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오네긴 열린책들 세계문학 7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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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작품을 읽게 된 것은 몇 해 전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의 자전 에세이를 읽고 깊은 감동과 여운이 남아있었고 그녀가 공연한 동명의 작품이기도 해서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푸시킨의 이 소설에서 소재를 얻어 차이콥스키는 같은 이름의 3막 가극을 작곡하였으며 1879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하듯이 문학작품의 영감으로 음악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또 예술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발레 공연 영상이나 오페라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다.


 이 작품은 7년여 동안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푸시킨 문학적 역량이 응축되었다는 작품이다. 시와 소설을 탈피하여 시의 리듬과 소설의 전개를 곁들인 독창적인 운문 소설이다. 모두 8장으로 구성으로 각 장은 40~60개의 연으로 이루어져있다. 서구의 소네트와 같은 형식으로 한 개의 연은 14개의 행으로 되어있다. 낯선 장르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재밌지는 않았다. 좀 더 진행이 될수록 흥미로웠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지만 나는 먼저 발레 공연의 작품으로 알게 된 것이 더욱 뇌뢰에 남아서 읽으면서도 극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었다. 화자는 오네긴을 알고 있는 친구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떤 때는 작가인 푸시킨이 되고 연인 따찌야나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중간 중간 연을 생략한 기법으로 독자의 상상의 여지를 준다. 화자는 독자를 소설로 끌어들여 참여를 유도하는 참신한 구성도 흥미를 유발한다. 한마디로 일반 소설은 독자 참여의 여지가 없이 관망하는 것과 달리 자유분방을 추구한 푸시킨의 의도가 깔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친척의 유산을 상속받은 오네긴이 시인인 친구 렌스키와 이웃 마을의 영지에 갔다가 그에게 사랑의 포로가 된 따찌야나의 사랑의 고백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었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다른 사람……! 아니, 이 세상에 제 마음을

바칠 사람은 그대밖에 없어요!

높으신 분의 섭리…… 하늘의 뜻으로

결정된 일, 저는 그대의 것입니다.

이제까지 제 인생은

그대와 어김없이 만나기 위한 저당이었어요.

알고 있어요, 신께서 그대를 보내 주셨다는 걸.

죽는 날까지 그대는 제 수호자라는 걸……

그대는 저의 꿈에 나타나셨어요.

보이지도 않는 그대께 제 마음 끌렸어요.

(P101 따찌야나가 오네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임.)

 



미인을 보아도 사랑의 느낌이 없어

그냥 꽁무니만 좇을 뿐.

거절당해도 금세 안정을 찾고

배신을 당해도 오히려 잘됐다 기뻐하고

미녀들의 사랑과 증오에 무감각.

사랑의 환희도 없이 그들을 탐했다가

미련의 아픔도 없이 차버렸다.

마치 무관심한 손님이

저녁때 휘스트* 게임을 하러 찾아와

앉아 있다가 게임이 끝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

제 집에서 편히 잠들고

아침이 되면 깨어나

오늘 저녁엔 어디로 갈까 망설이듯.

주석) *휘스트-트럼프 놀이의 일종.(P113~114)



 젊은 상속자 오네긴에게 아무런 삶의 의욕이나 충만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국외자,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던 당시 지성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살아가지만 그는 자신과 그가 처한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당시 지성인의 정체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면서 아울러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다.


 자유분방함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던 오네긴은 은둔생활을 마치고 사교계의 야회에서 따찌야나를 마주하게 되는데...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오네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상사병에 몸살을 앓으며 자신에게 사랑을 구걸하던 나약한 여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당당하고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차가운 모습의 따찌야나에게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하여 공작의 부인이 되었는데...




오네긴 님, 저에게 이 화려함.


허위에 찬 이 역겨운 삶.

사교계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제가 거둔 성공.

저의 멋진 저택과 야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에 이 모든 가면 무도회의 누더기와

모든 광휘와 소음과 악취를 버리고

책장과 황량한 정원이 있는

제 초라한 고향집으로,

당신을 제가 처음 뵈었던

그곳으로,

제 가엾은 유모가 묻힌 무덤 위에

십자가와 나무 그림자 어른거리는

소박한 교회 묘지로 가고 싶어요…….


, 행복은 손에 잡힐 듯

그토록 가까이 있었건만……! 그러나 제 운명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경박하게 처신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거듭거듭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따냐에겐 어떤 운명이 주어지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결혼했습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제발 절 그냥 내버려두세요.

