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1 - 열다섯 살 소년의 위험한 도망기 놀 청소년문학 15
팀 보울러 지음, 신선해 옮김 / 놀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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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의 팀 보울러와는 전혀 다른 색깔, 아니 아예 어둠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기다렸다.

 '블레이드'

 '칼'을 뜻하는 이 단순한 제목의 작품을.

 

 여기서 '블레이드'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주인공의 본질이자 지우고 싶어 하는 과거의 상징과도 같은 주인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소설은 특이한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블레이드' 자신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스타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전혀 새롭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미 우리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비롯하여 참 많은 작품에서 그런 스타일을 보아왔으니까...

 

 그래도 팀 보울러의 이 스타일이 새로운 것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그의 말을 듣는 우리를 당당히 작품 속의 한 참여자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블레이드'는 독자인 우리들 자신을 '구경꾼'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렇게 부르며 다른 사람들에겐 잘 내 보이지 않는 속내와 그만이 가진 비밀들을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털어놓는다. 아마도 그의 말을 듣노라면 우리가 느끼게 될 기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해를 받는 '신부'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같이 일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동료' 이렇게.

 

 최근에 유행하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차용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블레어위치'나 'REC' 같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응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방법의 유래야 어쨌든 팀 보울러는 이와 같은 스타일로 독자들에게 읽고 있는 현재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로 여기게 만든다.

 즉 평면의 2D가 당신이 가진 상상력이란 공간에서 4D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팀 보울러가 취한 이러한 독특한 방법론이 무엇때문이냐는 것이다. 그는 왜 상상의 마지노선 뒤에서 우리의 편안히 작품 속의 허구를 관람할 기회를 빼앗는 것일까? 왜 그토록 우리를 작품 속에 끌여들여 '블레이드'가 겪는 모든 사회적 힘겨움을 같이 나눠지게 하려는 것일까? 그 모든 실재(리얼리티)를 우리가 나눠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물음이 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좀 전 잠깐 언급했던 대로 이 작품이 정말로 굉장히 어둡기 때문이다. 잠시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다시 위로 스크롤을 해서 표지를 잠깐 보아두는 것도 좋겠다. '블레이드'는 그 이름에 간직된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현재 도망중인 청소년이다. 그에겐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가족도 친구도 없다. 거기다 기거할 만한 곳도 없다. 그는 매일밤을 노숙 아니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잠을 잔다. 그는 노마드, 즉 '유목민'이며 그를 사회화할만한 그 어떤 기반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TABULA RASA'와도 같은 존재다. 사회의 어떤 의식도 틈입할 수 없는 공백이자 지울 수 없는 얼룩이다. 그 공백이자 얼룩인 블레이드는 그렇게 스스로 사회로 부터 부여된 주체가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주체를 만들어간다. 그것을 나타내듯 블레이드는 몰래 들어간 남의 집 서재에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책을 벗하며 '앎'을 얻고 깨우쳐 간다. 바로 팀 보울러는 이러한 블레이드가 보여주는 '순수 주체' 형성 과정에 독자를 깊숙이 참여시키고자 함인데 왜 그렇게 하는가? 무엇을 우리에게 느끼게 만들고 싶어서 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에둘러 얼마전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을  거칠 필요가 있다.

 

