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자리의 날개는 참으로 약하다. 손 끝으로 잡아 조금만 힘주면 바스라진다. 때로 삶은 그런 잠자리 날개와도 같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평온했던 삶이 송두리째 전복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삶의 가벼움을 그것도 아주 예민하게 느끼는 작가, 그가 바로 할런 코벤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느닷없는 공격을 당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모퉁이를 돌았는데 갑자기 강도가 겨눈 총구를 맞이한 것과 유사하다. 예측할 수 없었던 시간과 장소에서 불현듯 들어온 것이기에 블랙홀에 붙잡힌 빛처럼 삶은 사정없이 끌려 들어간다. 그 혹은 그녀들의 삶은 갑자기 암흑이 된다.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짙어버린 어둠 속에서 몸으로 더듬으며 진실과 구원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진실은 곧 구원이다. 지금 겪고 있는 환란(患亂)의 이유를 찾는 것이 곧 현재의 고통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인 것이다. 이것이 할런 코벤이 선사하는 미스터리가 가지는 이채로운 점이다. 그의 미스터리는 다른 것과 다르게 독특한 작용을 한다. 이것은 셜록처럼 풀어야 할 트릭이 아니다. 필립 말로처럼 도덕적으로 무너진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거나 개인의 신념을 타락시키려 유혹하지도 않는다.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는 전혀 부정적인 게 아니다. 설령 주인공이 그로 인해 목숨마저 위험할 정도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코벤의 미스터리는 지금 삶이 가짜라는 것을 알려주는 전서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지금까지 진짜라고 믿었던 앤더슨으로써의 삶이 가짜라고 알려주었던 '빨간 약'.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는 바로 그것이다. 한 마디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탈옥을 위해 준비된 숟가락.


 "진짜 삶을 찾게 해 주는 할런 코벤의 빨간 약, 자네도 한 번 먹어볼 텐가?"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과거 때문이다. 코벤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당하는 곤경은 대부분 과거와 관련이 있다. 그는 과거 사건의 피해자였거나 가해자였다. 상실의 아픔을 억지로 잊었거나 책임을 회피했다. 주인공이 과거에 어떤 행위를 했건 간에 늘 존재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사건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 했다는 것. 그저 잊거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달아났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과거는 아주 솜씨가 좋은 술래다. 어디에 숨든 늘 자신을 찾아낸다. 자신에게 양심이라는 내부고발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혹은 그녀는 진실이든 책임이든 싸우기 싫어서 도피를 선택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의 투쟁. 그 기억은 계속 주인공에게 말한다. 지금 네 삶은 가짜라고, 진실과 책임을 외면하는 한 진짜 삶은 너에게 없다고. 하지만 과거와 대면하는 게 고통스런 주인공은 쓴 약을 억지로 삼키는 마음으로 모르쇠 한다. 잠깐이라도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마약을 맞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이것은 결코 올바른 삶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악순환만 계속 될 뿐이다. 뭔가가 나타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과거와 대면하여 진실을 알고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여 망각과 회피로 일관된 가짜 삶의 질곡으로부터 건져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미스터리다. 그것은 너구리처럼 굴 속 깊은 곳에서 움츠리고만 있는 자신을 나가서 진짜 삶과 대면하라고 내몰기 위해 피우는 연기와 같다. 연기가 매캐우면 매캐울수록 자아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짜 삶과 마주하려고 나가게 될 것이다. 코벤의 미스터리가 이와 같다. 그의 미스터리가 납치와 살인처럼 어둡고 잔혹한 색채를 띠는 이유는 단 하나, 구원을 향한 탈출의 속도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다.


 

