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1 - 전쟁과 바다 일본인 이야기 1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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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공부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인지 일본문학이나 일본의 역사에 관한 책이 나오면 자연히 눈길이 간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면 문학을 읽을 때도 훨씬 잘 와 닿기 때문이다. 풍부한 시각적인 화보 자료와 저자가 답사한 곳의 실물 사진이 실려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일본 역사에 대해 얕은 내 지식으로 4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16~17세기의 일본 국내의 상황, 주변국들과의 전쟁의 역사,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겪어야 했던 외세와의 관계 등 어느 정도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일본의 역사라고 되어 있지 않고 일본인 이야기라는 제목에 우선 시선이 갔다. 저자는 일본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그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 책 시리즈를 기획했다고 한다.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를 생각해볼 때 일본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첫 권의 이야기는 16~17세기의 전환기를 다루는 <전쟁과 바다>이다. 여기서 저자는 세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첫째, 인간 세상에서 때로는 법칙보다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 둘째, 인간 개개인의 삶에서는 노력 이상으로 행운이 중요하다는 점, 셋째,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군사 분야가 인간 세계를 전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다가 중세의 영걸이라 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위기가 행운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흥미를 안겨준다. 이와 더불어 일본 국내의 통일 전쟁의 과정, 유럽 국가들과의 교섭 및 이 과정에서 가톨릭의 역할과 영향력, 조선과 한반도의 문제까지 아울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네덜란드 덴하흐(헤이그)에 있는 국립기록보관소에서 열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세계 De Wereld de VOC>라는 전시회에서 전투 없이 거래 없다 No business without battle>’는 캐치프레이즈를 마주하며 놀랐던 충격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다루는 시대적 상황을 이만큼 충실하게 대변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세계는 이렇게 당당하고 뻔뻔함을 원동력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러시아 같은 국가들이 중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상대로 벌인 일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역이든 전쟁이든 가리지 않았던 시대에 영국의 아편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럽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일본이 식민지로 전략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전국시대에서 통일된 나라를 열망했던 상황에 다이묘들은 수많은 전쟁 경험을 통해 유럽의 신무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유럽 세력뿐만 아니라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무기 조총과 가톨릭 세력을 받아들였으나 그로 인해 피지배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느낀다. 유럽 세력의 침략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 일부러 기술을 퇴화시켰다는 점도 특이하게 다가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작심하고 공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텐데, 식민지가 될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은 행운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에도시대에 이러한 교카(狂歌)를 유행했다고 한다. ‘오다가 찧고 하시바(도요토미)가 반죽한 천하 떡, 앉아서 먹은 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풍자적으로 부른 노래지만 일본 통일의 과정에서 패권을 잡으면서 결국 승자로 우뚝 선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이르게 된 역사의 과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 재밌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예상외로 많은 부분을 서술하고 있었다. 보통 이 시기의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와 연구 성과들에는 이 시기에 탄압받은 가톨릭 신자들을 너무 짧고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천민에서 양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한 이들이 어떤 충격과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물론 통일정권의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보호자였던 무로마치 막부 제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미요시 삼인방 및 마쓰나가 히사히데 등 중부 지역 영주들의 하극상에 의해 살해되는데, 이를 에이로쿠의 변이라고 한다. 그 두 달 후, 오기마치 덴노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톨릭 신부를 추방하는 금교령을 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신부들은 오다 노부나가를 선택하는데. 한때 오다 노부나가에게 의지했던 가톨릭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에 이르면 전국에 가톨릭 금지령이 내려진다.

  전통적인 불교국가임에도 사찰과 신사를 파괴하는 등 종교적 난맥상을 겪고도 나중에는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로 이어진다. 당시 일본인의 인구는 3천만 명 안팎으로 추정하는데 1613년에는 29만 명 정도의 최대치에 이르렀으며, 이는 지배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잔인하고 참혹한 과정을 보면 지배자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는 가톨릭 절멸과 조선을 정복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권력이 넘어간다. 임시로 일본을 관리하다가 히데요리가 자란 뒤에 권한을 넘겨주라는 히데요시의 유언을 뒤집고 자신에게 권한을 주었다는 권력 승계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이에야스는 쇄국과 함께 무사 집단의 이익 보장을 위해 나라의 성장을 중단시키게 되고 유럽과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지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치세 덕분에 넓어진 국제적 활동 무대가 오히려 좁아진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K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가 주 연구 분야로, 특히 임진왜란을 조선, , 일본 간 국제 전쟁으로 바라보는 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도달한 역사적 성과를 논하는데 있어 내재적 발전론식민지 근대화 이론이라는 이분법으로 한반도 역사를 바라보고, 민족주의자와 친일파를 나누는 흑백논리는 버려야 할 때라는 이야기가 인상에 남는다. 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전국시대의 통일, 유럽과의 관계 설정, 조선 문제를 포인트로 다루었지만 동아시아, 유라시아의 시각으로 넓힌 점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져 모두 소화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보는 정성을 들인다면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책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 시리즈가 많이 읽혀 한일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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