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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엄마라는 이름의 나의 구원자
사카모토 유지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2010년 드라마 <마더>로 ‘제65회 더텔레비젼드라마 아카데미상 각본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는 대본이다. 그동안 읽던 책과는 완전 색다른 느낌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일드를 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일본어 듣기 공부를 위해서였는데, 그 시작은 <최고의 이혼>이다. 와, 이런 파격적인 제목의 드라마도 하는구나, 놀랐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의 세계. 일본의 드라마는 대개 10화나 12화로 짧게 구성되어 있는 점이 신기했다. 두 쌍의 부부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빚어지는 애환을 다루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였다. 어느 가정이나 고민이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 중 하마사키 부부 쪽이 좀 더 비중 있게 나오는데,(내 생각인지는 몰라도) 남자는 영업직 회사원이고 엄청 깔끔하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신발이나, 세수하고 난 뒤의 엉망인 세면대 등을 그냥 못 본다. 자신이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털털한 아내에게 투덜거리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로 말다툼을 하던 어느 날 홧김에 이혼하자는 말이 나와서 그러자고 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을 떠올리며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차일피일하며 시간이 흐른다. 그러던 중 여자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짐을 정리해 놓고 남편이 귀가해서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고, 편지를 쓴다. 편히 잠들었던 침대, 따뜻한 밥을 같이 먹었던 극히 소박한 일 등에 대해 고마웠다고 편지지에 쏟아낸다. 편지를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다가 울컥해져서 결국은 못쓰고... 이 장면이 7화였다고 기억하는데, 아마 일고여덟 번을 봤을 것이다. 그 장면이 배경음악과 함께 애잔한 감동을 주어 결국은 눈물을 떨구면서도 그렇게 좋았다. 보통 이혼을 다룬 드라마라면 막장을 치달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면이 아니던가. 아, 나라는 달라도 감동의 정서는 비슷하구나. 왜 이렇게 다른 작품을 길게 언급 하느냐 하면, 작가의 프로필을 읽다가 놀랍게도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여운으로 남았기에 <마더>로 다시 만난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무로란 마루야마 초등학교 1학년 임시 교사였던 나오가 학대를 당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제자 미치키 레나를 구하고 지키기 위해 유괴범이 된 이야기다. 선생님들에 의해 레나의 몸에서 멍과 상처투성이를 발견하게 되고 학대를 받는 정황을 아동상담소에 의뢰도 했으나, 명쾌한 대답이 없이 흐지부지 하게 되고 추운 겨울 날 버려진 레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기사로 접했던 유괴 사건이라면 돈을 요구하거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생명을 빼앗기도 하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유를 들어볼 것도 없이 흉악한 범죄로 말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유괴 사건의 전면에 가려진 다른 방향의 시선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상황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부모가 낳아서 키우는 것만으로 아이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래로는 자녀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위로는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어린 시절에 받은 따뜻한 사랑과 추억이 성장하면서 진정한 인격을 지닌 어른이 되는 밑바탕 일 텐데, 학대를 당하다니. 그것을 견디면서 자라기도 전에 일그러진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주로 여성이 나오는 여성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육아라고 하면 부부 공동의 책임으로 이루어져야겠지만, 아무래도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긴 만큼 드라마의 반영도 그럴만하다. 나오를 입양하고 자신의 두 딸과 함께 키운 엄마 도코, 나오를 버린 친엄마 하나, 아이를 잉태한 나오의 동생 메이, 레나를 버린 히토미 이렇게 다섯 명의 여성의 모성을 각기 다른 빛깔로 보여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듯이 여러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낳은 아이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하나, 히토미 같은 엄마가 있고, 입양을 해서 친딸보다 더 잘 대해주면서 키우는 도코 같은 엄마도 있다. 히토미는 자신이 일하러 나가 사이에 애인 우라가미가 레나를 학대하는 것을 눈치를 채면서도 당당하게 따지지 못한다.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메이의 태도와 히토미와 겹친다. 아이를 버리고 유괴하는 것 모두 도덕적으로 정당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아픔을 알아차리고 나면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나약한 인간의 단면이라고 할까. 그러한 사건이 터지기까지 일조한 남자도 있기 때문이다.
