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초고를 마쳤다. ‘탈고란 말을 쓰지 않는 건, 앞으로 더 다듬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기분이 좋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일단 이겼기 때문이다. 얼마나 길고 지루하고 중간에 그만 두고 싶은 유혹이 많았던, 6개월 가까운 기간이었던가.

 

처음 써 보는 장편이다. 200자 원고지로 1000매 분량이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 제목은 앞으로 퇴고 과정에서 정할 것이다. 여러 가지 제목이 머릿속을 오간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작명은 얼마나 뜻 깊은 일이던가.

내 첫 장편의 이름 짓기는 얼마나 뜻 깊고 신나는 일이런가.

 

장편 초고를 마쳤다고 아내한테 보고하자 만사 제치고 맛있는 음식을 사 줬다. 우선은 다슬기 식당에 갔다. 다슬기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 중에 든다. 다슬기 탕을 잘하는 식당이 조운동에 있다. 몇 달 전, 서 현종 화백과 함께 그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그 날 낮에 서 화백의 춘천 부르스 전이 끝났던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전을 끝낸 그가 마음이 허허로울 것 같아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싶었다.

아내가 두 번째로 내게 사준 음식은 대원당 빵집의 팥빙수다. 대원당은 도로 변에 있다. 몇 년째 그 앞을 차로 지나갈 때마다 저 집에 가서 그 시원하고 맛있는 팥빙수를 먹어야 할 텐데 하고 별러왔었다.

 

그렇게 맛있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두 가지나 먹고는 밤 10시도 되기 전에 녹아떨어져 잤다. 깨어 보니까, 이런, 자정 넘어 새벽 한 시다. 장편 초고를 6개월 가까이 매달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잠자는 습관이 뒤죽박죽돼 버렸지만 새벽 한 시는 너무했다. 결국 처음 장편을 쓴 행복감에 이렇게 단상이라도 써 남기기로 했다.

아내는 자고 있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앞으로 서너 달은 초고를 다듬어야 비로소 탈고했다.’고 선언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내가 문득 내게 말했다.
"여보. 우물과 우울이 닮지 않았어? 발음부터 말이야."
듣는 순간 나는 그 기발한 생각에 놀랐다. 우물은 '물을 얻기 위하여 땅을 파고 물이 괴게 만든 시설'을, 우울은 '슬프고 불행한 감정'을 각기 나타내는 말이라 전혀 상관이 없지만------뜻밖에 닮은 점이 충분했다.

둘 다  '깊고 어둡고 갇혀있고 축축한 성분의 것'이라는 점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말에 묘한 면이 있다. ‘앞으로 튀어나온 사물을 가리키는 말로써 받침이 이며 외자인 경우가 여럿이라는 사실이다. 그 예를 든다. ‘이 있다. 곶은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내민 땅을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심지어 남자의 성기를 뜻하는 우리 말 또한 그렇다. 참 이상하다. 나만의 생각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내가 농막에 있는 내게 외쳤다.
"여보, 뱀이야!"

밭에 들어가 예쁜 꽃들을 찾아 사진 찍던 아내였다.
"조심해 !"
내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이상하게도 아내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가 1m는 넘는 놈인데 방금 꽈리들 무성한 데로 들어가 버렸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리는 아내. 그러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그 뱀, 사진 찍었어?"
  "아니. 놀라서 깜빡 잊었어."
아내의 답변에 나는 '사진 좀 찍지 않고 뭐했어?' 하려다가 그만 뒀다. 아내가 무사했으면 다행이지 무슨 뱀 사진인가.
나도 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내 자신을 이해 못할 때가 있다. 20여 년 전, 40대이던 때다. 다섯 살배기 조카애가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마침 장난감 물총이 거실 소파에 놓여 있었다. 아내가 무슨 주방용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더니 그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보내 준 물총이었다. 물총 장난할 만한 여름철이었다.

나도 모르게 애들처럼 그 물총을 갖고 놀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는데 때 마침 조카애가 놀러왔다가 목격한 거다.

이거 내 꺼.”

하면서 조카애가 그 물총을 손에 쥐는 순간 나는 놀랍게도 가슴 아팠다. 잠깐사이에 소중한 내 장난감을 빼앗겼다는 아픔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어이없었다.

나이 들어도 동심은 어느 구석엔가 남아 있다는 증거일까.

 

이번 호반야생화 카페 정모에서 아내가, 경매에 나온 할리데이비슨오토바이를 받았다. 우리 카페의 타고난 경매사 철웅님이 경매품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물론 장난감이다. 경매 진행을 옆에서 돕는들꽃사랑님이 실제 무거운 오토바이인 것처럼 간신히 두 손으로 받쳐 드는 표정까지 지어 정말 재미있었다.

아내는 내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런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의 어이없는 동심을 위해 경매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지금 그 오토바이가 내 서재의 컴퓨터 앞에 주차해 있다.

금빛 찬란하다.

달리 표현할 게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