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없었다 - 형사 외르겐센의 지식 수사 소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게오르크 요나탄 프레히트 지음, 안성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1985년 5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형사보 외르겐센은 수도 경찰의 지방 파견 프로그램(SASOWA)의 일환으로 외딴섬 릴레외로 5개월 동안 파견된다. 작고 평화로운 외딴섬에서 강력계 형사인 그가 무슨 할일이 있나 싶었지만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는 생물학자인 여자친구의 부탁대로 그 섬에 사는 동식물들이나 조사하면서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그 섬에 오게된다.

  그런데 그 섬에 오자마자 예상과는 달리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라르센 노인의 장례식장 부터 인도된다.

 

  모든 것엔 동전의 양면이 존재한다. 목가적인 작은 섬에 와서 가장 먼저 겪는 일이 낡아 빠진 자동차로 공동묘지에 실려가는 것이라니. 그것도 아침도 먹기 전에...(P.19)

 

  아무리 평화로운 섬에 와서도 그동안 강력계 형사로서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던 그는 '말테'라는 평생 그 섬에서 경찰로 살아온 이에게 부검을 했는지 물어보고 '릴레외에선 200년간 살인 사건이 한 번도 없었다.'라는 말과 함께 부검을 하지 않았다고 하자 독살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부검도 없이 매장하냐며 반문한다. 여지껏 평화롭게 섬에서 잘 지내온 정착민인 그에게 일흔 세살 노인의 심장마비란 그 무엇보다 자연스런 죽음일 뿐인데 이제 갓 들어온 외지인이 이렇게 항의하니 그런 의문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그저 너무도 황망스러워서 그는 차마 뒷 말을 잊지 못한다.

 

  외르겐센 안스가르 형사는 온갖 성가신 것을 가져온다는 '북쪽의 사도'를 뜻하는 안스가르란 이름 그대로 200년 넘게 조용하고 평화롭기만한 섬 릴레외를 의혹과 조사를 가져오는 미스터리의 공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결국 외르겐센은 그 노인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릴레외 섬에 얽힌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크의 통합 과정에 있어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찾아낸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살인은 없었다'는 무려 692페이지에 이른다. 미스터리 소설 치고는 정말 압도적인 분량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대부분 출판사들은 상, 하 양권으로 분권으로 내놓을 터인데 21세기북스는 고맙게도 단권으로 내놓았다. 덕분에 경제적 부담은 줄었지만 지하철에서나 혹은 가지고 다니며 읽을 때는 적잖이 불편했다. 이럴때는 좀 애매모호하다. 대부분의 독서 시간을 길바닥에서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서 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면 또 분권으로 인한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이 신경쓰이고 고맙게도 단권을 해주면 이런 두께는 집에서 밖에는 읽을 수 없어 완독에 하염없이 시간이 걸리게 되고... 참 어느 것 하나 딱 이거다 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외르겐센이 말했던 동전의 양면 그대로다.

 

  아무튼, '살인은 없었다'가 이렇게 많은 분량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다. 바로 프레히트가 외르겐센이 릴레외 섬에서 있어야 하는 5개월을 최대한 그대로 담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프레히트가 공을 들이는 건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알고 다가가려 했던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미스터리가 아니라 외르겐센이 섬에서 보내는 일상의 디테일한 복원이다. 그는 외르게센의 하루 일과중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필요한 것은 그 무엇이든 세세하게 담아내려 애쓴다. 그렇게 우리는 외르겐센의 수사과정에 관찰자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에 동반자로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미스터리만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이 동반의 여정은 여지없이 지루해질 수 있다. 하지만 미스터리에 대한 기대를 적당히 버리고 보면 어느새 외르겐센의 일상에 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프레히트의 묘사가 좋다.

 

  그런데, 왜 그는 미스터리를 표방하면서도 이렇게 공들여 섬에서의 그의 일상을 복원하려는 것일까? 내 생각엔 이것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포인트 같다. 여기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책의 각 장마다 그가 붙인 소제목이다.  프레히트는 각 장의 소제목에 독특하게도 온갖 동물이나 곤충의 이름을 갖다 부텼다. 쇠돌고래, 장수하늘소, 고양이, 갈매기 등등...

