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남녀
나혁진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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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싸구려 질문을 먼저 해 봅니다. 추리 소설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아주 어릴 때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을 만난 뒤로 지금까지 계속 좋아해 왔습니다. 추리 소설도 깊이 파고들면 장르가 꽤나 다양한데 저는 그 중에서도 '본격'을 좋아합니다. 사실 이 말은 일본에서 쓰는 것인데, 쉽게 풀어 말하자면 '범인 찾기'라 할 수 있습니다. 파일로 반스 시리즈로 유명한 S.S. 반다인이 교양인을 위한 지적인 스포츠라 불렀던 바로 그것이죠. '범인 찾기'라 할 수 있는 데도 굳이 '본격'이라 쓰는 것은 역시 저의 허세 때문이겠죠. 추리 소설의 원조라 평가받는 에드거 알란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 역시 범인 찾기였던 만큼 누구의 죄인가 밝히는 것은 추리 소설의 근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리 소설의 황금기 때만 해도 이런 본격물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꽤나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미 역사가 오래된 지라 그만큼 설정도, 트릭도 한 번쯤은 다 써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간혹 '범인 찾기'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을 만나면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그런 작품이 나왔습니다. 때문에 구구절절 말이 많아진 것이죠. 무슨 책이냐구요? 바로 나혁진 작가의 '낙원남녀'란 소설입니다.



 나혁진 작가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첫 번째는 느와르, 두 번째는 스릴러, 세 번째는 라이트 노벨스러운 본격물이었는데 이번에는 순수 본격이군요.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달리하여 도전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역시 '범인 찾기' 소설답게 그런 쪽 방면으로 여왕으로 평가받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두 작품이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플롯엔 '다섯 마리 아기 돼지'가, 캐릭터 구성엔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가 말이죠. 모티브가 된 작품을 같이 읽으며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낙원남녀'는 낙원아파트에서 1년 전 일어난 하나의 살인 사건과 또 하나의 살인 미수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이 기본 스토리 입니다. 범인 찾기에 탐정이란 존재는 필수인지라 당연히 탐정이 등장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콤비를 이루는데요, 남자는 강마로, 여자는 유지혜 입니다.  이 둘이 주인공 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낙원남녀'인 것이죠.


 유지혜는 사실 수사하게 되는 사건의 당사자 입니다. 살인 미수 사건의 피해자이니까요. 그녀는 한 기업의 비서로 일하다가 그 사건 때문에 심한 트라우마를 겪어 현재는 직장을 쉬고 창동에 있는 학원에 강사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술집에서 우연히 지혜를 본 강마로가 접근해 옵니다. 자신은 명탐정을 꿈꾸는 사람으로 그 훈련 겸, 유지혜의 사건을 꼭 해결하고 싶으니 같이 범인을 찾아내자고 말이죠. 반신반의 했던 지혜는 그가 건네 준 명함에 나와 있는 블로그를 찾아 갔다가 그가 서울대 재직 중인 로봇 공학자이며 이미 경찰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한 번 추리로 해결한 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결국 그와 함께 1년 전 사건의 범인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공교롭게도 죽은 최순자와 지혜가 같은 낙원아파트 봉사 단체 회원이라 아무래도 그 봉사 단체가 관련된 것 같아서 회원들을 중심으로 수사해 나가게 되는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면 물 불 안 가리는 강마로와 그것 때문에 안절부절 하는 유지혜의 케미가 은근히 재밌습니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뜬금없이 소개를 뚝 끊는 것은 특히 '범인 찾기'의 경우 줄거리를 시시콜콜 말하면 안 되기 때문이죠. 본격물을 대하는 최고의 자세는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그냥 읽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인이 아무런 선입견 없이 제대로 추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 소개합니다. 제 글을 읽고 이야기가 궁금하셨다면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소설은 정말 재밌습니다. 캐릭터의 묘사도 생생하고 둘 사이에 이뤄지는 앙상블도 좋습니다. 범인 찾기 과정, 범인의 트릭도 아주 현실적이라 더욱 몰입감을 높입니다. 물론 '헉!' 하는 반전도 마련되고 있구요. 한 마디로 본격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구비되어 있으며 또한 잘 살려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는 정말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것도 한 달음에 말이죠. 장편으로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본격인데다 그것이 또한 꽤 성공적인 것이었기에 만족감 또한 컸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잘 빠진 본격만큼 좋은 것도 또 없습니다. 몰입으로 더위를 잊게 만들기 때문이죠. 바로 '낙원남녀'가 그런 시간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작가에게 바랍니다. 부디 이대로 끝나지 않게 해 주세요. 뒷 이야기가 보고 싶습니다. 기다리다 현기증이 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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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8-11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가 쓴 소설 범인이 누군지 알아요 책도 읽지 않았는데 그걸 알다니, 다른 데 그게 나와서 알아 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면 이럴 수가 했을지... 어쩌면 그런 건 그 뒤에 다른 사람이 또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잘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트릭은 잘 몰라도 읽다보면 범인을 짐작하기도 하는군요 짐작보다 어떻게 한 건지 같은 것도 알면 좋을 텐데 여전히 어렵네요 저는 왜 사람을 죽였을까, 그걸 더 보는군요 이런 거 본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내가 생각한 사람이 범인이라니, 하면서 마음속으로 좋아하기도 했는데...


희선

ICE-9 2017-08-13 21:21   좋아요 0 | URL
실은 희선님처럼 어떻게 보다 왜를 보는 게 전 더 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셜록은 왜 보다 어떻게만 집착하기에 인간미가 없지요. ‘왜‘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됩니다. 반면, 프랑스의 메그레는 어덯게 보다 왜에 더 신경씁니다. 범죄 보다는 인간에 더 눈을 두지요. 이걸 흔히 말하는 본격과 사회파의 구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 본격은 ‘어떻게‘에 사회파는 ‘왜‘에 초점을 맞춥니다. 영국이 본격을, 프랑스가 사회파를 더 추구하게 된 것은 세계 대전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프랑스는 2차 대전 때 독일에게 점령 당했으니까요. 비극을 겪으면 아무래도 어떻게 보다는 왜에 더 신경쓸 수밖에 없겠죠. 우리의 세월호 참사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