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쓴 수기 창비세계문학 10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근식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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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쓴 수기>는 도스토예프스키 후기 걸작 장편들이 담고 있는 사상의 모태가 되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1863년 체르니셰프스키가 쓴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가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과학적, 합리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가가 자신의 정치적인 사상을 담은 소설이다. 근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낙관적인 유토피아 소설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그에 대한 반박으로 1864년 <지하에서 쓴 수기>를 잡지에 연재하고 1865년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지하에서 쓴 수기>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인공 '나'의 생각, 특히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던 합리적, 과학적 사상을 비판하며 자신이 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지 독백 형식의 글로 보여주고 2부는 젊은 시절 자신이 경험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일인칭 소설 형식으로 보여준다. 


1부, 첫 시작부터 흥미롭다.


['나는 병자다......나는 못된 인간이다. 나는 매력이라곤 없는 사람이다. 나는 간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병 따위에 추호도 관심이 없으니, 나에게 병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모를 수 있다.'(p.9)]


'나'는 마흔 살로 '관청에서 근무하는 8급 공무원'이었는데, 1년 전 먼 친척이 6000루블의 유산을 남겨준 덕에 지금은 도시 변두리 '방구석에 쳐박혀 하루하루 연명하며'(p.12) 지내고 있다. 볼품 없는 외모에 소심하고 자존심은 매우 강하나 열등감은 심하고, 극심한 피해 망상과 자의식 과잉 등 한 마디로 사회 생활이 힘든 성격 장애를 가진 비호감 인물이다. 


'나'는 당시 사회에 만연하던 인간의 이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조롱하고 비난한다.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을 계몽해 그에게 제대로 된 진짜 이익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면 그는 곧바로 너저분한 짓을 중단하고, 착하고 고상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모두가 '허황된 꿈'이며 '유치한 발상'(p.38)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인간의 이익이란 완벽하게 계산된 것일까'(p.39) 반문하며 인간의 이익을 계산할 때 '행복, 재산, 자유, 평안' 같은 것들이 고려되는데, 현자들은 한가지 중요한 이익을 간과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만의 욕구, 제멋대로 보일 수 있는 심한 변덕, 때로는 광기에 근접하는 듯한 환상'(p.46)같은 '유익한 이익'으로 인간은 바로 이런 것들을 위해 '이성, 명예, 평안, 행복까지 포기할'(p.41)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인 것을 따른다는 근거는 없으며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이익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욕구'(p.46)라고 말한다. 


2x2는 반드시 4가 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의지가 끼어들 틈바구니는 없다. 그러나 2x2=4라는 수학적 확실성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는 죽은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완벽한 건축물을 짓는 개미와는 다르며, 목적 자체보다는 그 과정을 사랑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수학공식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변덕과 욕망을 가진, 자신의 고통마저도 사랑하는 존재이며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2x2=4보다 무한대로 우월한 인간의 의식이 있다. 


<지하에서 쓴 수기>의 '지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주인공 '나'가 실제로 지하에 사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 여기서 의미하는 지하는 인간 의식의 반대 편에 있는 '우리 스스로 감추고 있거나 외부로 나타내지 않는 우리의 참의식, 즉 진짜 속마음'이다. (작품해설 p.220) 또한 '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외부와 단절된 자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2x2=4와 같은 불변의 진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념의 상태'(p.60)에 빠질 뿐이다. 비록 인간의 의식이 삶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 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2x2=5가 될 수 있는 삶이며, '무념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삶인 것이다. 


인생은 인간의 욕망과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지하에서 쓴 수기>의 '나'는 시종일관 비이성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독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2부에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나'가 24살에 겪은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왜 이 사람이 결국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는지는 알 수 있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술집에 들렸다가 어느 장교에게 모욕을 당하고 복수를 다짐하나 결국 어깨를 맞부딪히는 것 외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여기서 '나'는 복수를 완벽하게 했다며 혼자 기뻐한다. 또한 초대받지 않은 동창 송별연에 굳이 참석하여 온갖 모멸을 당하고, 급기야 돈까지 빌려 유곽까지 따라가는데 거기서 리자라는 매춘부를 만난다. '나'는 어린 나이에 매춘을 하는 리자에게 '너는 쇠사슬에 묶인 몸'이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며 노예와 같은 지금의 삶으로부터 나오라고 온갖 훈계를 늘어 놓고, 자기 집에 놀러 오라며 주소를 적어 준다. 근데 집으로 돌아와서는 혹시나 리자가 정말 집으로 찾아 와 자신의 이 누추한 꼴을 보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다가 평소 마음에 안 들던('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음에 안 든다) 하인과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 추잡한 순간에 리자가 '나'의 집을 방문한다. '나'는 누더기 실내복 차림으로 하인과 싸우던 바로 그 순간에 리자가 찾아 온 것에 엄청난 수치를 느끼고 히스테리성 발작까지 일으켜 연기까지 해가며 온갖 변명과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리자는 그런 '나'의 불행을 이해해주고 '나'는 역할이 뒤바뀐 '기이한 상황'에 놀라 그녀를 '지배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p.204)를 느낀다. 결국엔 그녀에게 증오와 열정의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 관계를 갖는데, 이 부분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묘사가 정말로 대단하고 느꼈다. 


