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낀 이야기 스페이드의 여왕 - 뿌쉬낀 명작 단편선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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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킨의 작품 대위의 딸, 예브게니 오네긴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아직 접하지 못했던 단편 소설도 정말 기대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뭐랄까, 독자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었다 놓았다 하는 특유의 베짱이 느껴졌다. 최초의 운문소설이라는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넉살 좋은 장난기나 재치가 느껴졌는데 이 책의 단편들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제정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을 살아온 작가답게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주인공에는 군인이라는 공통점이 많았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벨낀 이야기><스페이드의 여왕> 이야기로 되어있다.

 


 

발행인의 말은 빼뜨로비치 벨낀이 수집하고 다듬은 이야기를 발행인의 손을 거쳐 전달하는 형식을 갖춘 에필로그 격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푸쉬킨 자신이 지은 이야기면서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 그뿐만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소설의 형식과 결말이 달라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이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러시아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는 결투가 아닌가 한다. <남겨둔 한 발>은 과거에 신기에 가까운 사격 솜씨를 가진 실비오에게 동경을 품고 있던 화자가 결투에 대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화자는 작은 마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 무리 속에는 35세의 퇴역 군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실비오다. 어느 날, 실비오의 집에서 여럿이 모여 카드놀이를 했는데 모르는 장교 한 사람이 실비오에게 무례하게 군다. 청동 촛대를 실비오에게 던진다. 함께 있던 군인들은 경악을 하고 그 사람이 다음날 살아있을 것인가, 궁금했는데 사흘이 지나도 그자가 살아있다. 조금씩 잊혀졌지만 화자인 는 그에게 실망을 한다. 몇 번인가 변명하려는 눈치를 챘지만 듣지 않으려고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비오는 오늘 밤 갑작스레 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며 모두 모여 저녁을 먹자고 한다. 저녁을 먹고 각자 흩어지는데 를 부르더니 궁금했던 결투 이야기와 과거의 결투 사건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낭만적인 결투의 결말을 기대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남겨진 한 발로 결투의 상대인 백작을 쏠 수도 있었는데 실비오는 그러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태연자약하게 체리 열매 씨앗을 내뱉는 백작의 태도에 큰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결투가 당시 불법이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현실을 직시한 걸까. 아니면 죽음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를 놀란 것일까.

 

 

 

다음 이야기 <눈보라><남겨진 한 발>과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네나라도보 마을의 자기 영지에 가브릴라 가브릴로비치 P아무개라는 지주에게 열일곱 살의 딸 마리야 가브릴로브나가 있었다. 손님을 환대하고 친절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예쁜 그의 딸을 보려고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였다. 마리야는 프랑스 소설을 들으며 자랐기에 사랑에 빠져있었는데, 상대는 가난한 육군 소위보 블라지미르였다. 눈치를 챈 그녀의 부모가 만나지 말라고 반대를 했지만 매일 단둘이 만났다. 서로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부모님의 뜻을 무시하자고 합의하는데, 마리야는 망설였지만 결국 함께 도주하기로 결심한다. 극심한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블라지미르는 결국 마리야를 만나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리야 집으로 찾아갔으나 자기가 보낸 말과 마부는 없었다. 평소에도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그녀의 부모는 헛소리를 하는 마리야를 위해 둘이 결혼시키려고 했으나 이것도 어긋날 운명인지 블라지미르는 불행한 인간은 잊어달라, 남은 희망은 죽음뿐이다라는 편지를 적어보내고 군에 입대를 한다. 그런데 젊은 날 치기어린 군인이 장난삼아 교회 결혼식자리에 섰던 부르민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토록 마리야를 사랑했던 블라지미르는 아무것도 아닌 인물이 된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결말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있다. 마치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게 바로 푸쉬킨의 작품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장의사>는 아드리안 쁘로호로프는 장의사 일을 하면서 두 딸과 하녀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제화공이며 이름은 고틀리프 슐츠라고 하는 이웃 사람이 아드리안에게 인사를 하러 와서 내일은 은혼식이라 영감님과 따님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건배를 제안하며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누군가 망자들을 위해 한잔 해야지, 하는 말을 듣고 모욕을 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죽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낼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하는데...

 



아드리안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이 묻어준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관을 속이지 않았느냐 따지기도 하고 뼈만 앙상한 팔을 벌려 아드리안을 끌어안으려 한다. 망자들 사이에서 시달리던 아드리안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다행인 것은 꿈이었다는 것. 하녀가 얘기해 주는 말에 의하면 독일인 집에서 종일 술을 마시고 취해서 계속 지금까지 잤다는 말에 안도를 한다. 음울하고 말수가 없는 아드리안이 자신의 직업을 비하하는 말에 자격지심을 갖기도 했지만, 망자를 대하는 일을 하면서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래도 공포스런 꿈속을 벗어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하며 소박한 행복을 되찾아 간다.