당신의 가슴속에 자존심과

순수한 명예심이 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감춰서 뭐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몸,

영원히 그이에게 성실할 겁니다.(P265~266)

 


 뒤늦게 따찌야나에게 사랑에 빠진 오네긴의 정열적인 편지를 받았지만, 묵묵부답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도 도도했던 그녀, 수수한 옷차림에 창백한 모습으로 편지를 읽으며 말없이 눈물을 철철 흘리는 따찌야나를 발견한다. 화려하고 당당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오네긴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한 따찌야나의 직언에 오네긴은 벼락을 맞은 듯 참담한 상황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서 아름다운 것일까.


★ 발레리나 강수진의 <오네긴> 유투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i2Mb3SDNqqM


 객기어린 행동으로 렌스키의 약혼녀인 올가(따찌야나의 동생)와 춤을 추며 렌스키를 분노에 떨게 하고 그에게 복수했다는 만족감도 잠시 렌스키가 결투를 신청해 온다. 결투... 이 결투로 렌스키는 주검으로 사라지는데... 이 장면 또한 푸시킨의 드라마틱한 짧은 삶의 투영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미모의 아내 때문에 연적 단테스와의 결투로 생을 마감했다는데 어쩌면 예언과도 같은 이 작품에 섬뜩해진다. 짧은 생애를 살다갔지만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푸시킨은 지금까지도 후대의 작가의 작품들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결핍에서 꽃이 핀다고 했던가. 유배 생활, 정치적인 괴롭힘 등 황제의 시종으로 살아야했던 굴욕 속에서도 그의 문학은 꽃을 피웠다.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부모 아래서도 산더미 같은 책과 가정교사, 할머니의 이야기가 푸시킨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백 여 년이 지난 작품임에도 오늘의 삶에서도 작품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그려졌다. 어렸을 때 아무 뜻도 모르고 읽었던대위의 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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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더디 세계문학 12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디(더디퍼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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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열 권짜리로 읽은 책에서는 앤이 길버트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이야기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앙숙이었던 앤과 길버트가 겨우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지난 일을 용서하고 화해한 부분까지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정말 재미있어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고, 특히 앤과 길버트의 자존심 싸움,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괜히 두근두근 마음 설렜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읽으면서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짠한 마음에 울컥하고 아이 같지 않은 말투에 웃다가 울고. 생각해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는 눈물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본 엄마로서 측은지심이나 공감대가 확장되어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 것 같다. 여전히 앤은 매력적이었다. 매일이 감탄이고 매사가 놀라움이었다.


초록 지붕 집의 매슈 커스버트 아저씨 되시죠?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데리러 오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참이었어요. 못 오실 상황이 뭐가 있을까 혼자 온갖 상상을 하고 있었죠. 만약 오시지 않으면 저기 아래 기찻길을 따라 내려가서 길모퉁이에 있는 벚나무 위에 올라가서 밤을 보내려고 했어요. 저는 무서움을 잘 안타거든요. 그리고 흰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잔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대리석으로 된 방에서 머문다고 상상할 수도 있고요. 그렇죠? 게다가 오늘 못 오시면 내일은 꼭 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P22)


 매슈와 마릴라 남매는 노바스코샤의 한 고아원에서 남자 아이를 데려오기로 하고 브라이트리버 역에 갔는데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고... 매슈와 마주친 역장이 어린 여자아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왜 남자아이가 아니냐고 물어봐야 하는 일이 숫기 없고 소심한 매슈에게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눈치라도 챘을까. 처음 보는 매슈에게 천연덕스럽게 말문을 여는 앤이다. 작고 뼈만 앙상한 아이가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재잘대는데 말없고 수줍은 예순의 매슈는 자기도 모르게 연민을 느낀다. 혼자서 수습하기 힘들어서 일단은 데리고 가서 마릴라에게 떠넘겨야겠다면서 초록색 지붕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저씨와 가족이 된다니 꿈만 같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집으로 가는 내내 주위의 경치에 감탄하면서 잠시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저를 원하지 않으시는 거죠! 제가 남자아이가 아니어서 싫으신 거죠! 제가 그 생각을 못했네요. 아무도 저를 원한 적이 없었죠. 영원히 지속되기엔 너무 아름답다는 걸 진작 깨달았어야 했는데. 저를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 저는 이제 어쩌면 좋죠?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요.”(P39)


황홀한 꿈을 꾸며 집에 왔는데 마릴라의 놀라는 반응에 앤은 눈물범벅이 된다.


