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도서관에서 개미를 빌려 읽으려고 했다가 계속 대출중인 바람에 이상하게도 인연이 닿지 않았고, 이 책으로 처음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 있는 작가라는 흥미로운 이력이 실감이 날 만큼 쉽게 읽히며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왠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생각할 때 느낌은 작품이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의외였다. 법학을 전공하고 저널리즘을 공부한 학자다운 면모가 그렇게 보였나. 역시 어렵게 쓴 작품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그의 많은 작품을 하나씩 만날 생각을 하니 즐거움과 기대감이 앞선다.


 고양이는 많은 작가들이 주인공으로 다룰 만큼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인 것 같다. 고양이가 나오는 작품을 최초로 읽은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이것이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와 위선적 교양주의에 물든 지식인의 군상과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면 고양이는 현재 인간 중심의 문명사회를 바라보고 인간 외의 동물들을 포함한 생물들과의 소통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사회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동물이나 생물을 학대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이야기의 화자는 암고양이 바스테트다. 아기 때부터 수수께끼 같은 인간들을 흥미롭게 지켜봤다는 바스테트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영혼이 있다, 영혼을 가진 것은 모두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하는 것은 모두 나와 대화할 수 있다.’(P12)며 주변 존재들과의 교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고양이의 생각과 시선이 참신하지 않을 수 없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구촌 세계는 아직도 소통의 부재로 인해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바스테트는 옆집의 좀 까칠한 듯한 수고양이, ‘3의 눈을 가진 피타고라스와 친구가 된다.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치를 달고 있는 그는 왠지 인간 세계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듯 거만해 보이는, 보통 고양이와 다른 진지함이 느껴져서 좀처럼 다가갈 수 없다.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 좀 해보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자신은 평생 지식을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 낙이라고 하면서 거절한다.


 새로운 만남을 즐기는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를 만나서 조금씩 의식 있는 고양이가 되어간다. 바깥세상은 언제나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날은 테러가 일어나 사람은 다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인간을 좋아하는 고양이 바스테트는 사람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간의 주인이라고 자칭하는 바스테트는 미모가 빼어난 집사 나탈리가 설치한 것이 텔레비전이라는 것도 피타고라스에게 들어서 알게 된다. 인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궁금하다. 고양이의 말과 생각을 엿보는 말이지만 놀랍다. 오랫동안 많은 테러와 전쟁에 대한 기사를 보아와서인지 이제는 그리 놀랍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거짓말도 자꾸 들려주면 나중에도 그것이 진실처럼 들린다고 했던가. 점점 무디어지는 세상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일깨워 주는 듯하다.


앞일이 더 걱정이야. 전쟁이 터질 것 같거든. 수십 명을 표적으로 삼는 테러는 맛보기에 불과해. 전쟁은 수십 만, 아니 수백만을 대상으로 하지. 내 예감엔 조만간 전쟁이 발발할 것 같아.’(P43)

인간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말이라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며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귀담아 듣고 대책을 강구해야 될 부분이 아닐까.


 또 하나의 동료 수고양이 펠릭스가 들어오고 친해진다. 개에게 쫓기는 피타고라스를 구해주고는 더욱 가까워져 이제는 역사 강의를 듣기에 이른다. 인간과 함께 한 고양이의 흥미로운 이야기다. 농사를 지어 식량을 보관하면서 고양이들이 인간에게 대접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세계 각지에 고양이들이 넓은 땅에 퍼져 살게 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고양이와 인간의 오랜 역사에서 이어지는 끈끈한 정도 있었고 종교의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했던 사례도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테러도 그렇고 전쟁도……. 인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대량 살상이 가능한 힘을 갖게 됐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네가 처음 거울을 대했을 때와 똑같아. 인간들은 자기들과 닮은 것을 절멸하려 하지. 더 이상 외부의 적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공격성을 내부의 자신에게 돌리는 거야.’(P102)

