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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소나타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11월
평점 :
요즘 갑자기 잇달아 그의 책이 발간되는 바람에 더욱 그 이름을 뇌리에 새겨두게 된 일본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속죄의 소나타'를 읽었습니다.
몇 년 전에 '살인마 잭의 고백'을 통해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작가입니다. 세 가지 점에서 감탄한 바 있습니다. 독특한 설정을 이야기로 잘 풀어낸다는 것과 플롯을 참 잘 짠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굉장히 흡인력 있게 끌고 나가는 것. 간단히 말하면, 참신함과 대중성을 고루 갖추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중 많은 작품이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더군요.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안녕, 드뷔시'가 그렇고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로 나온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그러하며 이번에 나온 '속죄의 소나타'도 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최근 그의 소설이 다시금 이렇게 주루룩 나오게 된 것은 분명 2016에 '안녕 드뷔시'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드라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속죄의 소나타'는 그 보다 전인 2015년에 드라마로 방영되었죠. 읽은 게 '속죄의 소나타' 외에 '살인마 잭의 고백'밖엔 없기 때문에 작가에 대해 아직은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네요. 다만 '참신성'과 '대중성'만큼은 그의 분명한 '트레이드 마크'란 것을 확인했습니다.
네, '속죄의 소나타'도 '살인마 잭의 고백'처럼 독특한 설정을 가집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코시바 레이지라고 변호사인데, 수임료만 많이 주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는 이도 변호해 동종 업계에서 아주 악명이 높습니다. 드라마 '리갈 하이'에 나오는, 사카이 마코토가 분한 왕재수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를 떠올려 보시면 미코시바 레이지 이미지와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악덕 변호사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이 소설이 참신한 설정이라는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앞서 말한 '리갈 하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음 것은 정말 다른 데서 보도 듣도 못한 설정입니다. 미코시바 레이지가 실은 살인자였거든요. 그것도 중학생 때 말이죠. 그냥 죽이고 싶어서 5세의 여자 아이를 죽였습니다. 그러고서도 그게 잘못이라는 걸 전혀 몰랐죠. 네, 그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이런 궁금증이 드시겠죠? 아니, 그런 살인자가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단 말이야? 거기에 대해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기도 한 라이야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법고시는 말이지, 인격은 상관없어. 어때, 재미있지 않냐? 곤경에 처한 사람 돕는 일일 텐데 인간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나처럼 세상 사람들한테 악마라느니 인간이 아니라느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시험 성적만 좋으면 변호사 배지를 받을 수 있는 거다. 일본은 참 좋은 나라라니까."(p. 215)
솔직히 전 이 문장 하나만으로 이 작품이 단번에 좋아져버렸습니다. 라이야 말이 맞습니다. 사법고시에 인격은 필요없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참 좋은 나라입니다. 인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법고시 때문에 우병우도 나왔고, 양승태, 홍만표, 이인규를 지금도 여전히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법 적폐들이 출몰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소시오패스 살인마 출신이 변호사 되지 말란 법도 없죠, 뭐. 소설은 그런 미코시바 레이지가 어떤 남자를 죽이고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무런 인간적인 감정 개입 없이 철저하게 자신에게 혐의가 오지 않도록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역시 사법고시의 은총을 받아 변호사가 된 괴물이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작가는 '속죄의 소나타'란 제목을 붙였던 걸까요?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제목은 결코 비유가 아닙니다. 정말 '속죄'의 이야기이고, 그런 속죄로 나아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 '소나타' 입니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직접 읽으면서 느껴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기에 다른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각설하고, 다시 미코시바 레이지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처리한 시체가 어떤 자연적인 조건의 개입으로 레이지의 예상보다 일찍 발견되어 버립니다. 시신의 신원이 남의 약점을 잡아 그걸로 돈을 뜯어내는 것으로 유명한 잡지 기자 가가야로 밝혀지자 노련한 형사 와타세와 파트너 고테가와는 살인이 그것과 관련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가 최근 찾았던 '도조 제재소'를 방문합니다. 당시 도조 제재소는 사회적으로 꽤 유명한 곳이었는데, 왜냐하면 원래 이 제재소를 경영하고 있던 소이치로라는 남자가 사고를 당하여 뇌사에 빠졌는데 아내가 안락사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아직 안락사를 범죄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난 것이죠. 그런데 그런데 나중에 소이치로의 죽음으로 굉장한 액수의 사망 보험금이 나오는 것으로 밝혀지자 검찰은 아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했을 것이라 보고 살인죄로 기소합니다.
당시 재재소는 경영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아내는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국선 변호사가 바로 하필이면 '미코시바 레이지' 였습니다. 와타세 형사 일생이 도조 제재소를 찾아 가보니 지금은 소이치로 부부의 유일한 아들, 미키야가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겨우 왼손 뿐인 장애인입니다. 그 자리에 나온 미코시바 레이지를 보고 바로 예전의 '중학생 살인마'라는 걸 안 와타세는 가가야가 레이지를 협박하러 왔다가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레이지는 와타세 형사가 굉장히 노련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본능적으로 위기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과연 레이지는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 레이지는 왜 돈이 전혀 안 되는 소이치로 안락사 사건을 맡게 된 것일까요? 레이지는 아내가 소이치로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소이치로 죽음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잡지 기자 가가야는 무엇 때문에 살해된 것일까요? 와타세의 추리는 맞는 걸까요? 이런 이야기 그 어디에도 속죄와 관련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제목은 어쩌자고 속죄의 소나타가 된 것일까요?
아마도 읽다보면 저처럼 이런 많은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 모든 의문은 3부를 지나 놀라운 반전과 함께 모두 해결됩니다. 특히나 3부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기에 여기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것만 슬쩍 눈 감아준다면 이 소설은 꽤 재밌게 다가오지 않을까 합니다. 뭣보다 4부에서 밝혀지는 반전이 꽤나 흥미진진하거든요.
작가가 직접 밝히지 않았기에 조심스럽지만, 미코시바 레이지는 아마도 실존했었던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고베아동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아즈마 신이치로' 입니다. 모두 3명의 초등학생을 살인한 범인이 14세의 중학생으로 밝혀져 일본 열도를 그야말로 충격으로 뒤흔들게 만들었죠. 레이지는 뚜렷한 살인 동기가 없는데 형사가 자꾸 이유를 닦달하자 할 수 없이 즐겨 본 호러 영화 때문이라고 대답하는데, 이 역시 아즈마 신이치로가 했던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는 미성년자였기에 소년원에 수감되었는데, 레이지도 똑같은 과정을 밟습니다. 때문에 분명 아즈마 신이치로가 미코시바 레이지의 모델이 되었을 것 같구요, 그 아즈마 신이치로가 변호사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이 소설이 나왔으리라 전 생각되네요. 물론 아즈마 신이치로의 범행은 레이지의 것보다 훨씬 더 엽기적이었지만.
이런 점 때문에 더 재밌게 읽은 듯 합니다. 참신한 설정과 법정 미스터리 그리고 반전이 주는 산뜻한 맛을 좋아하신다면, '속죄의 소나타'를 한 번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