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이다. 무심이 척박한 골짜기 땅 800평을 장만했다는 사실을 모임자리에서 털어놓자, 지인(知人) 봉명산인이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그 땅의 풍수지리를 봐 드릴까요?”

약속한 날에 현장에 나타난 봉명산인. 전문 지관(地官)처럼 둥근 풍수 지남침까지 지녀서 무심은 내심 놀랐다. 하긴 봉명산인은 세상사 모르는 게 없는 도사 같은 사람이다.

그는 풍수 지남침을 들고서 골짜기 땅의 방위와 형세를 유심히 살피더니 이튿날 A4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써 이메일로 보냈다. 이를 테면 무심이 모처럼 장만한 땅에 대한풍수 보고서이다. 전문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며 그 중 일부만 발췌해서 여기 옮긴다.

 

(상략)

2. 밭의 위치가 대룡산 구봉산의 지기와 오봉산의 원기를 모두 받아 대와 기운이 적당히 세며, 땅의 모양새와 구릉이 마치 공작이 알을 품어 부화시킨 후 푸드득 날아간 이른바 '공작포란형'이라 포근하게 안겨있는 풍수라서 사람의 성정을 또한 부드럽고 안돈시키게 하는 지풍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3. 일조(햇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산세가 아주 높지 않아 동남향의 해를 크게 가리지 않고 서북 방향으로 부채꼴 모양 툭 터져 있어 서남향 쪽 일조를 대부분 끌어들이면서 지는 해까지 볼 수 있으므로 아침 8~석양까지 충분히 하늘 기운을 담아낼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만, 앞쪽이 지세의 기운(地氣)을 함부로 방출하기 쉬운 부채살모양이라 안팎으로 탈이 나기 쉬운 형상이니 입구의 적당한 곳에 비보(備補) 풍수 차원에서 밭에서 나오는 돌을 모아 돌탑을 쌓거나 솟대나 장승 모양이라도 두세 개 해두면 보기도 좋고 그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하략)

 

 

요약한다면 장만한 땅이 길지(吉地)가 분명한데 다만 복이 밖으로 새나갈 우려가 있으므로 한 군데 비보(裨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심은 얼마 후 골짜기 땅에 중장비를 동원해 밭으로 만들 때 부수적으로 나온 돌들을 밭 입구에 따로 모아놓음으로써 춘심산촌 농장의 비보 문제를 해결했다.  

비보 풍수.

풍수지리 상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준다는 개념이다. 이런 비보가 잘 이뤄진 곳 중 하나가 양양의 조산(造山) 마을이다. 낙산 옆 조산리. 그 지역 땅의 기운이 좋은데 다만 바다 쪽으로 새나갈 우려가 있으므로, 마을 주민들이 협동으로 작은 산 하나를 만들어 놓아 그 우려를 불식시켰단다.

 

춘심산촌의 비보로써 농장 입구에 돌무더기가 만들어진 지 어언 7년이다. 돌무더기가 높지 않지만 비보는 상징적인 활동이라 그 정도로 충분하다.

비보가 이뤄지자 묘목도 심지 않았는데 나무 하나가 그 옆으로 자리잡더니 잘 자라고 있다. 그뿐 아니다.  농장에 작은 컨테이너 창고를 들일 일이 생겨, 처음에는 농막 옆에 두려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비보 돌무더기 옆에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가로등까지 비보 가까이에 세워지게 돼 돌무더기 일대는 저절로 막강한 기세를 띤다.

여하튼 비보의 중심은 돌무더기다. 돌무더기 자체에도 놀라운 일이 생겨 여기 소개한다.

어느 날 춘심산촌 이웃에서 농사짓는 분이 무심한테 놀란 얼굴로 말했다.

글쎄, 어제 길이가 두 발은 될 무서운 독사 한 마리가 저 돌무더기 속으로 유유히 들어가더라니까! 훤한 낮에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놀랐겠소!”

그가 말한 우리, 그의 농막에 자주 놀러오는 분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목격한 객관적 사실임을 강조한 거다.