아주머니께서 고아라고 생각해보세요. 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왔는데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치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고요. 아주머니도 분명 울고 싶을 거예요. 제 인생에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요!”(P40)

못 먹겠어요. 저는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음식이 넘어가겠어요?”(P43)


 인생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밥을 먹겠느냐고. 외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살아오던 매슈, 마릴라 남매에겐 감정이 풍부하고 꼬박꼬박 할 말 다하는 앤을 보고 참 당황할 만도 하겠다. 하지만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유감없이 표현하는 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이 난다.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매슈 아저씨는 좋은 분이세요. 동정심도 많으시고요. 제가 쉴 새 없이 재잘거려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심지어 제 수다를 즐기시는 것 같았는걸요. 저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영혼의 단짝을 만난 기분이었어요.”(p54)


차마 못 나가겠어요.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초록 지붕 집과 사랑에 빠진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밖에 나가면 저 나무, , 과수원, 개울이랑 친해지게 되고, 그러면 저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요. 더 힘들어지면 곤란해요. 다들 절 부르는 것 같아요. ‘, , 이리 와, 같이 놀자.’ 이렇게요. 하지만 나가지 않는 게 좋겠어요. 결국 헤어질 거라면 사랑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게다가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여기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때 정말 좋았던 점이 바로 그거예요. 저는 사랑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을 거라 생각했고, 아무도 저를 방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순간의 꿈이 되어버렸죠. 이제 제 운명을 받아들일 참인데 다시 운명을 거스르고 뛰쳐나갈까봐 두려워요.”(P55)


 매슈를 따라 오면서부터 온갖 상상을 하며 꿈을 꾸었건만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앤의 상황이 안타깝다. 하지만 결혼도, 아이도 키워보지 않은 앤이 마릴라는 귀찮기만 하다. 다시 고아원에 보내려고 화이트샌즈에 가서 스펜서 부인을 만나러 간다. 앤의 수다에 질려하는 마릴라는 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하루하루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해먼드 아저씨는 그곳에서 작은 제재소를 운영하셨고, 아주머니는 여덟 명의 아이를 돌보셨죠. 아주머니께서 쌍둥이만 세 차례 낳았거든요. 아이들은 숫자가 적당할 때는 귀엽지만 쌍둥이를 세 번이나 연달아 낳는 건 너무 많잖아요. 저는 막내 쌍둥이들이 태어났을 때 단호하게 말씀드렸어요. 얘들을 돌보느라 제정신이 아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P62)

…… 본마음은 그러셨을 거예요. 진심이 그러했다면 밖으로는 늘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나름대로 고민거리가 많은 분들이셨어요. 술주정뱅이 남편과 같이 산다는 거나, 쌍둥이를 연달아 세 번이나 낳아 키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그분들도 본마음은 제게 잘해주고 싶으셨을 거예요.”(P64)


 그렇게 엄격하고 냉정한 마릴라도 앤의 지난날 이야기를 듣고는 안타까움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얼마나 굶주리고 궂은일과 가난, 홀대로 지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정말이지 상상력이 없었다면 살아갈 수 없었을 것 같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앤이기에 견뎌내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마릴라는 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앤은 마릴라와 매슈와 가족이 되어 온갖 사건이 끊이지 않는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 눈물이 나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저 지금 너무 기쁜데 말이죠. , 기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환희의 새하얀 길과 벚나무를 봤을 때도 기뻤어요. 하지만 그대와 지금은 달라요. 그때보다 훨씬 더한 기쁨이에요. , 너무 행복해요. 착한 아이가 되겠어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토머스 아주머니는 저더러 매번 꼬마악당 같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노력해볼게요.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요?”(P81)


초록 지붕 집에서 살게 된 앤의 꿈이 이루어져 기쁨을 이야기하는 뭉클한 장면이다.


집이라는 곳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 같아요. 전 초록 지붕 집이 참 좋아요. 지금가지 어딘가를 이렇게 좋아해본 적이 없었어요. 집이라고 느낄 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 마릴라 아주머니, 저 정말 행복해요. 지금 당장에라도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도가 하나도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아요.”(P114)


 순수하고 감수성 풍부한 앤이 내뱉는 어른스러운 말에 웃음이 난다.