2004년에 발표된, '단 한 번의 시선'은 이러한 코벤 미스터리의 결정체와도 같은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할런 코벤 특유의  '아주 사소한 계기로 절단나는 삶'이 바로 드러나 있다. 주인공은 남편과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으며 직업이 화가이나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슬럼프를 겪고 있는 그레이스. 그녀의 삶은 정말 아주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절단 나 버린다. 그것은 바로 사진 현상소에서 찾아온 가족 사진들 속에 끼어 있던 이상한 사진 한 장(원제 그대로 JUST ONE LOOK!). 분명 자신이 찍은 사진이 아닌데다 아무래도 사진 속 인물 하나가 남편 같아서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그 날 밤 갑자기 차를 몰고 집을 떠난 남편은 그대로 실종되어 버린다. 그렇게 느닷없이 닥쳐온 곤경 앞에서 지금껏 평온한 삶을 살던 그레이스는 어찌할 바 모르고, 남편 사건은 점점 실종에서 납치라는 게 밝혀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압박해오는 15년 전 그녀의 과거. 그것은 '보스턴 대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전 미국을 전율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한 록 뮤지선 콘서트 장에서 일어난 그 사건은 누군가 쏜 총 한 방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로 앞다투어 달아나느라 치이거나 깔려 목숨을 잃었는데, 그레이스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유일한 생존자였다. 마치 자신의 이름대로 그레이스, 즉 축복을 받은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 콘서트 장에 갔으며 어떻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지, 그 날의 기억을 모조리 상실한 것이다. 그것은 정말 기억 상실인 것일까? 혹시 그 날의 고통과 죄책감을 애써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는 아닐까? 남편의 실종과 함께 불시에 나타난 인물인 칼 베스파가 그것을 상기시킨다. 그는 '보스턴 대학살'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자 암흑계의 거물. 칼 베스파는 남편의 실종이 15년 전 사건과 관계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 편, 정체불명의 사진은 그레이스에게 남편에 대한 의혹을 일으킨다. 사진 속 남편을 보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은 남편이 숨긴 과거가 슬쩍 꼬리를 내민 것 같았으며 지금까지 남편의 삶을 잘 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아는 게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진 한 장은 그레이스가 잘 안다고 여겼던 삶의 모든 것들을 'PAINT IT BLACK' 하면서 진실과 출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무저갱 깊숙이 빠뜨려 버린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은 그 바닥까지 내려가서 밑바닥에서 다시 발을 차고 올라오는 것이라고 하던가? 그레이스 역시 그렇게 된다. 모든 것을 잃게 된 그 순간, 홀연히 자신이 정말 알았어야 할 진실, 보았어야 할 사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레이스에게 공포와 불안 속에서 좌충우돌했던 무저갱은 한 마디로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그레이스는 이제야 진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이름대로 그레이스, 즉 축복을 받은 것이다.


 [사람의 삶이 가진 경계란 이렇게 낮고 연약할지 모른다. 외형의 경계 안에서 움츠린 채로 자기 보호에 급급하기 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직시하고 그 진실과 책임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원서의 표지(너무 확대 해석인 지도^^;).]


 많은 미스터리들은 우리 역시 삶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다룬다.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가 다른 미스터리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미스터리들은 그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한 탐색의 시선을 바깥 세계로 돌리지만, 코벤의 미스터리는 탐침을 자기 내부로 향하게 한다는 데 있다. 고뇌와 불안을 가져오는 문제가 있을 때, 코벤이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연어가 되라는 것이다. 바깥 탓을 하려는 것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근원으로 열심히 회귀하는 연어처럼 자기 내부로 거듭해서 깊이 깊이 들어가라고 그는 조언한다. 이는 '단 한 번의 시선'에 나오는, 또 한 명의 가정 주부 샬레인 스웨인이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녀는 권태와 우울에 빠져 있었다. 열정적인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던 남편과는 이미 오래전에 몸과 마음 모두 멀어졌고 현재의 늙고 초라한 모습과는 너무나 멀었던 과거 화려한 모습에 대한 미련만 곱씹으며 그러느라 더욱 비대해진 우울 속에서 무의미한 나날만 보내고 있었다. 처음 그녀는 그런 비참과 우울의 나날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 줄 무언가를 오직 바깥에서 찾았다. 바로 옆집의 한 남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구원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남편 목숨만 위험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그녀가 참여하게 된 미스터리(옆집 남자를 훔쳐보다 그녀가 발견한 미스터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하게 진행된다.)는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게 만든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적극적으로 미스터리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려고 하고 거기에 따르는 자신의 책임마저 다한 결과였다. 바로 이러한 샬레인 스웨인의 경로가 할런 코벤의 미스터리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것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진실이라 할지라도 외면하지 말고 정직하게 직시하며 책임져야 할 것은 기꺼이 책임지는 태도. 샬레인 스웨인은 바로 그것을 나타내며 결국 소설에서 그럴 수 없는 이들은 모두 파멸했다. 이것은 또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범인과 얼마나 정반대의 모습인가? 회피와 무시로만 일관하는 것은 더 큰 비극만 부를 뿐이라는 것을 이 인물만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가 또 있을까 싶다. 아, 하나 있긴 있구나. 우리나라의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일당. 그들이 구속되면 할런 코벤의 이 소설이나 사식으로 넣어줘야겠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돈조차 쓰기 아까운 존재들이다. 어차피 넣어줘도 안 읽을 것 같다. 그들 중 둘은 드라마만 열심히 본다고 들었던 것 같으니. 여하튼, '단 한 번의 시선'은 독특한 미스터리 세계를 선보이는 할런 코벤의, 그런 미스터리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꼭 한 번 만나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미스터리가 내적으로 깊어지면 어떤 형상이 되는지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e want more

