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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저자 벵하민 라바투트(Benjamin Labatut 1980~ )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현재 칠레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로 2021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 책은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개의 이야기는 각기 독립적이지만 책의 주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프러시안 블루>에는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나온다. 그는 독가스를 개발해 벨기에 이프르에서 벌어진 역사상 최초의 가스 공격을 감독한 인물이다. 그러나 식물 생장에 필요한 영양소인 질소를 공기 중에서 채취하는데 성공해 인류를 대기근에서 구했고 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획기적인 발견이 각기 인류 번성과 절멸로 이어진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유럽 미술계에 큰 파란을 일으킨 아름다운 '프러시안 블루'가 시안화물을 품고 있었듯이.
두 번째 이야기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방정식'을 제1차 세계대전의 집중포화 속에서 풀어낸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카를 슈바르츠실트의 이야기가, 세 번째 이야기 <심장의 심장>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수학자였지만, 자신의 수학 '개념들이 세상에 피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p.97)에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다 간 천재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1928~2014)의 이야기가 나온다.
네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20세기 천재 물리학자들인 슈뢰딩거, 드 브로이, 하이젠베르크가 자신들의 양자 이론을 내세워 서로 증명하고 반박, 대립하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게 펼쳐진다. 말로만 들어 본 '불확정성 원리'가 정말 말 그대로 입자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니...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지만 묘한 전율을 느꼈다.
마지막 이야기 <밤의 정원사>에는 양자역학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p.253)는 말이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학이 인류를 번영으로 이끌지 파멸로 이끌지 이 역시 '불확실'하지만 저자는 죽음을 앞둔 레몬나무가 너무 많은 열매를 맺어 초과 중량으로 쓰러지는 이야기를 하며 '이런 과숙(過熟)의 과시는 식물보다는 인류의 마구잡이식 파괴적 성장과 더 가까워 보인다'(p.254) 라고 우려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마지막 '감사의 글'에서 '이 책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며, 뒤로 갈수록 허구의 비중이 커진다고 말한다. 특히 <프러시안 블루>에는 '허구의 문장이 하나밖에 없'다고 밝히는데, 그 문장은 과연 무엇일지 다시 읽고 찾아볼까한다. 사실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이론 얘기가 조금만 나와도 어렵게 느껴지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읽을수록 알 수 없는 희열과 짜릿함을 느꼈다. 유투브에 김상욱 교수가 이 책에 대해 설명한 방송이 있는데, 조만간 꼭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