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웃긴 사진관 - 아잔 브람 인생 축복 에세이
아잔 브람 지음, 각산 엮음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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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저희 사진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들어가시기 전에 나중에 있을 오해를 미리 막기 위하여 먼저 알려드릴 말씀이 있는데... 네? 아! 소문을 듣고 오셨다구요. 그럼, 여기가 어떤 사진관인지 잘 아시겠군요. 다행입니다. 사실 잘 모르시고 오시는 분들이 꽤 계셔서 저희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거든요. 여기는 사진을 찍는 곳이 아니라 보여드리는 곳인데 자꾸만 이런 저런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셔서 저희도 꽤 난감한 처지라서요. 물론 설립자에게 저희도 몇 번이나 건의를 했었죠. 제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사진관이라는 이름은 바꾸자고요. 하지만 안된대요. 사진관이라는 이름 자체에 중요한 뜻이 담겨있다나 뭐라나. 그렇게 물으셔도 안타깝지만 저 역시 그 담긴 뜻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대답해 드릴 수가 없네요. 원래 스님이라서 그런지 그 속뜻을 여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요. 어떤 땐 그 왜 있잖아요? 염화시중을 내가 직접 재현하고 있는 것 같다니까요. 아, 이런 저도 모르게 손님께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군요. 제가 그동안 좀 쌓인 게 있어서 계기만 있으면 이렇게 튀어나온다니까요. 그래도 손님께 넋두리를 하면 안되는 것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네? 설립자 이름요? 아잔 브람이라고 해요. 맞아요, 외국인이죠. 원래는 영국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역시나 놀라시는군요. 다들 그러시더라구요. 외국인인데 스님이라고? 흔하지 않는 케이스이긴 하죠. 염불이나 제대로 외우기는 하는 건가 라고 말하는 손님도 계시고. 그래도 호주 최초로 절도 세웠다고 하니 그렇게 능력이 없는 건 아닌가 봐요. 네. 호주에 사시지만 자주 이리로 오십니다. 오셔서는 이런 저런 좋은 말씀들을 들려주고 가시고는 하지요. 멀쩡하게 대학까지 다 나와서 그 때까지의 삶에 진력이 났는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3년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안착하게 된 것이 불교였다고 해요. 자기 딴에는 17세에 학교에서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고 바로 자신이 불교도가 될 운명이란 걸 알았다고 하지만. 뭐 그런 말은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6살 때 우연히 제가 찍힌 사진 앨범을 보다가 여기서 일할 운명이라고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믿으시겠어요? 뭐라구요? 손님은 7살 때 저와 데이트 할 운명이란 걸 알았다구요. 한 술 더 뜨시는군요. 불행하게도 업무 중에 사교적인 행위는 일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흑심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얼른 저의 본직에 충실해야겠군요.

 

 제가 업무 중 누적된 불만으로 좀 비난조로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사진관은 제법 내실 있다고 자부합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능력과 성격이 따로 노는 사람. 사람은 좀 꽉 막혀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 마음 달래주는 실력 하나만큼은 참 뛰어나요. 그러니까 저도 늘 툴툴거리면서 아직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죠. 사표 던지러 갈 때는 일도 양단의 굳은 각오로 가는데 그 앞에서만 서면 왜 그렇게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것인지 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아무튼 제가 늘 경험한 것이니까 믿으셔도 돼요. 어루고 달래는 능력만큼은 탁월하다는 것을. 입소문을 듣고 이 사진관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지 않겠어요?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안엔 모두 38장의 사진이 있어요. 아마 지금 당신의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다 다를거에요. 어떤 사진이든 당신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으면 그 앞에 가서 가만히 서 계시면 되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래요 명상을 하듯이 말이죠. 그런 상태에서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럼 사진에서 아잔 브람의 목소리가 가만히 들려올 거에요. 저희 사진관은 그런 사진관입니다. 뭐 정확히 말씀은 안하셨지만 제가 추측해 보건대 아마 사진 앨범 같은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사진관을 세운 게 아닐까 싶어요. 왜 그렇잖아요? 사진 앨범을 넘기다 보면 같은 사진이더라도 그 때 그 때 마음에 따라 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잖아요. 그저 재밌는 풋풋한 추억만 전해주던 사진이 슬플 때 보니 큰 위로가 되어주던 경우가 있지 않던가요? 또 어떤 사진들은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그 날의 마음 상태에 좌우되는 것이거든요. 아마도 그런 경험이 이러한 모습의 사진관을 세우도록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많은 분들이 이 곳을 찾아 오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죠. 제가 감탄하는 설립자의 능력이기도 한데 이 사람 참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에 딱 알맞은 예화를 잘도 사진으로 담아 놓거든요. 덕분에 그가 하는 말이 더 쏙쏙 들어와요. 원래 유머가 있는 분이시라 그렇지 않아도 귀를 토끼처럼 쫑긋 세우게 되는데 말이죠. 그러니 부담 없이 둘러보세요. 38장의 사진 그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머무르셔도 됩니다. 저희는 절대 야박하게 굴지 않습니다. 다른 데서는 손님을 왕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에게 손님은 신이에요. 뭐, 그런 마음으로 모시고 있다는거죠. 하하하!

 

 네? 아! 간판요? 사진관이라는 말만 있어 담백하다구요? 이런,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웃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너무 뜻밗의 말씀을 하셔서 그만. 사실 간판이 원래 그랬던 건 아니거든요. 그 앞에는 원래 다섯 자가 더 있었어요. 지난 태풍에 그만 날아가 버려서 그렇지. 그걸 여태 수리도 안하고 있었네요. 설립자께서 워낙에 느긋해야 말이죠. 아, 정식 명칭요? 원래 이 사진관의 이름은 '슬프고 웃긴 사진관'이었죠. 그렇죠? 저도 늘 이상하게 생각했다니까요. 도대체 왜 '슬프고 웃긴'이 들어간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니까요. 물어봐도 뭐, 이제 그 결과정도는 예측하지 않으실까요? 염화시중. 차라리 태풍이 좋은 일을 해 준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튼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럼. 데이트는 업무 끝나면 얼마든지 받아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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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7-2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보는 사진관,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스님이 꽤 별나시네요 영국 사람인데 스님이 되고, 영국도 아닌 호주에 절을 세우다니... 마음먹는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는 것도 잘하신다니...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죠 무엇이든 빨리빨리 흘러가는데, 이곳에서는 느긋하게 보고 있어도 괜찮군요
그 점이 참 좋네요


희선

ICE-9 2013-07-23 23:44   좋아요 0 | URL
좀 변칙을 부려봤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
봄날에 누워있는 나른한 곰처럼 느긋함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희선님의 말씀이야 말로 갓잡은 연어만큼이나 기쁘게 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