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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 ㅣ 버티고 시리즈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이 그 불가능에 속한다면, 적어도 두 가지 경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첫째 너무 모범생으로 살아왔거나 둘째 정의감이 매우 투철하거나. 왜냐하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주된 매력은 반영웅을 그리는 데 있고, 그것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재미를 느끼게 된다면 그 때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걷잡을 수 없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반영웅, 안티 히어로를 그리는 데 뛰어난 작가. 거기에 한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는 작가. 그런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내가 그리면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악도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 잘 보여주마!' 하고 쓴 작품이 바로 '액스'다.
제목은 도끼를 뜻하는 '액스'이지만, 소설에 도끼가 나오진 않는다.
책 뒷 표지에 실린 박찬욱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액스'는 박찬욱 감독이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에다 그가 늘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액스'는 'Z'로 유명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 의해 2005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바가 있다.)) 직장에서 해고 당할 때, '도끼질 당했다'고 하는 영어 표현에서 기인한 제목이라고 한다. 맞다. 이 소설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 된 실업자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버크 데보레. 그는 23년 동안이나 일한 제지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정리 해고를 당했다. 느닷업는 도끼 날에 목이 휙 날아간 것이다.
지위 혹은 신분을 가리키는 영어 'status'는 '서다'라는 뜻의 라틴어 'statum'에서 유래했다. 즉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사람들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이 단어 자체에 아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버크는 이제 설 수 있는 두 다리가 없는 셈이다. 2년간 열심히 구직 활동을 했으나 돌아온 것은 차디찬 거절 뿐이었고 쪼들리는 가계에다 아들은 원하는 것을 사주지 못하자 절도에 손까지 댄다. 현재도 미래도 암울할 뿐이다. 이대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버크는 중대 결심을 한다.
자신이 재취업 하는데 방해가 될만한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로.
그는 잠재적 경쟁자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직종의 취업 광고를 거짓으로 신문에 낸다. 그래야 이력서를 자신이 받아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에게 해가 될 경쟁자들을 선별하여 이력서에 나와 있는 개인 정보를 사용해 그들을 찾아가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되어 그는 결국 여섯 명의 경쟁자들을 골라내기에 이른다. 이들이 타겟이다. 그는 고인이 된 아버지가 남긴 유품에서 우연히 발견한, 무려 50년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았던 루거 권총으로 미국 각지에 있는 그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서 죽이기로 한다. 제지 회사에서 일을 하며 누구보다 특수 용지에 관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던 그는 이제 이것이 그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추호도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성공시켜야만 하는 프로젝트. 오직 그것만 중요할 뿐이다. 알지도 못하는 얼굴에 다짜고짜 권총을 쏘고 설령 머리의 절반이 날아간 데도 그에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시간만이 중요할 뿐이다. 이것은 합격 날짜가 정해진, 기한이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세상엔 살인 동기가 허다하게 있겠지만 '액스'의 주인공 만큼이나 기상천외하고 그래서 또 어이없는 동기가 과연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 어이 없음이 왠지 모르게 점점 공감으로 변해가니 이것이 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저력이다.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흔히 보게 되는 문구가 하나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 바로 이것이다. 소설은 정말 해고는 살인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처음 만날 때 꼭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묻곤 한다. 그가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은연 중에 캐내려는 것이다. 처음으로 물어볼 만큼 거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크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내 자아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차지하는 자리를 통해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 역시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뼈져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가진 공포 중에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커다란 공포는 없다. 소설은 그 공포를 충실히 재현한다. 그래서 그 압도적인 공포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보면 그런 선택도 할 수 있겠구나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된다. 버크의 이런 말이 그것을 거든다.
그들이 앗아 간 건 내 인생입니다. 내가 아니고요. 그들은 내게서 융자를 갚을 능력, 아이들을 돌볼 능력,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여유를 앗아 갔습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입니다. 직장은 내가 아니라고요, 퀸란 씨. 지난 5개월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까? 한때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내 온 동료들이었습니다. 나랑 같이 해고된 수백 명의 직원 말이죠. 우린 항상 그 신뢰를 앞세워 함께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내 적이 됐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카운슬러들은 절대 이런 얘길 하지 않죠. 우리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p. 252 ~ 253)
해고를 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그는 사회가 철저히 숨기고 있던 이 진실을 볼에 얼음을 대듯 선명히 깨닫는다. 지금과 같은 고도 경쟁 체제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적이라는 것을. 공교롭게도 이 소설은 1997년에 나왔다. 우리가 한창 IMF를 겪고 있을 무렵이다. 날마다 여기저기서 대량의 정리해고가 쏟아지던 IMF 시절. 소설 속 버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그런 현실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더 이기적이 되었을 뿐. 바로 그런 욕망이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괴물이 설치게 만들었다. 알고보면 버크의 진화형들을. 납득도 가고 악행을 통해 점점 더 강해지는 그를 보면 매력도 느끼지만 결코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은 버크의 그 길에, 그가 다다르게 될 종착역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크의 길을 완전히 내칠 수도 없는 것이, 그가 취한 한 가지 삶의 태도는 정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바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의지한다는 것. 버크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누누이 자신에게 말한다. 이 시궁창에서 벗어나게 해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고! 자신이 이런 진흙탕에 빠지게 된 것은 내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기댔기 때문이라고.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반영웅을 자주 그리는 것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 만들어 준 삶에 무턱대고 안주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길 원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프론티어 정신. 반영웅은 바로 그런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위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순전한 자기에의 의지, 여기까지는 지지할 수 있을 듯하다. 정말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조차 태연하게 남에게 맡겨 버리는 이들이 많으므로. 그렇게 정말 고쳐야 할 사회 문제에 대해 무임승차 하려는 이들이 아직도 잔뜩 있는 세상이므로.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그래야 하는가? 그것이 지나쳐 타인을 그저 수단으로만 삼는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선 나는 오리무중이다. 고민 거리로 남겨둘 수밖에.
그냥 재밌게 읽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해고와 실직을 늘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머리에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결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저도 모르게 감정이 깊이 실리고 현재와 미래의 나를 생각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냉정한 분석 보다 내가 이렇게 되면 내 삶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그래서 내겐 이보다 더 무서운 게 없는 공포 소설이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목에 해고의 도끼날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누구에게나 정녕 소름 돋는, 서늘한 소설이지 아닐까? 무더운 여름밤에 딱 읽기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