도발적으로 상상하라!

페미니스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페미니즘 열풍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그려보아야 할 때입니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미국 페미니스트 57인과 한국 페미니스트 7인이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미래,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만나보세요.


We want more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내일, 당신이 살고 싶은 그곳

리아 페이-베르퀴스트·정희진 외 지음|김지선 옮김


* 김지양(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하나(브랜드라이터), 은하선(섹스칼럼니스트), 이진송(계간홀로》 편집장), 정희진(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최서윤(월간잉여》 편집장), 최은영(소설가) 필자로 참여했다.



더 많이 원한다.
우리는 이 간단한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참 어렵다. 여자라서, 
더 많이 원하도록 허락받지 못해서. 
음식, 권력, 섹스, 사랑, 시간……. 우리가 이런 것들을 갈구하면 
게걸스럽다느니 이기적이라느니 헤프고 대책 없고 어리석다느니 하는 욕을 먹는다. 
덜 원하고 덜 배고파하는 게 우리한테는 ‘합리적’이란다. 
이렇게 한참 살다 보니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게 된다. 
여성 혐오가 우리의 상상력까지 짓밟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 한창 뜨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내일 필요할 것을 생각하기는커녕 
당장 위기에서 숨 돌릴 틈도 없다. 
가부장제와 끊임없이 술래잡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슨 재주로 그런 큰 꿈을 꾸겠는가?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이 책은 바로 이런 의문들을 불쏘시개 삼아 태어났다. 
에세이, 이야기, 시, 시각예술 등을 망라한 작품 64편은 
당신의 페미니즘을 위한 창조적 상상력을 먹여 살릴 양식이다. 
당신이 꿈꾸는 페미니즘에 우리가 불을 지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 함께 야심만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욕심쟁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머리말 중에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실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5명)


* 서평단 신청 방법

1. 본 게시물을 본인의 블로그나 SNS에 스크랩해 주세요. (전체 공개)

2. 스크랩 주소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아래 댓글로 남겨 주세요.


- 모집 인원: 5명

- 모집 기간: 2월 24일 ~ 3월 2일

- 당첨자 발표: 3월 3일 금요일 예정 (휴머니스트 서재 공지)

- 도서 발송: 발표 게시물 비밀댓글로 당첨자 정보 취합 후 일괄 발송     


* 서평단 활동 방법

1. 도서를 받으신 후, 일주일 내에 알라딘 서재(필수)와 개인 블로그 또는 SNS 1곳에 리뷰를 남겨주세요.

2. 당첨자 발표 게시물에 댓글로 리뷰 주소를 남겨 주세요.






 미국과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려보는 유토피아의 모습 궁금하네요.

 알고 보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그랬듯이, 유토피아란 실은 현실 사회의 대차대조표 같은 존재죠.