인간은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극단적인 종교 이념을 불사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불특정 다수가 희생되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무기를 개발하고 공격을 가한다. 소통하려는 기본적인 자세는 온데간데없다.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입을 빌어 여섯 번째 대멸종을 염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섯 마리의 새끼를 얻은 바스테트는 네 마리의 새끼를 잃는다. 인간에 대한 흥미가 이제는 인간 혐오로 바뀌어 간다. 동물보다 힘이 세다고 마음대로 좋아서 키우다가 귀찮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내다버리고 죽이는 세상이다.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동종만이 아니라 다른 종의 소리도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과 귀가 있어야 한다. 대다수의 고양이는 집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는 피타고라스의 말이 자꾸만 맴돈다. 자신들의 무지를 편안히 여기고 남들의 호기심에 불안을 느끼며, 그저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기를 바라는 방관자 같은 삶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일침을 놓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과의 소통을 갈망했던 바스테트가 인간 혐오로 돌아섰는데 과연 어떻게 아픈 마음을 풀 수 있을지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진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 불화는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사라지기를! 그리고 현명한 사람도 거칠어지게 만드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분노는 똑똑 떨어지는 꿀보다 더 달콤하고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연기처럼 커지는 법이지요. 꼭 그처럼 저도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에게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일을 잊어버리고 가슴속 분노를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서.”(옮긴이의 말 중에서)


일리아스에서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테티스 앞에서 이렇게 절규하였고, 저자 매들린은 이 부분에 대한 호기심이 연구로 이어져 십 년의 과정을 거쳐 이 작품이 탄생했다 한다. 고전학을 전공한 그녀의 내공이 그리스신화와 함께 상상력으로 빚어낸 작품이라 하겠다. 신과 인간의 이야기가 들어있어 환상적인 느낌도 든다. 더구나 사랑 이야기는 흔한 남녀의 사랑이 아닌 미소년들의 사랑 이야기라서 더욱 재미있었다. 그들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이 얼마나 섬세한지,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도 나고 두근두근해진다. 그렇다고 결코 저속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순수하고 고결하게까지 느껴진다. 서로 너무 좋아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느끼는 장면과 분위기, 그들이 느끼는 희열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야기는 파트로클로스가 화자가 되어 이끌어간다. 죽어서까지. 왕의 자손이니까 왕자다. 작고 가냘프고 빠르지 않고 노래도 못 불러서 일찌감치 아버지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주관하는 경기에서 꿀처럼 빛나는 금발머리에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아킬레우스를 본다.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 아버지의 이 말은 계속 열등감으로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열 살 때는 왕궁에 온 귀족의 아들을 실수로 밀었다가 죽게 한 죄로 프티아로 추방당한다. 펠레우스왕의 아들 아킬레우스와 같이 자라게 되는데, 여기서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파트로클로스가 본 아킬레우스는 피부는 갓 짜낸 올리브같으며 이목구비가 수려한 조각남이다. 어머니는 여신 테티스이며 반신반인인 아킬레우스의 움직임과 속도감은 경이로움이다.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되었을까. 펠레우스왕은 아들에게 동무를 권해도 항상 시큰둥했는데, 어느 날 파트로클로스를 동무라고 한다. 왜 이 아이를 선택했느냐고 하자. ‘놀랍기 때문이라고.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소년들은 같은 방에서 지내며 어딜 가나 항상 같이한다. 열등감이 있던 파트로클로스는 그와의 경쟁의식도 없어지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옛날이야기도 하며 우정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아킬레우스를 신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 테티스는 아들이 파트로클로스와 지내는 것을 눈에 가시같이 여긴다. 인간인 네가 감히 내 아들의 앞길을 막으려고 하느냐며 혐오한다. 어떻게든 떨어뜨려 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느 날 자다 일어나보니 아킬레우스가 없다. 그의 어머니의 바람으로 인해 예견했던 일이지만 낙담하지 않을 수 없다. 왕궁을 벗어나 숲으로 얼마나 걸었을까. 아킬레우스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자괴감과 누군가 잡으려고 병사를 보낸 건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릴락 말락 한 아는 소리가 들려온다.

 “네가 따라와 주길 바랐는데아킬레우스의 말을 듣고 긴장감과 안도감으로 속이 울렁거린다. 파트로클로스는 너무 짜릿한 환희에 감히 숨을 쉴 수가 없다. 둘은 이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스승 케이론은 테티스의 말을 어기면서까지 파트로클로스도 함께 데리고 길을 떠난다. 동굴에 기거하며 케이론에게 전투기술은 물론 사냥, 수술, 의술에 대한 것까지 배운다. 어느 날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헤라클레스의 모든 기술과 그 이상을 알고 있어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으며 이전 세대 당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라고 칭찬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긴급사태가 벌어졌다는 왕의 전령을 받고 다시 프티아로 돌아가는데... 미모의 헬레나가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 왕자에게 납치되고 급기야는 전쟁이 시작된다. 테티스는 참전시키지 않으려고 아킬레우스를 여자로 변장시켜 스키로스 섬의 왕의 수양딸로 보냈지만 묘수를 쓴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내고야 만다. 별자리에 이름이 새겨질 정도로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셈이냐고 자꾸 꼬드긴다. 트로이아에 가지 않으면 그 안의 신성이 쓰이지 않은 채 시들어 버릴 거라는 예언, 테티스는 트로이아에 가면 절대 돌아오지 못하고 요절할 거라고 말하지만 명예를 목숨만큼 여기는 아킬레우스는 참전을 결심한다. 겨우 열여섯 살에.


