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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민주주의
김종철.조기숙 외 지음 / 인간사랑 / 2016년 5월
평점 :
사람에게 참 안타까운 것이 좋은 것을 누리고 있는 그 순간엔 정작 좋은 것인지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은 지나고 나서야 혹은 놓치고 나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정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 이재명 성남 시장의 표현에 따르면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국정이 함부로 유린된, 막장의 정점을 찍기 바쁜 현 정부의 모습을 보니 노무현 정부 시절이 얼마나 좋았었던 가를 반면교사처럼 거듭 되새기게 된다.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그런 마음으로 잡게 된 책이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란 데가 있는 모양이다. 서문에 자신들에 단체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2008년 한국 민주주의 현실에 대한 우려와 희망이 뒤섞인 어수선한 상황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적 정치 철학을 계승하기 위한 싱크탱크로 구성'(p. 11)되었다고 한다.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그 단체가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2012)에 이어 두 번째로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사안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아갔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을 다루고 있으며, 2장은 대통령 권한을 너무 약화시키는 것으로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다는 비판을 많이 받은 사정 기관을 비롯한 권력 기관 정상화 노력에 대해 다룬다. 이것을 읽으면 지금 박근혜 정부의 행태와 너무나 비교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런 노무현 대통령의 신념이 너무 순진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진정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구나 생각되기도 한다. 3장은, 이 역시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너무나 대조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론'을 다룬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고, 가장 지지율을 떨어뜨린 사안이기도 하다. 지금의 박근혜 개헌론은 어디까지나 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한 것이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론은 마침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20년만에 똑같은 해에 이루어져, 그 호기를 이용하여 대통령 단임제의 부작용(특히 정책을 꾸준하게 해 나갈 수 없다는)과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 주기가 불일치하여 일어나게 되는 양당간의 극단적 대결 정치로 인한 국정의 불안과 비효율 그리고 책임 정치의 실현 곤란을 막고자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을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론'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4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시기 내내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정부 혁신론을 다룬다. 이 정부 혁신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조직 내에 민주적인 의사 결정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이런 노무현 정부의 혁신론이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면 오늘날처럼 많은 국민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최순실 게이트라든가, 문고리 3인방 혹은 우병우 사태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4장을 읽으면서 새삼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 권력 기관에 정말 무엇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큰 그림을 그렸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 정부 혁신론은 당시에 최장집을 비롯 진보 지식인들에게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지금 그들은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보면서 과연 어떻게 입장 표명을 할까 참 궁금하기도 하다. 당시 국민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 혁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약한 정부' 운운하는 반대편 공격에 더 지지를 보냈다. 아마도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2장에서 보듯 권력을 내려놓은 탓도 클 것이다. 그 때 국민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지지를 보태주었다면, 오늘날의 충격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5장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 강하게 추진한 대통령의 당정 분리론을 다룬다. 그는 당정 분리가 되어 정당과 국회가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율성이 강화되길 원했고 대통령과 대등한 존재가 되어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 정책 중심의 대화가 되길 원했다. 그렇게 자율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꿈꿨다. 이것도 지금 상황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올만한 부분이다.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것과 완전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집권 정당은 대통령의 거수기가 된지 오래이며, 행정부와 국회가 불통으로 일관한지도 오래이다. 자율과 책임은 휴지조각이 되고 나라는 만인지상 일인지하로 굴러가고 있다. 더구나 그 일인마저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그냥 일개 민간인이다. 개그라기 보다는 악몽에 가까운 현실이다.
6장은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 집권 동안 이것이야말로 가장 많은 역풍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바로 '대연정 제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것을 발표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지탄을 늘어 놓았다. 대연정은 지금도 완강하게 남아 있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내놓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육책이었으나, 그 진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 진의는 지금까지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포용과 상생의 정치를 도모하는데 있었다. 진심은 정당했으나 너무 이상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았다. 저자 역시 아직 국민이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때가 아니라며 적극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이제 그것을 학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국민을 믿었다. 경험하게 되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달라지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모두 6장에 걸쳐, 아직도 노무현 정부의 공과 과로 첨예하게 논쟁 중인 여섯 가지 사안들을 담는다. 하나하나가 사안을 철처히 분석하고 깊이있게 해석하고 있어,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전체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추구했던 것은 첫째, 제왕적 대통령의 탈피였고 둘째는 포용과 상생으로 가기 위한 설득과 협상의 정치였으며 셋째는 통치의 공정성과 운영의 투명성 보장이었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여섯 가지 사안을 두고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당리당략을 위한 음모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그저 어떻게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우리나라에 빨리 뿌리내리게 하려는 그의 충심이 느껴질 뿐이다. 책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안과 관련한 생전 어록을 많이 담고 있는데, 무엇보다 바로 거기서 그런 게 느껴진다. 그것은 누구와 달리 녹화된 것도 아니며 누가 비밀리에 받아보고 수정한 것도 아니다. 그가 직접 말한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에게서 그런 허심탄회한 진심조차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되고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더욱 그리워진다.
맞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여섯 가지 사안들은 어떤 의미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험이라 할 만하다. 아무래도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무엇보다 아직은 연약한 묘목에 불과한 민주주의를 보다 튼튼한 나무로 육성시키는 데 있다고 본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그는 그 나무의 뿌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땅을 다져주려 했으며, 보다 높이 자랄 수 있도록 그 세포가 될 국민 개개인들에게 민주주의가 정말 어떤 것인지 경험시키려 했다. 물론 이런 그의 마음이 누군가의 말마따나 너무 국민의 수준을 모르는 이상주의 놀음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또 그런 현실과 유리된 이상주의 때문에 혼란만 가중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우리는 자신에게 한 번 솔직히 물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좌우 가릴 것 없이 많은 공격을 받았다. '사면초가'였다고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당선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것도 자신의 정당인 민주당이 주도하여 탄핵 위기까지 겪었으니 말이다. 그는 어디서나 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말투 때문에 조롱 받았고, 솔직한 표현 때문에 그 진의가 헤아려지기도 전에 공격부터 당했다. 이런 상황인지라 대통령으로서 그가 정말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그 내막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저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해 쏟아낸 말에 휘말려 정작 그의 진실한 초상은 놓쳐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이렇게 무슨 연유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것들이 나왔는지, 그 온전한 내막과 해석을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여기에 실린 제안들 하나하나가, 지금에 와서 더욱 절박해지는 민주주의의 확고한 정착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로 보인다. 오늘의 현실이 더없이 치욕적이고 분노를 일으킨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민주주의야 말로 무임승차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노력과 실천 없이는 결코 거둬들일 수 없는 과실이다. 그런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실험은 중요한 유산이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