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과 신화
한승원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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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 문단의 거목인 한승원 작가의 50년 작품 활동 중에서 직접 가려 뽑은 중․단편의 소설들이 <야만과 신화>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바다(그것이 실제의 바다가 되었건, 여성으로 상징화된 바다가 되었건, 화엄의 바다가 되었건)’를 떠난 적이 없다. ‘신화’와 ‘역사’와 ‘여성성’을 ㅁㅊ떠난 적도 없다. 그는 줄곧 이 주제들을 깊이 파고 넓게 확대하고 달리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광대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온 예외적인 작가다.(p558)라고 말하고 있다.


 단편 <어머니>는 197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바리데기 설화’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감옥에 있는 막동이에게 면회를 가기 위해 늙은 노구에 천식을 달고 사는 어머니가 미역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윗마을로 향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젠 ‘면’자만 들먹여도 큰아들 일현은 눈살을 으등카리같이 싸짊어지고 “그놈으 반디 그만저만 댕기씨요. 그라다가 길바닥에서 죽으면 어짜실라우” 하면서 휙 돌아앉아 곰방대에 써레기나 쑤셔 넣곤 하였고, 며느리란 년은 궁상스럽게 축 처진 볼을 흐물거리며 이쪽의 늙은 마음을 위로해준답시고 “아제도 아제제마는 어마니가 살어사 안 쓰겄소?” 할 뿐, 노비를 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 마련할 걱정 같은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내비칠 엄두마저 내지 않는 것이니 어이할 것인가. 개잡놈 같으니라고, 주둥이에 퍼 넣을 술 한잔 값 아끼고, 노름판엘 한 번만 안 가면 그만한 돈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 아닌가.(p64)


 여기를 읽다가 웃기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에 물기가 어린다. 옛날 어릴적 풍경이 생각났다. 옛날 할머니들은 걸지게 욕도 잘했다. 가난에 절고 절어 힘든 나날을 욕으로 풀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큰 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널빤지 위에서 올골골 떨고 있는 막동이’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부모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고생하고 있는 막동이가 더 눈에 밟혔을 것이다. 형제들이야 부모 곁을 떠나면 제각각 사느라 바빠서 반은 남이 되는 것이나 진 배 없고...

쌀말 값이라도 얻으려고 큰 아들 일현이, 작은 아들 이현이, 바라대기 딸네 집으로 순례를 하는 것이다. 목수노릇을 하는 둘째도 겨울이라 일이 없어서 봄 해가 길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에라, 내가 독살스럽고 모진 년이구나, 시상에 즈그들이 나이 서른을 넘었닥 해도, 남 모양으로 출중나게 배우기를 했는가, (중략) 그 위에 못된 창아지가 더 독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모진 년이다. 내가 독사다’(p68)


 그걸 마련 못해주겠다고 앙탈을 하는 자식들의 소행이 못내 섭섭하고 노여워, 늙은 어머니는 그 저수지 둑 밑에 주저앉아 다리를 죽 뻑도 통곡이라도 해버렸으면 시원할 것 같은 심사를 억누르고, 부지런히 활갯짓을 하면서 오른손에 든 지팡이를 옮겨놓았다.(p82)


 다행인지 딸네 집에 가서 그나마 착하고 곰살맞은 사위 덕에 돈푼도 얻어오고 애를 가져 배부른 딸이 미역을 얻어 김으로 다 바꾸어다 준 덕분에 바리바리 이고 지고 막동이를 만나러 간다.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된 그 보름달 같이 하얗고 예쁘던 딸. 야위고 거칠어진 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프지만, 그래도 차디찬 곳에서 떨고 있는 막동이보다는 낫지 않느냐 하는 마음으로 딸의 도움을 뿌리치지 못한다. 보성으로 향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쇠고기국을 끓이고 따뜻한 우유를 사서 식을까봐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부르기를 기다린다. 제일먼저 접수했는데, 열두 명이나 부르도록 막동이는 보이지 않는다. 애가 닳고 닳아 있는데, 그제야 면회자를 찾는다. “목포로 갔단 말이오, 어제. 빨리 그리로 가보시오” 하는 퉁명스런 대답만...