무심은 그 얘기를 듣던 순간 그 무서운 독사가 지킴이임을 알아챘다. 지킴이까지 자리 잡은 춘심산촌 입구의 비보 돌무더기. 밭의 복됨이 한 치도 새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후로 무심은 그 돌무더기 옆을 지나갈 때마다 각별히 조심한다. 특히 여름에 잡초가 무성해질 때 발아래를 조심한다. 자칫 그 독사를 밟았다가는 큰일 나기 때문이다. 어디, 지킴이 독사가 밭주인을 알아보랴. 그저, 서로가 조심하면서 일대의 평화를 유지하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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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이면 사실 그리 머지않은 시기다. 100년이 채 안 된다. 그 즈음 춘천에는 호랑이가 살았나 보다.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란 단편에호랑이가 두 번이나 언급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지문에서, 또 한 번은 대사에서다.

먼저 지문을 본다.

 

"요새 날씨가 차지니까 늑대, 호랑이가 차차 마을로 찾아 내린다.”

 

산골 나그네의 계절적 배경이 가을이다. 겨울이 가까워지니 산토끼 같은 작은 짐승들이 굴속에서 움츠려 지내는 시간이 늘기 마련이다. 겨울잠을 준비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때 그런 작은 짐승들을 잡아먹고 살던 늑대나 호랑이가 하는 수 없이 가축들이 있는 사람의 마을(훗날 김유정 문학촌이 들어선 마을?)로 내려오는 상황을 위의 지문이 선하게 보여줬다. 

이번에는 대사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본다

 

  괜시리 산신령이 노하면 눈깔망나니 내려보낸다.”

 

호랑이를 눈깔망나니로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원래 망나니란 조선시대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형 집행수. 사형 집행수처럼 무서운 존재 호랑이를눈깔망나니라 부른 것이다.

상상해 보자. 컴컴한 밤에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의 첫 인상은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은 눈동자가 전부가 아니었을까? 어두운 밤에 이웃 마을로 마실가던 사람이 그런 불길과 맞닥뜨렸다면 이미 혼이 반 이상 나갔다. 그 결말은 상상에 맡긴다.

뛰어난 대유법(代喩法)이다.

 

밤이면 늑대나 호랑이가 출몰하던 100년이 채 안 되는 춘천의 한 풍경을 그려본다. 무섭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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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동해곰치라는 식당 간판이 좋다. 절대 나는 이 식당 주인과 아무런 관련도 친분도 없다.

 

내 기억으로는 동해곰치라는 간판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다. 왜 그럴까, 이제 곰곰이 헤아려본다.

첫째. 우선동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좋다. ‘동해는 우리나라 바다다. 우리나라 바다에 남해, 서해도 있으나 나는 동해가 이미지 상으로는 아무래도 제일 낫지 않나 싶다. 해가 밝아오는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점에서 남해나 서해보다 귀하면서 친숙한 느낌을 주는 때문이 아닐까. 하물며 애국가의 첫 구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인 데에서는 더 말할 게 있으랴.

둘째. ‘곰치라는 단어의 이미지도 좋다. ‘곰치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렇게 풀이했다.

흐물흐물한 살집과 둔한 생김새 때문에 물텀벙, 물곰이라고 불린다. 몸은 길며 탕으로 끓이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서 음주 후 속 풀이에 좋다.’

과연곰치는 술꾼들이 술 마신 다음 날 해장하러 찾을 만했다.

더 쪼개서 살핀다.‘곰치는 이렇게 풀이된다. ‘일정한 모양이나 형태, 속성 따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혹은 서술어의 어간 뒤에 붙어, 그러한 모양이나 형태, 속성 따위를 띠는 물고기임을 나타내는 말.’

따라서 곰치는 곰 닮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풀이해도 될 듯싶다.

우리에게 얼마나 친숙한 단어인가.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부터 곰은 등장한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그 부분을 소개한다.

