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가시라기 히로키의 '절망 독서'는 고정관념을 허무는 책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독서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길 겁니다. 당연히 절망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독서도 불가능하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가시라키 히로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절망하고 있을 때야말로  독서를 통해 견뎌나가야 한다고 말이죠.


 '인생 각본'이란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 용어라고 하는군요.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중에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한 각본을 쓰고 있다는 이론을 뜻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살 거야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바로 '인생 각본'이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스스로 설정하는 자신의 인생 전체에 대한 비전 같은 거죠. 그러나 우리네 삶이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무수한 변수로 넘쳐나는 이상, 부득불 그 인생 각본을 수정해야 할 때가 옵니다. 자의로 수정하기도 하지만, 외부의 강요로 수정해야만 할 때도 있지요. 



 그런 순간을 맞이할 때, 우리는 무엇의 도움을 얻어 각본을 고칠까요?

 물론 스스로 잘 해낼 때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수정해야 할 지 도무지 막막하여 아무 것도 못할 때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하고 타인의 각본을 들여다 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그러한 우리의 성향을 두고 '모델론'을 펼친 바 있죠.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삶을 보여준 인물이 있다면 그것을 모델로 하여 그를 닮아 살아가는 것으로 닿고자 한다고 말이죠. 기독교의 예수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처럼 우리도 인생 각본을 어떻게 고쳐야 할 지 모를 때 타인의 각본을 모델로 하기 마련입니다. 그 때 어떤 타인의 각본을 보고 어떻게 수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현명하게 타인의 각본을 참조해야 하는데, 저자는 그것이 절망이라면 그 절망을 제대로 보여주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제목도 '절망 독서'입니다. 왜냐하면 공감이야 말로 가장 커다란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그 자체만으로 큰 구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p. 55)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자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가시라기 히로키는 좀 특별한 저자입니다. 왜냐하면 더없이 창창한 나이인 스무 살 때 의사로부터 평생 낳지 않는 병이란 말을 들은 난치병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계획한 모든 미래가 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난치병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에 인생 각본을 급격히 수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자신에게 이롭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다정하게 격려를 하면 오히려 이제 자신에게 없는 그의 건강함만 더 부각되어 그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그가 위안을 얻은 곳은 오로지 같은 아픔을 겪고 같은 고뇌를 토로하는 쪽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똑같은 아픔에서 비롯된 경험들이 오늘의 자신을 인정하고 내일에 지속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처럼 공감의 힘은 그가 몸소 느낀, 누적된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알고 나면 아무래도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설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망했을 때는 그 기분에 다가와주는 음악이나 이야기와의 만남이 우리를 구해줍니다. 우선은 마주하고 있는 절망적인 기분에 푹 빠질 것. 빠질 때는 바닥까지 가라앉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극복을 위해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p. 61)


 독서가 그것을 도와줍니다.

 '절망 독서'가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절망이 곧바로 극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모두에게는 저마다 치유에 드는 시간들이 다르기 때문이죠. 아주 짧은 사람도, 아주 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길이를 미리 알 수는 없습니다. 한 개인에게 다가온 절망 역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절망 속에서 적절한 치유의 시간을 아는 것은 단 하나, 억지로 치유하려 들지 않고 그냥 자신을 맡기는 것 뿐입니다. 바다 위의 표류물이 천천히 떠다니다 언젠가 해변에 닿듯이, 그렇게 언젠가 갈림길이 나타나 서로에게 작별을 고할 때까지 절망과 동행해야 합니다. 천천히, 산보 하듯이. 저자에 따르면 절망은 완만한 경사의 고원을 천천히 걷는 것처럼 극복해야 한다는군요. 그래서 독서입니다. 읽는 것은 무엇보다 느리고 꾸준한 행위니까요. 한없이 느리게 흐르면서 뚜렷한 변화도 없는 절망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느리면서 서서히 사유 속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독서만큼 어울리는 것도, 기댈만한 것도 없습니다. 하여 저자는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죠. '절망의 시간일수록 책을 벗하라!'고.


 당신도 절망의 시간을 보내시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절망 독서'의 문을 한 번 두드려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차분하게 진행되는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뜻밖의 치유 방법을 얻게 될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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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07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설의 팡세>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밀 시오랑의 글들이 제 절망을 대신 말해주고 있어서 많이 의지가 됐었죠. 책은 배움보다 제게 그런 의미가 더 컸어요. 지금은 배울 게 너무 많아 절망스러움요ㅎ;;;

ICE-9 2017-09-06 14:42   좋아요 1 | URL
배울게 많아 절망스럽다는 말엔 저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아, 알면 알수록 더 깊어지는 앎에 대한 허기라니. ㅠ ㅠ 그래서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걸까요^^;
말씀하신 에밀 시오랑의 책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는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ICE-9 2017-09-06 14:42   좋아요 0 | URL
배울게 많아 절망스럽다는 말엔 저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아, 알면 알수록 더 깊어지는 앎에 대한 허기라니. ㅠ ㅠ 그래서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걸까요^^;
말씀하신 에밀 시오랑의 책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는데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