 전쟁이란 인정사정 봐줄 것 없이 어떻게든 승리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 순수한 소년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헥토르가 자기에게 아무것도 잘못 한 게 없는데 어떻게 죽이느냐고 말하던 아킬레우스, 세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전사는 어떻게 승리로 이끌고 갈 것인가. 그리스군과 트로이아군만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신들도 편을 갈라 싸우는 통에 제물을 바쳐서 도움을 받는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전쟁이 희한하게 돌아간다. 빼앗은 영토도 포로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다가 전리품으로 얻은 미모의 여인 브리세이아를 아가멤논이 빼앗는 사태가 벌어진다. 포로가 된 여자들을 보호하며 안심하며 살도록 도와주었던 아킬레우스에게 치명적인 모독이다.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면서 아가멤논이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개입을 않겠다며 싸움을 중단한다.


 ‘아리스토스 아카이오이(그리스의 으뜸)’인 이 위대한 전사가 참전하지 않자 전세는 밀리고 병사들은 죽어나간다. 신의 노여움으로 역병까지 번지고 전쟁은 어느새 9년이 넘어가고 있다. 보다 못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참전하여 사르페돈을 죽이고 헥토르의 창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아킬레우스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슬픔과 분노가 싸움터로 다시 불러냈다. 눈앞에 비극을 맞이하고 얼마나 많이 후회했을까. 그까짓 명예가 뭐라고, 그 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다고 할 수도 있다어떤 이에게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남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 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이다.


 싸움도 못하는 파트로클로스가 자신이 대신 나가겠다고 한 것은 아킬레우스를 더 이상 욕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고 죄 없는 병사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순수한 사랑이었다. 죽어서도 그를 따라다니고 그의 숨결을 느낀다. 핏빛 전쟁터에서도 그들의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영웅의 시대, 거친 전쟁 이야기 속에 두 연인의 사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의 용기, 순수, 우정,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울렁울렁했다. 일리아스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에 얼마만큼의 각색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재미있는 로맨스가 곁들여진 소설로 읽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갖고 있는 일리아스를 읽어보고 싶은 용기를 갖게 되었으니까.

 

'나는 살짝 스치는 감촉만으로도, 체취만으로도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눈이 멀어도 그가 숨을 쉬는 소리와 땅을 밟는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죽더라도 땅 끝에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P175)


내가 죽으면 우리 유골을 한데 모아서 같이 묻어주기 바란다.”(P445)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시키는 문학성 넘치는 스릴러라는 호평에 이 책을 만나기전부터 설렜다. 하지만 보통의 추리소설처럼 긴장감 같은 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심리소설인가 할 만큼 주인공의 내면의 불안이나 공포가 세밀히 묘사되어 어린 범죄자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윌리스라는 이름의 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열두 살의 소년 앙투안은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 쿠르탱 부인과 살고 있다. 자신의 평판을 생명만큼이나 집착하는 쿠르탱 부인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앙투안에게 따르도록 한다. 비디오 게임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되자 옆집 개 윌리스 만이 유일한 위안의 대상이다. 그 윌리스가 어느 날 자동차에 치어 옆구리와 다리가 부러졌는데, 수의사를 부르기는커녕 개 주인 데스매트 씨는 엽총으로 쏘아 죽인다. 앙투안을 그 장면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충격으로 마음은 찢어진다. 우울한 성격에 분노의 성향을 갖고 있는 이 소년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다. 자신의 아지트였던 생퇴스타슈 숲 너도밤나무 위에 지어놓은 오두막을 모조리 때려 부순다.


