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가을이 아니었을까. 그 즈음은 자가용차는 꿈도 못 꾸던 때라서 출퇴근을 택시 합승이나 시내버스로 했다.
그 날 나는, 어둑해지는 명동 부근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사는 동네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봤더니 최종남 선배님이었다. 선배님은 닭갈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웃으며 내게 제의했다.
“소주 한 잔 할까요?”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인사 나눈 적이 없었으니,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사양했다. 부리나케 집에 가서 애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무릎도 안 좋은 몸으로 종일 애 보느라 힘들던 때였다.아내는 직장생활에 집안 살림까지 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사실 그 날 내가 선배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닭갈비 골목의 어느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을 게다. 그즈음만 해도 나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참 아쉬운 기회였다.
선배님과 이번에 모 단체의 글짓기 심사 관계로 만났다. 선배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제는 몸이 안 좋아 술을 멀리하는 신세다. 결국 술 한 잔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한 채 노후를 맞은 셈.
30여 년 전 그 날 어둑해질 때 술 한 잔 제의에 응했더라면 얼마나 술맛이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 최종남 소설가 : 장편소설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 단편소설집 ‘회색판화’ ‘단둥역’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