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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대한민국 젊은 남녀들이 과연 얼마나 연애를 하는지 조사했다고 한다. 열 명 중 두 명 꼴로 연애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말 번화가에 나가보면 나 빼고 다 연애하고 있는 것같아도 실상은 이러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삼포세대'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연애,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려 한다. 경제적 상황도, 놓인 미래도 끝도 없이 불안하기만 하니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바야흐로 싱글이 대세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그렇게 된다는 게 비극적이긴 하지만 앞으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독신의 오후'를 쓴 저명한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에 따르면 앞으로 일본 남성 3명 중 1명은 죽을 때까지 싱글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엔 이러한 연애와 결혼 포기 풍조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10년'으로 경제적 고난이 젊은 세대에게 더 빨리 닥쳐온 탓이 아닐까 싶다. '초식남'이 그 증거다. 이 말은 칼럼니스트인 후카사와 마키가 당시 유행하고 있는 일본 젊은 남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두고 지칭한 신조어였는데 그건 여성스런 취향을 가진 젊은 독신 남자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보다 넓게는 일찌감치 연애를 포기하고 싱글로 살아가려는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찌나 '초식남'의 인기가 강했던지 아베 히로시가 주연한 드라마 '결혼못하는남자'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는데 그만큼 일본 젊은 남자들 사이에선 '싱글'이 보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독신의 오후'는 남자들 사이에서 싱글이 선택이 아니라 운명처럼 여겨졌을 때 나온 책이었다. 아베 히로시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듯이 이 책이 일본에서만 무려 75만부가 팔린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우에노 지즈코는 싱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특별히 '싱글력'이라고 칭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과연 남자들에게도 싱글력이 있을까 하고 묻는다. 여성에게 있다는 것은 당연히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의 보편적 특성을 두고 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같다. 우에노 자신이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는 1948년 생이다. 책은 2009년에 나왔다. 대략 싱글로 살아온 연륜의 크기가 얼마인지 짐작된다. 그런 그녀이기에 싱글의 삶에 대해 이렇게 쉽고도 설득력있게 쓸 수 있었을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 책은 부정적 답변에서 비롯되었다. 남성들은 싱글력이 아예 없거나 약하다는 것이다. 그걸 그녀는 늙으면 누구나 한 번은 닥치게 마련인 간병의 문제와 사별의 문제를 통해서 보여준다. 섹스 문제도 있다. 이제와 이야기지만 이 책은 보편적인 남성 싱글의 삶을 다루기 보다는 중년 이후 싱글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목이 '오후'인 것은 그 때문이다.


 모두 남자들은 한계를 보여줬다. 이유가 있었다. 일본 남성의 경우, 특히 기성 세대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환경 안에서 자라오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아내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삶을 특히나 힘들어했다. 단적인 예로 일본에서 노년 부부의 배우자 간병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이 간병받는 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사별의 경우에도 남성들이 홀로 있는 것을 더욱 어려워했다. 전통적인 일본 남성 가치관에 따라 집안의 일은 모두 아내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바깥 일만 했기 때문에 살림을 꾸려가는 것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거기다 퇴직은 곧 모든 사회적 연결망의 단절이 되고 직업 말고는 다른 취미를 가져본 적도 없는 그들은 삶의 의미를 달리 쉽게 찾는 것도 어려워서 이제 홀로 보내야 할 시간들이 모두 우울과 불안으로 닥쳐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에 길들였던 습관은 그대로 남아서 자식들에겐 늘 권위 있는 가장으로 행세하려고만 드니 가족으로부터 고립마저 초래해 싱글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문제점으로 인해 우에노 지즈코는 책을 쓰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노년으로 가면 갈수록 쇠약해질 수밖에 없는 일본 남성의 싱글력을 길러주려는 책이다. 그 구체적인 노하우를 많은 싱글들의 실제 삶과 평생 싱글로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까지 더해 가르쳐 주려는 책인 것이다. 싱글로 맞이할 수 있는 삶의 모습 전반을 다루면서도 내용은 소화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거기다 어조가 솔직하기까지 하다. 


 예컨대, 배우자를 간병하는 남성의 경우 해소하기 어려운 성욕 문제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내야 행복할지 어떨지 몰라도 남편이 참 안됐어요. 남자 50대면 한창 나이인데 성욕을 체념하고 살아야 하다니 말이에요"

 어렵쇼, 그 사람은 섹스는 부부끼리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라면 그토록 아내를 아끼는 멋진 남성의 애인이 되어 "당신 덕분에 나는 아내 간병에 전념할 수 있어,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 싶건만. 싱글은 이럴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나는 대체 남성 편만 들고 여성에게는 적이 될 심보일까?(p. 53)


 75만부 중의 한 만 부 정도는 이 말 때문이지 않을까? 이 봐, 정색할 것은 없다고. 물론 농담이니까.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의외로 촌철살인 식으로 이런 저런 생각 지점들을 꽤 짚어주는 편인데도 어조가 이런 식이라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진중함을 이런 가벼움으로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내가 익히고 싶은 것인데 높은 내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언감생심이다. 과연,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에서 젠더 분야의 선구적 이론가이자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고 한다.  


 '독신의 오후'를 읽다보면 느끼게 되는 한 가지는 만일 정말로 노년 남성의 홀로 삶이 그토록 힘들다면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로 어떤 안간힘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예전 삶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안간힘 말이다. 이 안간힘은 생각 이상으로 힘이 세다. 노년이 되면 될수록 고집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보게되지 않는가. 이는 노년의 가장 큰 문제는 육체의 쇠약과 사회적 연결망의 단절로 자존감이 극도로 위축되는 것인데 노년에겐 이제까지 늘 지녀온 자기 생각이나 습관을 포기하는 일도 자존감의 상실로 받아들여 지는 탓이다. 이렇게 자존감과 연결된 것이기에 안감힘을 써서 버티는 것이고 그 때문에 고래 심줄보다 더 질겨서 잘라내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우에노 지즈코는 변하지 않으면 도래하는 것은 비극 밖에 없다고 말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노년이 자존감을 지키려 그토록 매달리는 통칭 '보수(지녀온 자기 것을 내내 고수한다는 점에서)'는 알고보면 매뉴얼과 같다. 대부분 자기가 계획하고 판단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부로 부터 주입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당신들은 늘 다시 태어나면 절대 결혼 안한다고 하시면서 독신인 자녀에게는 왜 빨리 결혼 안하냐고 다그치는 부모나 친지들도 실은 매뉴얼 대로의 삶을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은 쉽게 생각하자는 것이다. 삶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입되 매뉴얼을 좀 더 자유로운 쪽으로 업데이트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낯선 삶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일도, 오래도록 싱글로 산다고 해서 자신을 '패배한 개'처럼 여기지 않는 것도 한결 수월해질 테니까.


 사카이 준코의 베스트 셀러 '노처녀의 절규'에는 남편도 없고 자신감도 없는 30대 이상 여성을 '패배한 개'로 정의하며 자기 비하를 보여준 끝에 "그래요, 나 노처녀예요. 그게 뭐 어때서요?"하고 반문하는 퍼포먼스가 나온다. 싱글 남성 세계에서도 모태 싱글 40년차입니다만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뭐요?"라는 상식이 통하게 되면 남성들도 훨씬 편해질 텐데 말이다(p. 82)


 이런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 기꺼이 삶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맞이하려는 태도. 결국 '독신의 오후'가 권하는 부드러운 홍차란 이런 원기를 북돋아주고자 함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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