 상상된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거꾸로 지금 현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첨예하게 드러내는...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유토피아는 남성 중심에 침윤된 현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과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 것인지 보다 잘 알려줄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북한의 소설이라고 하니 흥미로웠다. 옛날도 아니고, 90년대의 북한 실상을 보여준다는데, 현재 북한의 모습을 그 내부에 있는 목소리로 들여다 보고 싶었던 내게는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 같았다. 저자 '반디'는 필명으로(북한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책이니 실명을 안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 책의 마지막에 있는 '출간에 부쳐'라는 글에 따르면, 1950년 태생의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작가라고 한다. '고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시점에 시작된 소위 고난의 행군으로 자신과 인연을 맺고 살아왔던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고, 먹고 살기 위해 고향땅을 등지고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지금껏 살아왔던 북한 사회(p. 270)'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지게 된 작가가 폐쇄 정책으로 바깥 세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북한 사회의 참된 모습에 대해 '고발'할 생각으로 89년부터 96년 사이 완성한 7개의 단편을 담고 있다. 흥미가 동하여 읽긴 했지만 사실 별 기대를 하진 않았다. 고발 문학은 목적성이 분명한 글이라 그 선명한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문학적 가치와 재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원고에 얽힌 사연도, 제목도 여기의 소설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으므로 얼른 보통의 고발 문학들이 거치는 궤적을 그대로 따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 '탈북기'까진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두 번째 단편 '유령의 도시'에서 그런 생각은 보기 좋게 깨어지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7개의 단편 중, 이 '유령의 도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전체주의가 어떻게 하나의 사회를 장악하고 개인들을 유령처럼 존재감 없는 것으로 만드는지 카프카적인 색채로 참으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평양. 국경일을 하루 앞두고 평양은 행사 준비로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중이다. 무려 100만의 시민이 참여하는 시위 행사다. 이번 시위는 특히 전세계에 선전용으로 방송되는 것이라 정권의 시민 동원과 준비는 한층 더 가열차고 집요하다. 이런 상황이 주인공 한경희는 여간 괴롭지 않다. 자신의 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김일성 사진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크게 울어대는 것이다. 하필 자신이 참여하는 궐기대회 장소가 마르크스의 초상화가 내려다 보고 있는 곳이라 아이를 도저히 데려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픈 애를 집에 혼자 둘 수도 없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한경희는 행사에 빠질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사정이 있어도 또 그녀가 공산주의 항쟁에 희생당한 이의 유가족이라는 신분으로 신변이 철저히 보호된다고 해도 북한의 전체주의는 그녀를 곱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필이면 집의 창문에 김일성의 초상화가 보여서 아이 때문에 커튼을 쳐 놓았더니 이내 집에 커튼이 쳐져 있는지, 안 쳐져 있는지 관리하는(평양의 모든 집은 김일성 수령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김일성 초상화가 잘 보이도록 창문의 커튼을 내려서는 안 된다.) '가두 비서'가 찾아와 커튼을 걷으라고 닦달한다. 한경희는 할 수 없이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은 왜 그런 사실을 알렸느냐고 원망한다. 벌써 당간부인 남편 상관에게 그 말이 들어가 남편이 엄중한 경고를 받았던 것이다. '유령의 도시'는 유령처럼 아무런 존재감이 없게 되어버린 전체주의 안에서의 개인을 다양한 문학적 장치를 통해 신랄하게 보여준다. 아이는 마르크스를 괴물 '어비'로 여겨 우는데, 나중에 한경희는 평양이라는 도시 전체가 이미 '어비'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보게 된다.


 에구머니나! 저게 뭐지?... 두 고층 아파트 지붕을 양다리고 디디고 호통치는 털이 북실북실한 저 괴물 같은 것이!... 옳아! 저게 바로 '어비'로구나!

 한경희는 넋이 나가도록 질겁하며 어디로인가 냅다 뛴다. 그런데 어비가 디디고 선 아파트의 벌집처럼 총총한 창문마다 오종종 긴장하며 바깥 동정을 살피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모두 토끼들이 아닌가! 아하, 저게 바로 남편이 걸핏하면 외우곤 하던 토영삼굴의 그 토끼들이구나. 한데 이상한 것은 한경희 자신도 어느새 토영삼굴에 뛰어들어 앉아 있는 것이었다.(p. 96)