 하필 이 때 나타난 가여운 레미, 앙투안을 숭배하여 졸졸 따라다니던 여섯 살의 레미다. 레미를 보자 앙투안의 맹렬한 분노가 되살아나고 작대기로 마구 후려치고... 영문도 모른 채 당한 레미는 싸늘하게 죽어간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앙투안, 그 맹렬했던 분노는 이제 거대한 공포로 바뀐다. 열두 살 소년의 머릿속은 이 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계산하기 바쁘다. 교도소 감방에 있는 자신의 모습,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엉엉 울고, 레미에게 왜 죽었느냐고 뺨을 후려치는 동작을 하며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경악을 금치 못 한다. 경찰에 자수해야지 하다가도 죽은 개가 담긴 쓰레기 자루의 영상이 떠올라 치우기로 한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공포 속에서 죽은 레미를 업고 얼마나 걸었을까, 앙투안은 생퇴스타슈 숲 너도밤나무가 쓰러진 구덩이 밑으로 죽은 레미를 밀어 넣는다.


 이제부터 앙투안의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발적인 일이었지만, 살인 전의 삶과 살인자가 된 시점의 사람의 내면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게 보이려고 애쓴다. 방송은 보발 지역의 여섯 살 어린 아이의 실종 소식을 전면 보도하고 군경의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의 봉사도 지원을 받는다. 앙투안은 군경의 탐문에도 응하게 되고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도 없다. 한번 거짓말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한다. 불안한 나날이 엄습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코발스키 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불려나갔다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다.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며 도망칠 생각도 하지만, 여러 가지가 발목을 잡는다.


 아직까지 레미의 죽음은 앙투안 밖에 알지 못한다. 피해자인 데스매트 씨 가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유괴되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베르나데트 부인을 도와주고 부축해 주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앙투안은 너무 괴롭다. 레미를 살려내서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머니와 같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라니.....!

, 내가 솔직히 하나 물어보자......

그런 어린아이를 그런 식으로 유괴한다는 게.....

, 너 상상이 되니? 여섯 살 먹은 꼬마 아이를 납치한다는 게? 아니, 그리고, 대체 무얼 하려고......?

에그, 불쌍한 녀석아. 그래, 저도 이 일 때문에 힘든 모양이구나...... 정말 그 아이는 너무 착했었는데......(P124~126)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속사포처럼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보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앙투안의 두려움의 심연은 레미와 자주 만난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과 영원히 숨기고 싶은 양심의 갈등으로 들끓는다.


빨리 붙잡히고 싶었다. 빨리 체포되고 싶었다.

빨리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빨리 다 털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고 싶었다. 그냥 계속 잠만 자고 싶었다.’(P131~132)


 어머니의 성화로 시에서 벌이는 자원봉사 수색대에 갔다가 생퇴스타슈 숲을 수색한다는 말을 듣고 감전되듯 몸이 굳는다. 어머니의 알약을 몽땅 털어 넣고 자살 시도했다가 겨우 살아난다. 이것은 행운이 될까. 또 다른 비운의 상태에 놓이게 될까. 묘하게 어머니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앙투안은 예리하게 눈치를 챈다. 그리고 두 개의 태풍에 이은 폭우로 보발 지역은 쑥대밭이 된다. 비극의 진실이 묻힌 생퇴스타슈 숲도 나무가 모조리 뽑히고 폐허가 되어 여러 가지 단서들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이것이 앙투안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일까.