여자아이라면 질색이었던 마릴라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모성애를 느끼며 마음이 혼란스럽다.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며 살 일이다. 앤처럼 세상에 대하여 감탄하는 것을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아요. 마음이 아파요. 언젠가는 아주머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실 거예요. 제 마음을 찢어 놓으셨으니까요. 하지만 용서해드릴게요. 그때가 오거든, 제가 용서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저더러 뭘 먹으라고 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해요. 특히 삶은 돼지고기와 채소라면 더 더욱이요. 상처받은 사람한테 어울리는 음식은 아닌 것 같아요.”(P146)

제가 이실직고할 때까지 방에 가둬둔다고 하셨잖아요. 전 소풍을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라도 고백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어제 밤새 침대에 누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가능한 재밌는 이야기를요. 그리고 까먹지 않으려고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결국 소풍을 못 가게 되었어요. 전부 헛수고였던 거죠.”(P148)


 또 하나의 영혼의 단짝 다이애나와 친구가 되고 난생 처음으로 소풍을 가게 되어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데, 마릴라의 브로치가 없어져서 앤은 의심을 받게 된다. 브로치를 만져보기만 한 건데. 용서해 주겠지 싶어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소풍을 가기 위해 거짓 고백을 했는데... 자신의 숄에 붙어 있는 걸 찾아내고 마릴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안타까운 상황과 어이없는 반전에 눈물과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날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않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불쌍해. 이런 날을 누려보지 못하잖아. 그 사람들도 언젠가는 좋은 날을 맞겠지 물론. 하지만 이렇게까지 눈부시진 않을 거야. 게다가 학교 가는 길마저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황홀하지 않아?”(P151)

단풍나무들은 참 다정해. 항상 바스락거리면서 나한테 속삭이거든.”(P155)


다이애나 때문이에요. 전 다이애나가 너무 좋아요. 그 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 되면 다이애나는 결혼을 해서 저를 떠나 멀리 가버리겠죠? , 저는 그럼 어떡해요. 그 얘 남편이 될 사람이 너무 싫어요. 상상만 해도 너무 싫어요. 그 아이의 결혼이고 뭐고 상상을 했더니 죄다 싫었어요.”(P170)


 다이애나와 앤의 우정은 우정을 넘어 사랑하는 연인과 다름없다. 숲을 같이 걸으며 나무와 호수, 다리 등 온갖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어른 못지않은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학교에 가게 되고 친구를 사귀고 공부에 열중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앤을 보는 일은 대견스럽다. 어딜 가나 실수와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좋은 매듭을 지어가면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앤이 되어 간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앤의 말은 기억하고 싶은 말이 넘친다. 오랜만에 읽었어도 재미와 감동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앞으로도 사랑스런 앤과 자주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 살아가는 힘을 얻어야겠다.



 사랑하는 나의 오랜 세상아! 넌 정말 사랑스러워. 내가 네 안에 살고 있다는 게 기뻐.”(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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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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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전집 14권에 해당하는 작품을 모두 읽었다. 연대순으로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여섯 번째 소설을 맨 나중에 읽은 셈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가 죽으려고 마음먹고 집을 무작정 뛰쳐나가 산길을 걷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열아홉 살 청년이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사건의 배경에는 두 소녀가 있었다. 두 번째 소녀와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이 있었던 모양인데 두 소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모양이다. 그것이 부모와 친척에게 알려져 비난을 듣게 되었고 괴로운 나머지 가출하여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죽으려고 할 만큼 그렇게 큰일일 이었을까. 산 속에서 낯선 남자가 일을 해 볼 거냐고 물으며 접근하는 바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 조조라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서 한바 책임자에게 넘겨주는 사

람이다.

 

 한 번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는 순순히 따라간다. 일자리만 생기면 그것으로 족했고 갱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기뻤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왔지만, 죽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햇빛을 보지 않고 속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음침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자기에게 너무나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붉은 담요와 꼬맹이까지 쉽고 간단하게 사람을 모은 조조는 이들을 데리고 산 속으로 산 속으로 향한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똑같이 갱부가 되겠다고 대답을 하는지 모두 다 똑같이 바보였다고 회상을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전락하게 되는 것보다 같이 전락할 길동무를 얻은 것을 아주 유쾌하게 생각한다. 소세키의 유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강에서 죽을 때는 반드시 뱃사공 한두 명을 끌고 가고 싶어지고 만약 죽고 나서 지옥에라도 가는 일이 생긴다면 사람이 없는 지옥보다는 반드시 요괴가 있는 지옥을 택할 거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여럿이가 마음은 든든한 법이다.

 


 숨 가쁘게 걸어가면서 자신의 행동이 가출이 아니라 소풍이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후회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얌전하다, 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지만 광산으로 가는 길에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고 광산 안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한다. 얌전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게 된다는 말도. 아마도 갱 안에서 큰 고생을 할 듯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왜 사서 하는 것일까.

