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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평점 :
"나는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만의 시적인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어디선가 살해되고 박해당할지라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 잔혹한 괴물과 맞서 싸우고 싶었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영화 「일 포스티노」로 유명한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armeta 1940~)가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오마주이자 칠레의 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네루다와 가상의 인물인 우편 배달부 마리오 사이의 우정을 담은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작가가 베를린 망명지에서 쓴 작품으로 1985년에 발표되었다.
시와 거리가 먼 한 젊은이가 칠레의 위대한 시인 네루다를 만나면서 시를 알게 되고 사랑에 눈 뜨면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특히 스카르메타의 유머와 해학이 번뜩이는 대사는 이 소설의 최고 재미인데, 다음은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인 로사 부인이 딸에게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이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p.67)]
'발톱의 때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우체부 마리오가 화려한 메타포로 딸인 베아트리스를 유혹하자 딸을 마리오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로사 부인이 쏟아내는 말인데, 나는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푸하하 웃음이 나왔다. 네루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사 부인의 특기는 '속담 포병대를 이끌고 메타포 전쟁에 임하'(p.94)는 것으로 그녀의 걸쭉한 말솜씨는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재미를 선사한다.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검은 섬)를 배경으로 소설은 시인 네루다와 우편 배달부 마리오의 우정, 마리오와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의 사랑과 결혼, 칠레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소박한 민중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낯 뜨거운 성애 묘사마저도 순수함이 느껴지는 정겨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