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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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어떤 책은 진실로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기도 한다. 그런 책을 만났다.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가히 전복적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는 뜻이다. 무엇을 뒤집느냐고? 단순히 말하자면 '예측'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인 것이 있다.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고 예측 할 수 없다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건 인류가 가진 보편화된 믿음이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경제학이 발달하고 사회과학이 발달하고 통계학이 발달했다. 단순히 말해 이 학문들은 왜 존재하고 이토록 성장했는가 하면 보다 잘 예측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 그 숱한 이론들도 왜 생겨났던가? 따지고 보자면 좀 더 잘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이론의 이름으로, 법칙의 이름으로 때로는 기법의 이름으로 참 다양하게도 나타났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미래를 잘 예측해서 리스크를 가급적 방지하고자 함이었다. '오오! 찬양 받으라!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구원일지니!' 그 많은 이론들은 이런 찬송가와도 같다. 지금까지의 이론들은, 학자들은 저마다 솜씨가 좋은 예언자가 되기를 원했다. 세상은 원래 정해진 법칙 대로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법이거늘 우리가 제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아직 발견해내지 못한 'MISSING LINK' 탓으로만 여겼다. 정말로 세계는 기하학적인가? 그렇게 선형적인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나심 탈레브이다.(니콜라스까지 쓰기에는 이름이 너무 길어서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는 말한다. 세계는 선형적인 것이 아니라고. 절대적으로 비선형적이라고! 이 말은 곧 세계는 '1+1=2' 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1+1= 1/2로도 나타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서, 비선형이란 당신이 약 복용량을 두 배로 늘리거나 공장 종업원 수를 두 배로 늘리더라도 원래 기대했던 대로 두 배의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걸 말한다. , 세계의 본질은 완전히 예측 불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측을 잘 하겠다고? 천만에! 그건 절대 불가능이야. 오히려 그런 식의 인위적인 개입들이 더욱 우리를 힘든게 만드는 걸 알랑가몰라?'

 이게 나심 탈레브의 예측 가능성을 십계명처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자들에게 던지는 돌직구다. 한 마디로 너네들은 엉터리라는 말이다. 이런 예측 가능성의 신화는 주로 근대 이후 서구 사회를 양분화했던 소련과 미국의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나심 탈레브는 양 진영의 가장 최고 대학의 이름을 빌어 '소비에트-하버드 환상'이라 부른다.

 

  그러나 기죽어 있을 그들이 아니다. 예측 가능성을 신봉하는 자들은 나심 탈레브에게 말한다. "뻥까시네!"라고. 그러자 나심 탈레브는 이렇게 되받아친다. "뻥이 아냐.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보여주겠어!"

