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파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4 존 코리 시리즈 4
넬슨 드밀 지음, 김홍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때로 선입관이란 얼마나 무참하게 깨어지는 것인가?

 

넬슨 드밀의 '와일드 파이어'를 읽고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책은 여러가지로 내가 읽기전에 가졌던 생각들을 뒤집었다. 도심 한 가운데 핵폭팔로 인한 버섯구름이 그려진 표지로만 보자면 이 소설은 분명 빈스 플린의 '임기 종료' 아니면 인기 미국드라마인 '24시' 인 것만 같다. 그만큼 정부를 전복하거나 인류를 위협하는 압도적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고 그것을 막기위한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들을 막기 위한 악인들의 악전고투가 쉴 새없이 종횡무진 이어지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 말이다.

 

그의 전작 '플럼 아일랜드'와 '라이언스 게임'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넬슨 드밀이 90년대 한창 유행했던 아놀드 슈왈츠제네가나 브루스 윌리스가 나왔던 그런 액션 무비의 소설판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존 코리 형사가 마초 스타일로 종종 소개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읽었더니 이런 왠 걸 그 모든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넬슨 드밀의 '와일드 파이어'는 사실 아주 기묘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당신도 이 소설을 읽게 되면 그리고 끝까지 읽어보면 뭔가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는 위화감을 분명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소설과 가장 닮은 작품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건 이 소설에서도 직접 언급되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다.

 

 

   미국과 소련간 전면 핵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블랙코미디는 정작 핵전쟁  을 둘러싼 정황을 그리지만 그 어떤 액션신도 서스펜스도 보여주지 않는다. 스탠리 큐브릭이 이 영화에서 담아내는 것은 다만 그것을 둘러싼 지리한 논쟁 뿐이다. 큐브릭이 그것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지구의 종말마저 가져오는 이 중대한 사건이 알고보면 뚜렷한 계기나 합리적 사고도 없이 아주 우연적인 계기로 그것도 아주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음 가운데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한심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넬슨 드밀의 '와일드 파이어'도 그와 비슷하다. '와일드 파이어'란(정말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가 싶어 찾아봤는데 정보습득능력의 한계 탓인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중동으로 부터 핵공격이 있을 경우 자동적으로 그 중동에다 핵공격을 퍼붓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때문에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에 핵공격을 감행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모두에게 핵억지를 가져왔던 'MAD(상호확증파괴)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여기서 MAD란 쉽게 말하자면 너희가 핵을 쏘면 우리도 무조건 가지고 있는 핵을 다 쏜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은 핵을 쏘기 전에 반격으로 날아올 무수한 핵폭탄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핵공격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 MAD가 어떻게 유효한 핵억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존 내쉬의 '수인의 딜레마'가 잘 보여준 바 있다.)

 

 

넬슨 드밀은 이러한 핵공격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소재로 인해 우리가 가지게 될 전개에 있어서의 기대를 그 어느 하나도 이루어주지 않는다. 핵폭팔을 앞두고 전개되는 서스펜스도 총탄들이 마구 쏟아지는 총격전이나 추격전 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배경 조차 도심이 아니라 어디 먼 한적한 시골 숲이다. 핵이라고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핵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개로 드밀은 독자들을 마치 이상한 나라에 빠져버린 앨리스로 만든다.

 

그러면서 그가 정작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것은 이상한 나라에 빠져버린 앨리스가 만난 티 테이블에서의 모자장수와 그 친구들이 벌이는 알 수 없었던 대화 처럼 미국이 과연 핵보복을 해야 하느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부터 이어져 온 '렉스 탈리오'를 관철시키는 게 과연 옳으냐를 둘러싼 논쟁들 뿐이다. 아마도 우리는 여기서 '이건 뭥 미?'와 같은 반응을 할텐데 그러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를테면 무협이란 장르에서 두 협객이 서로 합을 이루는 두 개의 검술은 그 자체가 몸으로 실어보내는 서로에게 건네는 대화라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말로써 하는 대화를 협객은 검으로 나눈다. 그래서 무협의 대가 김용은 화산에서의 무예 겨룸을 '논검(論劒)'이라 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드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그가 핵을 소재를 다루면서도 우리가 예상했던 모든 전개를 뒤엎는 것은 사실 그걸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이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논쟁 자체가 그들이 언어로서 주고받는 총격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드밀의 '와일드 파이어' 에서는 언어들이 총알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들의 말이 신체에 가하는 고문을 또한 대신한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는 물리적 공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념이, 그리고 그것이 바탕이 된 태도가 중요하다. 이 소설은 두 협객이 검에다 신념을 실어 합을 펼치듯 그렇게 신념과 신념이 맞부딪히는 소설이다.

 

드밀은 왜 이렇게 표현했는가?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소설이 그 무엇보다 9.11을 겪은(그것도 바로 얼마전에 가까운 지인들을 피해자로 둔!) 미국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드밀이 이 소설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9.11이 미국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을 묻는 것이다. 그것은 억울한 피해인가 아니면 그동안의 죄의 대가인가 또한 그는 묻는다. 이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은 미국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렉스 탈리오의 법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먼저 스스로를 성찰하고 이런 비극을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승적으로 타자를 껴안을 것인가?

