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오더 메이즈 러너 시리즈
제임스 대시너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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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즈 러너’를 좋아한다. 비슷하게 세계의 종말 이후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영 어덜트 판타지 소설과 처별되는 이 소설만의 독특한 면모 때문이다. 다른 작품들은, 대표적으로 ‘헝거게임’이 그러한데, 등장인물들 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메이즈 러너’는 등장인물 사이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작금의 영어덜트 판타지 소설들이 주로 멸망 후라는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것은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더욱 노골화된 경향으로  현재 미국 사회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의 간접적인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들이 경쟁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나갔던 것도 현대 사회가 바로 그것을 주축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으로 현실의 충실한 반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엔 한계가 존재했다. 왜냐하면 경쟁에서 승리하는 주인공의 묘사가 오히려 그들이 저항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도록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하이에크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의 근본 목표는 어디까지나 노동자를 개인 기업가처럼 만드는 데 있었다. 즉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와 의식 모두를 1인 기업처럼 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을 뭉치게 만드는 계급 의식을 희석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이에크 같은 신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계급 의식을 가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하나의 개인으로 남겨둘 수 있을까를 가장 최우선적으로 생각했고 거기에 노동자들을 한 명의 기업가처럼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경쟁이 중시되었다. 나아가 모두를 경쟁이라는 게임에 참여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정부의 보호막도 모조리 해체해 버렸다. 그들의 작은 정부란 바로 그것을 위해 나온 것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정부의 개입을 줄이려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오해에 불과하다. 사실 그들은 정부의 개입을 적극 옹호한다. 단 그 개입이 어디까지나 예전에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영역까지 진출해 거기에서조차 경쟁 제도를 만들어 낼 때에만 그렇다. 대표적으로 공기업이나 의료, 수도, 전기, 경찰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같은 것 말이다. 모든 영역에서의 경쟁의 창출.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가 생각하는 정부의 지상 목표다. 그들이 이렇게 경쟁을 중시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을 얼마든지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로 사람들에게 쉽게 정당화시켜 흔한 말로 혹세무민하기 쉽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의 진짜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능력에 따른 결과로 생각토록 만드는 것. 모두를 ‘MEA CULPA’로 만들어 구조적 모순을 은폐시키는 것.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타격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연대했을 개인들을 어디까지나 자기 능력의 부족으로만 생각케 하여 연대 의지를 휘발시키는 것.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대폭 늘어난 자기계발서도 신자유주의가 바로 이와 같은 인간형을 양산하려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하여 다시는 프랑스 대혁명이나 파리 꼬뮌 혹은 러시아 혁명 같은 노동자들의 계급 운동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이에크와 같은 신자유주의 사상가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소수의 권력자와 다수의 노예와 같은 순종자들. 영어덜트 판타지 소설이 종말 후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것도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가 꿈꾸는 세상의 본질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권력자들은 그런 세계를 종종 유토피아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주인공은 그런 세계를 부수려 한다. 그런데 부수려 하면 할수록, 경쟁에 이기려 하면 할수록 주인공은 더욱 개인 기업가적 모습을 보인다. 능력을 연마하고 홀로 전략을 짜며 성공하면 무리의 인정을 받아 지위가 높아진다. 신자유주의가 그리던 이상형의 전형적인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이 추구하는 대안의 설득력도 그 기초가 부실해진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후반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그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런데 ‘메이즈 러너’는 달랐던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는 마치 플라톤의 국가를 연상시켰다. 모두가 정해진 자리가 있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미로를 빠져나간다는 공동체의 목적에 맞춰 서로 협력했다. 그들의 모든 노력 자체가 대안을 향한 한 걸음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행보가 궁금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흐름이 이 다음엔 어디로 연결될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즈 러너’의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개봉에 발맞춰 출간된 ‘킬 오더’는 ‘메이즈 러너’의 프리퀄이다. 즉 영화의 결말에 밝혀지는 세상의 멸망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소설은 메이즈러너의 주인공 토머스와 테리사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제 토머스는 기억을 지우고 메이즈 러너가 되기 위해 미로로 향하는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로운 주인공 마크와 트리나를 보여준다. 그들은 원래 소꿉친구다. 나중에 ‘태양 플레어 현상’이라 일컬어지는 태양열의 엄청난 증가로 노출된 지구 상의 사람들이 모두 불타 죽기 바로 직전 마크와 트리나는 서로 마주보며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마크는 트리나를 좋아하지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근사해 학교 인기인이 된 트리나에게 사랑을 섣불리 고백하지 못한다. 그러다 갑자기 지하철이 멈추고 억지로 문을 열고 나간 터널에서 마크와 트리나는 플랫폼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한다. 서둘러 터널로 달아나지만 터널 역시 그리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위기가 닥쳐오고 전직 군인인 알렉의 도움으로 그것을 무사히 넘긴 그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과 이제 정착촌을 이루어 살아간다. 하지만 고난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하루는 공공연히 필요한 물품들을 나눠주러 날아오던 비행선 버그가 나타나더니 도움을 기대하고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화살의 비를 퍼붓기 시작한다. 쓰러지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마크와 알렉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싸우고 결국 며칠에 걸쳐 버그 한 대를 추락시키고 돌아와 보니 화살에 맞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벌레들이 들어와 마구 갉아먹는다며 끔찍한 통증을 호소하다가 죽어버렸다는 것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마크는 비행선에 서 보았던 상자를 떠올린다. 바로 그 상자에 ‘바이러스’라고 되어 있고 ‘전염성이 매우 높다’고 적혀 있었던 것을. 버그가 쏘았던 화살에는 ‘플레어’라는 이름의 사람의 뇌를 공격해 죽게 만드는 바이러스가 발라져 있었던 것이다. 감염자는 속출하고 마크의 친한 친구들도 잇달아 죽는다. 마크와 알렉은 트리나를 비롯하여 사람을 모아 백신을 구하려 버그가 왔던 곳을 찾아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다다른 기지에서 그들은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알래스카에 있다는 연합 정부가 이대로는 지구 재건이 힘들다고 생각해 바이러스를 통해 인구를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그것이 바로 메이즈 러너 후반의 지구 풍경을 낳은 ‘킬 오더’였던 것이다.