나오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도 왜 레나를 데리고 도망쳤을까. 레나를 보면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 말고는 그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 레나는 쓰구미가 되고 도망의 여행길에 하나를 만난다. 낯선 여인에게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정신없이 레나를 구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엄마 역할을 해 주고 싶었고, 이제는 진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민들레 홀씨를 불면서 까르르 웃다보니 엄마가 사라졌다는, 헤어지던 날의 기억을 또렷하게 이야기하는데 듣는 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압권은 단연 레나의 ‘좋아하는 것 노트’ 다. ‘해바라기 씨를 먹는 스즈의 모습, 눈 밟는 소리, 밤하늘의 구름, 크림소다, 회전의자, 구부러진 언덕길, 목욕탕에서 들리는 목소리,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것, 깨끗하게 깎은 밤, 비에 젖은 길, 자전거의 뒷자리, 엄마가 토닥토닥 해 줄 때’ 등... 싫어하는 걸 생각하면 안 되고, 좋아하는 걸 계속해서 생각해야 된단다.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면 즐거워진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사라진다. 얼마나 힘든 고통을 참아내며 그것을 썼을까, 이겨내기 위해 한 단어 한 단어를 떠올리며 적어나갔을 레나가 가여워서 목이 메어온다. 학대를 당한 아이라고 볼 수 없는 명랑함이 느껴져 더욱 짠하다. 아기의 생명을 구해주는 우체통이 있다면서 일곱 살짜리도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아, 얼마나 절실하면.
참 희한한 일이다. 사람은 나는 저렇게 안돼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힘든 건 거의 사람과의 관계이다. 가족도 사회도 모두 그렇다. 갓난아기였던 레나를 키우던 시절, 방송에서 아동 학대 사망사건을 보도하는데 히토미는 저건 부모도 아니라며 혐오감을 나타낸다. 훗날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모르고. 세상일은 법과 규칙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정황이 다는 아닐 것이다. 사건의 정황은 무시하고 법적인 잣대로만 매도하는 행위는 항상 있어왔다. 나오는 방관하는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내’ 일로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범죄자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되기를 응원하며 읽었다. 여러 개의 드라마틱한 반전과 감성어린 맛깔난 대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삶에 있어 자녀와 부모,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세상에는 학대하는 사람과 학대당하는 사람이 있고 그 몇 배나 되는 방관자’가 있다는 나오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쓰구미: 엄마, 있잖아.....
히토미: 왜?
쓰구미: 레나는 하늘나라에 갔어.
히토미: (깜짝 놀라며).....
쓰구미: 레나는 이제 없어. 천국에 갔으니까.
히토미: 레나, 엄마 좋아하잖아? 왜 엄마는 안 썼어?
쓰구미: 있잖아.....
히토미: 엄마 좋아하잖아? 엄마 싫어?
쓰구미: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이제 엄마가 아니니까.
히토미: (아연샐색하면서)..... (P471)
쓰구미: 엄마!
나오: 미안해..... 미안해!
쓰구미: 보고 싶어요!
나오: 미안해!
쓰구미: 엄마..... 한 번만 더, 유괴해 주세요.
나오: !
쓰구미: 한 번만 더 유괴해 주세요.(P583)
나오 목소리 혹시 알고 있나요?
철새가 어떻게 해서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새들은 별자리를 이정표로 삼지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등,
새들은 그런 별들에 의지하여 북쪽으로 가는 거예요.
새들은 어렸을 때 그걸 배워요.
어렸을 때 본 별의 위치가 새들이 살아가는 이정표가 되는 거죠.(P630~631)
-스물 살의 레나에게 나오가 쓴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