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조용히 밀려드는 파도... 

그 아래서 조금씩 심연 속으로 쓸려가는 모래알...

 

소리없이 내리는 눈...

그 아래서 서서히 존재를 잃어가는 버려진 산사의 외로운 석등...

 

미치오 슈스케의 '구체의 뱀'은 마치 이러한 모습을 영원히 결빙시킨 '스노돔' 같다.

 

 

 

 그 결빙된 풍경 안에 슈스케가 담아두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 구체 안의 '뱀'은 원죄를 낳게한 죄악을 상징하는 뱀일 수도 있고...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의 첫 머리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뱀이라는 그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아니 스스로 그만두지 않을거라면, 어차피 계속할 걸음이라면, 삼키고 가야할 무정한 '삶'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아니, 자신의 꼬리를 삼켜가는 뱀 처럼 지속될 삶을 위해 스스로 죄의식을 먹을 수 밖에 없는 비정한 '삶'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하나...

 

 

 고통속으로 내던져진 존재...

 

 최근 미치오 슈스케 소설 속 인물들은 '하이데거적 창조물들(creatures)'이다.

그렇게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무언가에 의해 고통속으로 내던져진 존재...

전작 '달과 게'에 나왔던 이들도도 그랬고 '구체의 뱀'에 나오는 이들도 그렇다.

메울 수 없는 상실, 지울 수 없는 죄의식을 트라우마로 가진 자들이 만든 '갇힌 우주'.

그것이 미치오 슈스케가 최근에 그리고 있는 세상이다.

투명막 같은 것에 가로막힌 세상. 어디로든 달아날 길 없는 그들...

그래서 신화속 시지프스의 후예들인 그들...

그러한 자들은 어떻게 하나?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벗어나는 용기를 낼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

할 수 없다. 같은 상처를 보듬어 안은 자들끼리 스스로에게 손을 내밀고 안길 가슴과 기댈 등을 내밀어 줄 수 밖에...

뱀이 서로의 몸을 섞어 또아리를 틀듯, 서로의 몸에 밀착하여 겨울의 한파를 늑대무리가 견디듯...

그렇게 서로 연대할 밖에...

 

  연대...

 

  이것이 전작 '달과 게'와 지금 '구체의 뱀'을 관통하는 슈스케의 현재 주제이다.

그렇게 그는 근원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고통을 안아버린 이들이 삶을 견뎌가는 방식을 탐색한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알베르 까뮈는 허무와 권태 밖에는 가져오지 않는 삶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정말 알고 싶었다. 자살이란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어째서 인간들은 시지프스가 그랬듯이 결국 무위로 돌아갈 이 힘겨운 여정을 계속하는 것일까?

 

 슈스케의 질문 방식도 비슷하다.

어째서 그런 고통과 죄의식을 안고 있으면서도 계속 걷는 것인가?

당신들이 만든 연대가 그리도 많은 힘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연대가 어디 얼마나 유용할지 어디 한번 볼까? 말한다.

 

 

 그가 이렇게 '어떻게'를 물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가 보기에 연대가 그리 강고하지 못한 까닭이다.

전작 '달과 게'는 '그 연대의 연약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는 말한다. 연대가 연약한 이유는 서로가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자신의 현실적 고통을 없애기 위해 제의처럼 소라게를 희생시키던 아이들의 연대는 결국 발가벗듯 드러내지 못한 자신만의 비밀스런 아픔들 때문에 산산히 깨어진다. 그들의 연대는 똑같은 고통 위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그저 순간의 외로움을 잠시 잊기 위한 피상적 '같이 있음'이었기에 그들의 아픔이 아무런 위안을 받지못할 가능성이 있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덜어서 넘겨주려 연대했을 뿐 받아서 더 가지려는 연대는 아니었기에 아픔의 호소가 무표정에 의해 그대로 반사되어 나온 순간 의미가 없어진 것이었다.

 

  결국 소용 없었어... 사람은 어차피 혼자야...

 

  이것이 '달과 게'에서의 슈스케의 결론이었다.

그것이 성장소설이라 한다면 그렇게 모든 짐을 자기 혼자 져야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 뼈져린 진실의 확인. 그것이 성장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의 확인 위에서 '구체의 뱀'은 출발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자신과 살기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내심을 알아버린 주인공 토모는 이웃의 오츠타로 씨네 집에 얹혀산다. 오츠타로씨는 친아버지 이상으로 토모에게 신경을 써 주고 있지만 토모는 어쩐지 끝내는 다가가지 못할 여백을 느낀다. 왜냐하면 7년전 야영을 갔다가 뜻하지 않은 화재로 오츠타로씨가 결국 아내와 큰딸 사요를 잃었기 때문이다. 토모는 그 때 자신도 함께 갔기에 그리고 사요에 대한 개인적 감정도 있어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오츠타로 씨네 집에 사는 세 사람... 오츠타로, 토모, 나오는 모두 겉으로는 안정된 가족 같은 삶을 사는 듯 보이나 서로가 자기 둘레에 처 놓은 보이지 않는 경계 안에서 홀로 그 고통을 삭이며 사는 존재들이다.

'달과 게'에 나왔던 '소라게 제의 모임'의 그 세 아이 그대로...

 

 토모는 오츠타로씨를 도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의 근거가 되는 집을 서서히 먹어가는 흰개미를 퇴치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 마음 깊숙히 존재하는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흰개미인 고통과 그에 대한 죄의식은 퇴치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서히 그들은 흰개미에게 먹혀간다. 끝없이...

 

 그렇다면 슈스케는 그냥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뿐인가?