 그 후로 12년이 흘렀고 앙투안은 의사가 되었다. 어머니의 부름으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에 다시 가게 되고, 어린시절 고약한 짝사랑으로 얼룩졌던 애밀리와 만났다가 하룻밤의 불장난. 이것은 앙투안에게 또 한 번 위기에 몰린다. 애밀리의 아버지가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종용하자, 이로 인해 어떤 일을 초래할지 빤한 상황이라 어쩔 수없이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디욀라푸아 박사의 자리를 이어받은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난다. 항상 무섭게 느꼈던 코발스키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범죄자의 두려운 내면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수상스럽게 여긴 복선을 마지막에 반전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한다. 세상에,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알고 있는 눈치였어. 12년이나 잡히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생퇴스타슈 숲은 재정비되어 어린이 놀이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앙투안은 그 날 잃어버린 손목시계를 소포로 받으며 완벽하게 원죄를 구원 받는다. 그토록 증오하던 고향에서 작은 선행을 하며 속죄를 하며 살아가겠지. 죄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받지 않고, 이렇게 도와주어도 되는 건가. 그 도움의 손길에는 자신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도 엿볼 수 있었다. 앙투안에게는 눈물의 감동이었겠지만, 레미를 잃은 데스매트 가족에게는 영원한 수수께끼이며 살인범도 못 찾고 진실은 묻힌 것이다. 그 점은 좀 씁쓸하다. 여타의 추리문학이 범인을 잡는 과정의 진행이라면, 이 작품은 우발적으로 살인자가 된 한 사람의 인생, 그 내면을 추적하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이란 출신 작가의 작품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간결하고 짧은 호흡의 이야기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마리암 마지디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는데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시나 우화 같은 이야기도 들어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엮어나가는데, 화자는 태아의 시선에서부터 한 살짜리 유아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되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특히 아버지의 손, 어머니의 배와 눈, 할머니의 목소리를 테마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면은 좀 독특하게 느껴지며 천상 이야기꾼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독재자 호메이니에 대항하여 반정부 정치 모임에 참여하며 좀 더 나은 나라를 꿈꾸었으나 나아지지는 않고 형제, 친척, 동료들이 체포되거나 죽어간다. 폭력과 살인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은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혁명을 겪은 여섯 살의 마리암은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한다. 지옥 같은 땅을 빠져나왔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할까. 나고 자란 땅에서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형제, 친척들과 동네 이웃들에 대한 미안함, 그들의 고통이 선하다. 낯선 이방인으로 살면서 정체성의 방황을 겪기도 하고 등지고 떠난 고국의 현실이 여전한 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와 의대생이었던 어머니, 나름 풍족한 살림이었지만,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안정적인 울타리를 모두 빼앗기고 가난의 냄새가 풀풀 나는 파리의 허름한 아파트에 새 둥지를 틀게 된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그렇지만,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동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어머니는 점점 말이 줄어들고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전 안 해본 막일을 닥치는 대로 하다가 목수로 이름을 날릴 정도가 되지만, 고국의 피비린내는 현실이 자꾸만 떠올라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마리암은 학교에서 먹지도 않고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낯선 아이들 속에 끼지 못해 도망쳤다가 할머니의 환영과 목소리를 듣고 힘을 얻는다.


 아직 어린 소녀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측은하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아이, 아빠들, 우는 엄마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토해낸다. 악몽을 꾸며 울부짖는 날이 계속된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이 자꾸 먹고 싶고, 고향집 아이들에게 모두 주어버린 장난감이 생각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움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며 상상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


 학교에 간 지 4개월이 되도록 말 한마디를 않는다며 어른들을 걱정을 시키고 벙어리, 외계인이라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던 마리암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과정은 새가 알을 까고 나오는 그것이었다. 어른들의 걱정과 우려를 오히려 즐기듯이 안에서 웅크리며 도약하기 위해 준비한다. 작품이 될 때까지 공을 들였다가 어느 날 폭죽을 터뜨리려고 내밀한 작업을 했던 것이다. 이런 야심찬 생각을 하다니. 그렇게 언어를 배우고 다듬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첫 이야기가 공쿠르 상 수상작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난 어딜 가도 내 나라에 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 프랑스에서는 다들 내가 이란 사람이라고 하고 이란에 가면 나를 프랑스 사람 취급해. 나처럼 두 문화를 가지고 싶어? 내 거 다 줄 테니까 나처럼 살아봐. 그러고 나서 그게 정말 멋지고 풍요로운지 말해주라고.”(P190)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야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이 말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두 문화를 가져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느냐고 부러워하는 대학 친구들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살고 싶어 하는 파리도 이방인에게는 완벽한 안식처는 아닌 모양이다. 두고 온 것들이 자꾸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사촌들과 보내던 추억, 유치원 운동장에 있던 떡갈나무까지, 고향에서 보고 듣던 소리가 희미해져가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간청하던 모국어 페르시아어. 너의 뿌리를 잊지 말라던 아버지의 음성이 떠올라 회한에 잠긴다.


 배우기를 거부했던 페르시아어를 17년 만에 다시 배우면서 마리암은 스스로와 화해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아직도 어린이를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싶고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압바스의 눈빛, 플라스틱 샌들 한 짝을 남기고 죽은 동네 젊은이, 감옥에서 만난 삼촌의 웃음, 만화 누샤베를 보며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다던 기자의 이야기 등 기억속의 이미지는 끝없이 맴돈다. 망명자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그 그늘의 안타까움을 보았다. 바꾸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세상이 여전히 공존 한다는 것도. 보고 듣고 체험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글을 쓰는 행위로 고통의 트라우마도 조금은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매혹적인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월송도 2 - 완결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폭설로 인해 객점에서 제온과 경대승의 우연한 만남이 무척 흥미롭다. 날씨 상황 때문에 몰려온 손님으로 인해 방이 없는데, 경대승의 선심으로 제온이 묵게 되는데, 또 하나 험악한 인상의 천박한 무인 감무 강채주를 끼워 주는 바람에 좁디좁은 방 하나에서 세 명의 사내들이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좁은 방에 사내끼리 살을 맞대고 자는 것보다는 밤새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술을 사자는 강채주의 제안에 의기투합한다. 아무리 낯선 사람들이라도 그렇게 모여 앉아 내기를 하게 되면 이런저런 얘기가 술술 나오게 마련이다.