  창문이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오직 체제 유지를 위한 감시의 구멍이 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그저 겁먹은 토끼일 뿐이다. 살던 굴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죽지 않으려면 '어비'의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한다. 그 '어비'는 아주 조금의 흠도 용납하지 않고 거역에 따른 처벌 역시 가차 없다. '탈북기'에서 일철이 가족들 전부를 데리고 탈북을 결심하게 된 건 자신에게 따라다니는 '적대군중'이란 신분 때문이었는데, 그런 신분이 붙게 된 연유는 너무나 사소했다. 아버지가 당에서 받은 한 파장의 '랭상모(벼농사를 위해 심는 모)'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까지 온갖 불이익을 받게 되니 일철은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디는 '탈북기'와 '유령의 도시'처럼 전체주의의 희생자로 주로 '가족'을 놓는다. 모든 작품에서 전체주의는 가족을 파괴시키는 주범으로 등장한다. 김일성 행차라는 '1호 행사' 때문에 통행이 금지되어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 지척에 두고도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지척만리)나, 역시 '1호 행사'로 인해 역이 폐쇄되어 그로 인한 혼잡 탓에 부상당한 가족의 이야기(복마전), 그리고 공장의 할당량을 채우느라 아내가 아궁이에 쓸 장작 좀 구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결국 재떨이를 던져 아내를 내쫓고 마는 한 노인의 이야기(준마의 일생)가 대표적이다. 더구나 그 눈이 '어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비' 아래서 지배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눈 또한 '어비'의 눈이라, 그 상호 감시 때문에 겁먹은 토끼들은 더욱 체제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각본에 따른 정확한 연기는 개인이 전체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몸짓이다. 단편 '무대'는 북한 사회 자체가 하나의 무대이며, 자신들은 그저 체제가 원하는 연기를 하고 살 뿐이라는 것을 절망 속에서 고백한다. 이 모든 단편들에 나오는 주역들은 하나같이 한 평생 체제를 믿고 그것에 헌신해 온 인물들이나 그것을 계기로 그들은 체제가 '빨간 버섯'과 같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경희가 '어비'를 보았던 것과 똑같이.


 "왜 자신해서 벽돌집 시녀가 됐던가 말야!"

 "간판에 속아서였지. 나처럼. 속엔 독재의 칼을 품고도 겉으로만 평등이요, 민주주의요, 역사의 주인이요, 지상낙원이요 하는 허울 좋은 그 간판에 속아서 말야."

 "맞네. 세상 만물은 독한 것일수록 고운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는 법이네."

 "그래, 독버섯처럼 말이지? 독버섯처럼!" ('빨간 버섯', p. 261 ~ 262)


 '고발'은 한 마디로 북한 사회라는 단일한 차원을 넘어, 전체주의가 얼마나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겁먹은 토끼로 만들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에 박근혜나 김기춘 같은 존재들이 전체주의를 꿈꾸는 지도 모른다. 그들이 만들었던 '블랙리스트'야 말로 '어비의 눈'이 아니던가! '계엄령을 선포하라!'나 '촛불 시민 총살하라!'는 팻말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당당히 들고 다니는 '태극기 집회'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고발'은 '우린 북한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하고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니라 '이러다 우리도 이렇게 될 지 몰라' 하는 무서운 경고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혹시 고운 허울만 뒤집어 쓴 독버섯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응준. 잘 모르는 작가다. 고작 그의 소설 두 권만 읽었으니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소설로 만나 본 그는 문장을 참 잘 쓰는 작가였다. 왜 어떤 글을 읽으면 글 쓰는 솜씨를 훔치고 싶은 작가가 있지 않은가? 솔직히 그런 작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번에 나온 그의 책, '영혼의 무기'를 보고 알게 되었다. 요컨대, 이런 글을 통해서다.


 요즘은 누구든지 개인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글을 올려버리는 가공할 자신감과 광기에 가까운 습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글을 쓰는 능력을 함양하고자 하는 이라면 아직은 미숙한 자신의 글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진정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과거 우리의 작가들은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글이 발표되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그리고 대중은 그러한 작가정신을 흠모함으로써 자신의 소박한 문장을 되돌아볼 줄 아는 아름다운 교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작가들의 글은 한낱 철지난 상품이 돼버리고 그런 작가들을 자신의 분신보다 열등하게 여기는 대중의 문장은 변기 모양의 흉기다.(...) 글이 그 내용과 형태의 가치를 담보할 때까지 스스로 감추고 기다리는 태도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기법일진대 이 당연한 사실을 작가와 대중이 모를 때 그 사회는 언어의 무간지옥 속에 갇힌다.(p. 201 ~ 202)


 그는 쉽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의 글을 세상에 내보는 것을 두려워 하며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된 글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였다. 얼른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도자기 만드는 장인이 떠올랐다. 설령 단 한 개의 도자기도 세상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격이 되지 않으면 모조리 깨버리는 장인. 이응준에게 글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쓴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에서 언뜻 그런 것이 감지된다. 그에게 있어 글은 그냥 글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 전부를 걸어야 할 지도 모를, 영적인 그 무엇이다.