사막 위의 십자가에 매달려 형벌을 받는 죄수가 오로지 홀로 정오의 땡볕을 견딜 수 밖에 없듯이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중언부언하고 있을 뿐인가?

 

 물론 그건 아니다. 삶이 그냥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영원히 움직이는 콘베이어 벨트라면

문학 역시도 그렇다. 어쨌든 과거의 작품 보다는 한 발 먼저 내딛여야 한다.

그것이 더 깊은 절망 속이든, 더 허무의 심연일지라도,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내뻗는 그 움직임에 문학의 존재는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확장되는 우리의 사유로 인해 존재하니까...

 

 해서 그는, 그 동기의 연유는 모르겠으나,

그 모든 홀로 상처를 곱씹기만 하는 고독한 은둔을 끊고

비로소 치유를 위한 온전한 연대의 가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이 소설에서 보이려 한다.

바로 토모에게 있어 죄의식의 근원이 되는 자살한 사유를 닮은 토모코의 존재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츠마루와 토모 모두를 기꺼이 껴안으려 하고 있었던

어두운 바다를 홀로 외로이 비추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던 나오를 통해...

 

 슈스케는 보여준다.

 

 어떻게 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안아버린,

그렇게 달아날 길 없는 트라우마의 구체 안에 갇혀버린

존재들이 연대를 통해 이제 긍정으로써 삶을 껴안게 되는가?

그러한 '함께 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을.

그것이 바로 배려라는 것을...

나의 아픔을 덜어내는 숟가락으로 타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나의 아픔은 그대로 쌓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를 바라며

차라리 내가 숟가락이 되어 덜어오는, 타인에 대한 배려.

그것이 바로 상처받은 자 모두를 삶의 자리에 제대로 설 수 있게 하는

온전한 연대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것임을 보인다.   

 

 그렇게...

한 없이 파도로 인해 심연 속으로 쓸려가면서도 어떻게 해변은 해변으로 남을 수 있고

한 없이 무정한 눈으로 덮이면서도 어떻게 석등은 석등으로 남을 수 있느냐 라는

삶을 항구적 '스노돔'으로 결빙시킬 힘은 모두...

해변이 모래알을 파도에 내어놓듯이

석등이 자신의 몸을 눈 아래 내어놓듯이...

나를 먼저 내어놓는 가운데 온다는 것을...

슈스케는 그렇게 내딛은 한 걸음.

한 권이 책이라는 그 결빙된 여정. 그것을 통해 보여준다.

 

 삶은 무섭다.

어린왕자의 보아뱀이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리 커다란 것이라 하더라도

홀로 삼켜야 한다는 그 '나누어 질 수 없음'이란 고독함 가운데 있었다.

그 예감된 고독함의 두려움이 너무도 커서 기껏 맺은 연대 또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슈스케는 이제 다른 쪽을 보라한다. 나만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나와 같은 또 한 사람을...

그리고 두려워말고 그를 위해 자기 먼저 내려놓으라 한다.

당신이 그렇게 덜어오는 하나의 작은 숟가락이 된다면

그 역시 덜어가는 숟가락이 기꺼이 되어 줄 것이라고...

우리가 가지는 아픔과 두려움은 먼저 덜어오려 할 때

눈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혹시 이 책을 읽고 마지막을 덮고 나서도

흩날리는 눈으로 가득한 예쁜 스노돔에 시선을 하염없이 빼앗기듯 여운이 오래도록 이어진다면

당신 역시 알게모르게 슈스케의 말에 공명한 탓이리라...

 

 그렇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자신을 한동안 처마 밑 풍경으로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그렇게 풍경이 되어 새로이 열린 가능성 처럼 밝아오는 햇살 아래

잠을 깬 더불어 함께 할 이들로 가득한 숲이 내어놓는 첫 숨을

가만히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그 투명하게 밭은 숨 가운데 가득한 타인의 온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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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09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문시같은 느낌의 리뷰로군요!
지금 오전 1시 26분.
이 시간에 딱 맞는 글입니다.
오우, 그런데 이런식으로 리뷰를 작성하니 꽤 좋은걸요.
글도 눈에 쏙쏙 들어오구.

아참,
피곤하지 않게 얼른 주무셔요 ㅎㅎ
저는 이만 자러가야겠습니다.

굳밤 :-)

ICE-9 2012-02-09 01:41   좋아요 0 | URL
와! 소이진님^ ^
깜짝 놀랐어요
잠깐 다녀왔더니 바로 댓글이 달려서...
좀 뭔가 변화를 줘 보려 했는데
괜찮은가요?
아무튼 잘 주무세요.
내일은 눈이 온다고도 하던데
강추위에도 끄덕없는 뜨거운 하루 되시길 빌게요^ ^

이진 2013-02-1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르메스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려던 찰나 이 리뷰가 떠올라 다시 들러요.
헤르메스님의 관찰력과 글솜씨는 도저히 못 따라가겠네요.
제가 쓰는 리뷰는 아마 졸작이 될 것 같아서 쉽게 손이 움직이질 않아요.
제목부터... 결빙된 숲... 크....
헤르메스님 제 리뷰 읽고 비웃으시면 안됩니다. 약속!

ICE-9 2013-02-12 16:22   좋아요 0 | URL
와! 구체의 뱀 읽으셨구나!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한데요.
비웃지 않을테니 빨리 올려주세요^ ^
최근에 까마귀의 엄지를 읽었는데 초반의 슈스케는 왠지 다르더군요.
후기의 강한 모라토리엄 증후군이 과연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더욱 수수께끼로 남았습니다. 아무튼 궁금 궁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