 


 조조가 한바의 책임자에게 를 데려다주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는 걸 알고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내하는 할멈을 따라 굿길에 갔는데 모여 있는 갱부들을 보고 압도되어 자신의 결심이 흐려진다. 그 갱부들의 얼굴은 그냥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다. 둥글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런 느낌은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다. 모두 거칠고 난폭해 보이는데 그런 사람들이 만 명이나 된다니 완전히 기가 죽는다.

 


 희멀건 얼굴의 열아홉 살짜리 청년을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 중 서른이 좀 안 되어 보이는 갱부가 여기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돌아가서 신문배달이라도 해라, 자기도 학교에 다녔는데 방탕하게 보내다가 여길 와서 굿길 밥을 먹다가 이렇게 되었다 나처럼 되면 끝장이다, 라는 충고를 해 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겁이 나기도 하지만, 왠지 는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하층 노동자에게조차 동료로 대우받지 못하는 모욕을 받고 있다고. 그들은 규칙을 내세우며 여기는 십장도 있고 의형제도 있기 때문에 돈을 벌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되니까 어서 돌아가라는 말을 반복한다. 돈을 벌어도 그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걸까. 이렇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는 돌아갈 결심을 하지 않는다. 왠지 젊은 혈기에 못할 일이 뭐 있나 하는 베짱이 느껴지기도 했다.

 


 ‘는 걱정이 되면서도 사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할멈이 밥 먹으라는 말에 정신을 차리는데. 갑자기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밥이 떠지지 않는다. ‘벽토로 불리는 안남미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보았다. 그들은 안남미도 모르면서 갱부가 되려고 한다고 조롱을 하기 시작한다.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그것도 적응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은 갱부의 조수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시추, 호리코, 야마이치가 죽었을 때 하는 장례식이라는 잔보의 행렬을 보고 숙연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산 속 추위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불을 돈을 내고 덮어야 한다. 집에서 쓰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럽다. 자다가 빈대에 물리면서 비참한 생각이 든다. 갱 안의 둘러보는 일을 안내하는 하쓰 씨는 여기가 지옥의 입구라고 하며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이 말에도 조롱이 섞여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갱부로 전락한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네가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경멸까지 느껴졌다. 따라서 들어가는데 하쓰 씨는 살아서 나갈 생각이라면 건방지게 굿길 같은 곳엔 들어오지 않는 게 좋다고 혼잣말처럼 한다. 그럼에도 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돌아가라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이렇게 갱 안의 묘사를 실감나고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갱 안을 따라가는 과정이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이었다. 속세의 길과 전혀 다른 굴곡진 길, 절벽을 넘어 급기야는 허리까지 차는 물웅덩이가 있는 마지막 갱까지. 서서 갈 수 없고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곳도 있다. 열다섯 개나 되는 사다리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것은 식은땀이 나게 했다.

 


 ‘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처음엔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모면하려고 가출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갱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뻤다. 다음엔 그곳에서 속세의 사람 모습이 아닌 그들을 보고 후회와 호기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하쓰 씨의 안내를 따라 갱 안을 둘러보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는 여기서 죽으면 큰일이다,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게곤폭포로 가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서 갱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쓰 씨와 굿길 입구에서 8번 갱까지 견학을 하고 돌아 나오다가 길을 잃는다. 갱부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인품을 가진 야쓰 씨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일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갱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마음을 되돌린다.

 


어둡기만 했다. 손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손발도 보이지 않았다. 손에 닿는 감촉, 발에 닿는 감촉만으로 살아서 간다. 살아서 올라간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오르는 것이고, 오른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 사다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P268) 

 


 어둠 속에서 손발의 감촉만으로 앞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과 함께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사다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는 갱부는 되지 않았다. ‘먹물을 좀 먹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 와서 며칠 동안은 그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외계인 취급을 당했었는데 갱부들의 월급을 계산하고 나누어 주는 장부 정리원이 되자 상황은 역전된다. 그 일을 다섯 달을 하고 나오게 된다. 갱부가 되려고 했으나 갱부가 되지 못해서였을까.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능청스러움을 보인다.

 


 하지만 소설가 장정일은 해설에서 반론을 펼친다. ‘소설이 되지 못했다는 작가의 허튼소리는 모두 잊어야 한다고. 어쨌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가출했지만 여태까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고 자신이 갱부가 되진 못했지만 갱부의 일상을 접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또 소세키의 제자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폭포에서 자살한 일에 대한 석명이라고도 한다. 후지무라 미사오가 죽기 전에 남긴 글에 인생은 불가해(不可解)!’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 고뇌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며 힘써 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여로(旅路)소설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교양소설이라는 그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 소세키의 바람이 퇴색되어 이웃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 갱부로 전락한 일은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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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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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신주쿠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던, 지금은 소세키 산방기념관에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산문을 모은 것이다. 2018년 도쿄여행 때 여기를 다녀왔는데 기념관은 외진 지역이 아니라 동네 골목으로 이어져 있을 만큼 가까워서 자전거를 탄 할머니들이 손쉽게 찾아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부럽게 생각되었다. 다시 가고픈 곳이다.