 강채주는 자신의 뛰어난 노름 기술로 여인과 혼약까지 얻어냈다고 자랑을 한다. 얘기를 주고 받다보니 경대승이 자신의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고 싫어한다는 것에 묘한 공감이 생겨 제온과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다혈질이지만 의리에 밝은 경대승은 그 혼담은 무효라며 자신이 물어주겠다고 한다. 나름 규칙을 정하는데 경대승이 이기면 은 열 근에 처녀를 넘기고, 지면 은 스무 근을 내는 조건으로 한다. 그런데 경대승이 내리 진다. 이에 제온은 은 백 냥을 걸고 자신이 이기면 계권을 찢어버리고 처녀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하자고 한다. 노름에 완전 초자 실력인 제온이 이기게 되자 경대승은 놀라며 강채주는 분을 못 이긴다. 하룻밤을 보낸 경대승은 제온에게 야릇한 호기심을 느끼는데... 이렇게 전 권과 마찬가지로 흥미롭게 몰입하게 된다.


 이의방 이후의 정중부의 세상도 여전히 무법천지다. 정중부와 그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남적, 서적을 통합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승려들까지 나서게 된다. 이미 개경에는 괴이한 귀신 가면을 쓴 귀면이 나타나 무신들이 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피해자는 행실이 포악하고 잔인한 자를 해치워서 민인들이 은근히 기뻐한다. 귀면은 무예가 출중해서 감히 당해낼 자가 없다. 오합지졸인 도적떼들을 한 뜻을 위해 규합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붙기도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내려놓지 않는다. 권력의 안락함에 젖은 자는 뺏기지 않으려 하고 밑바닥에 있던 자들은 권력을 갖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


 제온이 충주의 사심관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만나게 된 운영. 제온의 마음과 달리 부모와 스승을 잃고 자신을 향한 자책으로 돌덩이처럼 굳은 운영의 마음속으로 좀처럼 들어갈 수 가 없다. 남편의 학대 속에 점점 미쳐버릴 것 같은 서아, 죽은 줄 알고 있었던 휘, 제온의 곁을 떠난 영로 등 제온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숨 가쁘게 진행된다.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가엾기도 하고 서로 잘 맺어졌으면 해서. 휘는 또 얼마나 얼굴이 빼어나면 기녀들보다 예쁘다고 하는지. 온 상상력을 동원해서 몰입하는 재미가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눈앞에 살아있는 인물들의 영상을 보는 듯 실감난다. 자신의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한당 같은 찬술에게 온갖 협조를 제공하고는 결국 그 시커먼 손에 죽는 계랑.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약한 일개 민인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신분이 높고 재산이 많아도 마음 편히 쉴 곳, 마음 하나 나눌 사람이 없는 서아도 가엾기는 마찬가지다.


 정균 일당과 맞닥뜨린 제온, 경대승의 대적 장면은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 정균의 호위 무사가 된 영로의 칼날이 과연 누구를 향할 것인지. 같은 동지가 되었어도 커다란 일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하나의 적을 해치우려 한다. 어쩌면 인간의 욕망은 이렇게 끝도 없는지도 모른다. 원래 적당한 선이라는 건 없는지도. 처음부터 제온과 이상이 달랐던 것처럼 정중부 부자 일당을 제거하고도 경대승은 제온을 여전히 불편해한다.


걱정스럽다는 겁니다. 장군은 군인답게 엄격한 규율로 세상을 짜 맞추려 하지만 그 규율도 낡으면 고쳐야죠. 사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그래서 시대가 변하는데도 낡은 규율에 구겨 넣으려고 하면 저항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세상과 사람이 변했는데 완전한 복고가 가능하겠습니까.”(P430) 실권을 잡은 경대승에게 이렇게 제온이 주장하지만, 기득권층은 언제나 익숙하고 자신에게 이익 되는 방향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비극과 비리가 계속되는 거겠지.


암울했던 삶 속에서 분투했던 주인공들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길을 찾아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