'나'는 시종일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 안되는 줄 본인도 알지만 결국엔 행동으로 옮긴다.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서도 자신의 열등감과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이상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힘을 행사하기 위해 연기까지 하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나'의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행동은 어떤 이익은 커녕 결국엔 고립된 삶을 살게 한다. 자신의 이 모든 이야기가 유쾌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살아 있는 삶에서 이탈해 있기에'(p.211) 진짜 살아 있는 삶에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지하에서 쓴 수기>의 주인공의 모든 행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극단적인 '나'의 행동과 의식에서 우리의 진짜 모습도 언뜻언뜻 보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사실, 다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비겁함을 분별력이라 하며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위해왔던 것'(p.212)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식이 없는 인간은 진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진짜 삶의 시작은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그리고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의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의식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불행'(p.60)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이 우리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p.212)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 1부를 읽을 때는 너무나 이상한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말을 늘어놓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2부의 '나'의 젊은 시절 경험을 담은 이야기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엄청난 자의식으로 똘똘뭉친 '나'의 심리 묘사는 정말 대단했고, 왜 니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심리학자로 인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두고 '도스토에프스키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소설'이라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하세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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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5-22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참 도끼샘 책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이
왜 이리 많은지요...

자극은 받지만 시작만
하고 마무리 짓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 -
크하

coolcat329 2022-05-22 21:30   좋아요 2 | URL
저야말로 집에 있는 책들 다 읽을 수 있을까...가끔 생각한답니다.ㅎㅎ 시간은 점점 더 빨리 가는 거 같구요. 편한 밤 되세요~

새파랑 2022-05-22 1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창비 버젼으로 읽으셨군요~! 전 이 책 화자의 찌질함(?)이 너무 좋더라구요. 왠지 남 이야기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ㅋ 이 책을 기점으로 후기 명작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coolcat329 2022-05-22 21:32   좋아요 2 | URL
대박 캐릭터입니다! ㅋㅋ 이 책 읽었으니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읽어야 하는데 너무 양이 많아 손이 안가네요. 좋은 밤 되세요~

scott 2022-05-22 1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하세계 만세😊
도끼옹 만만세🤗

coolcat329 2022-05-22 21:3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도끼옹 만세!

페크pek0501 2022-05-24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에요. 도스토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

coolcat329 2022-06-10 11:56   좋아요 1 | URL
아 페크님 댓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이 책 읽고 도선생님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답니다.☺️

mini74 2022-06-10 0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다만 책 ㅠㅠ 꼭 다시 도전하리라 생각만하고 있어요 ㅠㅠ 축하드려요 *^^*

coolcat329 2022-06-10 12:03   좋아요 1 | URL
아! 이 책 이군요. 저는요...ㅋㅋ 어떤 글이 당첨이 됐는지 늘 모르는데 이렇게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읽다 만 책이군요. 1부에서 화자가 이상한 말들을 늘어놔서 좀 그렇죠? ㅎ
근데 2부는 웃기고 재밌습니다. 다시 도전해 보세요~^^

새파랑 2022-06-10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선생님 애제자 쿨캣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coolcat329 2022-06-10 12:04   좋아요 2 | URL
애제자 ㅋㅋㅋ도선생님 수제자님이신 새파랑님 덕분에 저도 도선생님 근처를 조금 어슬렁거리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죄와 벌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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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8년간의 유형생활을 마치고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이어 1866년에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다.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고 말했을 정도로 범죄자의 심리 묘사가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다.

 

<죄와 벌>은 1860년대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페테르부르크는 급격히 늘어난 인구로 인해 열악한 주거난과 빈부 격차, 실업 문제, 각종 범죄, 대기 오염 등의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더운 7월의 어느 저녁, 한 청년이 페테르부르크의 혼잡한 거리를 걷고 있다. 청년의 이름은 라스콜니코프. 23세의 법학도이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휴학 중인 그는 더럽고 악취나는 이 도시가 혐오스럽다. 누추한 골방, 누더기 같은 옷은 주위의 비웃음을 사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자신을 위해 온갖 수모를 참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사악한 전당포 노파를 죽여 그 돈으로 수많은 가난한 사람을 구하자는 생각이다.

그가 보기에 노파는 남의 목숨을 좀먹는 '이(蝨)나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이다.

 

그는 인간을 두 부류, 즉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누는데 평범한 사람은 법을 지키고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만,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법을 어기고 전 인류에게 구원이 되는 사상을 실행할 권리를 갖는다. 이런 대표적인 인물들로 '리쿠르고스, 솔론, 마호메트, 나폴레옹'을 거론하며 이들 모두가 '전부 범죄자였다' (1권 p.468)고 말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말 할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그 본성상 반드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1권 p.469)으며, 그들은 '더 나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하길 요구'(p.470)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하려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상이 깔려 있다. 그는 자신이 '비범한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 결국 노파 알료나를 죽이고, 우연히 범죄 현장에 나타난 노파의 이복 여동생 리자베타까지 죽이는 우를 범한다.

