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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평점 :
알베르틴이 떠난 것은 화자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알베르틴이 스스로 떠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결국은 다시 돌아올 거다, 그녀와 결혼을 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와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떠난 건가, 그러다가도 헤어짐을 예고하는 남자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베르틴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오래전부터 도주 계획을 세웠을 거라는 추측을 하는 등 복잡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베르틴을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하다.
생루에게 부탁을 해서 봉탕 부인을 만났다가 알베르틴이 알게 되고 화자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낸다. 나를 필요로 했다면, 직접 편지를 썼다면 기쁘게 돌아갔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화자도 편지를 쓰는데 속마음과는 달리 반대로 쓴다. 그러니까 헤어지자 운운했던 말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심을 표현하지 않는데 알베르틴이 화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알베르틴이 반드시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질베르트와 교제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무관심을 가장했고, 그 무관심이 드디어는 현실이 되었다.’(P84) 알베르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그것이 자존심 때문이었다니! 요즘 말로 하면 사랑 표현을 못 했던 것이다. 남겨진 화자의 마음에서 참담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다지 알베르틴을 좋아하지 않았던 프랑수아는 속마음이 어떨까.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그걸 도련님에게 대놓고 내색할 수도 없었겠지. 화자는 알베르틴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자꾸 프랑수아에게 주지시킨다. 아주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프랑수아가 믿지 못하도록. 그러던 중 알베르틴이 서랍에 반지를 두고 갔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성공하리라 믿었던 생루에게 부탁한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화자는 다시 고통에 빠진다. 오히려 생루가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까 의심까지 하면서. 한번 질투와 의심에 빠진 인간의 마음은 한이 없는 것 같다. 알베르틴을 혼자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일이 단 일 분이라도 미칠 지경이었다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이 정도면 정말 편집증적인 상태가 아닌가. 이러한 화자의 행동을 아무리 무덤덤해 보이던 알베르틴이라도 모를 리가 있을까. 여성 특유의 예민함은 갖고 있을 텐데. 거기다 헤어지자는 예고와 좀더 머물러 보라는(마치 큰 배려를 하듯이)말을 알베르틴에게 했었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화자의 너무도 서툰 연애에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앞에서 스완이 오데트가 사고로 죽기를 바라는 장면을 상기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화자도 알베르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은 끊임없는 질투로 영원히 오염되지 않은 채,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온함은 되찾을 수 있을 거라며. 그러다가도 스완이 살아있다면 그런 소망은 범죄일 뿐이며,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그를 해방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거라며 한탄한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려고 하려고 했는데……. 화자는 알베르틴이 산책하던 중 낙마하여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봉탕 부인의 소식을 듣는다.
돌아오리라는,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찬 화자의 희망은 이제 기약할 미래도 없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 알베르틴을 처음 만나고 조금씩 알아갔던, 그리고 사랑했던 날들을 회상한다. 질투로 인한 힘든 마음,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가장해야 했던 복잡한 마음 등을 풀어 놓는다.
‘사랑을 할 때에도, 정신적 대기 상태가 불안정하고 내 믿음의 압력이 변하면 어떤 날에는 내 고유한 사랑의 시계(視界)가 좁아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무한히 넓어지고, 또 어느 날에는 미소를 짓게 할 만큼 아름답다가도 다른 날에는 폭풍우를 일게 할 만큼 일그러지지 않았던가? 우리는 오로지 자신이 소유한 것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실제로 우리 옆에 있는 것만을 소유한다. 얼마나 많은 추억과 기분과 관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 우리의 시계로부터 멀어지는가! 그때 우리는 그것들을 더 이상 우리 존재를 이루는 전체 속에 포함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비밀 통로를 가지고 있다.’(P125)
알베르틴을 향한 화자의 마음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것. 더구나 그녀가 죽어 세상에 없다는 것, 그 자체가 화자의 마음을 얼마나 황량하게 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내면의 깊은 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비밀 통로에서 알베르틴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왜 알베르틴에게는 그걸 잘 표현하지 않았을까. 질투심에 휩싸여 고통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알베르틴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까. 속마음과 전혀 반대된 마을을 함으로써 화자가 말하는 알베르틴의 악행(?)을 막아보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알베르틴은 떠나버렸다. 자유롭지 못한 그 ‘갇힘’에서 벗어나고자 떠났을까. 격렬한 질투로 인해 정열적이고, 무관심하고, 질투하는 남자로 시시각각 변했던 자신의 모습에 처절하게 후회를 쏟아놓는다.
