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이유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가장 밝은 것은 가장 어둔 그늘을 만들기 마련이다. 한 여름에 불현듯 찾아오는 태풍처럼.

 그렇게 영국에서 팔리는 범죄 소설 중 1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존 리버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 '치명적 이유'는 시작부터 명백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시간을 보여준다. 누군가 죽음으로 가는 시간과 동시에 에든버러의 연중 최고 행사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모두가 하나되어 웃고 떠드는 동안에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형당하고 있었다. 머리, 팔꿈치, 무릎, 발목에 한 발씩, 그렇게 여섯 발의 총알을 맞아. 존 리버스는 시체를 보자마자 알아차린다. IRA가 주로 배신자를 처형하는 방식인 '식스팩'이라는 것을.

 누군가 그것을 모방해 자신의 조직을 배반한 이를 처단한 것이다.


 그 처형 방식을 알아보았다는 이유로 존 리버스는 테러 조직 수사를 전담하는 팀으로 차출된다. 자신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 그 곳에서 그는 수사해야 한다. 한 편, 그는 리어리 신부에게서 개인적인 부탁을 하나 받는다. 에든버러에서 가장 거칠고 위험한 동네인 '가르-비'에 그 곳 청소년을 선도하기 위해 센터 하나를 만들었는데, 최근 그 센터 운영 방식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가르-비'는 카톨릭인 구교와 개신교인 신교의 갈등이 극심한 지역으로 적어도 청소년만은 종교적 갈등에서 자유롭도록 만들기 위해 센터를 지었는데 요즘 카톨릭 아이들이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러니 어찌 된 사정인지 알아보고 이대로 카톨릭 아이들이 센터로 올 가능성이 계속 없다면 운영자에게 폐쇄토록 하라고 리버스에게 당부한다. 그러나 이 일 역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거친 동네에 사는 아이들답게 아이들이 리더인 데이비 수터를 중심으로 완강히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란한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처형 당한 남자의 신원이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전작에서 리버스가 감옥으로 보낸, 리버스에겐 배트맨의 조커라고 해도 무방할 악당 캐퍼티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캐퍼티는 즉시 부하들을 보내, 아들을 죽인 범인의 정보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이 직접 복수하겠다고 말이다.


 이러한 삼중고 속에서 리버스는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러면서 목도한다. 스코틀랜드에 여전히 남아있는, 그것도 아주 치열한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종교적 갈등을.

 그 갈등은 리버스를 군대에 가도록 만든 1969년에 처음 일어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둠 속에서 불붙은 유리병들이 날아다녔다. 넝마조각으로 만든 심지에서는 휘발유가 튀었다. 화염병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증오는 웅덩이가 되어 번져나갔다. 사적 감정이 담긴 공격은 아니었다. 대의명분을 위한 행위였을 뿐.

 다 자신들의 명분이 키운 소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름의 보호 방식, 검은 택시들, 총기 밀반입, 이상과는 많이 동떨어진 사건들. 그 모든 것이 통제력을 잃은 상태였다.(p. 117)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라졌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건 그저 축제의 환한 빛에 잠시 가려졌을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어쩌면 축제야말로 기만이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축제의 빛에 현혹되어 실존하는 갈등을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렇게 해서 뭐가 남았나? 아무 것도 없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도 그대로였고 그로 인한 상처와 고통도 그대로였다. 균열은 그런 기만의 축제로 메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식스팩 처형을 당한 남자의 시신이었다. 이제 존 리버스는 그것이 지금까지 항존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작가가 소설 속 수사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혐오와 증오로 상대방을 죽음까지 몰고 가는, '치명적 이유'를.


 "우리가 여기 온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그가 물었다.

리어리 신부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 세상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그마한 어떤 변화라도 이끌어내기에는 우릭 너무 미약해요."

"지금 주머니에 폭탄을 숨기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요. 우리 모두는 이곳에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어요."

"폭탄 테러범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를 막을 방법을 얘기하는 거예요."

"경찰로 살아가는 것 말이죠?"