  그 말대로 한 권의 책을 낸다. 정말 얼마나 작심했던지 페이지 수만 해도 '찾아보기'까지 합해서 무려 754 쪽에 이른다. 그야말로 방대하다. 두께 자체가 마치 '어이, 예측 가능성의 쫄다꾸들, 난 이정도로 내 말에 대해 논리와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데 어디 너네 카드들도 한 번 까 봐! 정말로 진검승부 한 번 펼쳐보자구! 쫄리면 뒤지시든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손만 대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벼리된 나심 탈레브가 만든 회심의 검이 바로 '안티프래질'이란 책이다. 그에 따르면 그 자신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안티프래질'은 '소비에트-하버드 환상'을 깡그리 부수기 위해 태어났다. 왜냐하면 이러한 예측 가능성에 대한 과잉 신앙이 무엇보다도 2008년의 금융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일 뿐이다. 나심 탈레브에 따르면 우리 세상엔 이 예측 가능성의 신봉이 가져오는 무수한 부작용이 있다. 사회가 원하는만큼 개선이 안되는 것도 예측 가능성에 대한 과잉 신앙으로 순리대로 흐르도록 놔두지 않고 자꾸만 이것저것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해마다 여름이면 진한 녹조 라떼를 선물하는 4대강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안티프래질 다음 개정판엔 전세계에 섣부른 개입에 대한 뜨거운 경고로 4대강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2008년 금융 위기로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이 다름 아닌 나심 탈레브다. 그 전부터 유일하게 장차 커다란 금융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 예측하며 잇달아 미국 경제에 경고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예측 대로 금융 위기는 현실로 나타났고 예언이 실현되는 것 만큼 예언자에 대한 믿음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 나심 탈레브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남의 비극을 밟고 행운을 거머쥔다는 게 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의 삶도 그리 순탄했던 건 아니다. 잇달아 미국 경제에 대해 날린 경고로 월 스트리트 저널은 나심 탈레브에게 지금 월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나심 탈레브는 행여나 암살되지 않도록 경호원을 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지상으로 진지하게 충고해 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나심 탈레브는 이 충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정말로 경호원을 둘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가 하게 된 것이 스스로 체력을 증진시키는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안티프래질의 핵심 개념은 바로 이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나왔다. '안티프레질'을 위한 주요 방법론 중 하나로서 나오는 '바벨 효과'(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의 바벨이 아니라 운동할 때 드는 역기 비슷한 기구를 말한다.)는 바로 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자꾸 '안티프래질', '안티프래질'하는데 그 뜻을 몰라 궁금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티프래질'이 뭔지 알고 싶어서 일부러 영어 사전을 펼칠 필요는 없다. 쿡쿡. 실은 사전에 없는 말이다. 당연하다. 나심 탈레브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쉽게 말하면 '안티프래질'은 '깨지기 쉬운'을 뜻하는 fragile의 반대말이다. 하지만 영어엔 그 반대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심 탈레브가 직접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Antifragile'이다. "뭐야, 별 거 아니네. 뭣하러 일부러 말을 만든담? 그냥 설명해도 되잖아!" 아니다. 하나의 단어는 나심 탈레브에게 중요하다. 그 이유를 그는 책에서 그리스 문화에서는 오래도록 '블루'라는 말이 없었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 옛날 호머가 '오딧세이아'를 썼을 때 파란 바다를 뭐라고 표현했는지 기억하시는지? '오디세이아'에는 참으로 바다가 많이 나오지만 호머는 '파란 바다'라고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 어두운 와인 색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왜? 호머가 색맹이라서? 아니다. 파란색을 나타내는 말이 고대 그리스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엔 딱 네 가지 색깔 밖에 없었다. 하얀색, 검은색 그리고 무지개의 애매한 색깔을 표현할 때 쓰는 빨간색, 노란색이 전부였다. 그러므로 그렇게 쓴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색맹이 아니었지만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는 색맹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블루'라는 말이 태어나고서야 그리스 사람들은 색깔에 대한 지식을 보다 넓힐 수 있었다. 그걸로 나심 탈레브는 단어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면 현존하는 현상 자체도 보지 못하는 문화적 색맹 사태에 빠지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때문에 그는 '측정 가능한' 프래질 보다 세상에 훨씬 많은 측정 불가능한 '안티프래질' 현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안티프래질'이란 말을 만든 것이다. 굳이 프래질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이 개념이 특히나 외부의 충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08년 금융 위기와 같이 커다란 충격이 닥쳐올 경우 예상했던 대로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면 '깨지기 쉬운' 프래질이다. 그런데 세상엔 그런 프래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충격이 더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문명이 바로 자연의 연속적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였다고 한 바 있다. 자연재해든 전염병이든 그게 그냥 부정적인 효과로만 머물지 않고 결국엔 인류의 문명을 좀 더 진보하도록 충동질했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아놀드 토인비가 바라보는 문명이란 '안티프래질'이라 할 수 있다. 측정불가란 그런 뜻이다. 깨지리라 예측했지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와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대로 그러한 안티프래질을 가득 담아낸다. 사골을 삶듯 한껏 우려낸다.

 

 이 사골 국물은 모두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해는 마시라. 책은 한 권이다. 보통의 책에서는 '장'으로 쓰는 것을 '권'으로 했을 뿐이다. 그렇게 1권에서는 핵심 개념이 되는 안티프래질을 설명하고 2권에서는 근대에 들어와 프래질이 특권화되고 안티프래질이 무시되면서 그동안 결국 우리를 예측 가능성의 신화 속으로 몰아넣은 '소비에트-하버드 환상'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왜 안티프래질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3권에서 보여준다. 그렇게 이론적인 작업을 마친 다음 4권부터는 안티프래질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이 전개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라 할 만한 옵션이 4권에서 설명되며 인식론적 방법이라 할만한 비선형성에 대해서는 5권, 그와 비슷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는 '비아 네가티바'는 6권에서 이야기되며 그리고 마지막 7권에서 어쩌면 안티프래질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윤리의 문제가 등장한다.(왜냐하면 모든 게 예측 불허하다면 행위의 상호 통제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를 정초하기가 매우 곤란해질 수 있으므로)

 

 메인 디쉬는 이렇게 이루어져 있으며 군데군데 깨알같은 저자의 유머가 감칠맛을 더한다. 때문에 약간 이해하기 버거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나마 쉽게 읽히는 편이고 때에 따라서는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 소설에 나오는 과자 '마들렌'과도 같다. 무심코 맛보게 된 그 과자가 단번에 오래도록 잊어버렸던 기억을 환기시키고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경험을 낳았듯이 이 책 역시도 읽는 이에게 그와 똑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특히나 세상이 어디까지나 예측가능하다고 믿었던 이들에게는 문자그대로 전복이다. 보통 전복은 그 '급변'으로 인해 많은 저항을 부르는 법이지만 나심 탈레브는 그 근거로 온갖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내세우고 있으므로 저항의 힘줄은 어느 순간 느슨해져 버린다. 이 책엔 그런 힘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생각에 대한 생각'이란 책으로 유명한 대니얼 카너먼은 이 책을 두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해 준 책'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인 것이다.