어머니는 “어따 어메, 어째사 쓸꼬!” 탄식하며 쿨룩 쿠울룩 터져나오는 기침에 주저앉고...우유병 하나가 떨어져 박살이 난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낙지같은 여자>는 로렐라이 전설 설화를 차용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나’의 집에 아기업개로 들어와 살던 이름은 순한녜. 힘이 센 그녀는 두 살 먹은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거의 모든 놀이 상대가 되어 주었다. 멱감는 것을 좋아하고 팔과 다리가 길고 키도 후리후리한 얼굴도 예쁜 그녀다. 그녀의 오빠는 ‘나’의 큰집에서 머슴살이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해녀라고 했고 아버지는 상 장수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중학교 생물 선생이 되고 바쁘고 지친 삶을 풀기 위해 술꾼이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낙지같은 여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씻은 듯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친구로부터 우연히 알게 되는 사실...


“가끔 말이시잉, 배를 타고 지내가면 배를 대라고 손을 이렇게 까부른닥 하드란께.”

“분명히 귀신이 들리기는 들린 모양인 것이 말이시, 순한녜가 손짓하는 데로 배를 댄 남자치고 썽썽하게 남어난 사람이 없다네. 참말로 도리섬에 배를 대고 그렇게 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는 없제마는, 모두가 그런 소리를 해쌓대.(p251)


"또 묘한 것은 말이시, 그 여자가 시방 서른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될 것인디, 가까운 디서 똑똑히 봤다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시방도 영락없이 처녀 같닥 하드란께.(중략)그러고 나도 금년 봄에 그물을 보러 갔다가 옴스롱 한번 봤는데 말이시, 이 예펜네가 바위 앞에서 따뜻한 볕을 받고 앉어 있데. 껌정 치마 하나만 허리에다 두르고, 위통을 활랑 벗고 말이시. 머리를 빗고 있등만. 참으로 이상스럽단 말이시. (중략)그런디 이 여자 살결은 꼭 백새 한가지여.(중략) 그 놈의 머리는 어찌께나 길다란지, 아마 거짓말을 보태면 한 발은 되겄데.“(p253)


그리고 마을에서는 순한녜를 도리섬에서 쫓아내자고 했다고. ‘나’는 순한녜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약을 사가지고 도리섬으로 들어간다.


“뭣 하러 왔소? 죽일라면 얼릉 죽이씨요. 당신네 성은 술만 묵으면 칼로 찔러 죽일란다고 쫓아댕겼제, 당신은 내 팔자 망쳐놓기만 하고 한 번도 집에 얼씬을 안 해뿌렀제, 당신 어메 아부지는 애기 띠어뿔자고 독한 약이라고 생긴 것은 죄다 쓸어다 먹였제,(중략) 당신네 식구들은 모다 내 웬수여라우, 뭣 하러 왔소? 나 미쳤다는 소리 들은께 춤추겄습디여?(p261)


"낳아논께 낯바닥은 흰떡같이 이쁩디다마는, 병신이었어라우, 열 살이 넘도록 번듯이 눠서 일어나 앉을 줄도 모르고, 누운 채로 똥오줌 퍼싸고, 말을 할 줄도 모르고, 어메가 누군지도 모르고...“(p216~262)


"그래서 별수 없이 쥐약을 사다가 멕였지라우.“(p262)


순간,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두 다리로 내 아랫도리를 휘감아버렸다.

