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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 대한민국 - 위기의 한국에 고한다
김광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특히나 주인공의 남편인 방귀남은 '며느리'라는 직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그야말로 초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중에서 그 남편이 아내를 위해 시누이를 야단치거나 시어머니 앞에서도 이왕이면 아내와 자기가 같이 있을 때 야단을 쳐달라고 하는 둥 그야말로 아내의 편에 써서 아주 든든한 '쉴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한국에 저런 남편이 어딨어?' 하고 비현실적임을 지적하려다가도 어느 순간 그가 30년간 미국에서 키워졌다는 설정을 떠올린 나머지, 그만 '아, 그래 미국에서 자랐으니까 저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납득하고 만다. 어쩌면 정말 그 때문에 그 같은 조금은 무리하게도 보이는 그런 설정을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편 '방귀남'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에서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그것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드라마 '하얀거탑'이나 '브레인'에서도 드러났듯이 거의 군대와도 맞먹는 철저한 위계 사회인 '의사들' 세계에서조차 그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권력을 가진 과장에게 '부하 의사들 업적에 숟가락 올려 놓지 마라'고 직언하거나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병원의 아주 중요한 세미나조차 아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단칼에 포기해버리는 그의 모습은 직장에서 여지없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참으로 먼나라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그럴수도 있겠구나'하고 받아들이는데 그것도 알고보면 모두 그가 미국에서 오래도록 살았기 때문이다.
결국 방귀남이 저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의 바탕엔 가만히 보면 그가 있었던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놓여져 있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리 남녀사이에 별다른 차별이 없을테니까, 미국의 조직 사회는 한국의 조직 사회와 달리 그렇게 위계적이지 않을테니까 방귀남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미국을 우리나라보다 좀 더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방귀남을 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사회일까? 여기에 대해 절대로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책이 바로 현재 경북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광기의 '정신차려 대한민국'이다.
'정신차려 대한민국'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세계전체라는 거시적 측면에서 진행중인 위기들을 다루고 2부에서는 보다 미시적 차원에서 이 위기의 시대에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1부와 2부 모두에 있어서 중점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식 체제, 미국식 이데올로기가 우월하다는 관념의 파괴이다. 즉 여기서 제목의 '정신차려'는 바로 거의 사대주의적으로 '미국 것'에 추종하는 우리들 보고 정신차리라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그리 좋거나 정치적으로 발전된 사회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온갖 문제들로 가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종은 어림도 없고 때로는 배타도 필요한 그렇게 어디까지나 한 발 물러난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여느 나라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게 이 책의 지론이다.
1부에서는 왜 미국에게 서브프라임이라는 사태가 일어났으며 그것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에서 부터 그리스로 인해 초래된 유럽의 위기가 정말은 누구에 의해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벌어진 사태인지를 정확히 꼬집어주고 있으며 그 다음에선 미국과 유럽의 사태를 일으킨 존재들이 여전히 개혁되지 않는 한 장차 또 어떠한 문제들이 연이어 '위기'라는 이름으로 닥쳐올 것인가를 말해준다. 그리고 이렇게 언제 화약고가 폭발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조금이나마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으려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얘기한다. 그렇게 세계 경제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며 진행되는 책인지라 언뜻 보면 난해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나 같이 지하철 같은 곳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자를 배려라도 하는 듯 거기서도 얼마든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게끔 쉽게 서술되어 있다. 책날개에 보면 김광기 교수는 '무엇보다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맛깔스런 글쓰기에 주력하는' 교수라고 나와 있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함량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쉽지만 2008년 부터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짚어주고 있다.
그렇게 1부가 정보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2부는 충고적인 성격이 강하다. 아무래도 1부는 현실 분석적이고 2부는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얘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김광기 교수가 2부에서 특히 강조하는 건 물론 '미국식 혹은 미국것'에 대한 우리의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식의 무조건적 추종이다. 이를테면 한미FTA를 왜 무턱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것 만큼 세계화가 그리 좋은 것만을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계급이나 그 이하 빈민계급들에 있어서만큼은 가속화된 재정위기로 사회안전망을 축소할대로 축소시켜 이중고를 겪게 만들고 또한 론스타 케이스에서 보듯이 외자를 유치하는 것이 그저 플러스적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손쉽게 금융투기세력에게 고스란히 이익을 빼앗기는 일이 될 뿐이며 동시에 세계적 지위 상승을 위해 벌이는 OECD가입이나 G20 같은 각종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것이 사실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만 안겨줄 뿐인 '빛깔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현재 조지 소로스를 위시한 헤지펀드 세력들이 제3세계의 곡창지대를 점점 선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들이 향후 그 투기적 이익을 위해 식량 위기를 가져올 것이 예측되는데 이러한 때 한미 FTA를 하는 것은 진정 지켜야 할 식량주권을 마치 그대로 내어주는 것과도 같기에 위험하다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 모든 것들에 사회학자답게 세세한 근거를 들어 설득력이 있다. 이런식으로 그는 미국식처럼 되어가는 월세화를 왜 막아야 하는지 그리고 미국 대학들처럼 등록금이 하염없이 치솟는 것을 왜 저지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보여준다. 