 



<역참지기>는 당시 러시아 공무원 체계 중 가장 하급 직위 공무원인 역참지기의 신분과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열네 살 짜리 딸 두냐를 경기병에게 빼앗기고 딸의 소식도 모른 채 죽어간 안타까운 이야기다. 참 경기병도 사악한 인간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예쁜 딸을 꼬드겨(?)-두냐를 따라가게 한 건 아버지다. 그로 인해 평생 자책한다. 보통 소설에서라면 딸을 준 아버지를 은인으로 모셔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좀 무례하게 말하지만 두냐를 버리진 않을 것이고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역참지기인 아버지는 그를 따라가도록 한 결과 비참해질 거라는 자책으로 자신의 죽음을 자초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감상주의 문학의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시대상을 구현하려 했던 것일까.

 



다섯 편의 이야기 중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는 가장 재미있고 귀여움과 재치가 느껴지는 이야기라 하겠다. 두 귀족의 이웃이 서로의 영지를 경영하는 방식이 탐탁치 않아서 앙숙이 되었는데 각각의 아들과 딸이 사랑하게 되면서 깊은 우정의 관계로 발전한 이야기다. 읽을 독자를 위해 이 정도로만 언급하려 한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눈치 챈 것처럼 카드게임에 관한 이야기다. 푸쉬킨이 두 번째로 볼지노에 머물렀던 1833년 가을에 써서 다음해인 1834년에 출간한 이 작품은 영화나 오페라로 상연되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물려준 돈으로 극도의 절약 생활을 하던 주인공 게르만이 카드게임 판을 구경하다가 일확천금을 보장한다는 카드 석 장의 비밀에 대한 일화를 듣게 된다. 백작부인의 침실에 몰래 잠입하여 그 비밀을 알려달라고 추궁하는 바람에 놀란 부인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그런데 그의 욕망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았을까. 백작부인 유령이 나타나 카드게임을 할 때 ‘3, 7, 에이스를 하루에 하나씩만 사용해서 게임을 하고 거액을 걸면 큰돈을 거머쥔다, 그대신 그 이후에는 도박은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조건도 말해준다. 하지만 두 번을 성공하고 세 번째에는 에이스가 아니라 스페이드 여왕을 내는 바람에 모은 돈 전부를 잃게 되고 미쳐서 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오래전에 쓴 소설임에도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을 잘 묘사해 놓은 듯 소름 돋지 않는가. 멋지게 한탕 해서 낭만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당신은 제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분입니다. 제게 돈을쓰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카드 석 장을 차례대로 맞춰 뽑을 수 있다는 건 압니다.”

(중략)

그건 농담이었어.”(P211)




지금까지도 많은 러시아 작가들에게 영감을 끼치고 있는 천재 시인이며 대문호인 푸쉬킨의 단편작품을 만나게 되어 유쾌하고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다. 역시 명작에는 우리의 삶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푸쉬킨의 작가적 역량과 재치를 이 단편 걸작선에서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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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1 1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푸쉬킨의 작품은 거의 다 읽으셨군요 ㅋ 전 아직 <예브게니 오네긴>을 못읽었어요 😅 저도 <벨킨이야기> 너무 좋더라구요. 역시 러시아는 결투죠 ^^

모나리자 2022-04-01 15:17   좋아요 3 | URL
아직 못 읽은 작품도 많아요.ㅎ
맞아요. 푸쉬킨의 단편은 처음 읽었는데 위트가 느껴지고 정말 재미있었어요.
푸쉬킨도 결투 때문에 세상을 떠났고 아무런 장례의식도 없이 묻혔다니
정말 안타까워요.
감사합니다~4월도 화이팅 하세요~새파랑님.^^

미미 2022-04-01 1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기 ‘스페이드의 여왕‘ 빼고는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었고 <예브게니 오네긴>은 오디오북으로 듣다 말았는데 마저 들어야겠네요ㅎㅎ러시아 문학은 우리 정서와도 잘 맞는것 같아요. 모나리자님 4월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독서 함께해요~^^♡

모나리자 2022-04-01 15:20   좋아요 3 | URL
네.. 마저 얼른 들으세요.ㅎㅎ 미미님.^^
저도 20대 때는 러시아 문학 좋아해서 꽤 읽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네요.
투르게네프의 작품을 좋아했었는데..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ㅎㅎ
<첫사랑>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미미님의 4월도 활기차고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그레이스 2022-04-01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록된 단편들을 다 설명해주셨네요!
화자는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었습니다^^

모나리자 2022-04-01 22:0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그레이스님~
역시 러시아 소설 오랜만에 읽으니 좋았어요.
4월에도 화이팅 하세요~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