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6월 우연히 TV 화면을 바라보다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쏙 빠져들었다. 글쎄 프로그램 이름이 <지킬박사와 가이드>였다. 문학작품 제목을 패러디한 것도 웃겼고 호기심이 생겼다. 미술을 아주 좋아한다는 의사인 출연자가 명화를 소개하며 호르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결국은 장의 면역력이 뇌 건강과 연결되어있다는 건강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은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고, 뭉크의 <절규>는 도파민, 그리고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은 멜라토닌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바라보면 실제로 해당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얘기였다. 어라, 진짜일까!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의사라서 명화에서 각종 호르몬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그림을 보는 관점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꽤 신선했다. 그렇다면 좋은 그림을 많이 감상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자주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이 나온다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기대감 작렬하며 설렌 것은 물론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바라보기만 해도 잠을 부르는 듯한 이 그림을 그린 프레더릭 레이턴은 정작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에피소드까지 알게 되었다. 저 여인처럼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을 자보고 싶은 화가 자신의 소망을 담았던 것일까. 그림이든 글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과 희망을 담아내는 도구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이라고 돼 있어서 온전히 프레더릭 레이턴의 그림만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흐부터 시작해서 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나와서 너무 행복했다. 이 책을 만난 계기가 너무 우연이고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서두가 길었다.

 




 우선 이 책을 읽고 소장하게 된 기쁨부터 언급하려고 한다. 다른 미술 관련 책보다 의외로 사이즈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속지는 두툼하고 고급의 용지에 선명하게 인쇄된 그림은 그 자체를 보기만 해도 황홀할 정도다. 그리고 글은 적당히 짧고 여유로운 여백이 있어서 읽기에 너무 좋았다. 마치 그림의 힘이라는 테마를 잘 반영하여 독자들을 편안하게 하려고 디자인에도 배려한 듯 느껴졌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미술책과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의 강의를 듣는 듯한 해설을 따라가며, 그림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꼈다. 이제 그림을 감상하는 참맛을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자주 이 책을 끼고 살게 될 것 같다.

 




 저자 김선현은 미술치료 불모지인 국내에서 미술치료계 최고 권위자이자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동일본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네팔지진, 세월호 사고 등 수많은 사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20년 넘게 피해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에는 그림 처방전』『중심』『너에게 행복을 선물할게등 다수 있으며 이 책에 실린 그림은 미술치료 현장에서 가장 효과 있었던 세기의 명화 89점을 싣고 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가장 향상시키고 싶은 다섯 가지 영역-‘-사람 관계-부와 재물-시간관리-나 자신’-을 주제로 명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림 치유를 하면서 만난 내담자와의 생생한 에피소드도 좋았다.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치유 받았지만 한 장의 그림을 보면서도 불안, 걱정, 고통을 치유받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뷰는 나의 마음과 시선이 더 쏠렸던 명화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써 보려고 한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


 


몇 해 전에 이웃 블로거의 리뷰에서 이 그림을 본 적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그림을 모를 때여서 그다지 멋진 그림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그림은 하던 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있는,

한 박자 멈춰 선 느낌을 전해줍니다.(P27)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책도 읽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집안일은 쌓여간다. 그렇다고 한번 집안일을 붙잡으면 중요시 여기며 늘 하고 있는 일에 지장이 생기니 오래 붙잡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언제 그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있잖아. 멍때리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생각했던 나. 그러면서 휴대폰은 너무 자주 들여다보는 건 아냐.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




 존 밀레이/눈먼 소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 말이 있듯,

일에 너무 매몰되면 눈먼상태가 되어

주변을 살피지 못하기 십상입니다.(P31)



 

 나는 무엇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다른 걸 잊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엄마께 안부전화 하는 걸 한동안 깜빡해서 혼난 적도 있다. 그후로는 자주 전화를 드린다. 전부터 이런저런 공부를 하느라고 스트레스를 좀 받았던 것 같다. 예전에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도 미련스럽게 하루 10시간 이상을 하느라고 힘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 공부도 일도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잠식당한다. 그때 내가 그림의 힘에 대해 알고 자주 그림을 감상하며 공부했더라면 눈도 즐겁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보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책을 만나는 것이나 무언가를 만나게 되는 계기는 모두 때가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노랗고 붉은 난색 계열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선사한다고 한다. 자주 들여다보아야겠다.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3년째 접어든 코로나는 완만해진 듯하더니 다시 확산세로 재유행이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날씨도 덥고 정말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잘 간다. 하루하루 규칙적인 루틴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자주 그림을 들여다보고 휴식같은 음악을 잠깐씩이라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저자는 그림을 보면서 편안한 음악을 들으면 효과가 더 좋은데, 슈베르트의 즉흥곡 2번 내림 A장조를 추천하고 있다. 리뷰를 쓰는 내내 들었는데 역시나 마음이 편안했다.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비밀





