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 불야성 시리즈 1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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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드보일드는 무엇보다 아웃사이더의 감각으로 충만하다.

 

'주류'라는 것에 피로를 느끼고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에 멀미를 느끼는

한 번 그저 한없이 가벼운 깃털 처럼 속된 세상을 훌쩍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영혼이 위안을

구하듯 내미는 손을 덥석 마주 잡아주는 것이 바로 하드보일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의 바깥으로 불러내 위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하드보일드는 판타지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하드보일드는 판타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판타지는 먼저 세계를 변화시켜 그걸 보는 자아를 변화시키려 한다. 전혀 다른 세상의 모습과 거기의 논리를 통해 당신의 눈을 바꾸고 생각을 바꿔 당신을 짓누르는 현실의 중력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판타지고 그렇게 먼저 당신의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니까 판타지엔 인간이 변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그를 둘러싼 환경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의식을 환경의 종속물로 여기기 때문에 판타지가 깨우는 것은 당신의 이드 속에 감춰진 또 다른 '하이드씨'가 아니라 달리 볼 수 있는 당신의 '시선'이다. 그렇게 당신이 서있는 그 자리를 슬쩍 다른 자리로 이동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판타지인 것이다.

 

 

   물론 하드보일드 역시 당신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판타지가 그러듯이 달리 볼 수 있는 자리 같은 건 아니다. 이를테면 '무대의 뒷편' 같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드보일드는 무대의 더 깊숙한 곳으로 데려간다. 무대의 핵심, 현실보다 더 현실다운 곳. 우리의 일상이 서로의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온갖 기만과 위선으로 덧칠되어 있음은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다 느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짐짓 모른 체 살아간다. 더러 구차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세 끼 밥벌이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옵션이라 생각하고 지구에 매달리기 위한 보편적 숙명이라 스스로 정당화한다. 더러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고 애써 자위하기도 한다. 세상이 전부다 이렇다면 도저히 살지못할 것 같아서 차라리 나만의 경우가 아주 특수한 경우이고 그래도 세상 어딘가엔 아름다움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믿으려 자기 최면을 건다. 어쨌든 희망이란 게 가장 좋은 의미의 거짓말에 불과함을 알더라도 말이다.

 

 

   세상에 만연된 기만과 위선, 그리고 거기에 길들어짐에 따라 이제는 자기 스스로 껴입어버린 기만과 위선... 그렇게 체념 속에 자위하고 그렇게 오욕 속에 굴복하는 자아에게 하드보일드는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그의 목을 부여잡는 억센 손이 된다. 그리고 그 목을 비틀어 다른 손이 유원지의 요술 거울 처럼 현실을 왜곡하고 치장하는 모든 껍질을 산산히 부셔 드러낸 진실을 보도록 만든다. 벌것벗은 맨 얼굴의 진실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그렇게 무대 깊숙한 곳에 놓인 진실들을...

 

 

   따라서 하드보일드의 성공 조건은 총잡이의 액션도 포커페이스들의 비정도 아닌 '가면 벗기기'에 있다. 세상이 쓴 가면을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쓴 가면을 얼마나 잘 벗길 수 있느냐,거기에 하드보일드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드보일드는 '디스토피아적'이다. 왜냐하면 하드보일드는 세계에 대한 '홉스'적 시각이야말로 진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은 모든 이에 대하여 늑대'라는 그 시각 말이다. 그렇게 늑대들로 가득찬 세계. 여기엔 더이상 그 어떤 배려도 공존도 없다. 오로지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식의 양자택일만 가능할 뿐. 때문에 우리는 하드보일드를 이제는 전혀 다르게 보아야 한다. 넘쳐나는 액션은 송곳니로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것과 같은 사람들의 이기적 행태들을 은유하는 것이며 하드보일드만이 가진 특유의 비정성 또한 '늑대들의 제국' 신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칫 동정과 배려를 베풀었다간 언제 자신이 오히려 목을 물릴지 모른다는 생존에 따른 두려움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경계 본능에 대한 은유라고.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하드보일드가 의도적으로 가져버린 장르적 특징들이 아니라 모든 허위와 치장을 벗겨 세상의 가장 속된 진실 위에서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하드보일드로가 당연히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생래적 특징들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드보일드는 단순히 비유하자면 '빨간약'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넸던, '진짜 현실'로 돌아가게 만들 바로 그 '빨간약'이다.

 

   그러니, 하드보일드는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 당신의 기만적 몽상을 거부한다. 물론 여기엔 조건이 있다. 그 희망이란 게 다만 입만 벌리고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이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막연히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는 희망일 경우이다. 하드보일드는 그런 무임승차적 꿈꾸기를 거부한다. 하드보일드가 궁극적으로 세상의 가면과 당신의 가면을 벗기는 이유는 당신을 그저 구경꾼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다. 하드보일드가 그 가면을 벗겨내어 세상의 적나라한 현실을 목도하도록 하는 것은 당신을 하나의 투사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당신 외엔 아무도 당신이 꿈꾸는 그 희망을 쟁취시켜줄 자가 없으니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골방에 처박혀 자위하지 말고 직접 나서서 싸우라고 창과 방패를 쥐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드보일드다. 그렇게 전혀 다른 '나'를 깨우는 것. 일상 속에선 찾을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이면의 '하이드씨'를 깨우기 위한 자명종이 되는 것. 그것이 정녕 하드보일드가 원하는 바이다.