 

언뜻 봐서 마초스럽고 소설 자체에 어쩌면 과잉으로까지 여겨지는 성적 농담으로 가득차 그지없이 가볍게 보여졌던 이 소설은 그렇게 사실은 아주 깊숙한 곳에서 뜻밗의 거울을 스스로에게 비춰보이고 있었다. 논쟁 자체가 하나의 거울이었다. 그 어느 것으로도 결론나지 않아서 당신이 스스로 판단할 수 밖에 없기에 스스로의 모습만이 비춰질 뿐인 그런 거울이었다. 바로 그 거울에 비쳐질 당신의 모습, 당신의 진실은 어떤 것인가? 드밀은 바로 그것을 마지막의 마침표 처럼 묻고 있었다.

 

해서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사립탐정의 외양을 취한다.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기에 존 코리가 전작에서도 그랬는지 아니면 과연 이 소설에만 그런지 확언할 수 없지만 차량이 뒤집히고 무차별 총격을 가하리라 보였던 존 코리가 보여주는 건 그래서 탐문과 고찰 뿐이다. 그는 끊임없이 묻고 돌아다닌다. 하나의 죽음이 초래된 그 진실을 찾아서... 9.11에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에 비해 한 사람의 죽음은 미미하지만 드밀에 있어서는 그 하나의 죽음과 9.11에 희생된 사람의 죽음은 똑같아 보인다. 결국 목숨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바로 9.11의 비극을 가져오는 근본적 원인임을 아는 까닭이다. 탈무드의 말 그대로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 우주를 죽이는 것이고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전 우주를 살리는 것이다.' 바로 그 이유로 드밀은 존 코리가 사립탐정의 역할을 맡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다른 이유로도 이 탐정의 외양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립탐정은 무엇보다도 변화의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챈들러 이래로 사립탐정들은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탐문하고 추적을 해 왔다. 바로 그 이유로 '와일드 파이어'에서 9.11 이라는 커다란 상처가 가져온 미국의 변화를 그리는 드밀에겐 사립탐정은 그야말로 적역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가지게 될 진실에 대하여 배려하는 의미로 이 이상 소설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개인적인 느낌만 에필로그 처럼 붙여놓도록 하자. 꽤나 화끈한 스타일이 아닐까 예상했었던 넬슨 드밀의 '와일드 파이어'는 의외의 곳에서 문득 마음의 수면 밑을 헤아려 보게 만드는, 그렇게 겉보기와는 다른 진지한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반 이상이 존 코리의 빈정거리는 농담으로 채워져있다고 해도 말이다. 니체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 슬픈 동물이기에 웃음을 발명할 수 밖에 없었다 라고 했는데 내겐 존 코리의 빈정거림이 그렇게 보였다. 사실 9.11 이란 그 거대한 비극을 앞에 둔 자들이 할 수 있는게 무얼까? 우리는 또한 종종 보지 않았는가? 너무 맞딱드린 비극이 압도적이면 스스로도 감당이 안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실실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때문에 내게 그의 빈정거림은 상처의 반어법적 표현으로 보였고 그래서 소설 자체엔 마치 그 빈정거림 그대로 무수한 생채기가 나 있는 듯도 했다. 지금까지 9.11의 상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을 참 많이도 보아왔다. 대표적으론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이 있었고 최근의 영화 '머니볼'에서 조차 그 상처의 흔적은 묻어나 있었다. 그런데 스릴러로서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스릴러야 말로 그 소재 때문에도라도 가장 먼저 나왔어야 할 장르인지도 모르는데... 이 소설은 2006년에 나왔다. 시기로 보자면 좀 늦은 편인데 그만큼 아픔을 객관화하기 위하여 숙성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소설이다. 당신을 홀연히 그 그라운드 제로의 자리로 데려가는...

 

들으려는 귀가 있는 자만이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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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3-2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는데요,
이 책은 읽어야만 하는 책이나, 그다지 읽고 싶어지지 않는 소설이겠는걸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걸요... 맘이 엄청 불편할거 같아요. 그런거 있잖아요, 진실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점점 더 몸둘바를 모르겠는 그런거, 글에서도 쓰셨지만, 감당이 안 되면 실실 웃게 되는거... 이 책이 그런 느낌일거 같아요.... 음, 망설이는 중입니다...

하지만 좋은 페이퍼라서, 역시, 헤르메스님의 페이퍼니까 이런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시는구나 싶습니다............ 아, 저는 도저히 지금 이런 페이퍼는 쓸 수 없어요, 생각해보니 원래도 못 썼군요.... ^^

ICE-9 2012-03-20 23:0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느낌이 아마도 정확하실듯 싶어요^ ^ 사실 이 책엔 많은 성적 농담이나 빈정거림이 있는데 저는 그걸 상처의 반어법으로 해석했지만 읽기에 따라선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여성분들에겐 특히 좀 더 그럴 것 같아요. 저도 물론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습니다만 넬슨 드밀 자체가 호불호가 선명히 갈리는 그런 작가인 것 같더군요. 하지만 9.11 자체를 직시하려는 태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어서(이를테면 미국의 대 이라크 보복전에 프랑스가 취했던 태도를 프랑스 출신 요리사로 은근히 묘사한다던지...) 9.11 이후 미국과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를 조금 필요로 하는 면도 있더라구요. 아무튼 저는 추천에 있어 참 조심스럽네요^ ^; 그리고 아유~ 마고님 그런 말씀마세요. 제가 얼마나 마고님 페이퍼에서 스스로 생각할 계기를 많이 가지는데요.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 저는 정말 안되더라구요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