 

대의를 실천한다는 의지로 저지른 살인,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후 그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지만 예리한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범죄 심리 분석은 라스콜니코프를 조금씩 조여오고, 포르피리는 괴로워하는 그에게 자백할 것을 권한다. 또한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데, 소냐 역시 그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한다. 라스콜니코프는 결국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냐를 통해 자신의 지난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라스콜니코프는 왜 사람은 두 부류,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뉜다는 사상에 빠져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대도시 속 가난에 찌든 대학생 라스콜니코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돈이었다.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려면 돈이 필요한데 현실은 당장 낼 방값도 없는 실정이다. 빈민들로 득실거리는 더러운 대도시는 그에게 혐오감만을 줄 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한 인물(스비드리가일로프)은 페테르부르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젠장! 민중은 술이나 퍼마시고, 교육받은 청년들은 무위에 시달리며 실현할 수 없는 꿈과 몽상으로 타들어 가다가 이론의 불구자가 됩니다. 어디선가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돈을 감추고 나머지는 몽땅 음탕에 절어 살지요. (2권 p.377)]


이런 현실은 라스콜니코프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니라 당시 제정 러시아의 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일개 군인에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나폴레옹의 신화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특히 라스콜니코프처럼 예민하며 생각이 많은 젊은이에게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나폴레옹처럼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여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싶었을 것이고 자신에게도 그런 의지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노파 한 명 죽여서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는 그만큼 그의 삶이 절망적이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노파를 살해하기 전에 그는 자신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길지 말지를 고민하는데, 그래도 결국 그를 살인으로 이끄는 그 일련의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라스콜니코프는 인류에 공헌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포함한 주변의 극빈자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하급 관리인 마르멜라도프를 만나 찢어지게 가난한 그의 가족과 그 가족을 위해 매춘을 하는 딸 소냐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음 날 그는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고, 여동생이 돈 때문에 쪼잔하고 비열한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반드시 뭐든 해야 한다'(1권 p.87)고 다짐한다. '한낱 몽상에 불과했던 생각'(1권 p.88)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또한 길에서 술 취한 어린 소녀를 보며 여동생 두냐를 떠올리고, 공황상태에서 돌아다니다 숲에서 잠이 들어 사람들이 말을 때려 죽이는 꿈을 꾸게 되고 공포에 사로 잡힌다. 


['설마, 설마 내가 정말로 도끼를 들고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게 될까. (...)나는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견뎌 내지 못할 거야! (...) 주여! 저에게 길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저 빌어먹을......저의 몽상을 단념하겠습니다!' (1권 p.113)]


잔인하게 맞아 죽은 말의 꿈을 꾸고 난 후 그는 사람을 죽이는 범죄는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음을, 자신은 그 일을 견뎌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선택받은 소수라 생각하고 법을 뛰어 넘어 큰 일을 해보려던 그는 자신이 그런 일을 감당할 인간, 즉 '비범한 인간'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들른 센나야 광장에서 내일 저녁 7시에 노파의 유일한 동거인인 리자베타가 집을 비우고 노파가 집에 혼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다시는 없을 절호의 기회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생각의 자유도, 의지도 없'(1권 p.117)이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살인이 일어난다.


<죄와 벌>은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벌인지 묻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라스콜니코프가 저지른 죄를 밝히고 그 죄에 걸맞는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내용의 소설이 아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백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는 자신이 그 큰 일을 견뎌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를 기만해 가면서 기어코 그 일을 한 데에 있지 사람을 죽인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죄라고? 무슨 죄? 저 추잡하고 해로운 이(蝨)를, 가난한 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전당포 노파를 죽였으니 마흔 가지 죄악은 용서받을 텐데, 그것이 죄라고? 나는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죄를 씻을 생각도 없어. 그런데 왜 다들 사방에서 나에게 '죄야, 죄!'하며 손가락질을 하느냔 말이야. 다만 내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옹졸했다는 것쯤은 이제 톡톡히 알겠고, 그래서 이제 저 불필요한 수치를 감내하러 갈 결심을 한 거야! 그저 나의 천함과 무능함 때문에 이런 결심을 한 것이지." (2권 p.443,444)]


이런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주는 인물은 소냐이다.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했을 때 소냐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속죄'(2권 p.265)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꺼이 그가 짊어질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그의 고통을 나누겠다고 한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순간 소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향한 그녀의 사랑에 고통을 느끼지만, 나중에 자수하러 가기 전 소냐의 말대로 땅에 입을 맞추고 눈물을 쏟으며 생각한다. '소냐는 이제 영원토록 그와 함께할 것이며 운명이 그를 어디로 이끌든 세상 끝이라도 그를 따라갈 것임을...'(2권 p.458)


라스콜니코프가 자수하면서 6부가 끝나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그의 유형 생활이 나온다. 몸이 아파 병동에 있던 어느 날 라스콜니코프는 꿈을 꾸는데 인류가 선모충이라는 미생물에 감염되어 모두가 자기만 옳다고 외치며 서로 싸우고 죽이는 세상이 된다. '다들 불안에 떨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누구나 자기 하나만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2권 p.492)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모든 것을 파멸로 몰아간다.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난 라스콜니코프는 그동안의 자신의 사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비범하지도 않은 인간이 자신이 비범하다고 나설 때 얼마나 큰 혼돈을 초래하는지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병실 창밖을 보다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소냐를 보았을 때, 그는 뭔가가 심장을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냐를 찾고 기다린다. 