그렇게 그는 미국식 제도들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아주 문제점이 많은 것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에 대해 전혀 열등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우리들 스스로 미국에 대해 당당함을 가지고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식을 추종하기 보다는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결정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나 그런 자세로 바라보아야 할 것들을 '이제는 당당히 주인의식을 되찾아야 할 때'에서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이 특히 빛나는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깨우치는 바가 많았다. 이를테면 미국 시민권자를 포기하는 자들을 특별하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부분의 경우, 그들이 시민권을 포기하고 우리나라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은 이미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일자리 찾기가 쉬운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으려면 병역을 마쳐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뭔가 대단한 희생을 한다거나 특별히 애국적인 행위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랬다. 우리가 가진 미국에 대한 프리미엄식 평가 때문에 이를테면 가나의 시민권을 포기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과 사실 별 다를 바 없는 일인데도 우리는 유독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을 언론은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대단하다고 여겨왔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미국식에 대한 프리미엄 부여는 공교육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왜 우리나라 공교육을 미국의 공교육보다 열악하다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우리의 공교육 현장을 살펴보면 미국에 비해, 교사의 질, 공부하는 절대적 시간, 배우는 내용, 학교 시설 등에서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아니 미국의 공교육 현장에 비해 월등하다.(김광기 교수는 미국의 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먼저 교사의 질은 미국 공립학교 교사들의 고등학교 성적이 하위 3분의 1에 해당한다면, 우리나라 교사들의 성적은 거의 상위 등급이다. 정말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교사의 길로 접어든다.(P.248)
이렇게 그는 공교육, 의료제도, 정치제도 등등에 있어서 사실은 우리나라가 미국 보다 좀 더 발전된 사회임을 조목조목 밝혀준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우리의 우월함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외국인이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꼭 대답해야 하는 것과 같은 주눅이 드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미국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프리미엄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말을 그저 '우리 것이 최고야!'식의 국수주의적 주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그렇게 해석하는 건 그야말로 심각한 오해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느낌은 여기에 담긴 진심은 1부에서 세세하게 보여준 현재 진행중인 위기와 앞으로 도래할 위기에 있어서 제대로 우리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적 프리미엄을 붙이는 습관적 사고와도 같이 그렇게 외국의 것에 기대어 판단하고 결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긍정하고 그 내부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정말 현명한 길임을 강조하는데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많은 중요한 사안들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말들을 참으로 많이 들어왔다. 100분 토론 같은 것을 보면 꼭 들어가는 것이 선진국은 이렇고 저렇고 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나라들은 저마다 다른 역사와 풍토를 가지고 있다. 삼권분립을 처음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그것들을 '사물의 본성'이러 불렀다. 즉 여기서 사물의 본성이란 그 나라 혹은 지역이 가지는 고유의 역사, 언어 그리고 문화들을 총 망라한 고유한 풍토성을 이르는 말이었다. 즉 그 고유의 풍토성이 일종의 본성 혹은 본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가 이렇게 사물의 본성이란 명칭을 부여하면서까지 고유의 풍토성을 강조했던 것은 무엇보다 법이란 것이 그 사물의 본성 그러니까 고유의 풍토성에 합치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몽테스키외는 법이란 어디까지나 각 나라와 고유의 특색에 적합해야 하는 존재임을 역설했던 것이다. 어디 거기에 적합해야 할 것이 법 뿐일까? 제도나 정책 역시도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남의 것을 들여오기 전에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우리의 정직한 모습을 먼저 바라보고 그것이 과연 우리들이 입기에 적당한 옷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김광기 교수의 '정신차려 대한민국'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그 어떤 사대주의나 열등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정말로 나쁘기만한 것인지 어떤 살릴만한 좋은 점은 없는지 한 번 제대로 바라보자는 하나의 외침(2부에서 두드러지는 어조로 볼 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방귀남의 얘기로 돌아가서, 과연 방귀남이 미국에서 오래도록 생활했기에 그렇게 아내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김윤진이 출연해서 유명해진 미국드라마 '로스트'라는 게 있다. 거기서 김윤진은 한국인 아내로 등장한다.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아마도 공항 로비에서 그녀의 한국인 남편과 같이 있는 것에서 부터 였는데 거기서 김윤진은 남편의 말이라면 뭐든 고분고분 따르는 순종적인 아내로 나온다. 그 옆에서 그러한 김윤진을 보고 있던 미국인 아내가 이런 말을 한다. "어떻게 저렇게 살지? 나는 절대 저렇게 못 살아!" 그렇게 그녀가 말하자 그 옆에 있던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그게 왜 나뻐? 너 한국의 이혼률이 미국의 이혼률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것 알기나 하는거야?" 하도 오래전에 봐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를 미국인 남편이 한다. 즉 사실을 말하자면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여자를 마음껏 휘두르고 싶다는 것에선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가?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떤가? 오 헨리의 '할렘의 비극'이란 단편에 보면 남편에게 매맞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아내의 얘기가 나온다. 그녀는 그 때리는 행위에서 남자다움을 본 것이다. 그래서 '완벽한 남편'이란 이데아가 있다면 딱 거기에 해당되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때리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물론 단편의 제목이 '비극'이므로 이 얘기는 오 헨리가 일종의 풍자 처럼 쓴 것이다. 하지만 일상을 그대로 담아냈던 헨리이니 만큼 아마도 당시에 아내를 폭행하는 일이 그 정도로 보편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정은 가능하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자리잡은 하나의 문화적 관습이 달라지기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처럼 미국적 가치관이든 그 사고방식이든 오히려 더 못하면 못했지 별다른 차이는 없다. 그러니까 방귀남은 미국적 삶의 세례를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가 착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오해하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