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그널'이 오늘로 끝났다. 아니, 이젠 어제인가?

 원래 '싸인'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김은희 작가였지만, 보다 더 이 드라마를 특별히 챙겨 보게 만든 것은 우연히 예고편에서 본 이재한(조진웅 역)의 다음과 같은 대사 때문이었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왜 이렇게나 이 대사가 마음을 울렸을까? 분명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자각 때문이리라.

 그것을 타파하고픈 변화의 갈구, 목소리에 실린 절박함이 느껴져 1화 방영때부터 각잡고 지켜보게 되었다.


 한 마디로 좋은 드라마다. 이제 겨우 3월이지만 올해 최고의 드라마라고도 부르고 싶다.


 포스터 역시도 역대급! 정말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시그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드라마적 대답이 아닐까 싶다.

 박해영과 이재한이 무전을 주고 받으며 한결 같이 하는 말, "포기하지 않으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그대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 끝까지 갑니다."


 라는 이재한 형사의 말이 뭉클한 것도 제발 그렇게 되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온전히 드러났으면 하는 우리의 간구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설정 또한 세월호 참사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혹시 드라마 보실 분들은 여기서 멈춰주세요.)


 일단 1화에서 부터 15년이 넘도록 경찰서 앞에서 자기 딸을 유괴 살해한 범인을 잡아달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대로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과 겹친다.



 과거의 이재한 형사와 현재의 박해영 경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하필이면 무전기라는 것도 그러하다.



 이는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의 눈물을 많이도 쏟게 했던 아이들의 핸드폰을 많이 연상시킨다.

 배터리가 닳은 무전기로 통신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결코 사건을 이대로 미제로 남겨둘 수 없다는 이재한 형사의 절박함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아이들이 부모에게 보낸 문자에 담겨진 것도 그런 절박함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이 무전기는 1화에서 유류품 상태로 박해영 경위에게 발견된다. 죽은 자가 남긴, 정작 그 장본인은 아직도 찾지 못한 그런 자의 유류품으로. 산자와 만나는 것이다.

 팽목항에서 아이들의 유류품으로 나온 핸드폰들과 똑같이 말이다. 이런 유사성으로 드라마의 무전기는 세월호 아이들의 핸드폰을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드라마에서 과거와의 무선은 언제나 11시 23분에 일어난다.



 이 시간도 그대로 세월호 참사를 반영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11시 23분.

 정확히 모든 공영 방송에서 공히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가 보도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오보였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과거와의 무선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그것을 위해서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절박함에서 일어난다.(결국 미제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이재한 형사의 의지도 그런 마음의 연장이다.)

 이는 11시 23분에 일제히 전국으로 보도된 그 오보를, 과거가 바뀌어 그것이 사실 보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이어진다.

 11시 23분은 비극적인 과거를 바꿔,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다는 절박함의 시간이다.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또한, 마지막 화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되는 빨간 목도리도 세월호 참사를 반영한다.

 한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재한 형사가 쓰레기 하치장에서 열심히 빨간 목도리를 찾고 있는데 박스 줍는 할머니가 그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나타난다.  그런데 그 두른 모습, 가만히 보면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노란 리본과 비슷해 보이지는 않는가?




 왜 하필이면 결정적인 증거가 목도리인 것일까? 그것이 세월호 리본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너무 나간 해석일까? 하지만 이재한이 미국에서 받은 증거 사진에 담겨진 빨간 목도리의 모습이라든지,


(이것을 거꾸로 놓고 보면 세월호 리본과 비슷하다)

 

 할머니가 두른 모습을 보면 그렇게 확대 해석인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이 빨간 목도리는 박해영의 형 박선우가 죽었을 때 그를 죽인 경찰이 가지고 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박선우는 그야말로 세월호 참사 때 죽은 아이들을 상징하고 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이렇게 만난다.

 그것이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점과

 하필이면 그것을 주도했던 것이 경찰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나 박선우의 경우, 그를 죽인 경찰은 그대로 세월호 참사 때 아이들이 수장되는 것을 방관한 해경을 나타내고 있다. 경찰이 고등학생을 살인한다는 설정이 그냥 나온 것 같지는 않다. 해경을 연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시 말해, 경찰이 죽인 박선우는 해경이 죽인 세월호 참사 아이들이다. 빨간 목도리는 바로 그 방에서 발견되었다. 이 희생자와 현장 때문에 빨간 목도리는 세월호 리본으로 보인다.