퇴원한 후 그는 그녀 앞에 쓰러져 그녀의 무릎을 끓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한 인간의 희생과 사랑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소냐도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 무한히 사랑한다는 것, 마침내 이 순간이 도래했다'(2권 p.496)고 느낀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둘 다 창백하고 여위었다. 하지만 병색이 완연한 이 창백한 얼굴에서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놀이,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아침놀이 빛나고 있었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2권 p.496)]


그들 앞에 남은 칠 년의 세월, 이제 두 사람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시간 속에 수많은 고뇌와 행복이 있을 것임을 알지만 그들은 다시 태어났기에 참고 견디기로 한다. 그날 밤 라스콜니코프는 동료 수인에게 마음을 열고 먼저 말을 건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삶을 살았던 그가 '정녕 이제는 모든 것이 변해야 하지 않을까?'(2권 p.497) 생각하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것이다. '변증법 대신 삶이 도래'(2권 p.498)한 것이다. 

자신은 이(蝨)가 아닌 '비범한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살인을 저질렀던 라스콜니코프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구원을 얻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죄를 짓고 벌을 받음으로써 다시 태어난 한 사람의 이야기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전기 작품 두 편 <가난한 사람들>,<분신>만 읽어 봤는데, 작가의 후기 걸작 장편 중 하나인 이 작품이 왜 그토록 유명하고 문학의 대명사로 칭송받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묵직함과 깊이가 확실히 전기 작품을 능가하고 심오한 작가의 세계관은 읽는 내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보낸 츠바이크의 찬사로 글을 마친다.


"당신이 고통을 알게 한 인간들 내면에서 당신은 승리했다. 어두운 밤에서 낮, 고통에서 사랑을 창조했고, 지옥에서 성스러운 찬송가를 가져왔다. 가장 열정적인 사람만이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다. 당신을 아는 사람은 당신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분은 당신을 깊이 통찰했다. 보라, 그분은 어느 누구보다 당신을 입증했고, 어느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던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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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14 23: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스콜니코프가 처한 현실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과 과학은 날로 발전해서 Ai시대 이지만
인간의 삶은 수세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능 ㅠ.ㅠ

coolcat329 2022-05-15 13:05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4 2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읽은 죄와 벌과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상황을 알고 나서 읽은 죄와벌은 느낌이 또 달랐어요.
도스토옙스키 완독을 목표로 하고 읽는데 죄와 벌을 다른 버전으로 또 읽어야 할 것 같아요^^

coolcat329 2022-05-15 13:09   좋아요 2 | URL
어릴 때 읽으셨군요. 도스토예프스키 완독을 멋진 목표입니다.
어떤 출판사로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음사 김연경님 번역 저는 참 좋았습니다.☺️

페넬로페 2022-05-15 14:02   좋아요 1 | URL
열린책들로 읽었는데 다음엔 민음사나 문학동네로 읽어 볼까 합니다^^

blanca 2022-05-15 10: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다시 읽고 전율함요. <죄와벌>은 고전 정도가 아니라 어떤 현실에서도 다시 재생시키고 곱씹을 수 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oolcat329 2022-05-15 13:14   좋아요 3 | URL
저 이번에 읽으면서 정말 뭐랄까요...도스토예프스키를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조금 알게됐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그 내면을 깊이 탐색하는 과정이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블랑카님 다시 읽으셨군요. 저도 나중에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 중언부언 늘어놓은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2-05-15 1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선생님 마니아 쿨캣님 드디어 이 좋은 작품을 읽으셨군요~!! 저도 다시 한번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안되네요 ㅋ 역시 명작은 시대를 초월해도 명작인거 같아요 ^^

coolcat329 2022-05-15 13:18   좋아요 3 | URL
도선생님 찐 마니아 새파랑님! 드디어 읽었습니다. 참으로 읽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이제서야 읽었네요. 😂

물감 2022-05-15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이제 도끼옹 전작 패기 하시는가요ㅎㅎ 에고 전 언제쯤 도전을...

coolcat329 2022-05-16 06:45   좋아요 2 | URL
이번에 읽고 후기 걸작들 다 읽어 보고 싶어졌는데...다 기본 천 페이지가 넘네요. 😿
겨울에 <백치>를 도전해볼까 합니다. 물감님도 도전해보시길요~^^