 필사로 문장이 얻어진다는 것은 철저한 허상이다. 문장은 영적인 물질이다. 그것은 반 이상이 타고난다. 또 문장을 못 쓴다고 소설가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거칠고 아귀도 맞지 않는 문장을 쓰면서도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름을 날린 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이 아름다운 문장의 소설가라는 말을 듣지는 못할뿐더러 문장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소설의 맨 처음이기는 하다. 더더욱 필사를 멀리 해야 하는 이유에 다름 아니다. 작가가 되려면 일단은 마음에 새겨진 것들을 글로 옮겨야 한다. 그것이 비록 누구의 영향을 받아 싹을 틔웠든 간에, 결국에는 작가 나름의 해석과 정신이 담긴 글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필사를 통해 작가가 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들 무슨 대단한 고행 중에 문학의 본령을 터득한 줄로 아는데, 알고 보면 그들의 글을 문학으로 승격시킨 요소는 무식한 필사가 아니라, 하다 못해 필사까지 감행하게 한 열정과 노력이었을 것이다.(p. 229)


 '영혼의 무기'를 읽다보면 그가 굉장히 종교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은 그런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번제로 드리는 기도는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 말이나 막 할 때 눈을 뜨고 있는 우리는 눈을 감고서 기도한다. 세상은 살인적인 속도에 온갖 현란한 치장과 야비한 선전 들을 실어서 보여준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이라는 상처는 참혹해지고 삶은 중심을 잃지 않았던가. 나를 보고 사랑한다고 하는 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듣고 뭔가를 깨달은 그 사람의 영혼을 믿는다.(p. 27)


 그것이 작가로써 가지는 세상과 대중에 대한 의무이기에. 쉽게 말하자면, 진정성. 그랬기에 그는 설사 자신의 문단 생활이 망쳐지더라도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 '침묵의 공범'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되었을 것이다.


 신경숙은 한국문학의 당대사 안에서 처세의 달인인 평론가들로부터 상전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의 종신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등등'의 요인들로 인해 문단 최고의 권력이기도 하다. 그러한 신경숙이기에 신경숙이 저지른 표절이 이른바 순수문학에 대해서는 순진할 수밖에 없는 대중, 특히 한 사람의 작가만큼이나 그 개개인이 소중하기 그지없는 한국문학의 애독자들과 날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인 한국문학의 본령에 입힌 상처는 그 어떤 뼈아픈 후회보다 더 참담한 것이다.(p. 389)


 '영혼의 무기'는 이런 이응준의 글들을 담고 있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소설가를 겸하는 그가, 시와 소설로 발표하지 않은 글을 다양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문학적 장치로 여과되지 않은 것이라 더욱 자신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작가는 스스로 '이설(異說)집'이라 이름 붙였다.



 이설(異說). 그것은 왼손잡이와 같다. (너무 서툰 비유라 미안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계속해 보련다.) 다들 오른손으로 하라고 강요하지만 결코 굽히지 않는 왼손잡이. 당당히 왼손을 들고 오른손잡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외치는 왼손잡이. 이 책에 담긴 이설(異說)의 형상이다. 그것은 듣기에 편치 않은 말이다. 고개를 외로 꼬고, 삐딱한 시선으로 면전에서 대놓고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달라' 하는 말이니까. 실제로 불편한 글이 있다. 보수와 진보 양 쪽의 적대적이며 편협한 태도들을 공박하는 글을 읽노라면 팔짱만 끼고 말만 앞서는 양비론자 같기도 하고 혹은 잔혹한 괴물에게도 어느 정도 인간성이 있을 것이라 순진하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주의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도중에 책을 던지지 않고 끝가지 읽게 되는 것은 설령 그런 글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에서 어떤 아집이나 타산 같은 것이 아니라 '나도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 하는 식의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맞다. 그의 이설(異說)은 종착지가 없다. 누구나 종착지로 생각하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서는 '아직 우리는 더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길과 같다. 온전한 이해를 위한 부단한 회의(懷疑). 그것이 바로 그의 이설(異說)이다.


