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춘천시 동면 장학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가까운 지내리에는 가산초등학교가 있다. 어느 한 때 수백 명 어린이들이 다닌 학교였음을 입증하듯, 학교 건물도 크고 운동장도 넓다. 하지만 지금은아기를 잘 낳지 않는 세태탓에 얼마 안 되는 어린이들이 다닌다. 학교 전경도 아름다운데 정작 주인공 되는 어린이들이 적으니, 오다가다 보는 어른들(아내와 나) 입장에서 가슴 아프다.

 

우리 부부가 든 모임 중에 호반야생화 카페가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현재 모임을 이끌어가는 회장님은 악동이님’. 그 회장님을 곁에서 돕는 여러 임원 중 총무님은 해든솔님이다.

악동이님은 남자 분이며 해든솔님은 여자 분이다. 두 분 모두 한창 젊었다.

 

몇 달 전 안 사실이다. 악동이님과 해든솔님이 가산초등학교 동창이라지 않던가!

그러자 호반야생화 카페 정기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내 눈에는 두 분이 어릴 때 가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물론 환상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단발머리 한 해든솔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데 짓궂은 악동이가 그 고무줄을 벼락같이 끊어버리고는 나 잡아 봐라 하며 달아나는 모습

 

며칠 후 정기 모임이 있다. 그 날도 나는, 잠깐이지만 그런 환상 속에서 두 분을 바라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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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봄날에 춘천에서1회 개나리 문화제가 열렸다. 행사의 일환으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이 열렸고 뜻하지 않게 나는 시() 장원이라는 영예를 안았다.‘뜻하지 않게라는 표현을 쓴 건, 영문도 모르고 백일장에 참가한 때문이다.

당시 나는 춘천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학급담임선생님이 수업은 걱정하지 말고 글짓기 대회에 다녀와라.”고 갑자기 외출(?)시킴으로써 얼결에 이뤄진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장원으로 뽑힌 내 시의 제목을 기억한다. ‘산길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국어사전까지 부상으로 받는 영광의 날, 며칠 후 아주 젊은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3학년 국어를 맡은 선생님이라 했다. 3학년이 8개 반이나 돼 국어 선생님 두 분이 4개 반씩 맡아 가르쳤는데 다른 반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네가 이번에 시에서 장원한 이병욱이냐?”

선생님은 그렇게 나를 확인한 뒤 이렇게 말을 이었다.

시 공부를 하면 좋은 시인이 될 것 같구나. 내가 아는 시인이 한 분 있는데, 네 시 공부를 부탁해 놓을 테니까 앞으로 토요일 오후에는 학교에 남아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토요일 오후가 됐다.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깜빡 잊은 척하고 귀가해 버렸다.

 

아마 선생님이 우리 반 국어를 가르치는 분이었다면 당장 그 다음 주 월요일 수업시간에 나를 보는 대로 야단을 쳤을 게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한테 국어를 배우는 학생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는데 어쩌면이런 맹랑한 녀석은 일찌감치 포기해버리자며 알아서 단념해버렸을지도 몰랐다.

사실 내가 감히 선생님의 호의를 외면한 건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뒤에 따로 남아 하는 특별활동에 마음의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 간 그림 잘 그리는 어린이로서 매일같이 학교에 남아 미술반 활동을 했던 고된 경험이 그것이다여하튼 그 바람에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이 시작될 뻔했다가 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선생님이 전상국 선생님이라는 사실. 그 때 내가 말씀대로 토요일 오후에 따로 남아시 공부를 했더라면 일찍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며칠 전 나는 대한민국 소설가가 된 전상국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3학생이던 어느 봄날로부터 어언 반세기 넘게 세월이 흘렀다. 

 

각주: 소설가 전상국
주요수상
현대문학상(1977), 한국문학작가상(1979), 대한민국문학상(1980), 동인문학상(1980), 윤동주문학상(1988), 김유정문학상(1990), 한국문학상(1996), 후광문학상(2000) 등. 예술원 회원 (2019)
주요작품
《아베의 가족》《우상의 눈물》《우리들의 날개》《사이코 시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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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춘천에서 직선거리로 백 여리 떨어진 서울 지역에 폭우가 쏟아진다고 했다. 천둥에 벼락도 친단다. 그런데 아직 춘천은 흐린 하늘일 뿐이다.

아내와 춘심산촌 농장에 와서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흐린 하늘 아래 농장 풍경은 무거워 보이기만 한다. 눅눅한 습기 탓도 있고, 빛을 받지 못해 명도가 떨어진 탓도 있을 게다.

그 순간 내게 깨달음이 있었다.

인생이 춘심산촌 같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는 동안, 밭의 작물과 주위의 숲이 보여주는 변화가 우리 인생의 변화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새싹이 나서 한창 자라나 울창한 모습이다가, 서서히 열매 맺고 하면서 어느 새 조락(凋落)의 길을 들어 마침내는 찬바람 맞으며 사라지는 춘심산촌의 풍경.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다는 말이 이런 것이겠다.

우리 부부 또한 대() 자연 속에 있었다. 대 자연 속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었다. 무수한 선인들이 깨달은 바를 이렇게 흐린 하늘 아래 농장에서 뒤늦게 깨달았는지. 참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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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세월만큼  냉정한 게 어디 있을까?  아무리 붙잡아도  달아나는, 무정한 세월을  탓하는 노래들이 많은 건 그 때문이다.
   그 세월을 나타내주는 기계가 시계. 시계의 이미지가 차가운 건  그 때문이다.

 

   ​오늘, 초대받아 간 '오월님네' 별장에서  그렇지 않은  따듯한 나무 시계를 보았다.
   나무 시계가 가는 동안 세월마저 천천히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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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님은, 무심이 SNS 활동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항상 알찬 글을 정성스레 써서 올리는 그의 모습에 무심은 처음부터 호감을 느꼈다. 교직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분으로 직감했는데 이번에 내신 책길에서 만난 한자을 보니 과연 그런 분이었다.

책 표지 뒷면에 찔레꽃 님의 모습 사진이 있었다. 역시, 그 동안 SNS 상으로 느낀 그대로 여기저기, 한자들을 찾아다니느라 바쁜모습이었다. 앞으로 무심이 책을 낼 때는 이런 찔레꽃 님의 사진 모습을 많이 참고해야 할 듯싶다.

 

 

찔레꽃 님의 성실한 작업은, 우리가 한자문화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한자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살아온 역사·문화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https://blog.aladin.co.kr/723219143/10811060

  무심은 찔레꽃 님이 책을 내신다면 반드시 한 권 사야지결심했었다. 그런데 그 결심을 깜빡 잊고 님한테 길에서 만난 한자책을 받고 말았다. 님이 새 책을 냈다는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던 탓 같다.

​  어쩌면 장편소설을 집필하느라 마음의 경황이 없었던 때문인 듯도 싶다.

 

 

   한문 선생님의 교실 밖 한문수업이라는 부제를 단 길에서 만난 한자.

찔레꽃 님의 본명을 알았다. 책 표지에 있었다. ‘김동돈

김동돈 님의 책을 곁에 두고 틈나는 대로 다 읽은 뒤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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