레삭매냐 2022-05-16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죄와 벌> 짱이지 싶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두 번 읽은 도끼샘
책이 바로 <죄와 벌> 되겠습니다.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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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A.J.P. 테일러(1906~1990)가 쓴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에서는 군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던 반면 2차 세계대전에서는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히틀러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와 전략‘이 전쟁의 판도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대중들은 이들 정치 지도자들이 이끄는 대로 따랐고 이들은 그런 대중의 힘을 얻어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중요한 결정을 혼자서 내렸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상 과장이 아니‘(p.32)라고 말한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싸고 각국의 지도자들이 어떠한 관계 속에서 정치, 외교, 회담을 진행했는지, 그 결과로 각 국의 나라들의 관계는 다시 어떻게 재형성 되었는지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정치적인 면을 강조한 책이다 보니 전투나 전술에 관한 부분은 간략히 다루는데 이러한 관점으로 2차 세계대전을 살펴볼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뒤에 14장에 걸친 ‘인물 소개‘도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네 인물의 개인적인 성격은 매우 달랐다. 히틀러는 기존의 관념을 괘념치 않고 좋건 나쁘건 세상을 뒤흔들 준비가 되어 있는, 시각과 방법에서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아마도 또한 가장 파렴치했다. 처칠은 이미 형체가 사라져 격렬하지 않은 감정으로도 심각하게 흔들리는 대영제국을 소생시키려는 가장 구식 인물이었고 가장 고상한 사람이었다. 스탈린은 그들 중 확실히 가장 한 가지 일에 골몰했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소련을 지키고 그 안에서 자신의 독재 권력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루스벨트는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편법과 고결한 원칙, 상황에 따른 득실 계산과 원대한 목표가 하나하나 헤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네 사람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이었지만 이조차도 뜻한 바를 이루어낸 결과인지 아닌지 말하기 힘들다.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는 비길 데 없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p.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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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11 1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젠 전쟁사까지 섭렵하시는 쿨캣님이시군요 ^^ 전쟁사는 언제봐도 재미있는거 같아요~!!

coolcat329 2022-05-11 12:06   좋아요 4 | URL
전쟁은 나쁜데...전쟁사는 늘 재밌고 흥미롭습니다.
전쟁사는 읽으면서 책 속의 숫자 하나하나를 인간으로 환원해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얄라알라 2022-05-11 13:10   좋아요 3 | URL
이 책을 깔끔하게 ˝전쟁사˝라고 표현하면 된다는 것 조차 몰랐습니다.
새파랑님, coolcat님 다방면 다독하시니 말씀이 척척 오고 가고 합니다.

전 [전쟁과 농업]인가? 그 책 진짜 재밌게 읽었지만 본격적인 전쟁 이야기는 아니었던지라, coolcat님 재미있다 하시니 열린 마음으로 시도해봐야겠습니다

새파랑 2022-05-11 13:52   좋아요 2 | URL
앗 전쟁사 아닌가요? ㅋ 저도 예전에는 이런 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새는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

scott 2022-05-1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 J. P. 테일러의 저작물은 20세기 전쟁사 공부에 필독서인데
이분의 책은 지도와 연표 인물사를 옆에 끼고 읽어야 ㅎㅎㅎ

coolcat329 2022-05-11 12:07   좋아요 2 | URL
네 ㅎ 지구본을 옆에 두고 돌려가며 읽었습니다. 인물사전은 다행히 책 뒤에 있어 편했습니다.^^

페넬로페 2022-05-11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도와 사진으로 되어 있어 더 입체적으로 2차대전에 대해 잘 알 수 있겠어요~~
전쟁에 대한 책은 불행했는데도 흥미로워요^^

coolcat329 2022-05-11 17:59   좋아요 1 | URL
지도와 사진 맛 보시라고 올렸습니다. 6년 간의 긴 전쟁을 한 권에 정리한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mini74 2022-05-11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차세계대전은 뭔가 예견된 느낌이 강했어요. 독일을 그렇게 벗겨먹음 전쟁이 안 날수가 ㅎㅎㅎ 저도 전쟁은 싫은데 전쟁사는 재미있어요. 쿨캣님 소개글 읽으니 덩달아 읽고싶어집니다 ~~ 저도 찜 *^^*

coolcat329 2022-05-11 18:10   좋아요 1 | URL
베르사유 조약과 대공황으로 국가사회주의 출현하고 유럽 질서 무너지니...미니님 말씀대로 독일에겐 전쟁만이 살 길이다...이랬던거 같습니다.
전투,전략은 자세히 다루지 않고 정치가들의 외교, 회담을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을 분석하는 책이라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22-05-11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름 밀덕이라 그런지 아주
좋아하는 주제라는 느낌적
느낌이 팍~ 옵니다.

오버로드 작전으로 지중해
이탈리아 전선이 상대적으
로 압박을 덜 받지 않았나
싶네요.

제가 알기로는 이탈리아
수비대 사령관이었던 알베
르트 케셀링 원수는 종전
까지 버티지 않았나 싶네요.

coolcat329 2022-05-11 20:56   좋아요 1 | URL
케셀링 장군이 정말 북이탈리아에서 방어선 잘 구축해 연합군을 힘들게 했죠. 찾아보니 독일 항복하고 그 유명한 미 육군 101공수사단(밴드오브브라더스)에 포로로 잡혔다네요. 이탈리아 법정에서 사형선고 받았다가 감형됐답니다.
독일군이지만 군인으로서는 매우 뛰어났던거 같아요.

레삭매냐님은 이 책 저보단 훨씬 재미있게 읽으실듯 합니다. 저는 이제 첫걸음인데 참 재밌습니다.
 