 

 이야기를 읽은 느낌은 아무래도 아플 때 쓴 작품이라서 그런지 힘이 빠진 작가의 모습이 느껴져 좀 안쓰러웠다고 할까. 그리고 그의 소설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가까운 지인이며 작가로서 흠모하는 이들이 찾아와서 나눈 이야기며 무엇보다 어린 시절 양자로 보내져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던 내밀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겉보기에 좀 거만해 보이는 무뚝뚝함(그 모습도 멋지지만) 속에도 아픔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마에 시달리면서 바깥출입을 잘 못 하고 유리문 안에서 안과 밖을 내다보며 사유했던 이야기로 나쓰메 소세키의 고독한 내면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얻은 개 헥토르 이야기가 짠했다. 친구를 만들어서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그 헥토르가 병에 걸려 죽었는데 시를 지어 묘표에 적고 고양이 묘 근처에 묻어준다

 

風の 土にてやり

(가을 바람도 들리지 않는 곳에 고이 묻어 드리리)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되리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병중에 나약해져 있었으니 연민과 슬픔도 있었겠다.

 

 어떤 날은 독자인 듯한 여자가 찾아와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기구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로 써줄 수 있느냐고 했다가 번복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 여자에게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날 밤 오랜만에 인간다운 흐뭇한 마음을 맛보았다고 한다. 향기 짙은 문학 작품을 읽고 났을 때의 기분과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또 단자쿠(短冊)(글씨를 쓰거나 물건에 매다는 데 쓰는 조붓한 종이)를 보내며 한시를 써 달라고 졸라대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토로하기도 한다. 아픈 상황에 이런 저런 사람의 방문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겠다 싶다. 작가의 집에 도둑이 든 이야기, 대학에서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을 하고 10엔을 받았다가 불편한 마음에 기부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살던 옛집을 회상하는 장면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예불 종소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 종소리가 작가의 마음을 슬프고도 외롭게 했단다. 동네에 있던 요세(지금의 소극장이라 함.) 근처의 망루 옆의 작은 종을 기념하기 위해 마사오카 시키(하이쿠 시인,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친구라 함.)와 시를 읊던 일, 누나들이 연극을 보러 꼬박 하루를 걸려 돌아다녀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셋째 형에게 듣고 놀랐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그렇게 화려한 시절이 있었나 꿈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막내아들인 자신을 양자로 보내놓고 그렇게 살 수 있나 원망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키우던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고양이가 찬장 속 냄비 속에 빠졌는데 참기름 범벅이 되어 그 몸으로 작가의 원고지 위에 드러눕기까지 했다는. 원고지 망친 것에 대해 속상했을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고양이가 피부병에 걸려 털이 빠져 안타까웠던 중 작가가 병이 나서 회복되었는데 고양이도 새 털이 나고 회복되어서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양자를 갔다가 집으로 되돌아와서 기뻤던 이야기를 한다. 부모를 할머니, 할아버지인 줄 알고 그렇게 불렀는데, 하녀가 어머니, 아버지라고 알려주어서, 그렇게 자신에게 친절하게 얘기해 주어서 더욱 기뻤다는 이야기다.

 

 만나러 오는 사람마다 병환은 이제 다 나으셨습니까? 하는 물음에, 그는 독일이 연합군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은 병마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신의 병은 계속 중이고 어떻게 변화해 갈지 모르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제각기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소중히 껴안고 너나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P115) 

 

 끝나기 전에는 계속되는 삶 속에서 어떤 폭탄을 껴안고 있는지 모르니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폭탄을 만나기도 하겠지.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 되면서 어머니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그래도 막내둥이인 자신을 가장 귀여워해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토막토막 남아있는 어머니의 추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안타까워한다. 하루는 무서운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어서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올이 성근 감색 홑옷에 조붓한 흑공단 오비를 입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 그 어머니도 그 아들도 모두 없는 세상이고. 작품으로 남아서 우리를 위로해 준다.