여자의 몸이 된 곰(웅녀)은 혼인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이에 환웅이 잠시 인간 모습으로 바꾸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 ‘은 우리 민족의 어머니 같은 고귀한 존재이다. 고귀하지만 그렇다고 거리감이 있지는 않다. 그 예로써 이란 말 앞에 미련한이란 수식이 잘 붙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눈치 빠른 사람보다는 미련한 사람에 더 정감이 가지 않나?

그런 곰을 연상시키는 물고기가 곰치인 거다.

 

셋째. ‘동해곰치는 발음하기 좋다. 쪼개서 살핀다. 우선 각 글자에 쓰인 모음들의 배열이다. ‘= = ㅏ ㅣ = = 임을 봤을 때 동해곰치란 발음은 ,모음의 반복임을 깨닫게 된다. 같은 모음의 반복은 리듬을 낳는다. 비록 네 글자에 불과한 식당 이름이지만 발음했을 때 친숙하게 입에 붙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 글자에서, ‘이라는 격음이 주는 청각인상의 강조를 빠트릴 수 없다. 귓전에 남은 격음는 기억으로 이어졌다.

 

넷째. ‘동해곰치라 할 때 그 시각적 이미지가 아주 좋다. 우리에게 동해는 늘 푸르고 맑은 바다이며 곰치또한 얕은 하천이 아닌 깊은 바다에서나 잡는 물고기이다. 두 단어 모두 바다 그 자체이거나, 바다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전 날 술을 마셔 쓰린 속을 동해곰치가 바다처럼 시원하게 풀어줄 거란 희망을 가질 만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동해곰치식당 사장과 아무런 친분도 관계도 없다. 그저 간판 이름이 좋을 뿐이다. 60년대 대중가요에 노란샤츠 입은 사나이가 있다. 그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맞다. 곰치는 결코 잘난 물고기는 아니지만 그 씩씩한 생김생김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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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일은 여하튼 사건이다. 비 내리지 않았더라면 별 일 없었을 일상(日常)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편하게 이뤄지던 외출도 비 내리면 불편하게도 우산을 따로 들어야 한다. 물론 우산 없이 그냥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온몸이 빗물에 젖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모습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거나 비루먹은 강아지 꼴이 되거나.

비가 내리면 지붕 위나 마당에 놓고 말리던 고추들도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태양초 만드는 일을 망친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 벌어먹고 사는 막노동 사람들은 일 나가지 못해 한숨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런 노래가 있다. “에헤이 에헤이이 에헤이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 / 우리가 놀면 놀고 싶어 노나/ 비 쏟아지는 날이 공치는 날이다

광장이나 인근학교 운동장을 빌려 하려던 단체행사는 며칠 뒤로 미루거나 그도 아니면 대폭 축소해서 강당 같은 실내에서 해야 한다. 행사의 낯이 서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림 속 춘천에 비가 내린다. 당장 일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그렇지만 새삼스레 되살아나는 두려운 기억이 있다. 오래 전 춘천은 수해가 잦았던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장마 비에 도시의 반 가까이가 수해를 입은 적도 있었다. 두 개의 강이 봉의산 근처에서 만나 도시를 감싸듯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춘천에 비가 내리면 알게 모르게 우리 가슴 한편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터.

서현종 화백의 이 그림에는 그런 불안감이 보인다. 춘천의 하늘도, 자랑거리인 봉의산도, 거리도 온통 무채색 빗줄기에 젖어 가는데이런 상황이 마냥 계속된다면 봉의산 정상에 삐죽이 솟은 송신시설에 벼락까지 치면서 도시는 결국 침몰할 것 같다. 이런 불안감을 견디게 하는 게 그림 좌측 하반부, 승용차의 붉은색 브레이크 불빛이다. 본디 붉은색은 뜨거운 정열이거나 불안감이나을 상징한다. 춤추는 여인의 붉은 옷차림은 정열을, 소방서 차의 붉은 외관은을 뜻한다. 하지만 서 화백의 이 그림에서 붉은색 브레이크 불빛은, 무채색의 어두운 세상에 대응하는 유일한 유채색으로써 전체 풍경의 좌우균형과 비 내리며 엄습한 불안감까지 잡아준다.