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충실한 마음>은 현재 프랑스 소설가, 델핀 드 비강(Delphine de Vigan 1966~)이 2018년 발표한 소설로 '인간 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던 비강은 2001년 작가로 데뷔, 차근차근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 나가다 2007년에 발표한 <길 위의 소녀>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2011년에는 자전적 소설인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발표하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2015년에는 <실화를 바탕으로>로 기자들이 수여하는 상인 '르노도상'을 수상, 현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을 받게 된다.

<충실한 마음>은 작가가 르노도상을 받은 후 3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라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현재 시리즈 두 번째 작품 <고마운 마음>도 번역되어 나와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 '개인이나 가족 혹은 사회와 연결된 다양한 형태의 충실함을 다뤄보고 싶었'(p.5)다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밝힌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충실한  마음'을 '우리를 바로 서게 하는 가치', '우리의 날개이자 굴레', '우리의 힘이 펼쳐지는 발판, 그리고 꿈을 묻어둔 참호'(p.11) 등으로 정의하는데, 이 소설은 이런 충실함의 다양한 모습을 네 명의 인물인 테오, 엘렌, 마티스, 세실을 통해 보여준다.

 

각기 다른 상처가 있는 네 명의 인물들, 그들이 보여주는 '충실한 마음'은 모두 다르지만 그 핵심에는 뭔가를 보호하고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테오는 엄마와 아빠를, 엘렌은 어렸을 때 자기 자신과 했던 약속을, 마티스는 테오를, 세실은 잃어 버렸던 자기 자신을.

 

네 명의 주인공이 지키고자 했던 충실한 마음은 단어가 주는 긍정적 느낌처럼 좋기만 한 것일까? 그 충실함이 자신의 삶을 갉아 먹고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과연 그 충실함은 정직한 충실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하는 충실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그 충실함을 지켜야 하는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이런 의문과 함께 무조건적인 충실함이 얼마나 큰 고통과 파괴를 가져오는지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냐는 질문에 비강은 "충실함은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기도 해요. 그러니 자신의 충실함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p.221) 라고 말한다.

나를 위해서 또는 타인을 위해서 내가 가진 충실함은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늘 살펴봐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은 지난 달 내 생일에 친구가 보내준 책이다. 

이 시리즈는 총 삼부작이라고 하는데 두 번째 소설<고마운 마음>과 세 번째 소설도 나오면 읽고 싶다. 가벼운 문체에 길지 않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주제는 무거운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충실한 마음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얼굴만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들여다 보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마티스가 처음 테오 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누나와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을 올려본다. '우리를 바로 서게 하는 가치', '우리의 힘이 펼쳐지는 발판', '꿈을 묻어둔 참호'와 같은 마티스의 '충실한 마음'이 참 예뻐서...

 

[걸어가면서 그는 소니아와 함께 뱅센 숲에서 돌멩이를 줍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돌멩이들을 다친 참새라고 얘기하곤 했다.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잡아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고, 때로는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해 대화를 건네기도 했다. 고쳐주겠다고, 키워주겠다고 약속했고, 곧 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윽고 돌멩이가 손바닥의 열기를 빨아들이면, 그래서 기력을 차린 듯싶으면, 그는 막 구해준 다른 돌멩이들로 채운 주머니 속에 그것을 넣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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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25 00: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생일 선물로 받으신 책이라 더 소중하시겠어요? 그 친구분께 이 리뷰 공유하시나요?^^ 저도 나름 책 선물 종종 하는데, 친구들의 리뷰를 따로 본 적은 없어 궁금하단 생각 갑자기 드네요^^

coolcat329 2022-04-25 07:15   좋아요 3 | URL
제가 여기서 노는거 친구들, 주변인들은 모릅니다. ㅋㅋ
대부분 책에 별 관심이 없고 취향도 많이 다르거든요.
그저 저만의 즐거움일뿐입니다. 😁

2022-04-30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4-25 09:2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돌멩이에게 말을 걸고 구해준다는 부분 넘 예쁩니다. 생일선물로 책을 받았는데 좋기까지 하면 더 소중할 거 같아요..충실함에 대한 의미...이 책도 읽어보고싶어요!~

coolcat329 2022-04-25 12:39   좋아요 3 | URL
얇은데다 가독성이 굉장히 좋은 책입니다. <고마운 마음>도 기대됩니다.

새파랑 2022-04-25 1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가장 좋은건 책 선물인거 같아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줬을지~ 저도 이책 읽어보고 대리기쁨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

coolcat329 2022-04-25 12:41   좋아요 2 | URL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 선물에 많이 행복해지죠. 근데 책을 안 좋아하는 이들에겐 처치 곤란임을 알고 잘 안하게 됐습니다.ㅠ
제 주변에 새파랑님같은 분이 딱 한 명만 있어도 좋을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2-04-25 20: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이라서 더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책선물 받으면 너무 좋죠. 쿨캣님은 선물받은 책을 얼른 읽으시는 착한 사람!
저도 작년에 받은 책을 얼른 읽어야겠어요^^

coolcat329 2022-04-26 08:44   좋아요 3 | URL
네~ 선물받은 책이라 얼른 읽었네요☺ 책선물 했는데 아무 말 없으면 궁금하더라구요. 읽었나? 별로인가? 등등...
페넬로페님은 책 선물 많이 받으시는거 같아 좋아보였어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페크pek0501 2022-04-27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유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유언을 따르자니 너무 힘들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답은 없어요. 충실함은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게 맞아요. 그래서 저는 유언을 안 하는 걸로 정했어요. ㅋㅋ

coolcat329 2022-05-02 06:14   좋아요 2 | URL
페크님 역시 생각이 깊으세요. 자식에게 베푸는 이런 배려, 이해 저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제야 댓글을 읽었는데 월요일이네요! 활기찬 한 주 되세요!

