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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 수집하기
폴 클리브 지음, 하현길 옮김 / 검은숲 / 2012년 9월
평점 :
"내 컬렉션이 된 걸 환영해"(P. 74)
폴 클리브의 데뷔작 '쿠퍼 수집하기'는 이 스릴러가 뉴질랜드 산(産)인 것만큼이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두 가지나 되는데 하나는 위에 인용한 말처럼 이 소설이 '연쇄 살인마'를 모으는 사람의 이야기 라는 것입니다. 연쇄 살인마를 사냥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미드로도 만들어진 '덱스터'를 통하여 본 적이 있지만 정말로 그가 왜 연쇄 살인을 하며 그런 일을 하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듣기 위해서 그냥 모으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지만 이 작품엔 또 하나의 독특성이 있는데요. 그것은 보통 스릴러의 경우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일대일로 겨루는 이를테면 '톰과 제리'식의 게임인데 반하여 이 스릴러 '쿠퍼 수집하기'는 그 구도에 앞서 말한 연쇄 살인마를 수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끼어드는 '3파전'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지운 감독의 영화 중에 세 명의 캐릭터가 서로 물고 물리는 레이스를 펼쳤던 영화가 있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같은 게임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소설을 주로 이끌어가는 그 세 명을 잠깐 소개해 본다면,
PROFILE NO.1 : GOOD GUY
먼저 '좋은 놈'인 테이트 전직 형사가 있습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고 범인 체포에 아주 능력있는 형사였지만 자신의 딸과 아내를 차로 들이받고 그 때문에 딸을 죽인 자를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사로이 처형한 일로 죄의식을 느껴 결국 형사를 그만두고 경력을 살려 사립탐정을 했으나 딸 아이는 영영 떠나버렸고 사랑스러웠던 아내는 그 사고로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요양원에 있어 그 괴로움에 거의 삶을 포기하듯 살아가다 결국 음주 운전으로 한 여자아이를 들이받고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이제 막 풀려난 자입니다. 출감하자마자 예전 그의 형사 동료 슈로더가 그들이 살고 있는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는, 제복 입은 사람만 살해한다고 해서 '제복살인마'란 별명이 붙은 여성 연쇄살인마 '멜린다 X'를 추적하는 걸 도와달라고 의뢰해 옵니다. 하지만 그 의뢰에 채 뛰어들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변호사 도노반 그린의 방문을 받습니다. 사실 그는 테이트가 음주운전으로 들이받았던 여자, 엠마 그린의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원수와 다를바 없는 테이트의 변호사가 된 건 그 역시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테이트를 직접 처단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죽이려는 찰라 테이트의 간곡한 설득으로 딸 아이의 생사여부를 지켜보고 결행하기로 작정하게 되었고 결국 기적적으로 딸 아이가 살아나자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죠. 그렇게 도노반 그린과 테이트는 같은 죄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테이트의 처단을 도노반 그린만 유일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찾아와 말합니다. 엠마 그린이 사라졌으니 찾아 달라고. 그 때 살려준 빚을 그것으로 갚으라고.
PROFILE NO.2 : BAD GUY
그리고 나쁜 놈, '쿠퍼'가 있습니다. 그는 엠마 그린도 다니고 있는 대학의 범죄 심리학 교수입니다. 주로 연쇄살인마를 상담하여 정신분석을 하고 있는데 책도 한 권 저술했지만 그리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도 수집하는 게 있습니다. 연쇄살인마의 신체 부위 입니다. 그는 그러한 병적인 수집욕을 범죄심리학자로서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언제 돌출될지 모르는 살인 충동을 그것으로 애써 잠재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 그 연쇄살인마의 엄지손가락을 페덱스로 받았던 날 그는 테이져를 맞고 납치됩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한 남자가 '내 컬렉션이 된 걸 환영해'라고 말하더니 사람을 죽일 때의 느낌을 들려줘 라고 말하죠. 가까스로 살인 충동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스스로는 선량한 시민이라 여기고 있는 쿠퍼로서는 정말 미치고 펄쩍 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PROFILE NO.3 : STRANGE GUY
쿠퍼를 가두고 광기로 몰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이상한 놈', 에이드리안입니다. 그는 오래도록 살인 병력을 가진 이들과 함께 정신병원에 있었고 그 때문에 연쇄살인마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관련된 책도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정신적 성숙은 채 자라지 못해 자신의 욕망을 어디까지 실현해야 하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상한 놈'입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뿐이니까요. 책으로만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연쇄살인마의 병적인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연쇄살인마의 신체 부위를 수집하는 '쿠퍼'를 수집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에이드리안은 그 쿠퍼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읽은 대로 그의 살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그의 기호에 맞는 여인까지 납치해오는 성의를 보이죠. 그는 쿠퍼에게 연쇄살인마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비극적인 과거와 관련된 것이었죠. 그가 쿠퍼를 수집해 알고 싶어했던 건 그 과거와 관련해서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쿠퍼는 에이드리안에게 있어 일종의 대차대조표와 같은 것이었죠. 그에게는 살인도 수집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자신이 진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죠.