전체 풍경의 좌우균형이란 말은 이런 뜻이다. 그림 상반부 우측의 봉의산이 검게 넓은 면적을 차지했는데 그에 맞서듯 그림 하반부 좌측의 차가 하얀색으로서 넓은 면적을 차지했으며 그 때 차의 붉은 브레이크 불빛이 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이 그림의 비는, 해 지기 전 오후에 갑자기 내린 비다. 그 까닭에 갑자기 어두워진 주위에 놀라 상가들은 전등들을 켰지만 도로 변 가로등들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원래 비 그림은 수채화가 제격이다. 물감으로 그리므로, 페인트로 그리는 유화와 달리 그림 대상인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 화백의 비 오는 춘천그림은 물감 아닌 재료(페인트? 크레파스?)로 거칠게 그려졌음에도 질감이 그에 못지않다. 못지않을 정도가 아니라 빗물이 캔버스 밖으로 넘쳐날 것 같다.

 

이 그림에서도 우리는 숨바꼭질 놀이를 해야 한다. 우선 봉의산 정상에 높이 꽂힌 송신시설이다. 그런 시설물들이 모조리 제거된 요즈음의 봉의산과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최소한 2019년에서 몇 년 전 춘천이 배경이다.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가 하이빔을 켰음을 놓쳐서도 안 된다. 차의 하이빔은 비가 급작스럽게 많이 내려서 운전하는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안감과 긴장은 공포영화의 필수 요소다. 이 그림에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하튼 우리는 그림에 배인 긴장과 불안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하얀 차 브레이크 등에 쓰인 붉은색이, 차 말고도 멀리 작게 한 점 찍혀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게 무엇일까? 내리는 비 때문에 시야가 분명치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다. 하긴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비 내리면 멀쩡했던 풍경에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하고 그렇다면 그 정체를 몰라도 그만이다.

서현종의 비 오는 춘천그림은 일상에 잠복해 있다가 비가 내리면서 드러나는 도시민의 불안을 그렸다. , 굳이 무슨 내용을 그렸는지 알려고 골몰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그림을 보며 당신 가슴 한편이 불안해진다면 그것으로써 충분하다. 시험 문제를 푸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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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춘심산촌의 관정 개통은 38일에 이뤄졌다. 38, 관정 속 모터에 마중물을 붓고서 전기를 넣으면 파바박!’ 소리에 이어 콸콸콸!’지하수가 별 일 없이 잘 나왔던 것이다.

그 지하수가 배출되는 수도 시설은 세 군데다. 관정 바로 옆의 수도와, 농막 앞 개수대의 수도와, 농막 안 씽크대의 수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3월 1일) 모처럼 관정 개통을 일주일 앞당겨봤다. 지난겨울이 예상 외로 덜 추웠을 뿐만 아니라 요즈음 맞는 봄 햇살이 아주 화사했기 때문이다.

관정 쇠판 덮개를 열고 들어가 모터에 관을 이은 뒤 마중물을 부었다. 전기를 넣자 이내 파바박!’소리에 이어 관정 바로 옆의 수도꼭지에서 지하수가 콸콸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날씨가 예년보다 따듯했으니까 일주일을 앞당겨 개통해도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다음으로 농막 앞 개수대까지 부지런히 걸어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이런,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농막 안 씽크대의 수도도 마찬가지였다. 그 수도꼭지들을 틀어놓은 채 저물녘까지 기다려봤지만 변화가 없었다. 물론 관정 바로 옆의 수도에서는 줄기차게 지하수가 나왔다.

깨달았다. 관정에서 농막까지의 거리가 30m. 그 사이의 땅이 여전히 얼어 있다는 게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 사이의 땅까지 다 녹으려면 천생 일주일쯤 지나야 할 듯싶었다.

 

몇 년째 춘심산촌의 관정 개통은 38일에 이뤄졌다. 누구도 그 날짜를 어길 수 없다. 춘심산촌 또한 대자연의 일부이며 대자연의 순행(順行)은 어느 한 개인이 어길 수 없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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