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고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이에게 있어 작가의 마음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다가올 때 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싶다. 무모함을 약간 가미해서 말하자면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겐 그런 작가다. 결정적 계기는 지난 번 '주홍색 연구'를 읽었을 때였다. 중간쯤 이르렀을 때 갑자기 눈이 열리는 듯 하면서 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선명히 각인되는 경험을 했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짜릿한 경험이었고(레이먼드 카버 때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있지만) 그래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들의 의미. 특히나 히무라 시리즈의 경우에 있어서는.

 

 단순하게 말해, 이것들은 하나의 대답과도 같다. 그러니까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그 때 그 때마다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본격 추리물에 대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주홍색 연구'는 자신이 지향하는 본격 추리물이 가졌으면 하는 가장 이상적 형태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 소설은 자신의 본격 추리물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였고 그 탐구 끝에 나온 대답이 바로 '타인의 구원을 위한 기도로서의 본격 추리'였다. 이것은 히무라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달리의 고치'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아리스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다. '아리스 자신에게 있어 본격 추리란 과연 무엇인가?'가 바로 그 질문이며 그 탐색의 과정이 바로 '달리의 고치'인 것이다.

 

 

 

 말하자면 아리스의 작품이란 선종에서 종종 깨달음을 얻기 위해 던지는 화두와도 같다. 그의 작품은 이를테면 하나의 화두에서 시작하여 묵상을 하고 그 결론을 해결편처럼 내어놓는 형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화두처럼 던져진 질문.

 아리스에게 본격 추리란 과연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달리의 고치'인 것이다.

 

 달리의 고치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다. 이 고치란 달리를 흠모하여 외모마저도 달리 처럼 꾸미고 사는 쥬얼리 기업체 사장이 명상을 위한 장소로 특별히 고안된 기계장치다. 즉 고치 처럼 은둔해서 조용히 개인의 내면 속으로 침잠할 수 있는 기계란 뜻이다. 여기서 바로 드러나듯이 즉 달리의 고치란 도피처의 또 다른 말이다. 이렇게 달리의 고치가 가지는 의미가 파악이 되면 소설 내내 바로 이와 같은 도피처를 뜻하는 것들이 참 많이 나옴을 우리는 보게 된다.

 

 먼저, 쥬얼리가 그렇다. 거품 경제의 호황을 타고 번성하게 된 쥬얼리 산업에 대해 탐정역의 히무라는 이렇게 말한다.

 

 "고도 성장기에 들어서 귀금속이 대중화되자 다른 상품들 처럼 체인점이 출현하게 되었지. 대량 매입 대량 판매에 의한 대중 판매지. (..) 매장 문턱이 낮아지면서 자기 취향의 물건을 예산에 맞춰 자유롭게 고를 수 있게 되었어. 79년 닛케이 신문에서 조사한 전문점 랭킹의 보석, 시계, 안경 전문점 부문에서는 귀금속 체인이 상위를 차지했어(p.85)"

 