소설은 이렇게 세 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면 떠오르는 의문은 이것이죠. 왜 작가 폴 클리브는 이런 설정을 택했던 것일까? 그러게 정말 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잠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영화로 돌아가보죠.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유명한 서부 영화 'GOOD, BAD AND UGLY'에 대한 오마쥬이기도 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그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이었습니다. 북부의 산업자본주의가 남부의 전통적인 농경자본주의를 대체하던 순간이었죠. 그렇게 현대 자본주의의 한 원형이 만들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레오네는 일부러 그 시기를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영화에 나오는 'GOOD, BAD AND UGLY'의 세 사람을 모두 지금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의 원형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거기엔 타인이 어떤 처지에 빠져있던 아무런 관심없이 ㅇ로지 자신이 원하는 돈만 추구하는 'GOOD'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돈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인의 삶 따윈 파괴해 버리는 BAD'이 있으며 있는 거라곤 오로지 돈에 대한 저급한 욕망 밖에 없어서 신념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그저 비굴하게 이리저리 오고가면서 돈 벌 궁리만 하는, 그래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렘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는 'UGLY'도 있습니다. 즉 레오레는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 셋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김지운 감독도 비슷한 생각에서 그 영화의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은 굳이 웨스턴 틀을 가져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은유였습니다. 레오네의 미국 남북전쟁과 똑같이 일제라는 돈에 종속된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그러니 거기에 나오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사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많이 이상화되고 키치화되어 본래의 그 뜻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아무튼, 폴 클리브가 하고자 하는 것도 레오네와 김지운과 비슷합니다. 그 역시 이 세 인물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투영하려 한 것이죠. 특히 이 '신자유주의'라는 지옥 속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을 말이죠.
네, 이 소설 '쿠퍼 수집하기'는 이 지옥을 견뎌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크라이스트처치'에 대한 묘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소설의 '크라이스트처치'는 어떠한 도시입니까? 폴 클리브는 소설 초반에 그 곳이 어떠한 곳인지 꽤나 공들여 묘사합니다. 그를 통해 밝혀지는 그 도시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 곳은 '도살자'나 '멜린다 X'와 같은 연쇄살인마들이 활보하는 도시이고 테이트가 교도소에 4개월 가량 갇혀있는 동안 범죄율이 50%나 증가한 도시이며 엠마 그린의 사소한 친절조차 범죄로 오해되어 따귀를 얻어맞는 그렇게 타인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도시였습니다. 테이트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렇게 바로 대답할 정도로 말이죠.
"이 도시 말이야. 아니, 사회라고 해야 하나? 나도 잘 모르겠어. 자넨 이 크라이스트처치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전보다 아주 나빠졌지."
난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즉시 대답했다. (P. 21)
폴 클리브는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얼마나 지옥인지 보여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결정타까지 날려줍니다.
이제 그들은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라는 글자가 가로로 새겨진 2미터 높이의 회색 벽돌담을 지나쳤다. 이 도시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가 처치(CHURCH)에 스프레이로 X 자를 긋고 '도와주소서(HELP US)라고 적어놓기까지 했다.(P. 22)
'크라이스트처치'는 이런 장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중에 밝혀지는, 에이드리안도 있었던 '그로버 힐스'와 닮았죠. 겉으로는 사회의 부적응자를 요양하고 치료하는 병원이었으나 그 실상은 수감된 자들에게 가족을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그 사적인 복수를 허용해 주었던 그 '그로버 힐스' 말이죠. 그렇게 '그로버 힐스'는 '크라이스트처치'의 원형과도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늘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할 수 밖에요. 하지만 신은 죽었고 구원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사적 복수의 공공연한 실행은 이것을 뜻하는게 아닐까요). 자신이 저질렀던 사적 복수로 인한 죄책감을 이제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갚으려 하는 테이트, 오로지 혼자 살아남는 것에만 전념하는 쿠퍼 그리고 사회가 가한 억압 속에서 정말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려 자기 존재의 진실을 알기 원하는 에이드리안은 어쩌면 우리의 것과도 닮아있을지 모르는 각 자가 만들어가는 그 구원의 궤적을 보여주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쿠퍼가 에이드리안에게 대차대조표였듯이 테이트, 쿠퍼 그리고 에이드리안 역시도 우리의 대차대조표인 것이죠.
장장 631페이지에 걸친 여정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뉴질랜드산 스릴러에다 연쇄살인마를 수집하는 이야기에다 3파전으로 전개되는지라 더욱 흥미를 느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특히나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되어 더욱 읽을 맛이 났습니다. 그러니 이 흥미로운 '대차대조표'를 여러분도 한 번 보심이 어떨까 싶어요. 어쩌면 이 소설을 읽고나서 쿠퍼를 수집한 에이드리안이 그에게 처음했던 말을 여러분 역시도 하게 될 지 모르겠네요.
"내 컬렉션이 된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