우리는 물속 깉이 가라앉아 들어갔다.(중략) 나는 거대한 낙지한테 휘감겨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마리의 문저리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마씨요잉... 그때는 이 섬에서 한 발도 못 걸어 나가고 죽을 것인께.”(p265)


 자신이 저지른 죄를 없앨 수가 있을까. 그것을 없애려고 여자를 죽이려고 한 밤중에 도리섬을 찾아간 사람. 자식을 죽이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어 광기에 빠진 여자. 인간의 쾌락과 도덕성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다른 책도 그렇겠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듯 한 소설적 묘사의 진수를 보고 구수한 지방 사투리 속에서 촌민들의 삶 속을 엿볼 수 있었다. 해방 전후 시대에 살았던 민중들의 삶의 궁핍함, 동족끼리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안타까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화’적 배경이 들어있는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등 배경지식을 넓힌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울적할 때 한 권의 소설 속에 빠져 보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책은 위즈덤 하우스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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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나 부인과 두더지 손님
에르네스토 페레로 지음,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그림, 김현주 옮김 / 재승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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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리나 부인은 이탈리아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고, 학창시절 도시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부인이 이곳 롬바르디아 지방 산동네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에 과부가 되면서부터였다.

퀴리나 부인의 정원에는 로즈마리와 세이지, 차이브, 바질, 토마토, 치커리밭, 호박이 주렁주렁 열린 밭도 있었다. 잔디밭에는 커다란 수국, 모란, 백일초 한 다발이 앤티크 장미들과 거의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며 펼쳐져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조화로웠다. 이 세상의 모든 가정과 단체에서 본받아야 할 만한 완벽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대문만 닫으면 혼란한 세상과 차단되는 공간. 정기 구독한 신문으로 매일 일어나는 재해와 폭력, 불행한 사건을 담고 있는 세상을 알 수 있었다.


잔디밭 한가운데에는 안네타 대고모님이 심은 최소한 백 년이 넘는 늙은 배나무가 있었다. 배들은 해마다 열매를 맺었고 근처 수녀들이 주워다가 잼을 만들어 구호소 수용자들에 제공하곤 했다. 이렇게 부인은 정원을 가꾸고 정리하며 그 반듯한 질서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곤 했다. 부인은 외로움도 별로 느끼지 않았으며, 혼자 지낼 수 있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다. 건강상태도 최고였다. 스스로도 완벽하게 만족할 만큼. 자신은 농부들이 좋아하는 소 품종인 ‘브루나 알피나(Bruna alpina)'에 속한다며 으스댔다. 브루나 알피나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서식하던 힘 좋고 수명도 길고 젖도 많이 나오는 암소 품종이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규칙에 따라 정원을 다스리는 한 죽음 따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오직 눈부신 5월의 아침 풍경만 가득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아침, 부인의 고요한 규칙을 깨는 풍경이 있었으니.

부드럽고 푹신한 잔디 양탄자를 밟으며 걷다가 풀밭을 지나왔을 때 화가 치밀고 증오심이 끓어올라 참을 수 없어 폭발하는 듯 했다.

땅이 파헤쳐져 원뿔 모양으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퀴리나 부인의 비명은 30미터나 떨어진 식료품점까지 들렸고, 이에 위풍당당하고 친절한 안토니에타 부인이 달려왔다. 일명 ‘숭고 부인’이라고 불렸다.


퀴리나 부인의 백과사전에는

‘모든 두더지가 낮이든 밤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생기 있고 아주 활동적이다. 대부분의 두더지가 행동이 민첩하여 땅속에 굴을 파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일부 수중생활을 하는 습성이 있는 두더지들은 수영도 매우 잘한다’고.

딸인 마리아 피에라도 밤새 인터넷을 뒤져서 조사를 했다. 두더지들은 서로의 땅굴이 연결되도록 파고 악명 높은 원뿔 모양 흙더미는 땅굴 보수작업이 남았을 때 쌓아두는 것이었다. 이 흙더미로 땅굴을 깨끗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흙을 파다가 식물의 뿌리를 손상시키기도 하지만 먹지 않는다. 두더지들의 움직임이 빠른 것은 매일 자기들의 체중과 비례하는 영양분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즉 땅굴 파기는 먹이를 찾기 위한 활동이라고.

또 두더지가 외롭게 산다고 했다. 짝짓기를 하면 평균 세 마리에서 다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젖을 떼고 나면 되도록 빨리 바깥세상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새끼를 떠나보내고 혼자 살면서 자신의 영역을 맹렬하게 지킨다.

퀴리나 부인은 불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두더지가 조금 지나치게 영리하고, 모범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새끼를 망치는 어미가 절대 없다.