 바로 이 체인점의 호황 덕분에 살해당한 사장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그런데 히무라 말에서 드러나듯이 고도성장기에 있어서 귀금속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고도 성장에 따라 당시 일본인들은 조직 속의 한 개인으로 점점 왜소해지는 자신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 귀금속 체인점은 좋은 유혹이 되었다. 왜냐하면 체인점이 존재하기 전까지 귀금속이란 오로지 부유한 자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전문점에서만 판매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턱이 낮아진 체인점은 일반인들도 귀금속을 얼마든지 살 수 있게 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마치 부유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고양시켜줄 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점점 왜소해지는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었고 때문에 귀금속 체인점은 하나의 도피처가 되었다. 그러므로 살해당한 사장이 자신의 개인적인 도피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설정이다. 그의 막대한 재산이 모두 사람들의 도피처에 대한 염원을 자양분으로 하여 무럭무럭 커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피처는 죽은 사장 뿐만 아니라 그 용의자가 되는 자들에게까지 존재한다. 스포일러상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니 뭉떵거리듯 말하자면 어떤 이는 사랑을 또 어떤 이는 점치는 것을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다른 이성의 모습을 하는 것을 도피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 속 등장인물 저마다는 모두 각자의 도피처를 가진다. 그런데 그렇게 도피처를 가지게 된 연유는 다 비슷하다. 일본인들이 귀금속 체인점을 도피처로 삼았던 이유가 사회 안에서 보다 궁극적으로는 타자들 앞에서 왜소해지는 자신 때문이었듯이 등장인물들 역시도 타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도피처를 가지는 것이다. 즉, 그들의 도피처란 바로 불안하고 두려운 타자들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도피처의 총체적인 성격은 바로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분신인 소설 속 작가 아리스에게 집약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지금 작가 아리스가 이 작품에서 던지고 있는 화두. 자신에게 본격 추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물론 도피처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본격 추리를 쓰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알려준다. 이것이 바로 '주홍색 연구'에서 스쳐가듯 나왔던 그가 중3 때 열정적으로 한 편의 추리소설을 써내려간 내막이다. 또한 이것은 현실의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진짜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므로 그가 어쩌다 본격 추리에 천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본격 추리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드러나게 되는데 무엇보다 그가 본격 추리에 매달리게 된 원인엔 타인으로 부터의 실연이 있었다. 즉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역시도 '본격 추리'라는 고치를 가지게 된 연유가 다른 이들과 그리 다를바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그가 가지고 있는 본격 추리의 의미란 더욱 명확해진다. 바로 자신의 도피처라는 사실이다. 그는 그것을 내내 강조하기 위하여 등장인물 모두에게 저마다의 도피처마저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화두란 늘 그렇듯이 현상의 확인이 아니라 탈출을 위한 출발이다. 즉 해답이란 언제나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에게 본격 추리가 도피처란 대답은 이제 그로 부터 벗어나겠다라는 의미와도 같다. 그가 그런 자세로 이 소설에 임하고 있음은 우리가 '주홍색 연구'에서 그가 찾아낸 결론으로도 확인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히무라의 사건 해결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아리스는 본격 추리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 해결에 거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트릭 풀기가 아닌 것이다. 그건 차라리 그가 이 소설을 통해 내내 탐색한 과정의 최종 해답과도 같은 것이다.

 

  스포일러상 해결편을 말할 수 없으니 여기서 조금은 에둘러갈 필요가 있다. 해결을 통해 아리스가 가지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보다 왜 제목을 하필이면 달리의 고치로 했느냐 아니 보다 궁극적으로는 왜 달리를 끌여들었느냐를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래, 왜 달리인가? 아리스는 왜 피해자인 사장을 그토록 달리를 흠모하는 인물로  설정했을까? 그건 소설에서도 바로 나오지만 달리가 자신의 연인 갈라에게 행했던 그 사랑 때문이다.

 

  소설은 달리가 얼마나 갈라를 사랑했는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정작 갈라는 달리를 그저 이용했을 뿐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히무라는 말한다.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그답게 참으로 냉정한 대답이다. 하지만 갈라가 그러거나 말거나 달리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갈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갈라가 자신에게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랑에만 충실했다. 전적인 내어줌. 그것이 바로 달리가 갈라에게 행한 사랑의 본질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아리스는 '달리'를 가져온 것이다. 이는 도피처가 오로지 타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겼다는 걸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달리는 타자 때문에 불안을 느끼거나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였고 그래서 도피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달리 안에서 도피처에 대한 욕망으로 부를 쌓아올린 사장이 명상의 장소로 사용한다는 건 정말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건 그대로 본격 추리에 대해 바라는 아리스의 모습과 그대로 판박이다. 즉 그 사장이 바로 아리스인 것이다. 그 사장이 달리의 전적인 내어줌에서 힘을 얻고자 했듯이 아리스 역시 자신의 본격 추리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전적으로 내어줄 수 있어서 이제는 도피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타인들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말이다. 에필로그 처럼 붙여진 마지막 장면은 정확히 바로 이것을 나타내고 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누누히 말하지만 그냥 단순한 본격 추리 작가가 아니다. 그는 정말 본격 추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작가다. 더구나 본격 추리 역시 작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높은 문학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일종의 긍지까지 가지고서 생각하는 작가다. '달리의 고치'는 그러한 그의 열정 그리고 자부심이 짙게 투영된 작품이다. 한 마디로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작가 아리스의 신념의 산물이다. ('달리의 고치'에서 이루어진 플롯이나 디테일의 치밀한 설정만 봐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리뷰를 통해 그것을 많이 드러내려 했으나 스포일러의 한계상 그리고 능력 부족으로 원하는 만큼 드러내지 못했음을 참으로 아쉽게 여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