scott 2022-05-06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0세 시대를 먼저 맞이한 일본에서 가족때문에/으로 인한 병(정신적 금전적 고통)을 호소 하는 이들이 늘어나서 사회적 문제로 크게 여러 다양한 매체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혈육들 너무 가까워서, 그래서 더 상처 주기 쉬운

적당히 충실하게 살아야 스트레스 덜 받는 ^^

coolcat329 2022-05-07 11:30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적당히 충실! 뭐든지 적당히 하는게 좋고 오래가죠~
즐거운 주말 되세요!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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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자신이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발견함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p.40)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이탈노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가 1972년 발표한 작품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들에 대한 '한 편의 시와 같은 소설'이다.

베네치아의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타타르 황제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된 이 작품은 총 아홉 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9부에서는 열 개의 도시 이야기, 2부~8부는 각각 다섯 개의 도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총 쉰 다섯개의 도시가 나온다.

각 부의 시작과 끝에는 황제 칸과 마르코 폴로의 대화가 나오는데, 이런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각 부에서 다루는 도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마르코 폴로가 묘사하는 55개의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교환', '눈', '이름', '하늘', '섬세한', '죽은', '지속되는', '숨겨진'과 같은 단어가 들어간 11개의 소제목으로 나뉜다. 이 11개의 주제는 또 1부터 5까지 번호가 매겨져 수학적 규칙을 적용해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이런 구성이 대단히 흥미롭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처음엔 책에 실린 순서대로 읽고 두 번째는 주제별로 따로 다시 한 번 읽는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다. 근데 이 책을 한 번만 읽고 덮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열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가는 도시도 있기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가 묘사하는 도시는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 독자는 선뜻 이해하기가 힘든데, 그러면 그럴수록 알고 싶은 마음도 커져 글로 묘사된 도시들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며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가상의 도시들이 익히 내가 알고 있는 도시들과 겹쳐지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도시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자이라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도시와 기억3' p.18)]

 

마르코 폴로는 자이라라는 도시를 묘사하며 이 도시에 계단 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이 무엇으로 덮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p.17)로 이루어 진다고 말하며 평소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그 진정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즉 한 도시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면 유명한 건축물이나 높은 빌딩이 아니라 실제로 도시민의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즉 '보이지 않는' 그런 후미진 곳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판매대 위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에 대한 기호로서 가치를 가집니다. 수놓은 머리띠는 우아함을, 금도금한 가마는 권력을, 이븐 루슈드의 책들은 학식을, 발찌는 관능을 뜻합니다. ('도시와 기호들1' p.22)]

 

타마라 도시에서는 사물을 사물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통해 내가 얻게 되는 모습을 욕망한다. 도시는 인간의 이런 욕망을 부추기는 장소이며 인간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고 도시는 그 욕망을 먹고 스스로 몸을 불린다. 이탈로 칼비노는 도시의 이런 속성 때문에 우리는 '도시가 정말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p.23) 알 수가 없다고 폴로의 입을 빌려 말한다.

 

 

[도시는 텅 빈 체스 판의 위아래로 이동하면서 어디서나 똑같은 자신의 삶을 되풀이합니다. 주민들은 등장하는 배우가 바뀐 똑같은 장면으로 돌아가 연기를 합니다. 그들은 다양하게 변화된 악센트로 똑같은 대사를 다시 말합니다. 똑같은 하품을 하기 위해 입 모양을 바꾸며 입을 딱 벌립니다. ('도시와 교환3' p.83)]

 

에우트로피아라는 도시의 묘사이다. 어디서나 똑같은 삶, 바로 우리 현대인의 삶이다. 특히 우리 나라는 집도 대부분이 아파트에다 그 구조도 천편일률적이다. 왜냐하면 도시는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언어, 욕망, 추억들도 교환하는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들의 망'(p.99)이기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는 황제 칸에게 "여행을 하면서 차이가 사라져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각 도시는 다른 모든 도시들과 닮아가고 있습니다. 도시들은 형식, 질서, 차이들을 서로 교환합니다." (p.174)라고 말한다.

 

우리 나라의 여러 도시들을 생각해본다.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하다. 어떤 특정 지역의 개발이 인기를 끌면 다른 도시들은 그것을 따라하기 바쁘고 금새 닮아간다. 이러다 책에 나오는 도시 '트루데'처럼 '단지 공항의 이름만 바'뀌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도시만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레오니아의 풍요로움은 매일 생산되고 판매되고 구매되는 것보다, 매일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버려지는 물건들로 측정될 수 있습니다. (...) 청소부들이 매일 쓰레기를 어디로 가져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버려지는 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쓰레기 더미는 점점 더 높아지고 겹겹이 쌓치고 반경을 넓혀갑니다.(...)레오니아를 에워싼, 파괴되지 않는 쓰레기 요새가 산맥처럼 사방에서 도시를 압도합니다. ('지속되는 도시들1' p.148,149)]

 

우리는 매일 '최신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새로운 물건들을 보며 소비가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칼비노는 이런 풍요로움 속에서 버려지는 물건들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도시를 위와 같이 묘사했는데, 딱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닌가 싶다. 플라스틱이나 비닐과 같은 재활용도 엄청나지만 멀쩡한 물건들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사는가...