 빈센트 반 고흐/ 수확하는 농부

 



 평생을 고독과 가난과 함께 싸워야 했던 고흐의 열정은 그림에 쓰인 색깔로도 충분히 전해져 온다. 잘 익은 곡식은 노랑색이다. 노랑은 편안함과 희망을 전해준다고 한다. 굶어죽을지언정 모델을 사서 그림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수하는 걸 택하겠다던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을까.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기를, 그때가 결국 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 그림을 자주 바라보며 고흐가 가슴속에 품었을 희망을 떠올려야겠다.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을 때





 프레더릭 레이턴/타오르는 6

 




 보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나는 평생 거의 낮잠이라는 걸 모른다. 그에 비하면 남편은 머리만 닿았다 하면 언제든 어느 때든 잘 잔다. 부러운 일이다. 낮잠 좀 자야겠다, 마음먹고 누우면 잠이 오히려 달아난다. 잠이 안 오더라도 누워서 잠깐씩 휴식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저렇게 예쁜 드레스는 못 입을망정.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나의 문제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미술치료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거든요.(P235)

 



 이 그림은 아주 눈에 익은 그림이다. 그림 설명을 읽다가 작년에 읽었던 설기문 박사의 내 마음의 거리두기가 떠올랐다. 불안, 걱정,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 자기객관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3자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 공중에 떠 있는 드론을 상상하며 감정에서 나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자기객관화의 의미를 절묘하게 담아낸 그림이구나 감탄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화가는 자기객관화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이 그림을 그린 것일까. 또 여기에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저자가 그림을 보고 건져낸 자기만의 심리학적 해석일까. 아무튼 너무도 절묘해서 이해되지 않던 어려운 문제가 딱 풀린 기분이다. 전에 이 그림을 다른 미술책에서 보았을 때는 전혀 이런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그림이라는 걸 몰랐다. 이제야 그림이 시원하게 이해되고 재밌어진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니. 미루기만 했던 이 작품을 만날 때가 된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





클로드 모네/우리 집 뜰의 카미유와 아이

 



 화사한 꽃이 피어있는 정원 앞에서 아이는 놀이에 빠져있고 엄마는 바느질 삼매경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일깨워주는 그림이다. 우리 아이들도 저 아이 만할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후딱 지나갔는지 아련할 때가 있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지금을 즐겁게 살아가세요, 하고 그림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화가의 작품과 유파를 암기하고 시험을 보던 학창시절 미술 시간은 정말 재미없었다. 토막난 크레파스며 말라붙은 그림물감으로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많은 그림책을 접하고 조금씩 그림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내가 그림을 마주한 방식은 알아두어야 할 교양이나 미술관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면 이번에 그림의 힘은 그림을 감상하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내가 책으로 힘들 때마다 위로받은 것처럼 한 점의 그림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림의 주인공과 대화하며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바로 그림이 가진 치유의 힘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는 고급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그림이 좋으면 그걸로 됐다. 어떤 그림에 힘을 얻었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했던 그림이다. 그림으로 일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큰 소득이다.

-(채널예스-저자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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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15 2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7p그림은 멀리 광장을 걸어가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뒷모습, 멜랑꼴리로 새겨졌어요
제게는... ^^

모나리자 2022-07-18 14:36   좋아요 1 | URL
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이니까요.
그것이 그림의 힘이고 매력인 것 같아요.
새 한주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그레이스님.^^

새파랑 2022-07-15 2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밀 졸라의 <꿈>의 표지가 ‘타오르는 6월‘ 이었군요~!! 완전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ㅋ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저 그림은 책 표지로 자주 본건데, 산이 아니라 바다였군요 😅 요책 탐나네요~!!

모나리자 2022-07-18 14:37   좋아요 1 | URL
어머~ 진짜네요~~ㅎ
정말 그림이 너무 예뻐요.
네, 치유의 힘을 가진 그림과 짤막한 해설이 너무 좋았어요.
새 한주도 화이팅 하세요~새파랑님.^^

scott 2022-07-22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미술 관련 서적은 도판이 중요 한 것 같습니다!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비밀

여름 철에는 시원하 에어콘만이 ㅎㅎㅎ

모나리자님 주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모나리자 2022-07-26 10:11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이전에 읽었던 재질이나 그림의 화질이 월등히 뛰어나서
아주 보기도 편했고 힐링의 느낌을 듬뿍 받았어요.

감사해요~스콧님~
장마 끝 무더위라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쭉 화이팅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