 인간에 대한 회의(懷疑)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p. 198)


 그러므로 '영혼의 무기'는 두 가지 점에서 이롭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작가 이응준의 영혼이 가진 전체적인 형상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해답 같은 것은 나와 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해 평소 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향에서 전혀 새로운 쪽을 가리키며 진행되는 사유의 경로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아주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색다른 풍경은 흥미로웠고,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은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무려 831 페이지의 책으로, 책 자체가 무기가 되는 책이지만 지루해서 하품이 나거나 난해해서 건너뛰는 곳은 없었다. 알뜰하게 읽게 되고 살뜰하게 다가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하나는 확실하다. 이응준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작가는 그것 역시 회의(懷疑)해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의 반려견 '토토'에게 바쳐졌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모양이다(정확히는 2016년 7월 1일). '토토'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의 회의(懷疑)가 실은 좀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걸 드러낸다. 어떤 존재든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존재가 얇은 평면이 아니라, 저마다 살면서 감내해 온 과정이 있는 입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타자에 대한 존중이 먼저고,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바로 그런 것을 위한 회의(懷疑)이기 때문이다. 그런 눈을 가진 그이기에, 인간과 동물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나같이 묵직한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존재들이므로.


 세상의 혼돈 앞에서는 숨이 막히듯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그 혼돈을 견뎌내느라 날이 갈수록 강퍅해지고 잔인해지고 사나워지는 사람들 앞에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본다. 만약 공부라는 것이 있다면, 공부란 그 반대편으로 걸어가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이것이 공부의 시작이거나 공부의 전체가 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공부의 중간 점검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릇된 공부는 때려치워야 한다. (2016년 8월 7일 / p. 711)


 그에게 회의(懷疑)란 공부고 종국엔 사랑이다. 이런 이설(異說)을 어찌 감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로는 독주(毒酒)가 약이 되기도 한다. '영혼의 무기'가 그렇다. 자주 흠뻑 취할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상가족놀이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품 경제의 허망한 잔해와도 같이, 짓다가 버려둔 건축 현장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몸에 무려 20번의 칼을 맞아 잔혹하게 살해된 남자의 이름은 도코로다 료스케. '하루에'라는 아내와 '가즈미'라는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견된 두 가지 물증 때문에 이 살인 사건은 연속 살인으로 밝혀진다. 사흘 전, '주얼'이란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던 이마이 나오코라는 21세의 여대생이 교살 당했는데, 거기서도 료스케 살인 현장에 있었던 '밀레니엄 블루' 색의 화학 섬유와 하얀 페인트 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동일인의 범행이라는 게 증거로 뚜렷해진만큼 경찰은 료스케와 나오코의 접점을 확인한다. 그러다 나오코에게 애인을 빼앗겨 원한을 갖고 있었던 'A코'의 존재를 확인하고 주요 용의자로 삼는다. 료스케는 나오코와 불륜 관계였고 'A코' 앞에 함께 나타나 훈계를 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경찰 내부에서 료스케 쪽 인물에게도 살인 동기가 있는 사람이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결국 료스케가 인터넷 상에서 '요시에'라는 이름의 아내와, '미노루'란 이름의 아들 그리고 실제 딸과 같은 이름인 '가즈미'라는 딸과 함께 '가상 가족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료스케는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 모임을 가지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살해되었다. 그들은 인터넷 상에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나누었고 언제나 따스한 위로를 보냈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구는 료스케에 대해 속으로 어두운 생각을 품고 있었을 수도 있다. 료스케의 친딸 '가즈미'가 사건 얼마 전, 우연히 아버지가 낯선 사람과 함께 차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혹시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경찰은 그들 모두를 경찰서로 불러 모은다. 친딸 '가즈미'가 매직 미러를 통해 지켜볼 수 있는 방으로. 그리고 그런 가즈미 옆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전작 '크로스 파이어'의 주인공 형사 이시즈 치카코가 함께 한다.



 '가상 가족 놀이'는 '화차', '이유' 그리고 '솔로몬의 위증'으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가 200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원래 제목은 'R.P.G'. 역할 놀이 게임이라 풀이할 수 있는 'ROLE-PLAYING GAME'을 뜻한다. 바로 료스케가 인터넷에서 가상으로 즐겼던 가족 게임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 제목인 '가상 가족 놀이'는 그것을 좀 더 풀어낸 것이다. 제목은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의 놀라운 반전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진짜 가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짜 가족이었다는 것은 98년에 나온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치카코가 활약한 '크로스 파이어'도 98년에 나왔다. '가상 가족 놀이'에는 '모방범'에서 서류 작업만 하고 있지만 놀라운 통찰력으로 범인이 우연을 가장한 증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다케가미 에쓰로도 등장한다.