 

 

   옆의 커버는 독일 원서의 것인데 보면 알겠지만 소제목에 나오는 것들을 하나의 도감 처럼 표현하고 있다. 표지란 것이 작품의 핵심적인 분위기나 주제 같은 것을 응축해 표현하는 것임을 상기해 본다면 소제목이 이렇게 도감을 보듯 동물과 곤충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 이것과 외르겐센의 일상에 대한 충실한 복원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일까? 그건 마지막에 가서 밝혀지는 릴레외 섬에 간직된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트의 통합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나는 여기서 소설의 마지막에 밝혀질 비밀을 말하고 말았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을 스포일러라고 여기진 않는다. 여기에 대해 뭐라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수는 없으나 당신 역시 이 책을 읽게된다면 분명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는 것은 확신한다.)

 

  프레히트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 있었던 세 나라의 통합 문제를 새삼 끌어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유럽 통합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외르겐센의 집념으로 밝혀지는 역사적 진실은 이른바 '베르나도테 작전'으로 당시 베르나도테는 노르웨이와 통합하여 나폴레옹에 맞서려 했던 스웨덴을 치기 위해 프랑스, 네델란드, 스페인 덴마크 연합군을 이끌고 덴마크에 주둔해 있었다. 그런데 이 베르나도테는 그 후에 바로 적국인 스웨덴의 국왕이 되는데 과연 어떻게 해서 나폴레옹의 명령을 듣던 프랑스 군의 사령관이었던 그가 대적하고 있는 스웨덴 국왕이 될 수 있었을까? 외르겐센은 바로 그 까닭을 릴레외에서 알게되는 것이다.

 

 굉장히 드라마틱해 보이는

이 사건은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나폴레옹

처럼 일반 사병에서 시작했

던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

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사령

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

전적인 인물이었다. 육군원

수가된 그는 출세과정이 여

러모로 나폴레옹와 유사하

여 자주 나폴레옹의 라이벌

로 여겨졌으나  덴마크에서

그를 배반하고 적국 스웨덴

의 황제가 됨으로써 공식적

으로 나폴레옹의 라이벌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배신자가 되

었지만 스웨덴으로서는 구

세주가 되었다.

그는 스웨덴의 국왕이 되자

마자 덴마크에서  나폴레옹

의   군대들을 몰아  내었고

노르웨이를 통합, 스웨덴연

방을 만들어 러시아와 프랑

스의 협공으로  부터   보다

안전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

다.  베르나도트에  의해 해

방된 덴마크는   그 때도 여

전히 독립국이긴 했지만 바

로 코앞에 스칸디나비아 반

도의 대제국이 세워지고 있

는 마당에  그 독립을  문자

그대로 유지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결국 독립국이란 명목상일 뿐이고 연방의 사실상 지배를 받는 국가로 전락한다.

  외르겐센과 함께 그 진실을 찾아가는 은둔의 노학자 크리스텐센이 이렇게 안타까움을 슬회할 정도로...

 

   사실 우리 통합 국가의 마지막의 시작이었지. 현재는 북해지역에서 스웨덴이 대장 노릇을 하지. 그리고 우리는 거의 함께 뛰는 경기의 주자가 되지 못해. 그 때부터 우리 덴마크는 놀이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 처음에는 베르나도테에 의해서 그랬고 그 다음은 비스마르크, 그리고 히틀러. 내가 짐작하기로 그 다음은 유럽연합일 것만 같아(P. 664)

 