 

 

유리문 저쪽에서 보면 내가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리문 이쪽에서 보면 당신이 유리문 안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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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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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덜 읽힌다는 태풍19071월에 발표된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과연 이렇다 할 큰 서사가 없어서 밋밋한 느낌도 들었지만 나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러 작품이 제목과 큰 관계가 없듯이 이 작품도 태풍과는 관계가 없었다. 굳이 들자면 신자유주의라는 태풍’(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 속에서 ‘()문학이라는 나비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나카노의 애인이 부르는 노래 속에만 태풍이 언급될 정도다. 여기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시라이 도야라는 가난한 지식인, 부유한 계층의 나카노와 대학 동기 다카야나기다. 시라이 도야는 문학자로서 중학교 선생을 하다가 세 번이나 옮기다가 결국 쫓겨 나온다. 나쁜 선생들이 학생들을 선동해서 도야 선생을 괴롭혀서 쫓아낸 것이었다. 시골에서 도쿄로 온 도야는 아내에게 이제 교사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시골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궁색한 살림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아내는 불만이 가득하다.

 


 나카노는 부잣집에서 잘 자란 수재에 얼굴도 잘 생기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 줄도 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다. 다카야나기는 그런 아무런 걱정할 일이 없는 나카노가 부럽다. 가난하고 병약한 다카야나기와 나카노가 친구가 된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비백 무늬의 오시마 비단과 질이 떨어지는 지치부 비단’(P33)이 하나로 꿰매어 졌다고



 마치 어떤 운명적인 사건이 연결된 건 아닐까 상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나카노는 부자 계층이지만 특별히 두드러져 보이지 않고 온화한 캐릭터로 나온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에다 착하기까지 하다. 시라이 도야와 나카노는 자신의 세계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도야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다. 다카야나기 군이 바라보는 세상은 자신을 위한 세상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한을 갖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을 개의치 않는 세상을 가혹하다고 생각한다.’(P126) 



 이 문장은 도야 선생과 다카야나기의 삶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드러난다. 가난해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간다. 물론 아내는 그런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한다. 결혼 생활이 이런 거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면 시집을 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남편이 자기 말대로 따라 주었으면 싶은데 쉽지 않다.

 


 비 내리는 어느 가을 몹시 아픈 다카야나기는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도야 선생을 만난다. 서로 같은 처지의 외톨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야 선생을 보면 왠지 힘이 솟는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조금씩 매료된다.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지 자신의 개인사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일곱 살 때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공금을 횡령해서 구속되고 폐병으로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자신은 죄인의 아들인데 죄악도 유전이 되는 거냐고, 숨이 막힐 지경이라며 괴로움을 호소한다.



 그 말을 듣고 안타까워진 도야 선생은 과거는 잊어야 한다면서 당신은 앞으로 꽃을 피울 사람이라고 한다. 다카야나기는 꽃이 피기 전에 시들어버릴 거라고 하자 도야는 시들기 전에 일을 하면 된다고 한다. 당신만이 아니라 나도 외톨이고, 외톨이는 숭고한 것이라고.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창작을 하라고 권한다. 선생의 이 말을 들으며 다카야나기는 외톨이 선생의 얼굴에서 어떤 후광을 본다. 이보다 앞서 도야 선생의 집에 찾아갔는데 문학자에 대한 태도 등의 이야기를 듣다가 중학교 시절의 잘못을 사죄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친다. 도야 선생이 고코 잡지에 쓴 해탈과 구애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자 다카야나기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한편 생활이 곤란한 도야는 형님 댁에서 백 엔을 빌려 썼는데, 갚아야 할 기한이 되자 심부름꾼이 편지를 가져온다. 그 바로 전에 그 형이 와서 도야의 아내에게 어떻게든 도야를 다른 일에 한 눈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작전을 짰지만 자신은 연설 약속이 있어서 형에게 갈 수 없다고 한다. 300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현대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이 타는 아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도야, 그 아내를 보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여기서 도야는 계몽적, 지사적 인문학자의 역할을 한다. 소세키의 육성이 많이 느껴졌다. 도야와 나카노라는 두 계층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 속에서도 부자는 학자를 존중해야 한다고 도야를 통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인격)의 본질을 성찰하고 이것을 수호해야 할 인문학의 투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야 선생의 연설이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서 모아 보았다.

 

자신은 과거와 미래의 연쇄입니다.’(P175)

 

자기 속에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자기 속에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자기 속에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입장은 이런 점에서 명료합니다. 난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가? 난 자식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의 생존의 의미는 이 셋 중의 하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P176)

 


바람이 강하게 부는 추운 날 무명옷 차림을 한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야유를 하다가도 열중하는 청중들의 모습이 보인다. 셋 중 하나에 생존의 의미가 있다는 거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는 삶이라면 만족스러운 삶이 되지 않을까. 도야의 삶은 궁핍하기 그지없다. 자신 그 자체를 수립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출판을 할 수가 없다. 글이 도로 빚이 되는 셈이었다.

