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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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신주쿠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던, 지금은 소세키 산방기념관에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산문을 모은 것이다. 2018년 도쿄여행 때 여기를 다녀왔는데 기념관은 외진 지역이 아니라 동네 골목으로 이어져 있을 만큼 가까워서 자전거를 탄 할머니들이 손쉽게 찾아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부럽게 생각되었다. 다시 가고픈 곳이다.

 

 이야기를 읽은 느낌은 아무래도 아플 때 쓴 작품이라서 그런지 힘이 빠진 작가의 모습이 느껴져 좀 안쓰러웠다고 할까. 그리고 그의 소설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가까운 지인이며 작가로서 흠모하는 이들이 찾아와서 나눈 이야기며 무엇보다 어린 시절 양자로 보내져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던 내밀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겉보기에 좀 거만해 보이는 무뚝뚝함(그 모습도 멋지지만) 속에도 아픔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마에 시달리면서 바깥출입을 잘 못 하고 유리문 안에서 안과 밖을 내다보며 사유했던 이야기로 나쓰메 소세키의 고독한 내면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얻은 개 헥토르 이야기가 짠했다. 친구를 만들어서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그 헥토르가 병에 걸려 죽었는데 시를 지어 묘표에 적고 고양이 묘 근처에 묻어준다

 

風の 土にてやり

(가을 바람도 들리지 않는 곳에 고이 묻어 드리리)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되리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병중에 나약해져 있었으니 연민과 슬픔도 있었겠다.

 

 어떤 날은 독자인 듯한 여자가 찾아와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기구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로 써줄 수 있느냐고 했다가 번복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 여자에게 숨이 막히도록 괴로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날 밤 오랜만에 인간다운 흐뭇한 마음을 맛보았다고 한다. 향기 짙은 문학 작품을 읽고 났을 때의 기분과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또 단자쿠(短冊)(글씨를 쓰거나 물건에 매다는 데 쓰는 조붓한 종이)를 보내며 한시를 써 달라고 졸라대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토로하기도 한다. 아픈 상황에 이런 저런 사람의 방문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겠다 싶다. 작가의 집에 도둑이 든 이야기, 대학에서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을 하고 10엔을 받았다가 불편한 마음에 기부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살던 옛집을 회상하는 장면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예불 종소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 종소리가 작가의 마음을 슬프고도 외롭게 했단다. 동네에 있던 요세(지금의 소극장이라 함.) 근처의 망루 옆의 작은 종을 기념하기 위해 마사오카 시키(하이쿠 시인,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쓰메 소세키의 친구라 함.)와 시를 읊던 일, 누나들이 연극을 보러 꼬박 하루를 걸려 돌아다녀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셋째 형에게 듣고 놀랐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그렇게 화려한 시절이 있었나 꿈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막내아들인 자신을 양자로 보내놓고 그렇게 살 수 있나 원망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키우던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고양이가 찬장 속 냄비 속에 빠졌는데 참기름 범벅이 되어 그 몸으로 작가의 원고지 위에 드러눕기까지 했다는. 원고지 망친 것에 대해 속상했을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고양이가 피부병에 걸려 털이 빠져 안타까웠던 중 작가가 병이 나서 회복되었는데 고양이도 새 털이 나고 회복되어서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양자를 갔다가 집으로 되돌아와서 기뻤던 이야기를 한다. 부모를 할머니, 할아버지인 줄 알고 그렇게 불렀는데, 하녀가 어머니, 아버지라고 알려주어서, 그렇게 자신에게 친절하게 얘기해 주어서 더욱 기뻤다는 이야기다.

 

 만나러 오는 사람마다 병환은 이제 다 나으셨습니까? 하는 물음에, 그는 독일이 연합군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은 병마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신의 병은 계속 중이고 어떻게 변화해 갈지 모르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제각기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소중히 껴안고 너나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P115) 

 

 끝나기 전에는 계속되는 삶 속에서 어떤 폭탄을 껴안고 있는지 모르니까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거꾸로 말하면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폭탄을 만나기도 하겠지.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 되면서 어머니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그래도 막내둥이인 자신을 가장 귀여워해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토막토막 남아있는 어머니의 추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안타까워한다. 하루는 무서운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어서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올이 성근 감색 홑옷에 조붓한 흑공단 오비를 입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 그 어머니도 그 아들도 모두 없는 세상이고. 작품으로 남아서 우리를 위로해 준다.

 

 

유리문 저쪽에서 보면 내가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리문 이쪽에서 보면 당신이 유리문 안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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