 

칼비노는 이런 식으로 인간들의 탐욕과 욕망으로 끝도 없이 팽창하여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도시들을 보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금 내가 사는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현대 도시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 도시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가치들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는 완벽하게 이상적인 도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칼비노가 그리는 이상적인 도시는 '불행한 도시' 안에 있으면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도시로 묘사된다. 즉 칼비노가 그리는 이상적인 도시는 행복과 불행, 질서와 무질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공간인 것이다.

마지막에 마르코 폴로는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p.208)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서 그것에 공간을 부여하여 지속시키는 것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이고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도시라고 칼비노는 말한다.

 

마르코 폴로가 들려주는 55개 도시의 이야기를 들은 쿠빌라이 칸은 마지막에 '결정적인 정복을 이뤘다 해도 거기서 얻은 제국의 다양한 보물들은 사람을 현혹하는 껍질에 불과하며, 그러한 정복은 대패로 민 체스 판 위에서 무(無)일 뿐이다.'(p.167) 라며 제국 정복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칼비노의 작품은 처음 읽어 보았는데 독특한 구성과 말로 묘사한 55개 도시의 이야기가 매우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건축가가 도시를 설계하듯이 소설의 구조를 계획적으로 설계한 점과 도시에 대해 이런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니!  칼비노의 예술적인 상상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또한 혼자 여행갈 때 가지고 가도 참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베네치아. 왜냐하면 마르코 폴로가 묘사한 55개의 도시들은 모두 '베네치아의 무엇인가'(p.113)에서 가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이해하기 쉽진 않았지만 나 또한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이 많은 알레고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는데 너덜너덜해진 책이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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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4-22 2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읽는데 저도 모르게 막 상상하면서 읽었어요. 척박하면서도 신기루 같은 느낌이라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죠. 물론... 해석은 제 생각과는 달라서 슬펐어요. ‘반쪼가리 자작‘도,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 재밌게 읽었는데 전 동화로 읽고 싶었는데 자본주의랑 연결시켜서 그것도 슬펐어요.ㅜㅜ

쿨캣님 리뷰는 멋있네요. 슬펐는데 좋아졌어요^^

coolcat329 2022-04-23 07:37   좋아요 2 | URL
요정님~이 책 읽으셨군요! 😁 이 책 어려운데 이상하게 읽을수록 빠져들고 반복해서 읽으니 어느 정도 이해도 가더라구요. 특히 주제별로 다시 읽으니 도움이 됐습니다.
요정님 이 책 좋아하신다니 반갑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새파랑 2022-04-23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뭔가 딱 봐도 어려워 보이네요 😅 그런데 왠지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ㅋ 몇번은 읽어야 하는 책이군요~~!

coolcat329 2022-04-23 09:32   좋아요 2 | URL
좀 어려운데 이상하게 빠져드는 책이에요. 시 같아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좋구요~☺

페넬로페 2022-04-23 09: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아도 현실속에 존재하지 않은 도시들에 대한 얘기가 너무 좋은데요.
사실 우리가 읽는 오래된 얘기들에 나오는 공간들도 저에게는 생소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곳과 비슷하거든요.
이런 가상의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네요^^

coolcat329 2022-04-23 09:47   좋아요 3 | URL
네~저도 소설 속 도시들이 대부분 생소하고 그렇습니다. ㅎ
칼비노가 묘사하는 도시들은 굉장히 환상적인데 그 모습이 현대도시와 중첩되어 보이는 점이 멋지더라구요.

레삭매냐 2022-04-23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 전에 칼비노의 책
<왜 고전을 읽는가>를 읽으
면서 이 양반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는 칼비노
의 책들과 만나지 못했네요.

쿨카트님의 칼비노 리뷰를
읽고 나니 도전해 보고 싶다
는 생각이 스물스물 드는 것
같습니다 -

coolcat329 2022-04-23 18:58   좋아요 2 | URL
앗 <왜 고전을...> 유명한 책이잖아요! 유명한 이유가 있군요.
저야 말로 또 그 책 중고를 찾아 봐야 겠습니다.
작가가 좀 천재과 같더라구요. 뭐 제 눈엔 멋지고 대단하죠. ㅎㅎ

scott 2022-04-25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무척 좋아합니다

보르헤스의 평면적인 서사를
칼비노가 입체적으로 변형 시킨 것 같아서
읽을 수록 머릿속 가득 도시의 생성과 소멸이 그려집니다 ^^

coolcat329 2022-04-25 11:01   좋아요 2 | URL
이 소설은 어렵지만 일단 맛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책 같아요. 스콧님도 좋아하신다니 기분 좋네요~😉

페크pek0501 2022-04-27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었다고 착각했는데 읽지 않은 책이에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