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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내겐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내 인생 최초의 선생님. 최초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때의 나는 학교가 끝난 뒤 가장 마지막으로 집에 가는 아이였다. 집에 가도 맞아주는 이가 없었고 텅 빈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싫어했기에 되도록 학교에 남아 있으려 한 까닭이다. 텅 빈 스탠드의 계단을 위 아래로 뛰어 오르내리다 저물어가는 태양에 나무들의 그림자가 운동장 위로 제법 길어지면 책가방을 다시 둘러매고 집에 오고는 했다. 태양을 눈 뜨고 오래 바라보는 버릇도 그 때 생겼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와 처음으로 깨친 것은 한글이 아니라 무료함과 외로움이었다. 나는 언제나 눈이 반쯤 내려가 있고 윗입술이 아래입술을 살짝 덮은 뚱한 표정으로 있었다. 아이들과 수다를 떨기 보다는 창 밖에 보이는 나뭇가지에 새가 날아와 앉기를 기다렸다. 혼자였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누구도 날 신경쓰지 않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던 날 내내 누군가 보고 있었음을. 바로 담임 선생님이었다.
하루는 날 부르셨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교실에서 얼쩡거리던 나를 발견하고 부르신 것이었다. 선생님과 그렇게 가까이 있게 된 것은 처음이었는 지라 난 조금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 손바닥 위에 미소와 더불어 올려주신 박하사탕 하나. 작고 하얀 조약돌 같기만 했던 그것을 입 안에 머금었다. 입 안 가득 알싸하게 퍼지는 감각에 놀라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물으셨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냐고.
그림이라 대답했다. 그림이 좋았다. 쉽게 그리고 혼자서도 아주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였으니까. 그래, 그림을 좋아하는구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좀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로봇 만화를 좋아했던 나는 늘 만화처럼 똑같이 로봇을 그리지 못하는 게 싫었다. 마당에 묶인 강아지도, 부엌에서 졸기만 하는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잘 그리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끝나고 남아서 선생님이랑 같이 그림 배워보지 않을래 하셨다. 선생님은 뭐든 다 잘 하는 줄 알았던 나는 선생님에게 배우면 잘 그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차피 방과 후의 나란 너무 심심하기도 했다. 그 때부터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웠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선생님에게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매일을. 여름방학 동안에도.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대부분은 선생님이 하나의 주제를 정해주면 그걸 내 마음껏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 그리면 대화하는 식이었다. 사실 별 거 없었는 지도 모른다. 그저 혹시나 사고라도 당할까봐 그림을 핑계로 보호해주신 것일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지만.
나중에 내가 변했다는 걸 알았다. 내 눈은 어느새 온전히 떠 있었고 윗입술도 더이상 내려오지 않았다. 창 밖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보고 있는 내가 되었다. 아주 뒤늦게 뜻밖의 사건 때문에 깨닫게 되었다. 그 때 내가 배운 건 그림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 누군가 날 지켜봐주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무엇보다 꾸준한 지속이며 삶은 누군가 함께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을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배웠다는 것을.
그런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왔다. 많은 시간이 지나 전혀 예기치 않은 계기로써. 어느 날 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들었다. 선생님이 누군가의 칼에 찔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모든 게 보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름과 직업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아니,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황망한 마음에 얼른 내려 동창들에게 전화했다. 확인은 이틀이 지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더이상 이 지상에 계시지 않으셨다. 졸업 후, 한 번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수화기를 놓기도 전에 왈칵 눈물이 났다. 내가 경험한 최초의 죽음이 선생님이라니. 그러고 보니 제대로 살게 된 것도 선생님 덕분이었다. 부모님은 몸의 첫 숨을 주었지만 영혼의 첫 숨을 준 것은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주고가셨다. 삶도, 죽음도.
그 후로 스승이란 말을 들으면 참 아련하다. 진한 그리움도 애잔한 슬픔도 함께 배여든다.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저녁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홀로 그네를 타고 있는 것만 같다. 곧 누군가 저녁밥 먹으라고 따스하게 불러줄 것 같기도 하고 내내 그대로 어둠에 사위워가는 놀이터를 볼 것만 같기도 하다. 복잡한 심정이다. 하지만 묻어나는 따스함이 더 크다. 언젠가 꼭 누군가 와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놓아버리려는 삶의 그네줄을 두 손 모두 힘있게 부여잡도록 한다. 지켜봐주었던 기억이, 사랑받았던 기억이 버티게 하는 것이다. 어둠속에 홀로라도.
정민의 '삶을 바꾼 만남'은 다산 정약용과 평생을 두고 그를 스승으로 섬겼던 제자 황상의 이야기다. 다산의 강진 유배로부터 시작되어 황상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 사제지간의 인연을 다루고 있다. 담긴 세월이 길기에 깃든 이야기가 제법 된다. 그만큼 긴 시간을 벗한다. 거기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주고 받은 서간문까지 인용되어 있어 그들의 인연을 더욱 가까이서 음미하게 되었다. 적나라한 모습이랄까. 실감나게 가득 느낄 수 있는 인연이었다. 잘 삐치고 남의 눈이 무서워 유배지에서 맺었던 가족의 인연을 저버리기도 했던 다산이었지만 그래도 제자를 아끼는 마음만은 가득했던 스승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그만 물들었던 것 같다. 물기어린 눈으로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은.
제목처럼 좋은 스승과의 만남은 삶을 바꾼다.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점점 사제지간이 길연이 아니라 무연 혹은 악연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오래 생각하게 된다. 짙은 그리움을 부르는 좋은 사제의 인연이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