋카이도의 숲 냄새를 느낀 나는 조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때까지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던 내가. 그 조율사의 제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가 소개해 준 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있는 그 악기점에 취직하여 조율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피아노 조율은 조율 기술 외에도 다른 것이 더 있다는 선배 야나기의 말을 듣고, 클래식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모차르트, 베토벤, 소팽의 피아노곡을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피아노를 만나고부터 나는 기억 속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울어대는 아기의 미간 주름. 있는 힘껏 힘을 준 새빨간 얼굴에 잡힌 주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의지를 품은 생명체 같아서 옆에서 보면 가슴이 뛰었다.’(p26)


"기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일단은 의사소통이야. 되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그 이미지를 제대로 확인해야 해.“(p45)


 도무라에게 있어 숲은 신이다.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숲 냄새를 느끼고 조율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피아노를 알고부터는 ‘소리’가 신이 되었다. 고객의 집에서 조율을 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동글동글한’ 소리, 활기찬 소리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면 고객은 감동한다. 형체가 없는 ‘소리’에 ‘동글동글’한 형체를 연상하다니... 그 의미를 같이 공감하는 것. 그 과정의 고객과의 교감, 바로 소통인 것이다.


 “아름다운 라가 440헤르츠로 표현된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피아노는 한 대 한 대 다른데 소리는 서로 연결되어서 주파수로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도 들어요.”(p116) 이런 말이 내 안에서 나오다니 하며 스스로 놀란다. 아직 한참 멀었다. 체육관에서 경험한 ‘심장이 떨리는’(p118) 그 소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것이 있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은 고객으로부터 클레임을 받고 크게 상심한다. 과연 재능만 가지고 내가 그 숲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재능을 논하기에도 아직 머나 먼 길이다. 경험, 훈련, 노력이나 지혜, 재치, 끈기, 정열로 대신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한다. 선배 조율사들의 일 하는 모습을 견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상상하고 도달하려는 숲에 이르기 위해 분발하고 분발한다.


 고객으로 있던, 피아노를 무척 사랑하는 쌍둥이 자매 유니와 가즈네의 이야기 또한 잔잔하고 애틋한 즐거움을 준다. 병으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조율사가 되고 싶다는 유니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감동에 사로잡힌다. 피아노 조율사는 피아니스트, 피아노와 어우러져 조화로운 소리로서 세상에 소통하는 것이다.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지만, 특유의 감성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는 끈기와 베짱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 그의 진심어린 태도에 감동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그 행복의 숲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읽어가는 내내 숲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버섯을 따러 다니곤 했다. 특히 장마 끝에 숲속 땅은 축축하게 물기가 배어 나왔으며 소나무 밑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돋아나 있었다. 싸아하게 느껴지는 서늘함과 소나무 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의 숲은 무엇일까. 내가 도달해야 할 숲은 어디일까. 내가 아주 좋아해서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숲은 무엇일까. 지친 영혼까지도 치유해주는 책 읽기.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더불어 글쓰기로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지향점은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p68) 이건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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