 소설은 에쓰로와 치카코가 료스케 살인 사건 때문에 차출되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두 소설을 읽은 사람에겐 꽤 반가운 장면으로 다가올 것 같다. 다케가미는 여전히 범죄 수사에 직접 뛰어드는 것을 싫어하고 당연히 용의자를 직접 심문하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데, 소설에서 원래 심문을 맡아야 할 형사가 병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그 일을 대신 떠맡아버려 입이 밖으로 비죽 나와 있는 상태다. 치카코는 '크로스 파이어'에서의 일 때문에 본청에서 관할청으로 강등되어 순찰이나 도는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전에 가즈미가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 하고 있다고 신고를 했는데 그 때 치카코가 한동안 그 집을 경호한 적이 있어, 가즈미가 아는 얼굴이라는 이유로 차출 되었다. 그녀는 아직 '크로스 파이어' 때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 때의 범인과 비슷한 연령대의 가즈미와 미노루를 보는 게 심적으로 영 편치 않다. 그들, 에쓰로와 치카코가 싫은 일을 맡아 억지로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잔재미다. 료스케의 용의자들이 가짜로 가족 연기를 한 것처럼, 잡아야 할 그들 역시 연기를 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소설에서 이중의 연극이 펼쳐지고 있는만큼 연극은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다. 바로 그것을 통해 미야베 미유키는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우리에게 그렇게 좋기만한 것일까 의문을 제시한다. 이런 마음은 '가상 가족 놀이'에서 어머니 역할을 했던 요시에의 말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라나는 인간관계에는 현실 사회의 인간관계와 비슷한 가치도 있고 온기도 있어요. 허위와 거짓말만 횡행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야말로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에, 자기 모습이나 입장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 있는 본심도 있고, 거기에서 자라나는 친애의 감정도 있는 거예요."(p. 241)


 요시에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숨막히도록 그녀를 가두고 있었던 현실 때문이었다. 나이가 많은데도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받아야했던 온갖 비인간적인 시선들.


 "뭐가 욕구불만이라는 거야. 그렇게 여자를 바보 취급하는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불쾌한 일을 겪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이제 젊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남편이 없다거나 아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데, 그런 소리를 듣는 여자 심정 네가 알아?"(p. 241)


 이런 요시에의 절규는 문득 '화차'의 여주인공 '신조 교코'를 떠올리게 한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사채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하여 타인의 신분을 훔쳐, 그녀에겐 가상의 신분인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 그런 그녀에게 가짜의 삶이 구원이었듯이, 우리 역시도 가상에서 진짜보다 더 커다란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가를 밝히기 이전에 어쩌다 그 혹은 그녀가 가짜의 것에서 위안과 힘을 얻을 생각을 했는지 헤아려봐야 하지 않을까? '화차'에서 '가상 가족 놀이'까지 이어서 생각하면, 미야베 미유키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영화 '화차'에서 사라진 그녀를 찾았던 이선균이 그녀의 진짜 삶을 목도하면서 비로소 그녀의 신분을 상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것처럼. 소설의 비극이 그렇게 된 연유 보다 보이는 현상을 더 중시하는 바람에 일어난 것을 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꼭 이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 바로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가짜라고 믿는 사람들, 그게 가짜이면 최순실의 모든 국정 농단과 박근혜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 이런 그들이야말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진실로 봐야할 전체 그림을 놓치고 마는, 청맹과니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아닐지. 지금 우리 주위엔 그렇게 우리의 시야를 좁히려 하고 본말을 전도시키려 획책하는 가짜 뉴스들이 너무나 많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개의 꼬리로 개를 흔들려는 저열한 술책들이. '가상 가족 놀이'는 이런 것에 쉽게 휘둘리는 이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어줄 것 같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손톱에 때가 끼어 있는지 없는지에 마치 모든 것이 거기에 걸려있는 듯 천착하지 말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2-22 0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7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