 

 

   때문에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드보일드가 독자들을 경계 밖으로 데려간다고는 할 수 없다. 차라리 독자들 스스로 내부에 이전부터 간직된 아웃사이더가 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하드보일드를 잡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살면서 굳이 직접적으로 듣지 않아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게 맞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고 당당히 외쳤던 트라시마코스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 정말은 어떤 법칙들이 통용되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승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그 트라시마코스를 무너뜨렸던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 우리 영혼에 간직된 그 양심의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단 하나다. 인간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이를 위해서도 희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도 타자를 배려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만이 인간다움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이모니온이란 바로 그 배려에의 호소이다. 나만 아는 괴물이 아니라 스스로 타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사람으로 있고자 하는 저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자발적 의지의 메아리가 바로 양심이다. 바로 이 내부에 공명되는 의지의 울림에 예민한 자들은 눈 앞에 드러난 모든 송곳니들과 어금니들의 광란에 피로와 혐오를 느낄 수 밖에 없고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부단히 인간으로 남고자 기댈만한 뭔가를 잡고자 손을 뻗게 되는 데 거기에 부여잡힌 것이 결국 하드보일드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하드보일드는 '맞잡은 손'이다. 앞서 진실을 목도키 하기 위해 거머쥐는 손이라 했지만 그것은 모퉁이를 돌다 불현듯 채권자를 마주한 운없는 채무자 마냥 그렇게 느닷없이 하드보일드와 만나게 되는 자에게나 타당한 비유이다. 하드보일드의 진정한 본질은 '맞잡은 손'이다. 또한 바로 여기에서 하드보일드는 결정적으로 판타지와 갈라진다. 판타지 역시 세상의 진실을 목도하도록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판타지는 인식의 변화를 주는 것에 만족할 뿐 그것을 위해 행위할 지 말지에 대해서는 독자 자신이 결단해야 할 부분으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타지의 마지막엔 늘 '현실로 되돌아옴'이 있는 것이며 그래서 판타지가 현재는 손을 맞잡고 있더라도 종국에 가선 이별의 손짓이 예정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드보일드에겐 그런 예정된 이별이 없다. 오히려 하드보일드는 당신에게 되돌아갈 현실 따윈 없다고 말하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잡은 손을 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의 맞잡은 손은 단순한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내내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지도 모를, 행위에로의 참여를 복돋우고 응원하는 손이다.

'쫄지말고 행하라! 우리가 하나가 되어 응원하겠다!' 이런 무언의 울림이 맞잡은 뜨거운 온기 가운데 전해져 오는 그런 손인 것이다.

 

   당신이 하드보일드를 만난다는 것을 그런 것이다.

   그는 당신의 목을 거머쥘 수도 있고 당신이 내민 손을 맞잡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속내는 같다. 이 야수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당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인간의 영혼이 몇 푼의 돈으로 도매금으로 쉽게 팔리던 대공황 때 태어난 이후로 그것은 내내 변하지 않았다.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우, 마이크 해머, 루 아처 현대의 매듀 스커더, 엘비스 콜, 켄지와 제나로 그리고 일본의 사와자키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변하고 국적이 달라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이 달라지려고만 마음 먹는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했던 영화 '꿈의 구장'에 나오는 전설적인 메이저리거들이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오로지 순수한 야구의 기쁨만을 위해 경기했던 그 '구장' 같은 곳에 모여 오직 당신만을 격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당신은 오로지 '하드보일드'라는 티켓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여기 당신에게 또 하나의 티켓을 선물한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이라는 진정한 하드보일드 티켓을...

 

 

 

 

   

  주성치의 이름을 거꾸로 차용한 이름이기도 한 작가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은 그동안 좋다는 소문은 무성한데 정작 본 사람은 별로 없었던 전설속의 걸작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소량만 출간되고 내내 절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시다시피 전혀 새로운 장정에 번역까지 새로이 해서 발간되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라 할 정도로 앞에서 내가 말한 하드보일드의 모든 것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하세 세이슈가 불야성에서 묘사한 그 날것으로의 세계의 진실이 너무도 선명해 아마도 한동안 그 세계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라는 제목 그대로 뇌리에서 쉬이 잊힐 수 없는 멋진 작품으로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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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10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암, 졸리다.
지금은 새벽 세시이므로 일단 멋드러진 책의 표지와 제목만 눈길주고는 자러떠납니다~
헤르메스님 안녕히 주무셔요.
감상은 내일해야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