"솔직히 저도 제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p. 34 ~ 35)


 개인적인 느낌으론, 지금까지 나온 존 리버스 시리즈 중에 가장 사건의 규모가 크고 스릴이 넘치는 것 같다. 처음부터 폭발하는 장면이 나오더니 후반에 가면 이야기가 아예 질주한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은 한없이 우울하고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한 마디로 꽤나 정적이었다. 그러나 '치명적 이유'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완전히 역동적이다. 존 리버스만 해도 그렇다. 우울에 젖을 겨를도 없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부서를 옮기고 도시를 오고가며 다른 여자도 만난다. 죽는 사람도 너무 많다. 살해 방식도 몹시 잔인하다. 여기저기서 갈등이 터져 나온다. 리버스는 지금 사귀는 여자 친구와 갈등을 일으키고, 경찰 내 외부도 갈등이 일어나며, 캐퍼티까지 가세해 치열의 강도를 높인다. 차갑다는 것은 분자의 움직임이 적다는 뜻이다. 뜨겁다는 것은 분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움직임이 많기에 당연히 이 소설은 뜨겁다. 나로썬, 이토록 뜨거운 존 리버스는 처음이었다. 마치 영화 'LA 컨피덴셜'을 보는 기분이었다. 새로웠고 그래서 좋았다. 어쩌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뜨거운 갈등인 종교 갈등을 다루고 있기에 소설마저 그 갈등의 온도를 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존 리버스는 과연 치명적 이유를 찾는가? 찾는다. 그러나 스포일러가 되기에 세세하게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존 리버스의 말로 대신할까 한다.


 "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무서워요." 리버스가 냉담한 톤으로 말했다. 진심이었다. 콜록거리는 다드 수터는 열 명의 캐퍼티보다도 훨씬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입. 누구도 그의 정신을 건드릴 수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운영진이 모두 퇴근해버린 가게나 다름없었다.(p. 368)


 이 소설에서 존 리버스는 이런 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죽어버린 것을 뜯어먹는 하이에나처럼, 이미 전쟁은 끝났는데 여전히 전쟁이 있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도 어버이 연합 노인들이나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혹은 안철수와 같이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오로지 자기만 옳다는 생각에 타인을 위해 자신이 변할 생각은 조금도 않고 무작정 이기려고만 드는 사람들. 내가 입히는 상처와 아픔은 보지 못하고 애오라지 자기가 입은 것만 보는 청맹과니들.

 그것이 바로 죽음을 양산하는 '치명적 이유'라는 것을 화염의 온도 속에서 존 리버스는 깨닫는다. 그건 그대로 리버스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특히 연인 페이션스와의 관계에서.


 이언 랜킨은 재밌게도 리버스와 페이션스의 관계를 통해 여전히 뜨거운 종교 갈등의 본질적인 이유와 그것을 해결하는 대안을 넌지시 암시한다. 소설 초반에서 리버스는 자신의 취향을 자꾸만 바꾸려고 하는 페이션스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그런데 리버스 자신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소중하며 그걸 곧장 드러내는 변호사 캐롤라인 때문에 아주 난처해진다.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사랑이란 자신을 조금씩 더 덜어내고, 타인에게 더 맞춰주는 노력이자 과정이라는 것을. 종교 갈등을 해결하는 게, 본질적인 면에 있어 이 사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때문에 소설의 마지막이 페이션스와 함께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뭐, 그건 바로 전작 '검은 수첩'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쩌면 페이션스가 등장한 뒤로, 사실 존 리버스의 이야기의 알맹이란 잠시 그녀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유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여러 이유로 결별하고 또 재회하니까. 다만 그 사랑을 끝장내는 치명적 이유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맞춰준다면 거기에 이르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이 소설이 무슨 연애학 개론 같네. 하기사 그렇게 읽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읽든 '치명적 이유'는 속이 든든한 느낌을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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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21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르메스님 글에서도 뜨거움과 흥분이 뚝뚝 느껴져서 뭐지, 뭐야 하면서 따라 읽었네요^^

ICE-9 2017-09-26 20:42   좋아요 0 | URL
하하, 제 열기에 감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뜨거움과 거리가 먼 일상인지라 글로나마 한 번 가져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