  한 때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를 지배했던 대국이었으나 이제는 힘없는 작은 나라로 전락해 버린 덴마크... 크리스텐센의 저 안타까움의 술회는 사실 강대국 사이에 끼여든 모든 나라들이 겪는 아픔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당한 하나의 주체로서 협상이 아니라 거의 강요에 의해 그들과 한데 섞여야 하는 우리나라와의 닮은꼴 때문에 덴마크가 그리 멀리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크리스텐센의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프레히트는 유럽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나라들이 독자성을 잃고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통합이라는 것이 덴마크의 어두웠던 과거 역사처럼 온전한 주체로서의 참여가 아니라 약하기에 마지못해 끌려들어간 억류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강제된 통합에 대한 반감이자 오히려 그 때문에 온전한 주체가 서로 대등한 가운데 조화롭게 참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통합임을 말하기 위해 프레히트는 앞에서 말했던 692페이지에 걸쳐 5개월간의 외르겐센의 일상을 충실히 복원하는 것이며 소제목을 하나의 자연도감 처럼 동물과 곤충의 이름으로 단 것이다.

 

   이 소제목 때문에 나는 찰스 다윈의 '비글호의 항해기'가 생각났다. 이 책에서 다윈은 항해 도중 발견한 동물과 식물들을 상세한 스케치까지 더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갈라파고스 섬에 대한 생태에 대한 그의 묘사는 유명하다. 독일 원서의 표지도 그렇고 프레히트가 이렇게 소제목을 일부러 도감처럼

달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어떤 '유(類)적 존재'로 환원되지 않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고유한 개체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도감에서 그 동물 하나 곤충 하나를 온전히 그 존재 자체에 바탕해서 설명을 하듯 그렇게 프레히트 역시 '살인은 없었다'를 통해 독립성과 고유성이 지워진 통합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생생히 살아나는 개체성으로써 일곱빛깔의 무지개 처럼 조화로운 통합이 진정한 하나임을 읽는 이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 이러한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외르겐센의 5개월간의 일상을 그렇게 세세한 것 하나까지 복원하는 것도 도감에 나오는 동물들의 생태에 대한 설명과 같은 것이다. 어떤 기준에 의해 다듬어지고 주조되는 개체성이 아니라 그 자체 하나로 온전하고 전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가급적 가감없이 외르겐센의 일상을 복원한 것이다. 이렇게 도감 방식의 소제목의 차용과 '딮 포커스'식의 일상의 세밀한 복원은 강요된 통합에 대한 저항과 진정한 통합에로의 지향 때문에 비롯되어진 것이었다.

 

   얼마전에 날치기로 통과된 FTA 때문에 우리나라도 강요된 통합의 대상이 되었다. 더구나 FTA는 오로지 미국식 기준만 살아남는 한 나라의 고유한 개체성을 지우는 조약이다. 크리스텐센의 말마따나 우리 나라를 그들더러 마음대로 놀라고 놀이터로 내어주는 꼴이다. 과연 그렇게 무리하게 우리가 가진 독자성을 없애고 아메바처럼 들러붙는 것이 좋은 일일까? 프레히트가 692페이지에 걸쳐 거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고 있는지는 더 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전에 아주 인기있었던 미국 드라마 '엑스 파일'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거기서 한 유전적으로 돌연변이가 된 인간이 스컬리에게 다가와 멀더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생각해 봐요. 지구의 모든 사람이 저 멀더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당신이랑 멀더가 아무리 근사하게 생겼다고 해도 그렇게 다 같은 얼굴이 되면 과히 보기가 좋지만은 않을 거요. 이제 왜 우리 같은 존재가 있는지 알겠오? 자연이 그런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오. 자연은 정상성을 거부한다오!"

 

   저마다 가진 고유의 개체성이 말살된 획일화의 끔찍함이 비단 존재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그것은 똑같이 통용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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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15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이름도 거창한 지식 수사 소설이라,
너무나 멋져보이는데 제게는 벌써 리뷰부터 막히기 시작한다는 ㅋㅋㅋ

ICE-9 2012-01-15 23:57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제가 너무 어렵게 써 버렸나요?
반성, 반성...
아무래도 생소한 덴마크의 역사인데다, 유럽통합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으니...
그렇게 되었나 봐요. 앞으로는 좀 더 쉽게 쓰도록 고민해봐야 겠네요.^ ^;