“글쎄요. 두더지가 부모들은 못하는 걸 하더라고요. 요즘은 부모가 항상 대기하고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소셜네트워크 같은 것에 빠져 바보가 되게 만들기도 하죠. 아이들을 방치해두면 그렇게 점점 덜 스마트해지고 있어요. 이게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죠.”(p51)

“먹이 사냥이 너무 바빠서 서로 갈등이나 싸움을 만들지도 않아요. 요즘은 이런 것을 두고 자원의 최적화라고 부르죠.”(p52)

퀴리나 부인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주고받는 것이 균형을 이룬다면 고독한 삶이 공생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일찍이 에피쿠로스도 숨어서 살라고 당부했었다. 시인들이 침입자 편에 서 있다는 것도 부인의 마음을 거슬렸다.


숭고 부인의 권유로 처음으로 통마늘로 두더지 퇴치를 시도한다.

두 번째는 땅굴 입구 근처에 병을 꽂고 그 위에 금속 막대를 올려놓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 때 부딪히는 진동으로 쫓아내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땅굴 입구에 호스를 끼워 넣고 하룻밤 동안 수도꼭지를 열어 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다. 또 야생 고양이를 동원하고, 다음엔 금속 파이프. 모두 실패.

다음은 덫이다. 딸과 사위가 덫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여 최대한 부드러운 덫을 구입 했다. 숭고 부인과 함께 덫을 설치하고 두더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미운 적을 막상 마주할 준비가 안 됐는데... 드디어 적이 나왔다. 두더지는 파헤친 흙에 앞발을 올려놓고 미동도 하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부인쪽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브루나 알피나 암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려고 지팡이를 잡았는데도 두더지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마주한 두더지의 눈에서 왜 체키나의 눈이 보이는가. 체키나는 전쟁중에 부인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굶어죽지 않게 매일 알을 하나씩 낳아 준 암탉이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너희 언니’이며 가족처럼 지냈던.

퀴리나 부인이 지팡이를 들어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잠시 풀밭에 내려놓고 다시 돌아봤을 때는 두더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모두 패배로 끝났다.

이제 두더지와의 전쟁은 그만 두고 싶었다. 자신과 두더지가 공통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친구인 아델라이데에게 고백한다. 동료처럼 지내고 있으며,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지만 매일 먹이를 챙겨줄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그 후 문득 두더지가 부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경쟁상대’였다.

“우리의 인생에는 경쟁상대가 필요해요. 그래야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해이해지지도 않죠.”

성탄절을 앞둔 퀴리나 부인의 생일에 손자들로부터 두더지 박제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 두더지의 털은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어리시절 체키나와의 추억이 물밀 듯이 밀려옴을 느낀다. 겨울이 오고 눈이 두껍게 땅을 덮었는데, 퀴리나 부인은 전혀 흔적이 없는 땅 속의 두더지가 걱정이 된다. 딸과의 통화도 화제거리가 없어서 짤막하게 끝났다. 다시 여름이 오고 화려하게 핀 수국 아래 신선한 흙더미를 발견한다.


“돌아왔어!”

두더지의 흔적에 퀴리나 부인은 마냥 생기가 돌았다. 경쟁상대가 돌아온 것이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경쟁상대 말이다. 우리와 공존하는 삶의 동반자인 것이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밭고랑에 죽어 있는 두더지를 본 적이 있다. 무서웠었다. 몸집은 뭉뚝하고 통통하며 발바닥이 분홍색이었던. 날렵하지도 않은 그 몸으로 어떻게 땅을 파고 다닐까 궁금했었다. 그 후 두더지는 볼 수 없었다. 땅 속의 광부 두더지는 아직도 어디선가 밭을 갈고 있을까. 세상의 만물은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겠지.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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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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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은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대히트를 친 <이니미니>시리즈의 연속작품이다. 범죄 추리스릴러 소설은 미스테리한 사건의 연속과 반전이 있어 속도감 있게 읽혀지는 것이 그 묘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탁월하여 금세 몰입하게 된다.