 여기에 박선우를 죽인 경찰을 찾아온 이재한 형사가 하는 말이 더욱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 아이는 어딘가 자신을 지켜 줄 어른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 어른을 찾았던 거야. 자기 가족을 지키려고."


 어른... 자신들이 언제 익사할지 모르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해경들을 보면서 세월호의 아이들 역시 애타게 찾지 않았을까? 자신들을 지켜줄 어른을...

 그런 마음이 선우에게도 있었고, 때문에 선우는 그대로 세월호의 아이들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으로 인해 붕괴된 가정을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키고 싶다는 선우의 열망은 세월호의 아이들 역시도 가지고 있었으리라.


 이렇게 드라마 '시그널'은 설정과 주제 모두에서 강력하게 세월호 참사를 환기하고 있으며 보는 우리들에게 포기하지 말 것을, 미제로 남겨두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재한 형사의 절박함이, 비분강개가 내게 더욱 와닿았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기에.

 그래서 더욱 작가는 이재한 형사의 뚝심을 두드러지게 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하나의 푯대가 되어 포기하려 하고 마음 다잡지 못하는 우리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마지막 화에 나온 차수현 경위가 이재한 형사와 자신의 옛 사진을 바라볼 때 배경에 있었던 빨간 등대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또 그 장면은 팽목항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팽목항에서 유가족이 아이들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과 차수현 경위가 이재한 형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닮아 있었기에...


 다시 보면 훨씬 더 상세하게 잡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다시 보고 싶다.

 드라마 '시그널'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더우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드라마적 응답은 처음이 아니던가!


 그건 그렇고 결말 부분,

 역시나 김은희 작가의 작품답게 한껏 열려있다. 예상은 했었다. '싸인'도, '유령'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이재한 형사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 모호해서 마치 시즌 2를 염두에 둔 것처럼도 보인다.

 (나오려나? 나오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이재한 형사가 가지고 있었던 무전기 때문에 이게 혹 김은희 작가의 특기인 언해피 엔딩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었다. 무전기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불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절대 자신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오지말라고 했던 문자.

 이것은 분명 미래의 누군가가 알려줬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무선이 이뤄진다는 말.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이재한 형사가 가지고 있는 무전기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과거와의 무선은 어디까지나 이재한 형사의 무전기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오직 하나밖엔 없다.

 과거에 그랬듯이 이재한 형사가 죽어야만 가능하다. 과거가 바뀐 후, 15년동안 이재한 형사가 계속 무전기를 가지고 있는 장면에서 보듯 이재한 형사가 살아있을 경우 박해영은 무전기를 가지지 못한다. 무전기는 늘 이재한 형사에게만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요양 병원엔 장의원이 보낸 조폭들이 이재한 형사를 수색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장의원의 도시 재개발 비리를 인터넷으로 폭로한 것도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 오프라인 언론이 침묵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주로 많이 말했던 것은 인터넷이었으니까.)


 이런 이유로 그 때, 이재한은 납치되어 실종되거나 죽었고 뒤늦게 도착한 차수현과 박해영이 무전기만 수습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요양 병원에 오지말라고 한 것일까?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어쨌든 썩 편한 결말은 아니다.

 

김은희 작가답게 연애엔 별 배려가 없다. 

(이래서 공중파는 아예 생각 안했는 지도)

흑...보면 볼수록 불쌍한 차수현 경위...

하긴, 이재한 첫사랑도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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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6-03-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그널에 홀릭해서, 금토를 기다렸는데..... 어제 끝났네요.
시그널 시즌 2를 논의 중이라는데, 나왔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열린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포기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라는 메시지는 잘 다가왔으니까요.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쪼옥~

ICE-9 2016-03-13 23:24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이재한 형사를 따라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겁니다^^
시즌 2도 포기하지 말고 제발 나와주세요... 치지직... 치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