한 마디로 11권을 요약한다면 화자를 떠나고 죽은 알베르틴에 대한 애도와 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생루와 에메의 탐문을 통해서 알베르틴이 한 일을 알게 되고 앙드레의 고백을 듣고 알베르틴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한 채 이기적이었던 자신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발베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하게 된 과정, 질투와 의심으로 점철되었던 관계, 질투에 빠져 알베르틴을 죽게 한 죄책감은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읽는 내내 화자의 사랑에 대해서 의문을 자아내게 했고, 그가 과연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씁쓸한 마음이 컸다. 연인을 ‘소유’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며 ‘소유’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반발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다. 인간이란 살아가는 내내 얼마나 많은 실수투성이로 살아가는가. 연습도 없고 실전인 삶에서 한번 오류가 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과 삶과 죽음의 문제는 더욱더.
어머니와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알베르틴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옅어졌을 때 질베르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친구였던 생루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당황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스완이 죽고 오데트는 포르슈빌과 결혼하게 되고 스완의 이름은 사라졌다. 오데트와 질베르트를 게르망트가에 그토록 초대받고 싶었던 스완의 소망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생루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낯설고 슬픔을 느낀다. 더구나 탕송빌에 갔다가 질베르트의 고백을 듣게 되는데…. 어린 시절 사랑했던 질베르트가 자신을 경멸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했었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화자는 인정한다. ‘어중간한 감정의 대화를 통해 첫 순간처럼 솔직해지는 것이 두려웠’고, 자신의 ‘서투른 행동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고.
아무리 빨라도 ‘후회’란 늦다고 했다. 화자는 질베르트의 고백을 듣고 생각한다.
‘그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황혼 속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어쩌면 나의 모든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그때 그 일에 관해 질문을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내게 진실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중략) 또 사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여인들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난다 해도 그들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죽음이 놓여 있는 게 아닐까?’(P470~471)
‘그 먼 시절이 긴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로부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P471)
어쩌면 너무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질투와 의심에 파묻혀서 혼자 단정 짓고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묻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소통의 부재와 소통이 불능했기에 질베르트와 알베르틴과의 사랑도 모두 어긋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생루와 결혼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기에 더욱 참담했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과 죽음과 사투하며 마지막으로 쓴 것이 이 11권의 내용인 [사라진 알베르틴]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랑했던 알베르틴을 향한 회상과 애도, 죄책감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물론 끝없는 의구심도 들어있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망각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글쓰기를 통해서 구원받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대한 반성과 성찰적인 문장이 많았는데 몇 가지 옮기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우리 감각 세계의 건물을 떠받치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며, 믿음이 없으면 건물은 흔들린다. 우리는 바로 이 믿음이 사람들의 가치와 무용성을 결정하며 또 그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열광이나 권태의 감정을 결정하는 걸 보아 왔다.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않아 끝나리라고 확신하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또는 슬픔이 돌연 커져서 한 존재를 우리의 목숨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믿음은 슬픔을 견디게 한다.’(P57)
‘한 존재와 우리의 관계는 오로지 우리 사유 속에만 존재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관계는 느슨해지고, 우리는 환상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또 사랑이나 우정, 예의나 체면, 의무감 때문에 타인을 속이면서도 결국은 홀로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안에서만 타자를 인식하며, 그렇지만 그와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존재이다.’(P65)
‘삶을 알고 싶다는 이 거대한 욕망을 나는 예전에 발베크의 길에서나 파리의 거리에서 느꼈으며, 그 욕망이 알베르틴의 마음속에서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 외의 다른 이들과 그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을 그녀로부터 빼앗고 싶어 했을 정도로 그것은 나를 괴롭혔다.’(P231)
‘그런데 인간이란 불행하게도 우리 사유 속에서 쉽게 마멸되는 수집품 진열대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그들에 대해 세우는 다양한 계획에는 사유의 열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유는 피로해지고 추억은 파괴된다.’(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