 프리퀄인데다 주인공도 다르지만(한국인 캐릭터 ‘민호’도 나오지 않는다. 민호의 이야기는 아마도 ‘피버 코드’에서 나오는 것 같다.) 페이지가 거침없이 넘어가는 것은 여전하다. 익숙한 전개인데도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는 빠른 속도감으로 식상함을 느낄 여지마저 얼른 없애 버리고 있다. 한 마디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푹 쩔게 만드는 제임스 대시너의 솜씨는 ‘킬 오더’에서도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전개가 다소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내가 ‘메이즈 러너’의 매력으로 생각했던 점은 여기에서도 변함은 없었기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공존과 그것을 위한 협력이라는 ‘메이즈 러너’의 모토는 여기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다. 무엇보다 마크의 일행을 가로막는 것들 모두가 철저히 공존 보다는 자기 본위로 똘똘 뭉친 집단이기 때문이다. ‘킬 오더’를 만든 연합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숲에서 마크 일행을 마귀라 부르는 광신자 집단(사실 그들은 바이러스의 실험 대상으로 알고보면 피해자였다.)도, 자기들을 감염시켰기에 치료제를 얻기 위해서라도 연합 정부마저 감염시켜야 한다고 선동하는 기지의 브루스도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비극은 모두 그들의 두려움에서 잉태되고 있는데 정작 그 두려움의 원인은 그들 자신이 낳았다는 것이다. 브루스는 광신자 집단을 두려워 해 세상 전부를 파괴할 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한다. 그런데 광신자 집단을 만든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다. 똑같이 연합 정부도 ‘킬 오더’ 명령을 수행한 브루스에 의해 커다란 위험에 처한다. 이렇게 소설은 그들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내린 지극히 편협한 결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비극의 부머랭으로 돌아오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그런 그들과 대비되어 주인공 일행이 마지막에 택하는 행위는 더욱 극적으로 강조된다. ‘킬 오더’는 메이즈 러너 시리즈가 어디를 향해 뛰어가는 작품인지 보다 선명하게 말해주는 작품이다. 나처럼 메이즈 러너의 모토에 반하여 이 작품을 찾게 된 이들이라면 ‘킬 오더’도 만족하리라고 본다. 다 읽고 나니 프리퀄 제2부인 피버 코드가 기다려진다. 글레이더들이 ‘메이즈 러너’가 되기 전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담긴다고 하니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부디 갈증이 깊어지기 전에 나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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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8-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 바로 얼마 전에 메이즈 러너 시리즈를 새벽까지 탐독했는데
헤르메스님 아니었으면 프리퀄을 놓칠 뻔 했군요!

피버 코드? 으아... 아무래도 제임스 대시너 작품을 다 훑어봐야겠네요.
사고 싶은 책이 있다는 사실은, 늘 신납니다~

ICE-9 2015-08-28 18:53   좋아요 0 | URL
앗! 마녀고양이님, 역시나 저랑 판타지 취향이 비슷하시군요^^
저도 늘 읽을 책이 남아 있을 때 신나더군요^^ 특히 섀도우 헌터스 4권과 5권이 나와서 반가웠어요. 최근 4권을 읽었는데 후반에 완전 폭발하더군요. 세상에 그런 식으로 위기를 넘길 줄은... 어쨌든 신나하며 5권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5-08-28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섀도우헌터스 읽고 세권 모두 홀랑 팔아버린터라 후속 안 읽으려고 했는데, 이런, 헤르메스님 말씀 들으니 슬슬 끌려가네요 ㅋㅋ

ICE-9 2015-08-31 22:36   좋아요 1 | URL
네번째 부터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 세권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저는 잘 기억이 안나서 자주 이전 책을 찾아봤습니다만^^; 마녀고양이님이 어떻게 읽으실지 정말 궁금한데 제발 낚여주세요^^

2015-08-29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3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