 

 인형이나 인형의 집은 본래 어린 아이들이 즐겨하는 놀이도구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섬뜩한 연쇄살인범이 그들보다 나약한 여성들을 꼼짝 못하게 가두고 생명을 앗아가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물리적으로 대항하거나 저항하기 힘든 여성, 어린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헬렌 그레이스는 여자 경찰로서 불우하고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건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 경찰관은 보통은 남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거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도 흥미롭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하나하나 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에서 멋지고 아름다움을 느꼈다. 반면에 위험한 상황에 처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초월하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느껴졌다. 또 그 내부에서도 남을 밟고 출세하려는 비열한 야심을 품은 세리 하우드 총경같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악의 끝은 좋지 않다. 결국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게 되고 그동안 쌓아올린 명예도 모두 실추되고 마는 것이다.

 

 

 짧은 호흡으로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사건을 연속으로 배열한 구성법은 추리게임을 하듯 두뇌회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읽기의 묘미을 더해 준다.

루비의 감금과 피파 브리어스의 사체 발견으로 시작되는 사건의 전개, 범죄를 숨기려고 피해자의 휴대폰으로 트윗을 올리며 교묘히 경찰의 눈을 피해 따돌리지만, 결국 범인은 약물중독자인 엄마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 자란 벤 프레이저로 밝혀진다. 급박해진 범인은 불을 질러 루비를 죽이려고 시도한다. 한편 헬렌은 그녀를 구하러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과 대치하는 장면에선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아, 헬렌이 죽으면 안되는데. 어쨌든 루비와 헬렌이 살아남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항상 엄청나고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성장과정은 불우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자라 온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나 자녀의 학대, 살인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성장과정의 결핍이 어떤 사람에는 성공의 밑거름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범죄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좀 더 나은 세계, 조화로운 삶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볼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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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만에 끝내는 돈 공부
조진환 지음 / 원앤원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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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투자해서 쉽게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나처럼 따라 하면 쉽게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p6)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책, 돈 관리와 금융을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소비 습관의 변화를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책, 간소하게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책.’(p7) 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울러 투자의 성공 사례보다는 투자는 삶의 일부이며 투자를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지은이의 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본격적인 돈 공부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왜 돈 관리에 무기력하고 불안감을 느끼는지 묻는다. 첫 번째는 ‘빚’ 두 번째는 ‘목돈 지출’ 세 번째는 ‘예상치 못한 지출’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정말이지 요즘처럼 힘든 상황에서는 빚만 없어도 부자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부자가 되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은 열심히 일해 번 돈 중에서 일부를 먼저 저축하고 남는 돈으로 지출하며 사는 것이다.(p21) 부자가 되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하고 쉽다. 그것을 실천할 수 없을 뿐.


2014년 OECD는 향후 50년간 대한민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6%일 것이라고 발표(p26)했다고 한다.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물건․ 인간관계․ 일 등 삶의 간소화는 이제 꼭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사실 집안에는 몇 년째 사용하지 않으면서 방치된 물건이나 의류 등 잡동사니가 얼마나 산적해 있는가. 버리려고 했다가 아까운 마음에 못 버리고 다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꽤 많을 것이다. 저자는 소비심리의 예도 들어 설명한다. 흔히 우리가 자주 접하는 마트의 원플러스원 행사이다. 이것은 꼭 사지 않아도 되는데 왠지 안사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을 손실회피심리라고 한다.


부자는 싸다고 마구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하고 구입한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에 항상 등장하는 말이다. 또 자신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물건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일에 열중하지 않는다. 현명한 소비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을 이해하고 통제(p35)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생활과 비교하거나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겉모습보다는 내면을 가치 있게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인생은 어디에 돈을 쓰면 내가 더 행복한가를 찾는 여정이다.’(p35)


고정지출을 줄여라.- 적정한 비율은 소득의 35% 내외다. 저축의 비율은 소득의 20% 이상 유지하는 것이 부자가 되는 첫걸음이다.(p79)