 

 이 책이 이토록 안티프래질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섣부른 예측으로 이루어지는 인위적 개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4권 이후부터 나오는 모든 안티프래질을 위한 방법론들은 그대로 바보 같은 예측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어설픈 개입'(나심 탈레브가 말하는 용어다.)을 막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마도 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2008년의 금융 위기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그대로 시장의 논리에 따르라고 했지만 미국 정부는 인위적 개입을 단행했고 그 때문에 결국은 2010년 또 한 번의 커다란 위기를 겪게 된 데 있을 것 같다. 안수기도로 환자의 병을 고치겠다며 억지로 기도원으로 데려갔다가 두들겨 맞아 죽은 우리나라의 실제 사건처럼 이런 인위적 개입이 도리어 크나큰 화를 부른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앞서도 말했듯 4대강이 그 가장 대표적인 경우고 작금엔 부동산 시장 역시 그렇다. 가만히 시장의 법칙에 맡겨두면 알아서 조정될텐데 정부가 자꾸만 인위적으로 개입하니까 시장은 왜곡되고 더욱 막장으로 치닫는다. 나심 탈레브는 이걸 '의원성 질환'이라고 부른다. 빠른 해결을 위해 인위적 개입을 의도했다가 도리어 해를 입은 경우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오히려 병만 더 얻게 된 것을 뜻한다.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 문제가 좀 심각한 것 같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병원에서 의료 사고로 죽는 환자의 수가 교통 사고로 죽는 환자의 수보다 적어도 3배 크게는 10배는 많다고 하니까 말이다. 또한 병원균을 통한 감염 외에 의사를 통한 감염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특정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더 많다고도 한다. 이와 같이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닌데 병원을 자주 찾는 것과 같은 '어설픈 개입'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현실 사례에서 보듯이 해악을 초래한다. 그들은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예측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 이러저러한 개입을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입증된 적은 별로 없다. 그 보단 어설픈 예측이 국토 곳곳에 남긴 상처만 더 많이 볼 뿐이다. 섣부른 예측으로 쓸데없이 많은 예산만 축내고 결국엔 처치하는 것마저 곤란해진 거대한 쓰레기 건축물들 하며...

 

 그러므로 안티프래질이 말하는 방법론이란 다름아닌 나타날 수 있는 리스크에 가장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바벨 효과'는 바벨이라는 운동 기구가 양족에만 바벨이 있고 가운데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듯이 그렇게 오히려 프래질과 안트프래질의 양 극단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법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옵션은 하나의 목적을 정하고 달려가는 여행가이기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따라 목적과 방향을 지속적으로 수정해가는 산책가처럼 계획 수립에 있어 다양한 방향과 변화를 염두에 둘 것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안티프래질은 본래는 안티프래질한 세계의 리스크에 어떻게 적절하게 대처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책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예기치 않은 리스크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과잉 정보에 매달리게 되는 것도 어떻게든 리스크를 최소하화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심 탈레브가 말하듯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리스크 관리법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대개의 경우 수정되어야 할 하나의 신화로 부터 파생되어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심 탈레브는 바람직한 안티프래질의 태도로서 근대에서는 가장 공격받는 '꾸물거림'을 내세운다. 무조건 '빨리! 빨리!'를 내세우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비난받는 태도이지만 나심 탈레브는 이러한 태도야 말로 가장 현명한 안티프래질한 대처라고 강조한다. 무조건 덥석 물기 보다 과연 먹어도 좋은 것인가 먼저 이리저리 요모조모 다 따져보라는 것이다.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한 정보 수집, 충분한 토론과 의견 수렴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는 이 태도의 중요성은 이미 4대강 사태에서 우리 역시 충분히 본 바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안티프래질의 말에 나름 공감이 간다. 대니얼 카너먼의 말 그대로 이전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풍성해진 것 같다. 현명함이란 어쩌면 많은 정보를 참조하면서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안티프래질'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리크스에 대하여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도를 그려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진정 보물지도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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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10-1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생각에 관한 생각>을 보니 탈레브의 격찬이 있던데, 그 탈레브의 책이군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낼 가서 냉큼 사와야 겠어욤^^
알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