 


자기에게 아무런 이상도 없이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현대의 청년은 도도하게 날로 타락하고 있습니다.“(P183)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 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P183)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원대한 이상이 있는 사람은 큰길을 걸어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과는 달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걸어냅니다. 방황하고 싶어도 방황할 수 없습니다. 혼이 이쪽, 이쪽 하고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디까지 걸어갈 생각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후략)”(P184)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 하는 길을 알고 있고, 원대한 이상이 있는 사람은 큰 길을 걷는다는 말에 왠지 힘이 난다. 방황하지 않고 혼이 알려주는 데로 갈 수 있다는 이상의 길. 이것이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누구에게나 필요하겠지, 이상의 길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흔들림 없는 나무처럼 여겨진다.

 


어떻게 하면 학문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물음은 없습니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학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학문을 통해 돈을 벌 궁리를 하는 것은 북극에 가서 호랑이를 사냥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P187)

 


돈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학자와 언쟁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품격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려는 것도 잘못입니다. 좀 생각해 보는 게 좋아요.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해도 병이 들었을 때는 의사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금화를 달여 마실 수는 없습니다.……”(P190~P191)

 

학문적 능력이 있는 사람, 이치를 이해한 사람은 부자들이 돈의 힘으로 세상에 이익을 주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통해, 학문을 통해 이치를 이해함으로써 사회에 행복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장은 다르지만, 그들은 도저히 범할 수 없는 지위에 확고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후략)”(P191)

 


 청중 속에 있던 다카야나기도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눈이 빛나기 시작한다. 다카야나기 군은 폐병에 걸려 아픈 상황임에도 가장 크게 함성을 질렀다. 태어나서 이런 통쾌함은 처음이었다. 도야 선생은 학문이란 돈에서 멀어지는 기계라고 말하고 있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실업가나 상인이 되어야 한다고. 학자가 돈을 기대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인이 학문을 목적으로 견습생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돈과 학문은 서로 이질적이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도야 선생의 연설을 듣고 온 다카야나기는 각혈을 한다. 의사도 요양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엄두도 못 낸다. 나카노는 그가 요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돈을 빌리는 것도 받는 것도 싫다면서 거절을 한다. 다카야나기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 나카노는 요양을 가서 그 작품을 완성하는 조건으로 돈을 쓴다면 미안한 일도 아니라고 제안을 하자 그것을 수락한다. 백 엔을 받은 다카야나기는 저잣거리로 뛰어 가다가 도야 선생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하려고 찾아간다. 거기엔 빌려준 돈 백 엔을 받으러 온 손님이 와 있었다.

 


 다카야나기가 가진 돈이 딱 백 엔이고, 오늘 밤까지 갚기로 약속한 돈 백 엔을 어서 달라고 추궁하는 손님이 있다. 그런데도 도야 선생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다카야나기는 선생에게 쓴 원고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 그 인격론을 백 엔에 넘겨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생을 괴롭혀서 쫓아냈던 제자였고 잘못했으니, 그 원고를 넘겨달라고. 이로써 요양을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려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보다 더 위대한 인격론을 품에 넣고 나카노와 그 부인이 베풀어준 호의를 갚고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이 부분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읽히는 모양이다. 다카야나기가 선생의 원고를 넘겨받음으로써 돈의 힘으로 인간사를 결정하면 안 된다는 시라이 도야 선생의 가르침을 배반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다카야나기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해야겠다는 결심이 실현되었고 선행의 결말과 함께 인간성(인격)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가 언급되고 있었다. 꼭 읽어봐야겠다 싶어 검색해 보니 절판된 작품으로 나온다. 아쉽다. 일본작가인 팬이 지은 책 같은데. 나중에 원서로라도 볼 수 있으려나.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문학자란 원고지를 앞에 두고 숙어사전을 참조해가며 머리를 흔들어대는 그런 여유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문이 가능한 한 연구를 방해하는 것을 피해서 점점 인간 세상과 멀어지는 것과 달리 문학자는 자진해서 이 장애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P100)



 병약하고 가난한 다카야나기는 그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도야 선생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자라는 두 외톨이가 열심히 창작열을 불태우게 되었을까. 도야의 입을 빌어 문학자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듯이 가난과 고독과 궁핍을 즐기며 세상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을까. 그래도 둘이어서 덜 외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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