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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되고 싶어 - 읽고 옮기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윤정 지음 / 동글디자인 / 2021년 9월
평점 :
먼저 책 제목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왜 아니겠는가. 외국어 공부가 좋아서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 또한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번역가에 관심이 생겼고, 내 생의 마지막 직업은 번역가로 마무리 하고 싶다(될지는 모르겠지만), 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라 이 책이 눈에 쏙 들어왔다. 파란색 상큼한 표지디자인에서 3년 차 번역가의 풋풋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옮긴 책으로 『스타트업 브랜딩의 기술』,『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등 여러 권 있다. 이 중 데뷔작이었던 『스타트업 브랜딩의 기술』은 독자들의 평가도 좋았고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역서로 꼽고 있다 한다.
총 10개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저자가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시간 관리, 번역료 수입, 앞으로 번역가의 전망까지 자세하고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샘플 번역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번역가가 되는가 싶어 신기했다. 번역가에 대한 관심으로 맨 처음 읽은 책은 김고명 번역가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였고, 그후로 김남희 번역가의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이상원 번역가의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를 차례로 읽었다. 번역으로 10년 이상 30년까지 커리어를 쌓은 번역가들의 책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안정적이라는 봉급생활자에 비해 약간 불안한 수입, 일에 밀려 여행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고충도 있었고, 힘들게 번역하고 번역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이상원 번역가는 번역이란 ‘골 빠지는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어서, 혼자 공부하며 낯선 단어와 부딪힐 때마다 위축되었던 나를 웃게 했고 위로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공통점은 번역이라는 일을 정말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리뷰는 내가 평소에 가장 궁금했던 내용을 언급하며 쓰려고 한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번역공부를 하고 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답답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원문을 어떻게 옮겨야 하느냐 하는 의역과 직역의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샘플 번역을 하면서 여러 번 탈락했던 사례를 들면서 깨달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 문장 안에서도 단어를 열거하거나 도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문장 순서 그대로 번역을 하면 왠지 정돈되지 않은 문장을 읽는 것처럼 숨이 찰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글만 읽었을 때도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으로 본다는 사실’(P77)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번역된 글이 깔끔하고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가를 따져보라고 했다. 번역자의 눈이 아닌 편집자의 눈, 혹은 독자의 눈이 되어 글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로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거기에 번역가라는 직업은 빠지지 않는 단골이었다. 인터넷상에서도 각종 언어의 번역기를 돌리면 어렵지 않게 위키피디아 정보를 알 수 있을 정도이고, 그밖에도 AI 기술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번역계에서도 2017년 2월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가 ‘인간 대 AI의 번역 대결’을 주최했는데, 결과는 24.5대 10으로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번역 공부를 하면서 해석이 난해한 문장을 번역기를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엉뚱한 내용으로 해석된 것을 보고 AI가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구나, 안도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번역가의 전망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고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반부 이야기는 번역가의 일상과 고충과 수입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육아와 병행하면서 번역일을 한다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참 손이 가는 어린 두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 일을 시작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번역가들의 일상이 잘 알려졌듯이 번역일이란 혼자서 외로이 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도 종종 정체감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위안을 받았을까. 번역가들의 책을 사서 읽고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한다. 나 또한 공부를 하면서 이런 방법으로 힘을 얻고 있기에 반가웠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에 가장 먼저 눈과 귀가 쏠리기 마련일 것이다. 외화 번역으로 유명하다는 황석희 번역가의 일화에 빵 터졌다. 지하철에서 “이 번 역 은”이라고 써있는 전광판만 봐도 움찔한다는.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이라고 해야 할까.
맨 마지막 장의 ‘질문과 답변’에서는 번역가에 대해 궁금할 법한 질문과 답변을 싣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얻은 소득 중 한 가지는 적어도 번역가가 AI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한 직업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또 한가지는 번역가라는 직업이 역시 내 체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끈기와 집념, 늘 새로운 내용을 읽고 이해하려면 일단 공부하는 걸 좋아해야 하는데, 내가 딱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번역가들의 화려한 스펙에 비하면 나는 거의 독학으로 공부한 실력으로 번역가를 꿈꾸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작가가 인용한 김남주 번역가와 김희정 번역가의 얘기를 되새기며 계속 꿈꾸기로 했다.
“그럼 번역료, 인세 얘기가 나올 것이고 이 돈을 받고 행복하겠다 싶으면 번역을 하세요. 나를 행복하게 한 번역으로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후략)”(P158)
‘번역에 손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번역이 번역가를 놓는 일은 없다’(P180)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 우선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고 번역가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오랜 경력을 쌓은 베테랑 번역가의 이야기도 좋지만, 새내기 번역가의 따끈따끈한 이야기도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한다. 번역하고 싶은 책을 찾아 검토/기획서를 쓰는 팁은 물론 다른 책에서 두루뭉술하게 알려주는 돈 얘기도 속시원하게 풀어 놓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얘기하는 부분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번역은 ‘살아보는 거’라고 했던 말도 여운이 남는다. 번역이란 사고방식 자체를 변환하여 저자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온전히 지닌 채로 옮겨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고, 번역이 끝나면 저자의 세계에서 살다 나온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나도 부지런히 읽으며 원저자의 세계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