한 달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정경제의 기본 개념이라면 ‘소득=고정지출+변동지출+저축’이 될 것이다.(p65) 변동비는 일반적으로 식비를 필두로 경조사비 등을 포함한 모든 생활비에 해당하며, 범위 내에서 소비하는 훈련과 반복이 중요하다고 한다. 정해진 규칙을 만들어 놓고 습관을 들이면 소비생활이 체계가 잡혀갈 것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발견한 독창적인 방법인 돈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것은 통장 만들기인데, 위에서 말한 고정지출과 변동지출 등을 관리하는 통장이다. ① 저수지통장(연간지출) ② 급여통장(고정지출+저축) ③ 소비통장(변동지출) 이렇게 3개의 통장으로 돈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면 된다고 한다.


이 외에도 세금을 절약하는 방법 코너에서는 연말정산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준다. 또 주식의 간접투자와 직접투자, 좋은 펀드에 가입하는 방법이나 어려운 펀드용어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 중 제일 많이 치중한 부동산에 대한 코너에서는 주택청약저축과 주택담보대출 등에 대한 대출금상환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보험회사에 속지 않고 좋은 보험에 가입하는 법, 금융회사에 속지 않고 행복한 노년을 준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기초연금, 노령연금에 대한 것까지 우리의 실생활에 꼭 알아야 할 항목이다.

참으로 알 찬 구성이다. 돈 공부는 우리가 태어나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숙한 대상임에도 아직까지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입시 공부나 취업을 위한 공부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직장을 잡는 것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아직 우리의 교육 현실은 돈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동기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고 체계적인 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자유란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미래의 경제적 위험에 대비하고

                                  돈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후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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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 사람을 따르는가 -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따르는 리더의 조건
나가마쓰 시게히사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3.0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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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필요한 건 권력이 아니라 매력이다!”


 이 말이 그토록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리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마도 부드러운 이미지보다는 권력을 이용하여 온갖 비리에 가담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는 등 권위적인 면모에 실망했던 경우가 고정관념으로 자리한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자기계발이나 경영 분야에서 리더에 관한 책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그만큼 리더에 관한 자질이나 덕목은 성공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하는 권력보다는 저절로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은 이제 성공하는 리더의 필수조건이다.


 저자는 타코야키 노점상으로 시작하여 하루 평균 매출 25만 엔을 달성하며 언론에서 대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일반 회사나 조직에서는 사람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가마쓰 시게하사는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인재를 키운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훌륭한 상부상조인가. 나도 잘 되고 너도 잘 되는, 서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는 현재 인재육성 JAPAN대표로 인력 컨설팅, 외식업, 출판 등 다방면의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그야말로 성공한 CEO라고 할 수 있다. 그도 처음엔 항상 인상 쓰는 팀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항상 활기찬 옆 팀의 입사동기인 팀장을 보면서


“왜 늘 저 친구에게만 사람이 따르는 걸까.”

“대체 어떻게 해야 부하 직원이 나를 따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리더가 책을 읽고 공부하며, 배운 것을 실천 하면서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모습은 알게 모르게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준다. 지시하지 않고 행동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보여주는 것이다.(p32)


 먼저 미소를 보이고,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볼 때 닮고 싶어하는 구석이 있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매력이 있으면 저절로 모여든다. 리더라는 위치를 대단한 권력이라 생각하며 남을 못 미더워 하며 자신이 모든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성공의 길에서 멀어진다.


 우리가 잘 아는 천재라는 단어는 단순히 굉장한 재능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늘이 남을 도우라고 준 재능이라는 뜻이다. 잘난 척이나 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p74)


 흔히 많은 리더들이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성공시켜 영웅이 되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찾는 것보다는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일’이나 ‘필요하지만 없는 것’을 찾아내어 발전시키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한다.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가장 먼저 소중히 하는 방식은 가장 느려 보이지만 가장 빠른 성장법이다.(p190)


 진정한 리더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현재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 앞으로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다. 하지만 누구나 읽어도 좋다. 주부나 학생처럼 조직사회의 일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리더인 것처럼 살아가는가. 자신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 볼 일이다.



             *이 책은 다산북스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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