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스스로는 왠지 '이공계 스릴러'라는 레이블을 붙이고 싶은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작가 페터 회가 참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 스밀라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캐릭터 '수잔'이 주인공인 '수잔 이펙트'란 소설과 함께 귀환한 것이다. 이 소설에도  '스밀라'처럼 기이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수잔부터가 그러하다. 수잔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흉중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고백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 수잔이 특별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고백하는 당사자가 최면 같은 것에 걸린 것도 아닌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수잔에게 술술 털어놓는 것이다.


 "방금 그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었어. 소매를 걷어 올린 것도 내 의지가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다른 것,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었어. (...) 누가 이걸 보고 평범한 대화라고 하겠어? 그걸 부르는 이름이 있니? "

 "제가 자란 곳에서는 수잔 이펙트, 수잔 효과라고 불렀어요." (p. 27)



 이처럼 제목의 '수잔 이펙트'는 수잔의 특별한 능력을 가리킨다. 나는 앞서 분명히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이 '스밀라'와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스밀라'엔 스밀라 혼자 나왔지만, 이 소설엔 가족이 등장한다. 바로 수잔의 가족이다. 남편과 남매 쌍둥이가 있다. 모두 수잔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다. 수잔과 남편 라반이 함께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수잔 이펙트가 한껏 증강된다. 그들이 있는 공간 전체에 있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 혼자만 간직한 진실을 고백하기 위해 앞다투어 찾아오는 것이다.(쌍둥이의 능력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수잔의 능력이 가진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자기 연구 주제까지 삼은 노벨상 수상자 안드레아 핑크는 라반 역시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수잔과 연인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고 인위적으로 유도된 탓일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가족으로 '타임지'에 소개까지 된 가족이지만 문제가 많다. 내내 삐걱거리고 덜컹거리다 지금은 완전히 해체 직전까지 가버렸다. 


 우리는 노력했다. 그래서 태생부터 독불장군에 극도의 개인주의자인 네 명이 과연 한 지붕 아래서 살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수수께끼도 풀었던 것이다.(p. 21)


 수수께끼를 완벽하게 푸는 것은 실패했다. 소설은 이 네 가족이 외국에서 그것도 온갖 추문을 일으켜 경찰에게 체포되거나 추적을 당하던 중에 덴마크의 법무부 장관 토르킬 하인의 지시로 모두 덴마크로 강제 송환된 데부터 시작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수잔의 가족 앞에서 토르킬 하인은 어떤 일 하나만 해주면 가족 모두의 죄를 없던 것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자신의 가족이 실은 자체 내에 이미 몰락을 잉태하고 있는 양자물리학과 다를 바 없다고 깨달은 수잔은 미래가 없는 가족에게 미래라는 시간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 임무를 맡기로 한다. 그것은 1970년대부터 존재했던 덴마크의 비밀 조직, 의회미래위원회가 남긴 마지막 보고서 두 건과 위원회 명단을 그 위원이었던 마그레데 스플리드를 찾아가 가져오는 것이었다. 수잔의 특별한 힘이 여지껏 굳게 닫힌 그녀의 입을 열게 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 생각은 들어맞았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위원회 사람들을 만나는 족족 살해되어 버리고 이런 죽음의 위협은 수잔과 가족에게까지 찾아온다. 이런 일이 잦아지니 수잔과 그 가족들은 단순해 보이는 임무 이면에 뭔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사용해 '의회미래위원회'에 관련된 모든 것을 조사해 나간다. 놀랍게도 이 '의회미래위원회'는 비유하자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왔던 범죄 예지 시스템 같은 것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정확히 예측해서 보고서를 만들던 위원회였다. 그리고 그 위원회를 관리했던 자가 바로 토르킬 하인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보고서 두 개가 누락되었고 거기에 어떤 일들이 예측되어 있는지 알기 이해 하인은 수잔의 가족과 거래를 한 것이었다. 이제 하인마저 믿지 못하게 된 수잔과 가족은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그러다 전 세계의 운명이 걸린 음모가 지금 이 순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의 작은 사건이 마침내 인류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무언가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수잔 이펙트'는 '스밀라'와 유사하다. 그 소설에선 스밀라의 내적 불안과 혼돈이 거대한 음모로 연결되었지만 이 소설에선 가족 간의 불신과 불통이 그것과 연동된다. 다시 말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소설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는 세계 붕괴의 음모는 사실 붕괴 중인 수잔 가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때문에 세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대로 가족의 미래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와 이어진다고 하겠다. 누구보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잘 알았으나 공동체의 운명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하는 바람에 종말을 맞아버린 '의회미래위원회'는 사실 극도의 개인주의로 똘똘뭉친 수잔의 가족이 수수께끼를 끝내 풀지 못했을 경우 찾아 올 불길한 예언이나 다름 없다. 공동체라는 점에서 수잔 가족의 모습은 또한 현재 프랑스 대선의 양상으로 한층 더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유럽 공동체의 모습이기도 하다. '수잔 이펙트'를 페터 회가 유럽 연합에 보내는 하나의 제안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에 실린 그의 목소리를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너무 자신의 상처에만 골몰하지 말며 미움이 생기고 원망이 들수록 무엇보다 상대방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하자 정도가 될 것 같다.


 재밌게 읽었다. '스밀라'에서 느꼈던 페터 회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잘 살아나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캐릭터도, 문장도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도 어느 하나 톡톡 튀지 않는 게 없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겐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내 취향은 이런 쪽이므로 정말 즐겁게 읽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상상 하나가 있다. 수잔을 우리나라 대선 토론에 참석해 보면 어떨까? 라반까지 함께. 그러면 다섯 명의 대선 후보 흉중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국민들에게 그대로 다 드러날텐데. 정치의 생명이 거짓과 모략 그리고 협잡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진실이 되는 그런 나라에 하루빨리 살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05-0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임무, 음모를 가지고 그들을 이용하는 조직 등을 볼 때 저는 페터 회 [콰이어트 걸]이 더 오버랩 되는군요. 재밌겠습니다^^

ICE-9 2017-05-08 00:23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콰어어트 걸‘을 아직 못 읽었는데, 그런 내용이었군요. 독특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일련의 연속성이 느껴지네요.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