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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살인자 ㅣ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
헨닝 만켈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1년 7월
평점 :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Henning Mankell 1948~2015)의 소설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 헤닝 만켈의 소설을 처음 읽고 북유럽 추리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좋은책만들기' 출판사에서 권혁준 번역으로 나온 책들을 읽으며 순서는 신경 안 썼는데, 이 유명한 시리즈의 첫 작품이 2021년 작년에 처음으로 번역된 걸 알고 많이 놀랐다. 두 번째 작품인 <리가의 개들>도 2022년 올해 처음 번역되었는데, 발란데르 팬으로서 참 반가운 일이다.
이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주인공 쿠르트 발란데르라는 캐릭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42살 중년의 발란데르, 아내 모나는 3개월 전 떠나고 딸 린다마저 자기 인생을 찾아 떠난 상태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는 치매 증상을 보인다. 외로움과 과중한 경찰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건강은 나날이 안 좋아져 몸무게가 7키로그램이나 불어난 상태이다.
내 기억 속의 발란데르는 당뇨로 건강이 안 좋았고 이혼한 전처의 재혼 소식과 아버지의 죽음, 동료 경찰이 살해 당하는 등 늘 힘들었는데, 아! 1편 첫 출발부터 이렇게 외롭고 힘든 발란데르라니...마음이 짠했다.
1990년 1월 7일 이른 아침 발란데르에게 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스웨덴 스코네 주 한 작은 농가에서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 피해자는 노부부로 남자는 잔인한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여자는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 죽어가고 있었다. 보고서에 적힌 '피해자는 네다섯 번 죽고도 남을 폭력에 희생되었다'(p.38)라는 의사의 메모가 말해주듯이 이런 시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p.25)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발란데르는 사건의 야만성과 잔인함에 충격을 받는다. 점점 잔혹해지는 세상에서 자신이 경찰로서 적합한지 의심한다.
[아마 지금 시대에는 다른 성격의 경찰이 요구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월 이른 아침 스웨덴 시골의 인간 도살장으로 출동해야 하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을 경찰. 불확실성과 고뇌로 고통받지 않을 경찰. (p.29)]
오랜만에 만난 발란데르는 나에게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많은 연민을 느끼게 했다. 그는 약점이 많은 인간이다. 떠난 아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젊고 매력적인 유부녀 여검사에게 술 취해 접근하다 따귀를 맞고, 웨이트리스를 보며 함께 호텔 방에 들어가는 상상도 한다. 치매 증상이 있는 아버지와는 잘 지내지 못하고 딸인 린다는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술 마시고 운전을 하다 동료 경찰에게 걸려 경찰복을 벗을 뻔하고, 사건은 사건대로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란데르를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날 과음과 불면증으로 피곤한 상태에도 진한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셔가며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보이면 찾아가 조사하고 질문한다. 90년대라 스마트폰은 커녕 지금은 어딜 가나 있는 cctv도 흔하지 않아 범인이 변장을 안하고 다녀도 찾을 길이 없다. 발란데르를 비롯한 경찰들은 여기저기 발로 뛰어다니는 수밖엔 없고 이런 과정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노고가 더욱 인상 깊게 다가온다.
사건을 다 해결하고 자신이 너무 많은 실수를 했다고 말하는 발란데르에게 선배 경찰인 뤼드베리는 "끊임없이 실수를 해도, 자넨 결코 포기한 적이 없어." (p.364) 라고 말한다. 맞다. 발란데르는 아무리 만신창이가 되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가 조금은 덜 외롭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발란데르 시리즈 2편 <리가의 개들>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한다.
앞으로 '피니스아프리카에'에서 순서대로 계속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