 '칠드런 오브 맨'의 가상의 미래를 다룬 묵시록적 영화다. 가상의 미래를 다룬다는 건 근미래에 더 이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미래를 다루기에 그런 것이고 묵시록이란 더 이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지구란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의미에서 종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영화 조차 그 말을 방증하듯 미래가 사라진 지구를 더없는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찬 지옥으로 그리고 있다. 왜 영화는 아이의 사라짐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가 미래의 상징이고 미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의 지옥도는 고여있는 현재는 썩을 뿐이다 라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가 가능성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은 비어있는 여백 자체가 담고 있는 무엇이든 그려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아이들이 미래라면 그 아이들 역시 각자가 가지고 있고 펼쳐보일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말하는 더 이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은 이제 아이들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사라졌다는 것의 은유이지 않을까? 이것이 그대로 '고인 현재는 썩을 뿐이다'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이들마저 이 희망없는 어둠과 비참만을 낳고 있는 현재의 고루한 복제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결국 '칠드런 오브 맨'이 하고 싶은 건 이 말 하나다.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새로운 것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이 말이 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여기에 참여하는 영화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우리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다는 의미에서) 데브라 그레닉의 영화 '윈터스 본'과 '잭 스나이더'의 영화 '써커 펀치'를 들 수 있겠다. 이 두 영화들은 공통점이 여럿 있다. 우선 주인공이 소녀들이다. 거기다 그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이것은 그대로 연령대나 처지에 있어 블레이드 역시 공유하고 있다. 두 영화에서 소녀들을 둘러싼 세계 역시 블레이드 만큼이나 그녀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모두 하나같이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격적이다. 소녀들은 그 세계에서 블레이드와 똑같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세계를 보전하거나 구원해야 한다. 이 영화들이 궁극에 가서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세계는 이제 파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부채를 이제 우리 어린 영혼들이 모두 짊어지고 갚아나가야 한다. 이렇게도 억울할 수가!' 영화는 그래서 말한다. '어린 세대들이여, 어른들의 길들임은 오로지 자신이 갚아야 할 채무를 너에게 떠넘기기 위함일 뿐이다. 결국 그 떠넘긴 빚으로 인해 너희들마저 그 어른들과 똑같이 파산과 공황 속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러니 상속을 거부하라! 거세된 어른들을 무시하라! 너희는 애초부터 너희 홀로인 것 처럼 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삶이 가져다준 인습과 상식이라는 것을 버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스스로 찾고 받아들인 가치로써 스스로를 재정립해 나가야 한다. 상속을 거부했을 때에라야 너희는 너희 존재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어른들의 하늘이 아닌 너희 자신들의 하늘을 껴 안을 수 있다. 잊지마라, 너희는 혼자고 혼자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 영화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잠정적 선언은 놀랍게도 이제는 하나의 경향이다. 우리는 아마도 많은 영화들에서 이들의 편린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공통의 흔적은 그대로 징후이기도 하다. 즉 지금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체제가 서서히 좌초되고 있는 중이란 것의 징후 말이다. 지금 세계는 급속도로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월가 점령', '재스민 혁명'등이 그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만큼 위기의 시대이고 또 그래서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칠드런 오브 맨', '윈터스 본' '써커펀치' 같은 영화들은 그러한 전환기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지속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안간힘으로 볼 수도 있겠다. 팀 보울러의 '블레이드' 역시 그러한 안간힘에 동참하는 작품이다. 과거가 남긴 파산에 함몰되지 않기 위하여, 좌초하기만 하는 구 세계의 타이타닉으로 부터 빠져나가기 위하여 아직은 덜 때묻은 그래서 가능성이 남아있는 어린 세대들에게 이제 너희들만의 칼을 갈아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런 작품인 것이다.

 

 당신은 여기에 동참할텐가? 미안하지만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는 없다.

 펼치면 참여하게 된다. 시대가 종종 개인을 원하지 않아도 몰아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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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1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마음에 드는책인걸요. 리버보이작가의 신작이라니! 그나저나 헤르메스님 나 너무웃긴거 같아요. 머리가 찌끈찌끈 아픈데도 쓰리지켜서 결국은 알라딘을하고있거든요. 평소에 진짜 건강하면 전데 감기바이러스는 못이기나봅니다ㅜㅜ동생한테옮은거같아요ㅜㅜ

ICE-9 2012-03-15 20:42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소이진님 만큼 저도 웃길지도...
저역시 팔목은 저리고 허리는 아프고 몸은 열로 들뜨고 있는데도 이렇게 마구 글을 쓰고 있거든요. 소이진님도 감기에 걸리셨군요. 저는 몸살... 흑,우리 빨리 완쾌되도록 해요. 아 참, 블레이드 이 책 정말 재밌어요. 역시 팀 보울러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