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가을이 아니었을까그 즈음은 자가용차는 꿈도 못 꾸던 때라서 출퇴근을 택시 합승이나 시내버스로 했다.

그 날 나는어둑해지는 명동 부근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사는 동네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뒤돌아봤더니 최종남 선배님이었다선배님은 닭갈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웃으며 내게 제의했다.

소주 한 잔 할까요?”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인사 나눈 적이 없었으니좋은 기회였다하지만 나는 사양했다부리나케 집에 가서 애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어머니가 무릎도 안 좋은 몸으로 종일 애 보느라 힘들던 때였다.아내는 직장생활에 집안 살림까지 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사실 그 날 내가 선배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닭갈비 골목의 어느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을 게다그즈음만 해도 나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참 아쉬운 기회였다.

 

선배님과 이번에 모 단체의 글짓기 심사 관계로 만났다선배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제는 몸이 안 좋아 술을 멀리하는 신세다결국 술 한 잔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한 채 노후를 맞은 셈.

30여 년 전 그 날 어둑해질 때 술 한 잔 제의에 응했더라면 얼마나 술맛이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최종남 소설가 장편소설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 단편소설집 회색판화’ ‘단둥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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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게 짖어대는 개가 있다.


단독주택 단지에 집을 짓고 이사 와 산 지 벌써 23년째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 동네에서는 개를 드러내놓고 기른다. 드러내놓고 기른다는 말은 ‘아파트는 공동거주시설이라 개를 길러서는 안 되지만 분리돼 사는 단독주택은 상관없다’는 전제에서 나왔을 듯싶다. 

나는 저녁식사 뒤에는 운동 삼아 우리 동네 여기저기를 30여 분 간 걷는 습관인데 그럴 때마다 별나게,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를 봤다. 이상한 것은 그런 개들이 한결같이 체구가 작은 놈들이라는 사실. 당연한 조치이지만 줄에 매인 채로 대문 안 마당에서 그랬다. 

체구가 큰 개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 큰 개들은 짖지 않고 노려보다 말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음산하게 으르렁거렸다.


요즈음 들어 깨달았다. 별나게 짖어대던 작은 개들이 하나같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저녁 때 내가 걸어갈 때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 소리들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다가 소스라쳤다. 그 작은 개들이 수명이 다해 이 세상을 떠나버린 게 아니겠는가! 개의 수명은 잘해야 15년 정도란다. 내가 이 동네에 집을 짓고 산 지 23년째. 그러니 그 동안,  그 별나게 짖어대는 작은 개들이 다 저 세상으로 갈 수밖에. 

그러면 다른 시끄러운 작은 개들이 후대를 이을 법도 한데 … 그렇지 않다. 조용해진 동네다. 그 까닭이 뭘까? 

장편 초고 마무리 후 마음의 여유가 나서일까, 별 쓸 데 없는 생각까지 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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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을 다스리는 원님이 동헌 대청에 앉아 범인(정확히는 피의자.)한테 호령한다.

네 이 놈! 네 지은 죄를 알렷다. 어서 순순히 그 죄를 고하거라!”

얼마나 몽매한 재판 현장인가. 피의자의 인권이라고는 조금도 고려되지 않고 원님 개인의 마음대로 진행되는 재판이다. 애당초 변호사라는 게 없으니 주먹구구 재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원님의 호령이 과히 틀린 말 같지 않다. 세상에서 피의자만큼 자기 죄의 유무를 알 자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죄를 져도 뻔뻔스레 변호하며 그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숨기거나 하는 이들이 널린 요즈음 세상에 해 본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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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의 조어감각참 뛰어나다.
무더위란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다. ''  '더위'를 합성해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무더위는 눅눅한 습기가 느껴지는 더위다.

지난 무더위의 어느 날,  길이가 1m 넘는 뱀이 우리 밭에 들어왔다들어왔다란  표현을 쓰는 건 밭  둘레를 그물망으로 둘렀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물망의 틈을 찾아 밭에 들어왔는지 미스테리하다.

아내가 그 뱀을 발견했을 때 꽈리밭 속으로 숨어들던 차였다그 날은 아주 무더운 날씨였다

오늘 무더위가 사라져 쾌청한 날씨다내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만일 그 뱀한테 물린다면 무더운 날보다는 오늘처럼 쾌청한 날이 좋을 거라는.
무더위 속에 뱀한테까지 물린다면 얼마나 짜증날까 싶어 해 본 생각이다.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다. 부디 그 뱀과 우리 내외가  맞닥뜨릴 일이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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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아들이 노래 잘 부른다는 거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아들은 대학 다닐 때 밴드를 조직해 리드 싱어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가 먼지가 되어라는 노래를 알게 된 것도 아들 덕분이다. 기억은 분명치 않은데 아들이 그 노래를 어느 모임에서 불렀다. 듣는 순간 나는 노래에 반했다. 가사부터 뛰어났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

 

너무 길어서 앞부분만 옮겼다. 내용이 기가 막히지 않은가.

 

 

(2)

이번에 내가 장편소설 집필에 매달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간이 소설의 절정 단계를 쓰는 때였다. 나이 탓에 체력도 떨어지는 데다가 날씨마저 폭염인 때문이었다. 결국 꼭두새벽 2시경에 기상해 집필했다. 그나마 폭염이 덜한 시간대인데다가 사방이 조용하니까.

그렇게 두 시간여 쓰다 보면 새벽이 다하고 동녘이 밝아왔다. 그러면 일단 집필을 중단하고 유투뷰 동영상으로 먼지가 되어를 들었다. 이웃 분들 자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되므로 소리 죽여 들었다. 그 옛날 사이몬과 가펑클이 불렀던 엘콘도파사처럼 피리 연주로 시작되는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 .

장편 집필의 고단함을 그렇게 달래며마침내 초고를 마무리한 거다.

먼지가 되어노래는 김광석 것도 있다지만 나는 이윤수 것이 더 좋다. 사내 목소리이지만 청아하게 불러서 가사에 담긴 슬픔마저 청아하게 다가온다.

기회가 되면 먼지가 되어노래만을 따로 분석· 감상한 글을 써 불로그에 올릴 것이다.

 

하긴, 내가 늘그막에 장편에 매달리는 것은 먼지처럼 사라질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몸부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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